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ISAWA SANCTUARY
이 호텔의 진가는 소재다. ‘소재지’를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틀린 견해는 아니다. 아프리카의 외딴섬, 해안가에 듬성듬성 솟아난 방갈로 호텔의 풍경은 사진만으로도 마음을 촉촉하게 하니까. 하지만 키사와 생추어리의 가장 큰 미덕은 그 풍경을 구성하는 기반이 생태 보존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한 결과물이라는 데에 있다. 건축가, 엔지니어, 가구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미술가 등 온갖 분야의 창작자로 구성된 NJF 디자인은 모잠비크 벵게라섬에 3000m² 규모의 호텔을 건설하며 전통 양식과 첨단 기술을 두루 포섭했다. 콘크리트가 없는 기초 구조에 현지 장인들의 목공 기술, 축조 기술을 활용해 시멘트 사용량을 60% 가까이 줄인 건물을 지었고, 도로도 재활용 및 무독성 포장재로 조성한 것이다. 가구, 예술품은 비행거리를 제한하고 지역사회와 공생하기 위해 대부분 현지 조달했다. 인력도 마찬가지다. 건설 인력의 80%가 벵게라섬 출신에 그중 절반이 여성이었고, 현재 운영을 맡고 있는 220명의 직원도 90%가 아프리카 출신이다. 인도양 해안선 5km 거리에 조성된 22개의 방갈로 객실은 높은 수준의 프라이버시를 제공하며, 바로 옆에 함께 지은 아프리카 최초의 영구 해양 관측소 바자루토 과학연구센터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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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MARCEL
호텔 마르셀의 홈페이지는 아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호텔의 홈페이지 중 가장 과묵한 축일 테다. 동네 여관도 기왕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했다면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 올릴 텐데, 이들은 회색 바탕에 글씨만 잔뜩 얹어놓았으니까. 물론 힐튼 그룹 산하의 호텔이 디자인 기반이나 인식이 부족해 그랬을 리는 없으니, 차라리 일종의 태도라고 봐야 할 테다. 태피스트리 컬렉션 바이 힐튼이 공개한 호텔 마르셀은 미국 최초의 탄소중립 호텔이다. 미국 최초로 패시브 하우스 인증(에너지 절약, 실내 공기 품질, 내구성, 열 쾌적성 등의 항목에 대해 검사하는 표준)과 LEED(미국 녹색건축위원회에서 개발한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 플래티넘 등급을 받은 호텔이기도 하다. 비결은 호텔 내에서 소모하는 모든 에너지를 100% 태양열발전으로 충당한다는 점. 객실을 밝히고, 식사를 만들고, 침대 시트와 손님들의 셔츠를 세탁하고, 쾌적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일체의 활동에 화석연료가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건물도 마르셀 브로이어가 1967년에 설계한 피렐리 빌딩을 그대로 살렸으며(그의 이름에서 호텔명을 따왔다), 고무 공장으로 사용되었던 역사를 재해석해 해당 공장에서 사용했던 조명과 나무 판넬 등을 업사이클링해 활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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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IG IN THE SOUTH DOWNS
‘컨트리 하우스 호텔’이라는 표현이 있다. 도시 외곽 지역이나 시골에 위치한, 호텔이라기보다 지역 유지의 집에 묵는 듯한 감흥을 선사하는 종류의 숙소. 더 피그는 12년 전 혜성처럼 등장해 영국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부티크 호텔 브랜드인데, 자평하기로 인기의 비결은 컨트리 하우스 호텔의 개념을 다음 단계로 올려놓은 것이라 한다. 더 피그의 정체는 시골 텃밭을 중심으로 한 다이닝 호텔이다. 25마일 이내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지역 생산자와 계약을 맺어, 오직 집에서 키운 것, 집에서 만든 것, 현지에서 자라는 것만 써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식문화에 대한 이런 집착은 음식 품질을 넘어 숙박 경험에도 영향을 끼친다. 최근 문을 연 더 피그 인 더 사우스 다운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우스 다운스 국립공원 내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드라마 속에서나 보던 ‘빅토리아 시대 시골 저택 감성’을 물씬 풍긴다. 우아한 색감의 벽돌 건물부터 로프트, 들꽃들이 가득 핀 정원, 온실 레스토랑, 마구간, 실제로 와인이 생산되는 포도밭에 이르기까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문을 박차고 나오면 닭들이 흩어지는 그 풍경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 같달까. 시종이 기거했을 법한 헛간 같은 작은 방도 하나 붙어 있는데, 놀랍게도 마사지 및 트리트먼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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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A SILENCIO
