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화보 촬영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다들 수고가 많네요. 일요일 아침부터.
그래도 우성 씨는 즐겁게 임하는 것 같던데요. 메이크업룸 들어올 때부터 촬영 끝날 때까지 계속 노래도 불렀고.
(웃음) 그랬군요. 바리톤 창법으로도 부르시길래 혹시 다음 작품을 위해 준비 중이신 걸까 싶기도 했는데.
어쩐지 멜로디 전개 방식이 좀 낯설다 했어요. 〈헌트〉는 이정재 감독과 함께 칸국제영화제에서 먼저 보셨죠. 어떤 영화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그냥 재미있는 첩보물이라고 생각하고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이 영화가 저와 정재 씨(이정재 감독)의 조우라는 측면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런데 그건 굉장히 사적인 의미인 거잖아요. 영화 팬들이나 영화 업계에서는 공유할 수 있는 의미가 크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건 아닌 거죠. 그 의미가 영화 전체를 좌우해서도 안 되는 거고요. 프로젝트 내내 그런 부분이 도치되어서 우리끼리 작품을 즐기거나, 그 의미가 완성됐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어요.
출연을 네 번이나 고사하셨다고도 했어요. 그것도 같은 맥락이었을까요?
저희에게는 자연스러운 도전이지만 사실 배우가 감독에 도전할 때 넘어야 하는 시선의 무게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 배우가 감독을 했어?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보자’ 하는 시선. 그것만으로도 정말 큰 부담인데, ‘이정재와 정우성의 조우’라는 요소가 또 하나의 짐이 될 것 같았던 거죠.
프로페셔널리즘에 더해서, 이정재 감독의 상황을 염려하는 마음이기도 했군요.
프로젝트가 완성될 때까지 그저 지켜봐주고 함께해줄 수 있는 존재로 옆에 있고 싶었죠. 여유를 갖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존재로. 그 두 가지 무게를 모두 짊어지고 잘 해내기는 굉장히 버거운 일이니까요. 〈헌트〉는 특히 예산이 적은 영화도 아니잖아요. 무수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고, 결정을 했다면 그것에 대해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하고…. 그런 생각으로 초반에 좀 고사 아닌 고사를 한 거죠.
출연을 결정하고부터는 ‘이정재 감독의 숨 돌릴 곳’과는 다른 역할을 하기로 하신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이정재 감독과 대화도 잘 안 했다고 들었어요.
일단은, 우리가 현장에서 편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제일 컸어요. 정재 씨 스스로가 감독으로서 짊어진 짐의 무게를 온전히 다 느끼고, 그랬을 때 나오는 치열함이 영화의 완성도를 만들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극 중 박평호와 김정도의 치열한 대립도 잘 살 수 있을 테고. 감독의 업무가 워낙 많다 보니까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조금 챙기고 팀워크를 북돋아주고, 그런 것들만 제가 조금씩 챙기는 정도로 도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블루종, 팬츠 모두 에르메스. 슈즈 살바토레 페라가모.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두 배우를 한 작품에서 보는 건 〈태양은 없다〉 이후로 23년 만이죠. 사실 그간 두 분을 필두로 한 프로젝트 제의가 한두 건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기획도 다양하게 나오고 제안도 많이 들어왔죠. 그런데 두 캐릭터가 생명력을 갖고 관객에게서 뭔가를 일으켜내는 시나리오가 있어서 그 작품에 출연을 결정하는 것과 두 배우를 놓고 기획을 해보자 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잖아요. 출발점 자체를 두 사람을 출연시키는 데에 두고 구상을 하다 보니 계속 부자연스러운 거죠. 〈태양은 없다〉 자체도 특정한 스토리가 두드러지기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정서가 주로 담긴 영화였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 작품으로 프랜차이즈를 만들기도 어려웠고요. 그래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함께 작업을 하지는 않았어도 각자의 작업 세계를 구축하며 서로 의지를 해온 것 같아요. 우성 씨가 제작자로 참여한 〈고요의 바다〉에서도 엔딩 크레딧 ‘Special thanks to’에 이정재 씨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기도 했고요.
그렇죠. 아무래도 계속 시나리오를 먼저 보여주고 리뷰를 잘 귀담아듣고, 그런 게 서로에게 있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무엇보다 제일 많이 한 건 격려예요. 각자의 작업 방식이 있잖아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작품에 대한 취향이나 결과에 대한 이해가 서로에게 다 좋지는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잘했어요’ ‘수고하셨어요’ 하는 말이 다음 프로젝트에 임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거죠.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조언을 하기보다 온전히 각자의 스타일로 할 수 있게 두고 그냥 옆에 있는 것 같아요. 옆에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니까요.
두 분은 특히나 큰 힘이 되겠네요. 배우가 제작자, 감독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에 넘어야 할 산과 무거운 짐이 있다고 느낀다고 하셨는데, 아주 가까이에 비슷한 생각과 도전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니까요.
이정재 감독의 첫 영화 〈헌트〉 촬영 과정은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보셨을 텐데요. 배우 정우성이 이정재라는 감독에게서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꼽는다면 뭘 말하고 싶나요?
끝없는 자기 의심이요. 판단에 있어서 ‘내가 지금 최선의 선택을 했나?’ 하는 의심을 끝내 놓지 않는 감독입니다.
사실 첫 장편영화 감독작은 우성 씨가 먼저 촬영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보호자〉(정우성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를 먼저 촬영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공개가 좀 미뤄졌죠. 이제는 상황이 풀렸지만 또 그러면서 그동안 시기를 기다려왔던 큰 작품들이 개봉하고 있잖아요. 일주일에 한 편꼴로 이렇게 커다란 영화들이 개봉하는 건 정말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도 개봉에 적합한 시기를 살피고 있습니다.
다 만들어져 있다고 하니 더 기대가 되네요. 어떤 영화를 기대하면 될까요?
글쎄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잘 모르겠네요.
아직은 본인 작품을 홍보하는 게 좀 멋쩍은 걸까요?
아뇨. 그것보다 사실 저는 영화의 가장 큰 적은 기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들 각자의 삶 속 경험과 관계 안에서 축적된 감정들이 영화가 제시하는 영상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을 때 단순히 재미있다 슬프다 하는 감정 이상의 감동을 받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무엇 무엇을 기대하고 봐달라고 규정하는 게 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창작자로서 작품에 대한 어떤 전제도 제시하고 싶지 않은 거군요.
네. 제가 이 영화에 어떤 걸 넣었다고 해서 그걸 강요할 수는 없죠. 저조차도 마무리를 짓고서야 ‘과연 내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걸 넣었나’ 찾아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확실한 건 〈보호자〉는 제가 하고 싶었던 여러 가지를 다 한 작품이라는 거예요.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크고요.
영화인 정우성은 주로 주목이 부족한 좋은 콘텐츠에 조명을 비춰주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간 제작자로 참여한 작품들이나 연극계의 일화들을 보면.
머무르지 않으려고 했던 부분인 것 같아요. 청춘의 아이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배우, 스타라는 타이틀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런 시간 동안에 이 업계에서 뭔가를 나눌 수 있는 여지를 찾다 보면 굉장히 많은 기회가 있거든요. 물론 무엇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죠. 하지만 ‘이 도전은 바람직하다’는 확신이 들면 도전을 해보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도전 과정 속에서 저라는 사람의 색깔이 더 진해지기도 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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