클래식 뉴 웨이브 [2]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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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뉴 웨이브 [2]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열려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리지만 강력한 클래식의 새 물결이 당도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인의 연주자를 만나 젊은 예술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나른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눴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4.29
 
 

KIM DONGHYUN

The Violinist
 
김동현의 바이올린은 맑고 정교하다. 스물두 살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찬탄하는 평론가들은 여러 형용사를 동원한다. “깨끗하고 깔끔하게 제어되는 바이올린. 가볍고 날렵하다.”(류태형) “옹골찬 음색과 탄탄하게 다져진 테크닉을 바탕으로 냉철한 지적 해석에 절제된 표현을 가미할 줄 아는 연주자.”(황장원) “음을 균일하게 유지하며 고운 음색으로 연주하는 뛰어난 능력.”(황진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3위,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2위, 한국인 최초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우승 등 콩쿠르 수집가이기도 한 모범생은 예원학교 수석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을 사사 중이다. 성실한 연주자이기도 한 그는 올해 직접 기획한 4번의 독주회를 진행한다. 무반주 바이올린만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브람스만으로 공연을 채우기도 하며, 바로크부터 근현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일 예정이다. 엄격한 연주자이자 왕성한 연구자인 청년의 실험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수상 경력이 화려해요. 세계 3대 콩쿠르인 차이콥스키 콩쿠르 3위, 서울 국제 음악 콩쿠르 우승, 제오르제 에네스쿠 2위, 영 차이콥스키 국제 음악 콩쿠르 바이올린 우승 등등.
더 도전할 수 있는 나이라 가능하면 더 출전하려 해요. 콩쿠르에 나가면 역량도 발전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시야도 넓어지거든요. 물론 음악을 어떻게 점수로 표현하냐는 콩쿠르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점도 인지해요. 연주를 많이 해온 연주자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고요. 하지만 전 스스로를 알려야 하고 성장해야 하는 입장에서 콩쿠르의 순기능을 더 보려고 해요. 그간 주로 러시아, 동유럽권에서 수상해서 서유럽에 있는 콩쿠르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19세에 차이콥스키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했을 때, 관객석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고함을 쳤어요.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게 연주를 이어갔다는 건 지금도 이어져오는 이야깃거리죠.  
그때 시선이 잠깐 그쪽으로 갔는데, 열 받아서 그런 거예요.(웃음) 하지만 페이스를 최대한 빨리 되찾았죠. 무대에서의 집중력이 좋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몰입한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거잖아요. 평소에도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편이라 그런 성향도 한몫하는 거 같아요.
외골수인가요?
아니고 싶어요. 현대의 흐름과 상이한 일을 직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쉽고, 또 이 직업을 가진 분들 중엔 그런 분들이 많죠. 저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사람이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할 일도 해나가고 싶어요. 연주할 때 말고는 외골수가 아니려고 합니다.
올해 직접 기획한 네 번의 독주회를 금호아트홀에서 열어요. 22℃ 산뜻함, 100℃ 뜨거움, 0℃ 차가움, 36.5℃ 포근함, 온도에 따라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음악에게서 온도를 본다는 발상이 흥미로운데 어떻게 이런 기획을 구상했나요?  
지금껏 하지 않았던 과감한 기획을 하고, 해보지 않았던 곡들을 연주하며 레퍼토리를 넓히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곡 캐릭터들이 맞춰졌고, 이걸 온도로 분류하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음악을 공부하면서 중요하게 배웠던 게 소리의 색깔이거든요. “이 대목에서 색깔을 바꿔보라”라는 말은 레슨에서 자주 듣는 말이죠. 초등학생 때는 악보를 색연필로 칠해보기도 했어요.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혹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러데이션을 넣어가면서요. 그리고 소리의 색깔을 원초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건 온도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마인드맵처럼 나온 기획입니다.
0℃ 차가움 공연은 무반주 바이올린 곡으로만 꾸렸어요. 전체 무반주 공연은 정말 드문 기획이죠.