카사 실렌시오는 스페인어로 ‘고요의 집’이라는 뜻. 여기에는 몇 겹의 의미가 있다. 일단 호텔의 입지가 오악사카 산악 지역의 발레 델 실렌시오(침묵의 계곡) 인근이고, 전체적인 콘셉트도 ‘휴식의 공간’ ‘정신을 위한 사원’을 표방한다. 하지만 이런 이름이 붙은 가장 큰 이유는, 그 정체가 메스칼 브랜드 ‘메스칼 엘 실렌시오’의 팔렝케(증류소)이기 때문이다. 메스칼 버전의 와이너리 호텔이랄까. 물론 와인을 들이켤 때와 메스칼을 홀짝일 때 우리 입에서 나오는 감탄이 다르듯 호텔의 감성도 확연히 다르다. 브랜드의 공동 설립자인 빈센트 키스네로스의 표현에 따르면 카사 실렌시오가 추구하는 건 “공허와 어둠 속에서 작은 보석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오악사카 고유의 미감에 정통하면서도 독창적인 스타일의 건축가와 함께 메스칼레로 부족에 내려오는 민담, 밤의 이야기들을 공간으로 재해석했고, 지역 장인들과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내부를 채웠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증류소 호텔이라는 점이다. 머무는 동안 증류소 투어를 하거나, 메스칼 제작에 참여해보거나, 제조 과정 각 단계의 메스칼 엘 실렌시오를 마셔볼 수 있다. 물론 호텔 이름처럼 그저 고요하게 며칠을 보내다 돌아가도 좋을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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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ASTERO ARX VIVENDI
‘금욕’과 ‘리조트’가 한 울타리 안에 모이면 어떻게 될까? 아마 대부분은 피자와 파인애플의 만남을 목격한 이탈리아인처럼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이탈리아의 건축사사무소 NOA*는 그 안에서 긴밀한 접점을 발견했던 것 같다. 역사, 금욕, 영성이 평화, 명상, 웰빙과 연결되는 식으로. 모나스테로 악스 비벤디는 17세기부터 이어져온 유서 깊은 수도원 서브 디 마리아 아돌로라타에 들어선 호텔과 웰니스 시설이다. 무슨 뜻이냐면, 7m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싸인 수도원 부지의 건물 절반만 남겨두고 나머지 절반을 리조트로 조성했다는 것이다. 가운데에 너른 정원을 끼고 이쪽에는 호텔과 스파 센터, 야외 풀장이, 저쪽에는 수녀들이 여전히 기거하는 클로이스터와 예배당이 있는 구조다. 다만 상상하듯 건물들이 서로 척을 지는 느낌은 아니다. 수도원 특유의 엄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건축적 특성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리조트를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호텔은 3층 구조에 스위트룸 2개를 포함한 40개 객실을 갖추고 있고, 웰니스 시설은 500m² 크기의 휴식 공간과 트리트먼트룸, 사우나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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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 Filz, Andrea Dal Negro(drone)




MARUFUKURO
이 기사에 소개된 신생 호텔들의 면면에서도 볼 수 있듯, ‘재활용’은 지금 호텔 산업의 가장 큰 트렌드라 할 만하다. 오래된 건축물을 재단장한 호텔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화두에도 충실할뿐더러 그 자체로 투숙객들을 유혹하는 매혹적인 스토리가 되니까. 교토 가기야초의 마루후쿠로 호텔은 개중에서도 도드라지는 성격의 프로젝트다. 이 건물의 정체는 닌텐도의 옛 본사. 1889년 화투패 제조사로 연혁을 시작해 슈퍼패미컴, 게임보이, DS, Wii, 스위치 같은 게임기로 우리 모두의 유년기 기억을 만들어준 그 게임기 제조사를 말하는 게 맞다. 이 호텔의 매력을 제대로 말하려면 그 사옥 건물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더했는지도 살펴야 한다. 설계와 감수를 맡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1930년 첫 준공 당시 유행했던 쇼와 초기 아르데코 양식을 고스란히 살렸으며, 그 감성에 부합하는 18개 객실과 레스토랑, 바, 스파, 체육관 등의 시설을 조성했다. 건축사사무소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가 디자인한 라이브러리 공간부터 유명 요리연구가 호소카와 아이의 레스토랑까지, 부대시설도 어느 하나 허투루 채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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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X SENSES SHAHARUT
처음 사막 여행을 계획하는 누구나 이런 야망을 품는다. ‘겉핥기 식의 단체 투어 프로그램 같은 것 말고 좀 더 사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리고 그곳에 당도해서야 새삼 깨닫게 된다. 사막은 인간의 안전에 지극히 위험한 환경이라는걸. 후회도 하게 된다. 사막쥐나 벌레가 가방을 헤집어놓을 위험이 없고 온전한 욕실이 딸린 시설에 묵지 않은 걸 말이다. 사막의 묘미를 온전히 느끼면서 안전과 편의까지 좇는 방법이란 게 있을까? 현지 자연을 최대한 품는 방식의 럭셔리를 추구해온 부티크 호텔 브랜드 식스 센시즈는 그 답을 나바테아인의 전통 생활양식에서 찾았다. 네게브 사막 남부 알라바 밸리에 2000년 전 이 지역을 점유했던 중동계 유목민 나바테아인의 거주지를 재해석한 호텔을 지은 것이다. 지역에서 출토한 석회암과 부싯돌을 쌓고 초가지붕을 얹어 60개의 객실을 만들었으며, 동시에 그 안에서는 쾌적한 실내와 광활한 사막 뷰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각 투숙객이 프라이빗하게 사막을 독대할 수 있도록 설계했으며, 스파, 요가, 네일 바, 피트니스 센터, 사우나 같은 부대시설과 체험 액티비티도 풍성하게 갖추고 있다. 호텔의 유기농 정원에서 수확한 식재료로 만든 모던 이스라엘 퀴진도 이 호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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