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돈과 가족의 충돌이 궁금한 작가 류성실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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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돈과 가족의 충돌이 궁금한 작가 류성실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예술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는 여러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떤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 알고 싶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2.08.27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가 〈불타는 사람의 노래〉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93년생인 그는 이 상의 최연소 수상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어깨 에는 조상님들이 에펠탑처럼 쌓여 있어 어리다는 사실엔 큰 의미가 없다.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류성실 작가가 〈불타는 사람의 노래〉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93년생인 그는 이 상의 최연소 수상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어깨 에는 조상님들이 에펠탑처럼 쌓여 있어 어리다는 사실엔 큰 의미가 없다.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는 그간의 작품에선 나타샤 뒤에 숨어 있던 이대왕 씨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흐름이 재밌어요. 나이 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을 바지 사장으로 앉히고 지자체 돈 타서 장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것도 생각나고요.
맞아요. 젊은 친구들이 시드머니를 모으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꼭 뒤에서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저 역시 매우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작가님이요?
제 지인들 중 유난히 사업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어느 날 한 지인이 거대한 베이커리 카페를 낼 예정인데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굳이 사업자 명의를 제 이름으로 하자더군요. 왜 그런가 싶어서 좀 알아봤더니, 경기도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하는 청년 사업가에 한해서 10년간 면세 혜택을 주는 정책이 있더라고요. 마치 엄청 좋은 제안을 당근처럼 내밀지만, 사실은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던 거죠.
청년지원사업인데 결국은 40~60대의 주머니로 돈이 흘러 들어가는군요.
청년은 그냥 ‘바지’인 거죠.
류성실의 세계 속에서 어르신들이 대왕트래블을 이용하는 이유는 사실 나타샤 때문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돈은 이대왕이 다 벌죠. 뭔가 이용당한다는 면에서 비슷해요.
그런데 나타샤는 그 구조 안에서 또 나름대로 잇속을 챙기기 위해 노력하기도 해요. 부역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영업 전략을 펼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류성실의 작품 세계를 설명할 때 ‘욕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더군요. 전 작가님의 작품들을 보면서 가끔 미친 듯이 웃어요. 어쩌면 제게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욕망이 충분히 있어서 코믹한 건 아닐까 싶어요.(웃음) 이대왕을 포함해서요.
언어로 풀어낼 때 무언가를 두고 ‘좋다/싫다’ 내지 어떤 사안에 ‘동의한다/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나누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제 작업의 주 대상이에요.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인물을 상상해봤을 때 그 인물이 가진 욕망이 작가인 저라고 없을 리 없고, 그렇다고 그 욕망을 마냥 좋게만 보기에는 문제가 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는 그런 양가적인 지점에 있는 것들이 작업의 소재가 되는 거죠.
애견 장례식장도 양가적인 감정이 드는 소재이기는 하지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전시를 볼 때 애견장례사업이라는 소재 그 자체보다 이대왕이라는 사람이 왜 여행사를 하다가 뜬금없이 애견장례사업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그 사고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왜 애견장례사업을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이 전시를 통해서 애견 상조업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히려는 건 물론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어째서 진정한 애견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만이 애견사업을 하겠다고 나서는 걸까?’ 이런 부분에 더 집중을 해요. 오래전 한 창업 유튜버가 애견 상조업을 사업 소재로 들고 나오는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어요. 그 유튜버는 청포도 막걸리, 감식초 등등 번번이 실패할 사업 아이템만 들고 나오던 분이었어요. 평소 분위기도 좀 우스웠죠. 자신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 적힌 캡 모자를 쓰고 나오곤 했거든요. 그런데 애견 상조 아이템을 들고 나온 날만은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견주들의 아픔을 벗겨 먹어서야 되겠습니까?”라며 나름 엄숙한 멘트를 뱉으시더라고요. 전 그런 걸 볼 때 ‘저 사람은 어째서 지난번 영상과 이렇게 다른 태도로 등장했을까? 의도는 무엇일까?’ 등을 생각해요.