일단 무대에서 혼자 연주한다는 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에요.(웃음) 외롭고 무섭고 떨리죠. 그래서 차가운 온도로 정했죠. 바이올린의 높은 소리가 차가운 걸 만졌을 때의 샤프한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깔끔하고 똑 부러지는 느낌이 좋지요. 제가 닮고 싶은 소리이기도 하고요.
음악평론가들은 당신을 정공법을 구사하는 모범생 연주자라고 하더군요. 동의하나요?
연배가 있으신 교수님들이 우스갯소리로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생긴 대로 한다.” 사람의 성격, 가치관, 평소의 생각과 태도가 무의식적으로 음악에 묻어나오거든요. 저 스스로는 모범생이 아니고 싶었지만, 돌아보면 항상 그랬어요. 해야 하는 건 제대로 하는 성격이거든요. FM이에요.(웃음)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누구예요?
브람스를 가장 좋아합니다. 브람스로만 프로그램을 구성할 만큼이요. 중학생 때 브람스 소나타에 빠져서 콩쿠르 곡으로 준비하려고 했는데, 당시 김남윤 교수님께서 “그건 나이 먹고 하라”고 하셔서 ‘왜 브람스는 나이 먹고 해야 하는 걸까’ 신경 쓰다가 애착을 갖게 됐죠.(웃음) 브람스는 균형 잡혀 있고 따듯하고 인간적이에요.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같은 작곡가들은 인간적인 느낌은 아니잖아요. 전자는 인간을 뛰어넘는 노력을 보여준 음악가고 후자는 그냥 천재죠. 하지만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자신과 비슷한 것에 애정을 갖게 마련인 것 같아요.
사실 브람스에겐 열등감도 많았죠.  
맞아요. 그래서 더 가깝게 다가오는 거예요. 앞으로 수백 수천 년 동안 들려질 곡을 쓴 작곡가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자신은 열등감도 많고 사랑에도 실패했죠. 브람스 특유의 쓸쓸한 감성은 위로를 바라기보다는 듣는 이를 위로하는 느낌이에요. 쓸쓸한 멜로디 끝에 감싸 안아주는 듯한 화성을 많이 사용하기도 하고요. 충분히 따듯하고 충분히 사랑할 줄 아는 작곡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평생 공부해도 계속 공부할 것이 있는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음색과 스타일 면에서 거장 볼프강 슈나이더한, 헨릭 셰링을 연상시킨다”는 황장원 평론가의 평이 있었어요. 존경하는 연주자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영광입니다. 헨릭 셰링은 제가 연주를 많이 보면서 연습한 연주자이기도 해요. 하지만 최근 많이 듣고 이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연주자들은 다른 분들입니다. 오귀스탱 뒤메이, 니콜라이 즈나이더, 어거스틴 하델리히를 좋아해요. 뒤메이는 비브라토를 극한으로 활용하며 색깔을 바꿀 줄 아는 탁월한 연주자고, 즈나이더는 굉장히 남성적인 소리를 내면서 사투리처럼 독특한 악센트를 구사하는 연주자죠.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것이 배우고 싶은 점이에요. 하델리히는 ‘파인’한 소리를 내면서 정성스럽게 한 음 한 음 버리지 않고 연주하려는 연주자라는 면에서 배울 점이 많아요.  
예원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한예종 영재과정으로 입학, 지금은 뮌헨 국립음대에서 크리스토프 포펜 교수에게 사사 중이죠. 남들보다 앞선 엘리트 코스만 걸어왔어요.
일반적인 경로보다는 빨리 가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영재 제도에 부정적인 평도 있지만 긍정적인 기능도 존재해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하잖아요. 시간을 벌어둔 게 있으니 지쳐도 조금 쉬어 갈 수도 있고요. 물론 지치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만.(웃음) 단점은 한예종에 들어갔을 때 저는 열여덟 살이라 술자리에 못 간 거 정도네요. 이젠 학업 과정을 끝마쳐 가기 때문에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외인 대목인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다이아 등급이라면서요?
