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구 열기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개인적으로 누가 요즘 가장 핫한 배우인지를 감지하려고 여러 게시판,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항상 모니터링하거든요. 얼마 전부터 <범죄도시2> 무대 인사가 엄청나게 바이럴되더라고요. 오가닉으로요.
아, 소속사, 바이럴 마케팅 업체나 거대 팬클럽에서 일부러 이슈를 확산시키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렇지 않은 경우를 농약 안 친 인기라는 뜻으로 오가닉, 혹은 유기농이라고 해요.
조금씩 느리게 체감하는 것 같아요. 사실 비교군이 있어야 그 크기를 더 잘 알 것 같은데,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없거든요. (수백만 관객이 든 영화를 찍어봤어야) ‘아 이런 게 천만 영화구나’라고 생각할 텐데, 지금은 무대 인사 가서 ‘이 영화를 많이 사랑해주시는구나’ 정도만 느껴요.
콤팩트 스트라이프 펠트 블루종, 테일러드 하이라이즈 팬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나의 해방일지>가 처음에 2%로 시작했잖아요. 근데 ‘추앙’이란 단어가 등장하며 화제성을 타고 인기가 막 올라가고 있을 때, 여기저기서 이 드라마에 심각하게 감정이입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때, <범죄도시2>가 개봉했죠.
정말 그 타이밍이죠. 저는 지금 기자님이 그 과정을 설명해주는 걸 듣는 동안에도 전율이 돋았다고 할까요? 그런 감정을 좀 느꼈어요. <나의 해방일지>가 어떻게 보면 미약하게 시작했거든요. 지금의 큰 관심을 받게 된 과정만 해도 제게는 매우 드라마틱했죠. 그런데 그 과정이 <범죄도시2>까지 이어졌으니 개인적으로 운이 정말 좋았던 셈이죠.
밤과 범죄의 영역에 속하는 구씨의 과거 캐릭터가 밝혀진 이후는 <범죄도시2>랑 캐릭터가 살짝 겹치기도 해요. <나의 해방일지>에도 갑자기 <범죄도시2>의 장르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요. 마치 손석구를 위해 우주가 돌아가는 것처럼요.
(웃음) 맞아요, 맞아요. <나의 해방일지>도 <범죄도시2>도 많이 미뤄졌던 작품이에요. 사실 그 기간 동안 제 매니저랑 그런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배우로서의 제 커리어가 잠시 포즈된 것 같다는 느낌에 대해서요. 개인적으로 <지정생존자> <멜로가 체질> 등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다음으로 그려뒀던 일종의 단계가 바로 그 두 작품이었거든요. 흐름이 끊겨버린 것만 같았죠. 식장에서 전채 요리를 먹고 나서 다음 코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 코스가 안 나올 때의 심정이랑 비슷했어요. 팬데믹 때문인데, 뭐 저뿐이었겠어요?
<범죄도시2>는 해외 촬영이 불가능해서 아예 세트를 짓느라 늘어졌어요. 크랭크업이 2021년 6월이었는데, 그 뒤로도 좀 밀렸고요.
제가 그 작품의 시나리오를 받은 게 2019년이니까 정말 어마무시하게 늘어진 셈이죠. 다 찍고 나서도 팬데믹으로 개봉 시기가 계속 밀리면서 시간이 꽤 흘렀고요. <나의 해방일지>의 경우도 박해영 작가님께서 좀 더 시간을 들이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한 2년 정도의 시간이 작품 없이 그냥 지나갔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이요.
루렉스 이브닝 스웨터, 스트라이프 테일러드 하이라이즈 팬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보통 배우는 영화 제작에 들어가면 그 기간에 집중해서 찍고 빠지거든요. 그런데 <범죄도시2>를 찍으면서 잠시 멈춘 사이에 <연애 빠진 로맨스>도 찍고, <D.P.>도 찍고, <지리산>도 찍고 그랬던 거죠. 그땐 ‘뭐가 안 풀리려니까 이렇게 안 풀리나 보다’ 싶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전화위복이었던 셈이네요.