장례를 치르면 업체가 유족의 슬픔을 정말 많이 벗겨 먹지요.
걸음 하나하나 내딛는 모든 게 돈이니까요.
전 작년에 저희 고양이 장례를 치렀는데, 장삿속이 너무 보여서 어느 순간 슬픔이 싹 달아났어요.
(웃음) 그 사람들도 어쨌든 화로를 돌리려면 연료비가 들 것이고 유지비가 들겠죠. 이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당연하고요. 그분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반려동물을 보낸 저희의 입장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유튜버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겠어요? “어떻게 유족의 아픔을 벗겨 먹을 수 있겠느냐”라고요.(웃음)
 
화장터 뒷면 벽에는 이대왕 씨의 업적이 조악하게 편집된 시트지가 붙어 있다. 류성실 작가의 페르소나인 나타샤 씨의 여러 모습과 기타를 든 이대왕 씨의 모습이 보인다.

화장터 뒷면 벽에는 이대왕 씨의 업적이 조악하게 편집된 시트지가 붙어 있다. 류성실 작가의 페르소나인 나타샤 씨의 여러 모습과 기타를 든 이대왕 씨의 모습이 보인다.

 
이대왕 씨가 이번에 장례사업을 시작한 건 코로나 팬데믹을 노린 거겠죠?
지금 이 국제적인 위기 상황에 이대왕 씨라면 어떤 사업 아이템을 다음 옵션으로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요. 애견 상조가 너무 필연적인 결과더라고요. 팬데믹 덕분에 어떤 사업이 이득을 볼 것이냐, 라고 한다면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던 거죠. 대왕트래블은 이미 망했고, 여행사업은 재기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고, 장례사업에 관심을 두는 건 그 사람의 성향상 당연한 거였죠. 장례사업 중에서도 투자금은 적고 자금 회전율은 빠른 것. 그런 아주 경제적인 관점으로 이 문제를 판단하면, 애견상조사업이 당연한 결론이거든요.
화로 사이즈도 작아서 설비 비용도 적게 들고, 연료비도 적게 나오고.
(웃음) 그리고 아무래도 허가 내기도 훨씬 쉽겠죠. 어떻게 보면 정말 현실적인 결정인데, 누군가가 보기에는 굉장히 뜬금없고 어떻게 보면 심지어 창의적이라고까지 여길 발상인 거죠. 창의적이라고까지 느껴질 수 있는 이 발상이 자본주의적 사고의 흐름에 의해 결정됐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어요.
창의적으로 보이는 어떤 발상이 자본주의적 사고의 흐름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라….
전 예술이 가장 창조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는 세상의 통념이 매체가 만들어낸 일종의 환상이라고 생각해요. 제 곁에 사업가 지인이 많다고 말했잖아요. 그분들의 통통 튀는 창의성을 볼 때 예술가로서 좀 경도될 때가 있거든요. ‘아니 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이라는 마음이 든단 말이죠. 저 창의성이 어디서 샘솟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창의성은 정말 간절하게 어떤 걸 취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만들어낸 부산물 같은 거예요. ‘내가 아주 떼돈을 벌고야 말겠어’라는 간절한 욕망이 그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부산물로 생각해내게 한 거죠.
한 3년 전 비디오머그에 작가님이 매우 비슷한 발언을 했던 게 기억나요. 작가님이 그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하도 ‘미술 해서 뭐 할래?’라고 물어서 일단 유명해져야겠다고 생각하고 만든 게 체리장이라는 캐릭터다”라고 대답했었죠.
(웃음) 그때 상황은 좀 다르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예술을 수치로 증명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자유주의 사회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기 위한 가장 간편한 방법, 어떤 보편의 가치를 제가 따르는 수밖에 없는 상황 같은 거였어요.
