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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J12의 모든 것
자크 엘뤼에서부터 아르노 샤스탱에 이르기까지. J12가 남긴 지난 22년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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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2 워치 칼리버 12.1 38mm.
최고의 토털 브랜드로 인식하는 샤넬이 시계를 만든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샤넬의 워치메이킹의 여정이 여느 토털 브랜드와는 달랐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샤넬은 1987년 여성을 위한 워치 프리미에르(Premiere)로 본격적인 워치메이킹을 시작했다. 당시 시계산업은 쿼츠 쇼크의 충격에서 벗어나 서서히 회복 단계에 이르고 있었고, 유수의 토털 브랜드들은 디자인 중심의 시계를 전개했다.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시계는 액세서리의 하나로 규정하는 곳이 적지 않았는데, 샤넬 향수 N°5의 스토퍼(뚜껑) 실루엣과 방돔광장에서 영감을 받은 우아하며 비범한 디자인을 적용한 프리미에르는 패션 아이템의 범주를 초월하며 워치메이킹의 진지함을 드러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시계산업은 부활을 넘어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했고 토털 브랜드 역시 시류에 합류하기 위해 시계의 고급화를 꾀했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하는 시계산업은 형성 과정 특성상 분업화가 일반적이었고 토털 브랜드는 이를 이용해 고급스럽게 포장한 시계를 만드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샤넬은 쉬운 길을 택하는 대신 1993년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제조사 G&F 샤트랑(Chatelain)을 인수하며 매뉴팩처링 능력의 하나를 확보한다. 샤트랑을 인수한 이후 투자와 전략적인 확장을 거듭해 케이스 제조사였던 샤트랑은 샤넬의 자체 워치메이킹 즉 매뉴팩처링의 전초기지로 탈바꿈했다. 즉 워치메이킹과 관련한 주요 부품을 직접 생산하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주얼리 생산과 파인 워치메이킹 파트를 설립해 하이엔드 워치 생산의 기반을 다지게 된다.
한편 샤넬은 매뉴팩처링 능력 확보와 더불어 전통적인 시계업계와 공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시계, 패션 업계 모두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2008년의 협업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발표한 샤넬 J12 칼리버 3125는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와 함께 힘을 쏟은 결과물이다. 칼리버 3125는 오데마 피게의 자동 무브먼트 칼리버 3120에 샤넬의 터치를 가미한 무브먼트로 두 분야의 거장이 시계로 협업한 예는 드물었다. 이후에도 크라운을 다이얼 사이드로 이동시키고 크라운을 점핑해 시간을 표시하는 ‘J12 레트로그레이드 미스테리우스 투르비용(Rétrograde Mystérieuse Tourbillon)’ ‘프리미에르 플라잉 투르비용(Premiere Flying Tourbillon)’의 발표로 이어졌고, 전통 하이엔드 제조사와의 협업을 통해 자체적인 파인 워치메이킹 능력을 착실히 축적하게 된다.
샤넬은 2002년 벨 앤 로스(Bell & Ross)의 주식 일부를 사들여 협력을 시작했고, 2018년에는 소형 하이엔드 제조사 프랑수아 폴 주른(F.P. Journe)의 지분 20%를 획득했다. 프랑수아 폴 주른에 이어 또 다른 하이엔드 제조사로 급성장한 로맹 고티에(Romain Gauthier)의 지분을 취득하며 더욱 안정적인 파인 워치메이킹의 기반을 확보했다. 로맹 고티에는 자체 브랜드의 하이엔드 워치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며, 샤넬의 칼리버 1의 제작 과정에서의 협업을 계기로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오데마 피게와 협업한 칼리버 3125를 탑재한 2008년 J12 모델.
새로운 밀레니엄의 시작은 전 지구적으로 새로운 시작, 전환점이라는 인식을 주었다. 샤넬에서도 2000년은 워치메이킹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현재 샤넬 워치를 대표하는 모델이자 시계업계에서 아이콘의 하나로 등극한 J12가 등장한 해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시계업계의 새로운 보석으로 떠오른 세라믹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계 표현력의 향상, 디테일의 변화와 고급화 등 단순히 새로운 소재의 하나로 보기에는 그 파급력이 막대했다. 샤넬이 새롭게 내놓은 시계 J12는 하이테크 세라믹을 전신에 둘렀다. 이것은 스테인리스스틸이나 골드처럼 시계업계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금속 소재와 전혀 다른 광택과 질감, 무게, 블랙과 화이트의 선명한 색감을 지녔다. 또한 착용했을 때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고, 표면에 상처가 쉽게 생기지 않으며 차가운 촉감을 배제해 소재적 차별을 이뤄냈다. 하이테크 세라믹은 샤넬 매뉴팩처링의 중심인 G&F 샤트랑이 생산을 담당한다. 하이테크 세라믹은 일반적으로 세라믹이라고 부르는 소재와 다른 영역이다. 보석에 가까운 질감과 항상성을 갖췄다. 이것은 7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물로 이산화 지르코늄과 이트륨, 블랙과 화이트라는 샤넬의 컬러를 내기 위한 색소 등을 틀에 넣고 1000℃ 이상의 가마에서 구워낸, 샤넬의 연금술이 낳은 보석이다.

