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목사 남편 노상현이 이기자 부대를 나온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PEOPLE

<파친코>의 목사 남편 노상현이 이기자 부대를 나온 이유

노상현은 <파친코>라는 기회를 잡았음에도 들뜨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파친코>의 올곧은 이삭을 닮은 노상현과 나눈 한낮의 대화.

오성윤 BY 오성윤 2022.05.25
 
재킷, 셔츠,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재킷, 셔츠,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모델 활동으로 커리어를 시작했고, 배우로 전향한 뒤 이삭을 만나기 전까지 웹드라마, 독립영화를 하거나 상업 작품에서는 조단역을 맡곤 했어요. 이름을 알리지 못했던 그 시절엔 어땠나요?
그때도 같은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잘살 수 있을지. 굉장히 생각이 많은 시기였고 아주 혼란스러웠죠. 20대 초반엔 그런 생각들로 가득했어요. 세상에 대해 궁금했거든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 내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그 이전에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굉장히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했죠.(웃음) 이렇게 돈 벌다가 결혼해서 살다가 자식을 낳아 키우고 죽으면 끝인가? 이런 거. 그런데 저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싶더라고요. 뭔가 해내고 싶었죠.
뻔하게 살고 싶지 않았군요. 무엇을 해내고 싶었어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었어요. 내가 스스로의 가치를 어디서 느끼는지, 언제 내 기분이 좋은지 생각해보면 결국 남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 관계에서의 움직임, 그런 것들을 주의 깊게 보니 저도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이었죠.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지금도 그런 것들을 계속 찾는 중이에요.
무명 시절의 조바심에 대해 묻고 싶었는데, 더 원대한 것들을 고민하고 꿈꾸던 시절이었군요.
업계에 발을 들일 때, 분명 그런 걸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이 일의 화려함, 환상, 기대감 말이에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중에 당연히 있었던 거죠. 스물아홉 살에 군대를 갔을 때 제 마음이 가장 처참했어요. 미래가 안 보이고, 이루어놓은 건 없고, 실패한 것 같고. 길게 볼 줄을 몰랐어요. 아직 환상이 있으니까 그만큼 힘들었던 거죠. 하지만 그런 걸 좇는 건 되게 허무하더라고요.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그게 꼭 행복을 주는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어떤 것이든 다 할 수 있다’ ‘어떤 역할이든 재는 거 없이 하자’는 상태가 되었을 때 〈파친코〉라는 좋은 기회를 만난 거예요. 감사할 뿐이죠. 저는 하던 대로 제 앞에 놓인 거 열심히 하면서 살아갈 거예요.
슬럼프를 통과해 이처럼 좋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크게 들떠 보이지 않네요.
저는 그 들뜨는 마음을 견제하려는 거예요. 이것도 결국 지나가는 것이거든요. 제가 느꼈던 부정적인 시기가 결국 지나갔던 것처럼, 지금 좋지만 나중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기뻐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무던하게 덤덤하게 제 할 일 하면서 지나가려 하고 있어요.
 
셔츠, 팬츠, 슈즈,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셔츠, 팬츠, 슈즈, 네크리스 모두 돌체앤가바나.

