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공학을 가지고 노는 법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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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공학을 가지고 노는 법

긱블 이정태 대표가 꿈꾸는 건 유튜브 조회수 1000만 영상이나 키트 전량 판매가 아니다. 그가 팔고 싶은 건 과학과 공학이 즐거운 놀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8.01
 
치킨을 우주로 보내고 무한 동력장치 개발에 도전하고 물수제비 튕기는 기계를 만드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와 동료들은 쓸모없는 도전은 없다고 믿어요. 회사명인 긱블이 괴짜를 뜻하는 긱(Geek)과 형용사로 ‘할 수 있는’이란 의미의 에이블(Able)의 합성어인 것도 같은 맥락이죠. 흥미로운 물건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묻고 따지지 않고 일단 부딪혀봐요. ‘그걸 굳이 왜 만들어?’ 또는 ‘만들어서 어디에 쓰게?’라는 말을 들을 법한 물건만 골라 만드는 게 콘셉트입니다.(웃음) 입버릇처럼 “쓸모 있는 물건은 이마트에서 찾으세요. 저희는 쓸모없는 걸 만듭니다”라고 말해요. 놀면서 효율을 찾는 사람은 없잖아요. 공학도 얼마든지 놀이가 될 수 있어요.
수많은 괴짜 발명품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치킨 발사기요. 프라이드 치킨을 시켰는데 갑자기 양념 치킨이 먹고 싶어질 때 있잖아요. 손으로 하나하나 소스를 바르기는 귀찮으니까 프라이드 치킨을 집어넣으면 양념 치킨이 되어 나오는 기계를 만들어봤어요. 결과적으로 양념 치킨을 그냥 다시 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긴 했지만(웃음) 해당 영상이 업로드됐을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영상 조회수가 높은 것뿐 아니라 공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몰랐다는 댓글이 많아서 특히 기뻤어요.
긱블을 유튜브 기반의 콘텐츠 제작 회사라고 봐야 할까요? 구독자가 92만 명이나 되잖아요.
많은 관심을 받아 감사할 따름이죠. 하지만 영상 제작만 목표로 하는 건 아니에요. 콘텐츠, 키트, 교육 이 세 가지가 긱블을 지탱하는 핵심이에요. 스타트업 입장에서 비용 대비 가장 파급력 있는 콘텐츠 플랫폼이 유튜브였기 때문에 유튜브를 시작한 거지 유튜버가 되는 게 목적은 아닙니다.
구독자로서 ‘문과 vs 이과’ 콘텐츠를 즐겨 봤어요.
참고로 저도 문과입니다. 같은 문제에 문과 출신과 이과 출신이 서로 전혀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영상의 묘미죠. 문과 말을 들으면 문과가 맞는 것 같고 이과 말을 들으면 이과 말이 맞는 것 같아 결말을 궁금하게 해요. 긱블엔 전부 이과 출신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미디어 전공, 미술 전공, 사관학교 출신 등 구성원이 가지각색입니다. 다양한 생각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신선한 결과물은 나오기 힘들어요. 사무실이 시끌벅적한 것도 같은 이유죠. 일반 회사처럼 서류 작업 깔끔하게 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상급자가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짜고짜 찾아가서 말부터 거는 게 긱블 스타일이거든요. 조용히 일해야 할 땐 별도의 공간을 활용하거나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는 식이에요.  
BTS와 춤을 추었던 로봇이다. 긱블 엔지니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교보재가 됐다.

BTS와 춤을 추었던 로봇이다. 긱블 엔지니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교보재가 됐다.