칼리버 3125는 오데마 피게의 자동 무브먼트 3120을 베이스로 샤넬의 터치를 가미했다.
J12의 디자인은 전통적인 시계업계의 관점에서 보면 다이버 워치에 가깝다. 경과 시간을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회전 베젤을 필두로 케이스 측면 라인을 이용한 크라운 가드를 가진다. 이 같은 디테일은 잠수 시간을 빠르게 확인하고 방수 성능 확보 및 크라운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에 따른 것이다. 베젤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만 회전하는 방식으로 다이버 워치의 베젤과 동일하다. 시계 방향으로 회전한다면 잠수 시간을 오인한 다이버가 치명적인 결과와 마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젤의 상단은 0, 15, 30, 45처럼 15분 단위로 먼저 나누고 다시 5분 단위로 나눴다. 보통 다이버 워치라면 0의 위치에 야광 마커를 두지만 숫자 0으로 대체했다. 이 디테일은 J12가 다이버 워치의 화법을 100% 따르지 않았다는 의도로 보인다. 다이얼은 가장 바깥쪽에 미니트 트랙을 두르고 아워 인덱스에 야광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 안쪽으로는 베젤의 폰트와 동일한 아플리케 인덱스를 1에서 12까지 빠짐없이 사용했고, 다시 그 안쪽으로 미니트 트랙을 둘러 가독성을 고려했다. 다이얼 바깥쪽의 미니트 트랙과 같은 기능을 하는 작은 원 안의 미니트 트랙은 J12의 독창적인 디테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원 안쪽에는 십자선을 넣어 완성했다. 이것은 빈티지 시계에서 섹터 다이얼로 부르는 요소를 재현한 듯하다. 다이버 워치 디자인은 종종 요트용 워치로 전용되기도 하는데 J12도 그와 같은 예라 할 수 있다. J12의 디자인은 고 자크 엘뤼(Jacques Helleu)가 맡았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그는 샤넬 워치메이킹의 시초인 1987년의 프리미에르, 1990년의 마드모아젤, 1993년의 마트라세 워치를 디자인했다. 마트라세 워치가 완성되고 자크 엘뤼는 새로운 시계 디자인에 착수했다. 그는 이전에 디자인했던 시계와 달리 샤넬이 아닌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진다. 자크 엘뤼가 워치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자신을 위한 워치를 디자인했다. 첫 연필 선을 그리면서 그는 올 블랙의 타임리스하고 스포티한 워치를 상상했다. 그의 영감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두 세계로부터 왔다. 자동차, 그리고 항해. 그는 경주용 자동차의 클래식한 라인을 대단히 동경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메리카 컵 클래스 J12의 위엄 있는 실루엣을 사랑했다. J12라는 이름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J12는 다이버 워치의 특성을 살리면서 방수 성능은 다소 낮춘 요트 워치 형태로 완성되었다. J12는 폭이 넓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회전 베젤, 곡선미를 살린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하이테크 세라믹을 사용해 정교하게 구현되었다. 전통적인 금속 소재 못지않은 정밀한 가공성 외에도 하이테크 세라믹이 지닌 광택과 질감, 철저하게 추구한 칠흑 같은 어둠의 블랙을 씌워 첫 J12를 완성했다. (화이트 하이테크 세라믹 버전은 2003년 등장한다.)