3코스 런치인 줄 알고 메인 요리를 기다렸는데, 7코스 디너였다고 생각해도 되겠어요. 전 오히려 지금 완성된 흐름이 더 좋은 것 같거든요. <지정생존자>에서 정치 보좌관으로 보여준 현업 캐릭터를 해석하는 감각, <연애 빠진 로맨스>에서의 귀여움, <D.P.>에서의 코믹하고 순발력 넘치는 연기 등을 다 보여준 다음에 <나의 해방일지>에 나와서, 손석구라는 배우가 더 깊어 보였어요. <나의 해방일지> 다음에 <범죄도시2>가 나온 것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비슷한 말씀을 하시네요. 전 사실 <범죄도시2>가 먼저 개봉하길 바랐어요. <범죄도시2>가 나오고 <나의 해방일지>가 나오면 참 좋겠다. <나의 해방일지>는 여러 분들이 언급했듯이 대중적으로 단번에 끓어오르는 작품이라기보다는 좀 소수의 마니악한 팬층이 생길 드라마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범죄도시2>가 먼저 개봉하고, <나의 해방일지>가 그 버프를 좀 받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나의 해방일지> 김석윤 감독님이 다 만드시고 그러시더라고요. “석구야, 우리 작품이 먼저 나오는 게 낫겠다”라고요. 정말 딱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 거 먼저 나오는 게 나아. <범죄도시2>가 우리 버프 받으라 그래.” (웃음) 그게 다 혜안이 있으셔서 하신 말씀인가 봐요. 정말 그대로 됐잖아요.
울 터틀넥 스웨터, 그레인 드 푸드레 하이웨이스트 팬츠, 메탈 & 에나멜 브레이슬릿, 카프스킨 홀스빗 슈즈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같은 이유인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유도 있어요. <범죄도시2>의 강해상은 사실 장르 안에 있는 캐릭터잖아요. 그 사람이 실제 일상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할 수 있게 그려지지는 않거든요.
그렇죠. 좀 더 1차원적이고, (극의 목적을 향해) 달리는 캐릭터죠.
반면에 구씨는 다면적인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구씨 다음에 강해상이 나와야 ‘박해영 작품으로 다면적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범죄도시2>로 장르물의 대중성까지 잡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또 있어요. 어제 되게 오랜만에 차태현 형한테 전화가 왔어요. 예전에 드라마를 같이 했거든요.
맞아요. 간만에 전화하셔서 그러더라고요. “석구야 <범죄도시2> 개봉 이렇게 오래 기다린 게 정말 운이 좋은 거다. 대중들이 좀 마니악하고 흥행성 떨어지는 작품만 선택하는 배우로 오해할 수 있었던 타이밍에 이렇게 엔터테인먼트와 작품성 있는 드라마를 같이 터뜨린 이 시너지는 정말 대단하다”라고요.
그레인 드 푸드레 재킷, 하이웨이스트 팬츠, 바게트 라인스톤 브레이슬릿, 라인스톤 미니 브로치, 코튼 SL 포켓 스카프, 메탈 버클 벨트, 페이턴트 레더 슈즈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마석도(마동석 분)와 강해상의 세계를 확연히 나눈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지요. 마석도와 전일만 반장(최귀화 분)이 속한 경찰 쪽의 세계는 희극적 요소가 많고, 강해상이 지배하는 범죄자의 세계는 웃음기 하나 없는 스릴러의 세계죠. 보통은 좀 섞거든요.
지금까지 이렇게 두 세계를 확실하게 나눈 작품은 잘 못 본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로는 <범죄도시> 전편도 수많은 편집을 거치면서 피드백을 받고 블라인드 시사회를 거치면서 반응을 보며 그렇게 이원화한 걸로 알아요. <범죄도시2>는 그걸 완전 브랜드화한 거죠. 더 극단적으로 나눠서요. 웃긴 장면 나왔다가 바로 또 무서운 장면이 나오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관객들이 마석도 뒤에 숨어서 영화를 보는 듯한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이 영화의 엔딩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보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걸 알고도 재밌게 만드는 명쾌함이 이 시리즈의 힘인 것 같아요.
상품을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 라는 얘기군요.
맞아요. 상품은 이렇게. 진짜 <범죄도시2>가 가장 잘 해낸 게 그거고, 개인적으로 가장 뿌듯한 것도 그거예요. 내가 <범죄도시>라는 (프랜차이즈를) 상품화하는 데 일조했구나. 그게 저는 정말 뿌듯해요.