넓고 깊은 호수에 돌을 던지면 물이 많이 튀어 오르지 않잖아요. 지금 그런 느낌이네요.
부끄럽습니다.(웃음)
어릴 땐 미국에서 살았죠? 그땐 어떤 아이였어요?
한국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이 캐나다로 보냈어요. 고등학교는 미국으로 갔고, 보스턴 근교의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을 전공했죠. 욕심 많은 애였어요. 할아버지께서 교육열이 높아서 제가 변호사가 되길 바라셨지만, 그렇게 되진 못했죠. 이제야 조금이나마 인정받을 수 있겠네요.
그런데 어쩌다 연기를 하게 됐어요?
경영 전공도 부모님이나 할아버지의 기대로 하게 된 건 아녜요. 그때는 그게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기업이 뭐길래 세상을 움직이는지 알고 싶었고 브랜드들이 궁금했죠. 대학에 다니면서 또 다른 재미있는 걸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연기였어요. 연기는 본질적인 것이잖아요. 저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걸 좋아하는데, 배우는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하고 그 본질이 뭔지 연구하는 직업이니까요. 그게 저와 잘 맞을 것 같았어요.
군대는 최전방의 ‘이기자’ 부대를 다녀왔던데요?
제가 미국에 오래 있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는데 부모님이 군대 가라고 신청을 못 하게 했어요. 허튼 수작 부리지 말라고 하셨죠.(웃음) 그래서 이왕 갈 거면 제대로 가자고 지원한 거예요. 제가 스물아홉인데 선임이 스물셋인 친구였어요. 힘들다면 힘들고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스티브와 노상현으로 살아왔죠. 미국에서는 아시안이고 한국에서는 교포라 섞이지 못한다는 데에 대한 외로움은 없었어요?
어릴 때는 친화력이 좋아서 홈스테이 하던 형 동생들과도 금세 친해지고 학교 친구들이랑도 잘 지냈어요. 정서적으로 미국이 더 편했어요.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고 판단받지 않고 나는 나대로 살 수 있는 문화. 그런데 한국 와선 이방인이었어요. 문화와 소통 방식에 차이가 있었고, 앞서 말씀드린 고민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외로워졌죠. 졸업하고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확실히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민자들의 영화 〈파친코〉에도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 같고요.
맞아요. 정말 그랬어요. 새로운 땅에 떨어져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 물론 이제는 완전히 한국인입니다만.(웃음)
남들은 노상현이 어떤 사람이라고 하나요?
사람마다 달라요. 어릴 때 저를 본 친구들은 저를 활동적이고 운동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죠. 제가 먼저 말을 하거나 고민을 표현하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늘 만난 기자님은 저를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으로 보시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단편적인 존재들이 아니잖아요. 짐작컨대 기자님께서도 지금의 모습과 다른 면이 있으실 거고요.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을까요? 남들이 보는 건 남들이 자신들에게 보이는 면만을 포착한 모습일 테고요.
 
셔츠, 페도라, 벨트, 네크리스, 스카프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페도라, 벨트, 네크리스, 스카프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노상현은?
단편적이지 않은 복잡한 사람이죠.
차기작인 드라마 〈피타는 연애〉에서 맡은 존 킴은 이삭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 같던데요.
맞아요. 한국에 파병을 나온 미군이고, 한국과 북한의 부대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분위기를 풀어주는 윤활유 같은 캐릭터죠. 깜짝 놀라실 수도 있어요. 굉장히 오버하고 코믹하거든요. 팬들 다 떠나갈 수도 있어요.(웃음)
멋진 인물이 아닌 코믹한 캐릭터를 택한 까닭이 있어요?
도전이었어요. 어디에도 갇히고 싶지 않았고, 제가 못할 것 같은 걸 하는 게 목표였거든요.
앞으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결국, 제가 말수가 별로 없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는데요. 저는 말하는 것보다 행동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그냥 그 사람이 되는 게 멋지지 않나요?(웃음) 제가 그냥 묵묵히 제 일을 하면, 〈파친코〉가 온 것처럼 더 많은 것이 또 제게 올 수 있겠죠. 하지만 그전까지는 침묵할래요.
영어가 유창한데 할리우드 진출 생각도 있어요?
물론 있죠. 어디서든 무엇이든 다 해볼 수 있습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감독이 있다면요?
봉준호 감독님. 꼭 한번 해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행복까지는 모르겠어요. 분명 지금 기뻐해야 할 일이 일어난 건 맞는데, 기쁨과 행복은 좀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행복이란 욕심이 없는, 더 바라는 게 없을 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아닐까요? 항상 그게 뭔지 고민하지만 아직 알 수 없네요.
노상현은 무엇을 믿나요? 
인과응보요. 사실 우리가 태어난 배경을 정할 순 없잖아요. 부모님도, 신체적 조건도, 경제적 조건도 어떤 것도 정할 수 없죠.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로 살아나가야 해요. 불공평하죠. 그런데 전 창조주를 믿거든요. 특정 종교를 말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창조주인 누군가 이 세상을, 인간을 만들었을 때 절대 불공평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인과응보를 믿는 거예요. 이게 사실 남한테 이야기하기엔 편한데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건 어려워요. 내게 시련이 왔을 때, 고통을 겪을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가 있잖아요. ‘내가 그걸 잘못했던 거지, 혹은 인지하지 못했지만 내게 뭔가 부족했던 것이 있었겠지’ 이렇게 스스로에게서 이유를 찾는 거예요. 물론 정말 힘들죠. 하지만 저는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관련기사]
〈파친코〉 감독들이 배우 노상현에게 말해준 그를 발탁한 이유

 

Keyword

Credit

    FREELANCE EDITOR 이예지
    PHOTOGRAPHER 김신애
    STYLIST 이민규
    HAIR & MAKEUP 장해인
    ART DESIGNER 김동희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