그리고 진화
샤넬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남성을 위한 아이템이기도 한 J12는 남녀 모두를 위한 케이스 지름인 33mm와 남성을 위한 38mm 지름의 케이스로 첫선을 보였다. 등장하자마자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J12는 마치 생명체처럼 진화와 분화를 거듭하기 시작했고, 기능적인 관점에서는 데이트 기능을 기본으로 다양함을 제시했다. 2005년에 발표한 투르비용 컴플리케이션인 ‘J12 투르비용’, 같은 해 내놓은 경량 크로노그래프 ‘J12 수퍼레제라(Superleggera)’, 2010년에는 J12 디자인의 원점인 다이버 워치로 컨버전하며 300m 방수를 내세운 ‘J12 마린(Marine)’, 레트로그레이드와 점핑 아워가 협력하는 투르비용 컴플리케이션 ‘J12 레트로그레이드 미스테리우스 투르비용’을 내놓았다. 2012년은 청금석 디스크 위에 문페이즈를 펼치고 인디케이터로 달의 위상을 보여준 ‘J12 페이즈 드 룬(Phase de lune)’, 2014년 다이아몬드로 별 모양의 투르비용 케이지를 채운 ‘J12 플라잉 투르비용’, 다이버 워치 베젤의 눈금 대신 24시간 표시를 넣은 GMT 모델 등 J12를 통해 기능성의 다양함을 드러냈다.
시계는 하나의 디자인을 다양한 소재로 변주하곤 한다. J12도 소재의 자유로운 변주로 새로움을 시도했다. 가장 큰 무기인 하이테크 세라믹을 필두로 다채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앞서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담아냈던 J12 수퍼레제라의 초기 버전은 알루미늄과 하이테크 세라믹의 조합이었다. 금속성과 비금속성 소재의 대비를 보여줌과 동시에 경량성을 입증한 모델이다. 이후 J12 수퍼레제라는 하이테크 세라믹으로만 만들어지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2009년에는 바게트 컷 하이테크 세라믹으로 베젤, 다이얼, 브레이슬릿을 만든 ‘인텐스 블랙(Intense Black)’을 선보였으며 하이테크 세라믹 10주년에 즈음해 샤넬의 보석을 재조명했다. 2011년에는 세라믹과 티타늄의 합금 소재 크로마틱(Chromatic)을 발표했다. 두 가지 소재가 결합해 기존의 하이테크 세라믹과 다른 그레이 컬러와 수은과 같은 휘도, 거울과 같은 반사광으로 강렬함을 발산했다. 2015년 발표한 티타늄 베젤과 세라믹 케이스를 결합한 ‘J12-G10’, J12 20주년을 맞이한 2020년에는 화이트 하이테크 세라믹 케이스를 베이스로 오른쪽 러그 부분의 케이스 일부만 블랙 하이테크 세라믹을 사용한 ‘J12 패러독스(Paradox)’를 발표하며 하이테크 세라믹의 경지에 올랐다. 같은 해 ‘J12 엑스레이(X-ray)’로 명명한 풀 사파이어 크리스털 케이스 모델을 발표했다.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케이스 소재로 사용한 선구적인 브랜드를 이미 접한 바 있으나, J12 엑스레이는 케이스를 비롯해 브레이슬릿까지 완전한 사파이어 크리스털 소재로 만든 최초의 모델이다. 이름의 엑스레이처럼 시계의 곳곳을 관통할 수 있도록 무브먼트까지 새롭게 디자인했다.

2020년 J12 X-Ray 워치 칼리버 3.1 38mm.

2020년 J12 패러독스 워치 칼리버 12.1 38mm.

J12 다이아몬드 투르비용 무브먼트 제조 과정.
새로운 챕터
J12의 탄생 20주년을 맞이한 2020년에 맞춰 새로운 J12가 선을 보였다. 샤넬 워치 크리에이션 스튜디오의 디렉터 아르노 샤스탱(Arnaud Chastaingt)의 지휘 아래 J12는 아주 정교한 미세 조정 과정을 거쳤다. 미세 조정은 시계업계에서 흔히 쓰는 용어다. 무브먼트를 완성하고 더욱 정확한 시간을 표시하기 위해 워치메이커가 밸런스의 움직임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을 뜻한다. 이 과정은 시계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결코 도드라지지 않는 과정이다. 아르노 샤스탱의 새로운 J12는 20년 전 자크 엘뤼가 완성한 디자인을 매우 정교하게 조정해냈다. 이것은 무브먼트의 미세 조정과도 같아서 변화를 감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다이얼에 사용한 폰트와 위치, 케이스 라인, 크라운의 지름 등 보다 완벽한 J12를 만들기 위해 미세한 조정을 거쳤다. 물론 이 작업은 아르노 샤스탱만 해온 것은 아니다. 2000년 J12가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끊임없는 변화를 거쳤다. 다이얼 표면 처리, 다이얼 외곽 디테일, 바늘에 올린 페인트의 농도 등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디테일의 변화를 거치며, 보다 높은 완성도를 추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J12는 2000년의 오리지널과 같이 남녀 모두를 위한 38mm 케이스로 먼저 선을 보인 바 있다. 아르노 샤스탱은 2021년 일렉트로(Electro)로 명명한 컬러풀한 디테일을 샤넬 워치의 모든 라인업에 적용했다. J12에서는 블랙과 화이트 모노톤의 J12가 일렉트로의 터치를 가미해 더욱 강렬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2022년 샤넬이 발표한 모델로는 ‘J12 다이아몬드 투르비용(Diamond Tourbillon)’ ‘J12 블랙 스타(Black Star)’, 새로운 무브먼트를 탑재한 33mm 케이스의 J12 등이다. 이것은 각각 2014년과 2015년에 발표한 플라잉 투르비용, 2009년의 인텐스 블랙, 기존 33mm J12 모델을 새롭게 해석하고 끊임없이 다듬어낸 결과물이다. 즉 변화하지 않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해온 N°5 향수처럼 J12는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어서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J12 다이아몬드 투르비용에 탑재된 칼리버 5.

2022년 J12 블랙 스타와 두 종류의 J12 다이아몬드 투르비용.

J12 블랙 스타 워치 칼리버 12.1 38mm.
Credit
- EDITOR 고동휘
- WRITER 구교철
- PHOTO 샤넬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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