예원학교 다닐 때 LOL이 선풍적인 인기였어요. 연습 시간을 줄일 수는 없어서 잠을 줄여가며 했습니다. 참고로 다이아 등급은 일반인이 취미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이에요.(웃음) 다이아 등급이 된 후로 목표로 할 게 없어서 요샌 재미 삼아 합니다. 지금 좋아하는 건 축구고 첼시 팬인데요, 요즘 쉽지 않아요. 구단주가 푸틴 최측근이라 구단주가 없어졌거든요. 여하튼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좋은 건 유럽 리그 경기를 새벽에 안 봐도 된다는 것이죠.(웃음)
주식에도 관심이 있다고요?
원래도 뉴스 보는 걸 좋아하는데, 제 돈이 들어가 있으면 더 관심 있게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가는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주식 자체보단 세상 일에 관심이 많다고 하는 게 더 맞겠네요.
순수예술이라는 게 세상과 괴리되기 쉬운 일인데 말이죠.
사실 선생님들 입장에선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어요. 모든 영혼을 갈아 넣어도 부족한 게 음악인데 어떻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며 사냐고 하실 수 있지요. 물론 음악은 저의 모든 것이지만, 동시에 아직 살날이 더 많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기에 갖출 것은 갖춰야죠. 멋지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거든요. 이게 저의 가장 큰 목표예요.
당신에게 멋지다는 건 뭐예요?
열려 있는 자세를 지닌 것. 나이 들수록 자기가 해왔던 거, 경험했던 거, 알던 것만 고집하게 되기 쉽잖아요. 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계속 알고 싶은 게 생기고, 배우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겐 그런 게 멋집니다.
스스로의 연주를 사랑하나요?
만족한 적은 없지만, 사랑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들으시는 분들도 좋게 들으실 수 있거든요.
지향하는 태도와 닮은 클래식 용어가 있나요?
‘셈프레’. ‘지속적으로’라는 뜻이에요. 계속해서 지속해라. 다른 표기가 나올 때까지 하던 걸 계속해서 하라는 거죠. 영어로 치면 keep. 꾸준함은 저의 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파르마 시절 과다니니가 만든 1763년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어요.
점검해주시는 마이스터분 말씀인데, 누가 쓰는지에 따라 소리가 조금씩 바뀌어 온다고 하더라고요. 신비하죠. 악기는 생물이 아닌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생동감이 느껴져요. 7년째 사용하면서 많이 친해진 것 같습니다.
김동현에게 바이올린이란?
저의 명함이자 친구이자 가족이자 원수입니다.(웃음)
최근 선배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연주 영상이 유튜브 100만 뷰를 넘겼어요. 젊은 연주자로서, 클래식이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필연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음악도 산업이고 수요가 따라줘야 하는 분야죠.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든, 연주자를 통해서든, 지금보다 친밀하게 다가가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죠. 클래식은 실연을 통해 들어야 그 매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더 어려워졌어요. 메타버스의 시대에서 클래식이 설 자리가 있을까요?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해야 할 시점이에요. 우선은 대중에게 열린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마음가짐에서 오는 차이가 크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플랫폼으로 클래식을 알리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고요. 물론 클래식 음악이 가진 엄숙함, 고귀함, 역사, 이런 것들 역시 존중 받아야 하죠. 다만 저는 음악은 존중하되, 사람은 친밀하게 다가가는 게 어떨까 해요. 일부 클래식 팬들에겐 썩 달갑지 않은 일이란 걸 알지만, 지금은 다 같이 힘을 합쳐 헤쳐나가야 할 시기입니다.
젊은 연주자로서 기성 세대의 연주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감히 이야기하기에 조심스럽지만, 다른 태도가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대가 바뀌었고 앞으로 더 바뀔 거예요.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시대는 여러 번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세기를 나누었지만 이제는 10년도 너무 길어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연주자로서,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건 저희가 더 절실히 느껴야 할 점이죠.
앞으로의 당신의 야심은?
제가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제한은 두지 않으려 해요. 솔리스트가 됐든 실내악 연주자가 됐든 오케스트라가 됐든 간에 악기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멋지게 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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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FREELANCE EDITOR 이예지
    PHOTOGRAPHER 김성룡
    HAIR & MAKEUP 김환/이소연
    LOCATION 오드 메종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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