긱블이 만든 영상을 보면 예전 EBS의 〈지식채널e〉가 떠올라요. 〈호기심 천국〉이나 〈스펀지〉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그런 프로그램을 보며 자란 세대예요. 〈지식채널e〉를 틀어주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잦았죠.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최근 저희 영상을 수업에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 선생님이 보여주기 제일 좋은 채널 1위’나 ‘수업시간에 무조건 한 번은 봤던 채널 1위’ 같은 댓글이 영상에 자주 달리거든요. 실제로 자신을 과학 교사라고 소개하며 학생들과 잘 보고 있다고 이야기해주는 분도 계시고요. 그럴 때 큰 보람을 느껴요. 그래도 우리가 세상을 조금 바꾸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요.
세상을 바꾸길 원하고 있군요.
거창하게 말한 것 인정합니다.(웃음) 하지만 진심이에요. 공식이나 주기율표를 달달 외우는 게 과학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책에서 이론을 습득하고 그 이론에 아이디어를 더해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이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3년 전, 영화 〈나우 유 씨 미2〉의 빗방울을 멈추는 장면을 보고 저희도 물방울을 멈춰 보이게 만드는 기계를 만든 적이 있어요. LED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는데, 실험에 성공한 것보다 더 놀라웠던 건 어느 초등학생이 저희 영상을 보고 따라 만들어서 교내 과학 경진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어요. 코딩이나 기계공학을 전공한 적도 없고 제작에 필요한 장비도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직도 궁금해요. 동시에 저희 엔지니어들에게는 자극이 됐어요. 대한민국 초등학생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요.
과학과 공학의 매력을 알리는 게 회사의 목표라는 점이 독특하네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손흥민 선수가 골을 넣으면 그다음 날 바로 화제가 돼요. 반면 어떤 새로운 과학 이론이 입증되거나 노벨상 후보가 발표됐을 때 그걸 점심시간에 신나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물죠.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웃음 포인트를 조금만 넣으면 과학 이야기도 축구 못지않게 박진감 넘치고 흥미로울 수 있거든요. 랩 잘하는 사람은 〈쇼미더머니〉에 나갈 수 있지만, 과학·공학에 재능 있는 사람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무대는 없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까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방에서 혼자 회로를 짜고 코딩을 하고 용접을 하고 있을 수많은 공학 꿈나무들이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메이커 페어(Maker fair)’ 같은 장을 만들고 싶어요.
메이커 페어가 뭐죠?
간단히 설명하면, 직접 만든 로봇이나 기계장치를 가져와 전시하고 서로 구경하는 컨벤션이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코스프레도 하고 관련 굿즈도 만들어 파는 코믹콘(Comic con)과 비슷하죠. 해외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에 가보면 온갖 종류의 드론이나 3D 프린터로 만든 작품이 가득해요. 과천 과학관이나 종로 세운상가에 저희가 만든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받아서 그 경험을 토대로 한국판 메이커 페어를 열려고 했어요. 코로나가 터지면서 물거품이 됐지만요. 덕분에 영상 콘텐츠에 더욱 집중하게 됐지만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죠.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할 수 있도록 노력 중입니다.
7월부로 신임 대표가 됐어요.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예정인가요?
긱블을 구성하는 요소 세 가지가 있어요. 콘텐츠, 키트, 교육이요. 콘텐츠는 지난 5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봐요. 이젠 키트에 집중할 차례입니다.
 1만4000m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치킨이다.

1만4000m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치킨이다.

키트라면 과학의 날에 만들었던 고무동력기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준비된 재료를 가지고 직접 기계장치를 만들어보면서 과학·공학 원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거죠. 긱블의 영상 콘텐츠를 보면서 ‘저거 나도 만들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집에서 따라 만들 수 있는 일종의 교보재를 제공하는 거예요. 대표적인 예로 ‘무한 동력 구슬멍 기계 키트’가 있어요. 애초부터 키트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영상은 아닌데 키트가 나오면 구매하겠다는 댓글이 너무 많아서 만들었더니 이틀 만에 1억9000만원어치가 팔렸어요. 공학 관련 키트 시장이 존재한다는 걸 확인한 순간이었죠. 지금은 만 5~9세를 타깃으로 한 키트 출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부모들을 공략하는 작전이군요.
앞서 말한 긱블의 3요소 중 세 번째, 교육과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과학과 공학 관련 영상 콘텐츠와 키트를 제작하는 정도지만, 추후 놀이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게 목표예요. 다소 엉뚱한 호기심일지라도 직접 실험해보고 만들어보며 과학을 가지고 노는 살아 있는 교육을 제공하고자 하는 거죠. 상상만 해도 신이 나지 않나요?
대치동 학원 거리에 ‘긱블 아카데미’ 간판이 붙는 걸까요?
글쎄요, 아직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우진 않아서요.(웃음) 긱블이라는 브랜드가 아닌 아예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할 수도 있어요. 계열사처럼요.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작업실에서 또 무언가 만들고 있던데 이번엔 또 어떤 기발한 발명품을 선보일 예정이죠?
‘일억이’요.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만든 로봇 개인데 가격이 약 1억이라 저희끼리 일억이라고 불러요. 원래 이름은 ‘스팟(Spot)’입니다. 감사하게도 현대차그룹 제로원에서 빌려줘서 약 한 달간 저희가 마음껏 물고 뜯고 맛보고 있어요. 강아지 산책 시키듯 성수동 동네 한 바퀴 돌고 왔는데 인기 만점이더라고요. 일억이를 저희만의 스타일로 개조할 예정입니다. 더운 여름이니까 등에 맥주통을 달아서 맥주 배달견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데 두고 봐야죠.(웃음)
긱블다운 발상이네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웃음) 이런 엉뚱하고 뜬금없는 도전들이 차곡차곡 모여서 언젠가는 과학과 공학을 여가 활동으로 즐기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요. 예전엔 컴퓨터 게임을 서브컬처로 분류했지만 이젠 e스포츠로 인정받고 아시안게임에도 포함되면서 주류 시장으로 진입한 것처럼요. 언젠가 공학 국가대표가 모여 대결을 펼치는 날도 분명 올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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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호준
    PHOTOGRAPHER 조혜진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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