실크 클래식 이브 칼라 셔츠, 블랙 르 스모킹 로우웨이스트 트라우저, 메탈 & 에나멜 브레이슬릿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리썰 웨폰>처럼 되는 거죠.
<범죄도시2>는 마동석과 손석구라는 두 배우의 시너지도 확실한 것 같아요. 한쪽은 귀엽고 한쪽은 섹시하죠. 제가 관람하러 갔을 때는 특히 여자들끼리 보러 온 관객들이 정말 많았어요. 한국 범죄물, 피가 많이 등장하는 영화에선 흔치 않은 경우거든요.
저도 그게 참 신기했어요. 물론 무대 인사라 더 그런 것도 있겠지만, 여성 관객들이 거의 다인 게 신기했어요. 전 그건 <범죄도시2> 이상용 감독님과 제작자인 동석이 형의 혜안이었던 것 같아요. 제 신을 촬영할 때 동석이 형이 온 적이 있는데, 그때 형이 “강해상 캐릭터 좀 섹시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거든요. 감독님이 이걸 캐치하셔서 “너무 우악스럽지 않게, 좀 섹시한 콘셉트로 만들어보자”고 하셨거든요.
<범죄도시2>에서 상의 탈의할 때, 남자인 저도 약간 섹시하다고 느꼈어요.
그 신이 대표적인 예죠. 감독님이 참 순박하셔서 저한테 직접 요구는 안 하시고 먼저 주변 여자 스태프들한테 다 물어보며 설문조사를 하시더라고요. “강해상이 벗는 게 나을 것 같아 안 벗는 게 나을 것 같아”라고요. 그래서 일단 벗은 버전과 안 벗은 버전을 다 찍었어요.
그 마체테 장면은 약간 무섭기도 했어요. 보여주려고 만든 몸이 아니라는 느낌이었거든요. 정말 힘쓰는 몸이었죠.
그때 벗은 장면을 찍는다길래 저도 잠깐 생각했거든요. 급하게 운동을 하고, 근육도 좀 펌핑해서 찍을까? 그러다가 일부러 초콜릿이랑 젤리 같은 걸 먹고 찍었어요. 그런 당이 든 걸 먹으면 몸이 순간적으로 살짝 불거든요. 일부러 더 두툼하게 나오도록 한 거죠. 너무 얄쌍하지 않게 우락부락하게, 몸 관리 잘 안 하고 잘 먹은 느낌을 내려고 한 거죠.
그게 맞죠. 마석도랑 주먹다짐하는 캐릭터인데, 말라깽이여선 안 되죠.
격투기만 봐도 헤비급들은 그렇게 몸의 근육이 다 보이도록 체지방률이 낮지 않아요. 또 우리가 헬스 열심히 하고 체지방률이 엄청 낮은 예쁜 몸을 봤을 때 ‘와 싸움 잘하겠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잖아요.
콤팩트 스트라이프 펠트 블루종, 테일러드 하이라이즈 팬츠, 카프스킨 하이 부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배우에게 이 영화는 순수한 노동이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웃음) 액션이 워낙 많아요.
진짜 엄청난 노동이었어요. 게다가 저희 무술감독님께서 한 번에 찍는 걸 좋아하세요. 액션 장면 중에 50합이 넘어가는 신도 있었던 것 같아요.
리허설을 할 때 처음에는 힘이 들어가니까 좀 투닥거리는 느낌이 나요. 저도 이번에 처음 배운 건데요, 스텝을 춤추듯이 정해진 위치에 맞게 거리를 맞추면서 설렁설렁 합을 맞춰야 다치지도 않고, 최종 결과물에서 더 세게 나오더라고요. 그 반대로 하면 나는 엄청 힘줘서 빠르게 했다고 느꼈어도 결과물은 오히려 힘이 빠지게 나와요. 액션 장면의 박진감은 어차피 사운드와 편집으로 만들어내거든요. 또 그렇게 해야 애드리브를 할 여유도 생기고요.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 강해상이 처음 베트남 은신처에서 한국에서 온 킬러들과 싸우는 장면에서 싱크대 위에 있는 칼을 더듬어서 찾는 장면 등이 애드리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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