유튜브 조회수 같은 수치를 말하는 거죠?
그렇죠. 그런 보편의 문법에 어느 정도 순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그 시점에 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나타샤를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등장시킨 건 정말 천재적이었어요. 아무도 없는 전시장에서 혼자 현실 웃음을 터트렸거든요. 원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정말로 있어요. 저도 애견인이기도 하고 제 주변에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사랑하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잃으면 마음이 너무 공허하잖아요. 이 공허한 사람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업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좀 충격을 받은 게 죽은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존재였어요.
헉… 그런 게 정말로 있다니….
일반적으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라는 직업이 있는 거는 아시죠?
아니요. 강형욱 씨 같은 분들인가요?
아니요.(웃음)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하이디라고 옛날에 〈동물농장〉에서 한참 이슈가 된 인물이 있었어요. 그 인물 이후로 우후죽순 생겨난 직업이에요. 제가 괴상하다고 느낀 건 죽은 동물과 ‘영적 주파수를 맞춰서 교신을 한다’는 사람들이었죠. 실제로 제 지인이 반려동물과 이별한 후에 그런 영매사에게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전화로 점 보는 것처럼 ‘지금 XX는 이렇답니다, 저렇답니다’ 몇 마디 해주고는  5만원을 받더라고요.
아….
비상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마음이 약해지면 이런 얘기도 곧이곧대로 믿게 되더라고요.(웃음) 어떤 허구적인 존재를 나타샤한테 투영했다기보다는 지금 말한 것처럼 어느 정도는 레퍼런스가 있어요. 나타샤뿐 아니라 제가 작업하는 모든 요소들이 그래요.
사람들이 나타샤와 체리장을 헷갈려 해요. 의도가 있었겠지요?
나타샤와 체리장은 제 세계관 안에서 보편의 미의식으로 봤을 때  ‘아이디얼한 미인상’이라고 설정해뒀어요. 기획 단계에서부터 그랬죠. 그 아이디얼한 미인상에서 파생된 두 인물이다 보니 닮은 거죠. 그리고 사실 나타샤랑 체리장을 헷갈리는 게 작업에 몰입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재미를 주는 요소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저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일까 아닐까’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두 인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며 뭔가를 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작가님의 세계관을 정확하게 다 설명할 순 없겠으나, 이 세계의 코미디를 완성하는 요소는 리얼함과는 구분되는 핍진성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대왕이라는 캐릭터는 정말 통기타를 칠 것 같거든요. 통기타라는 악기가 주는 특유의 심상과 이대왕이 찰떡처럼 맞아떨어지는 그 핍진함 말이죠.
그렇죠.(웃음) 통기타엔 선량하고 음유시인 같은 그런 이미지가 있고, 이대왕은 그걸 원하죠. 실은 이번 전시를 ‘류성실은 이 전시를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대왕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는 자신을 어떻게 과시할 것인가’에 포커싱을 두고 준비했어요. 이대왕이라면 분명 자신의 치적을 일단 과시할 것이고, 이 치적을 과시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껍데기에 넣어 보여줄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지요. (장례사업을 택한) 본인의 세속적인 선택에 어떤 종류의 숭고함이 있다고 계속 주장하고 싶어 할 거예요. 통기타란 그 숭고함을 직관적으로 가장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장치였던 거죠.
왜 누군가가 그랬지요. 평양냉면이 제일 저렴한 미식 놀이의 도구라고요. 마찬가지로 통기타란 세상에서 가장 쉽게 폼 좀 내볼 수 있는 악기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요.
맙소사.
가장 적은 노력으로 예술가인 척할 수 있는 수단.
평양냉면과 통기타라니… 통찰인데요?
이대왕의 연주를 보고 다시는 어디서도 통기타를 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근데 저는 그래도 통기타 잘 치는 사람을 보면 멋있더라고요. 제가 못 쳐서 그런지….
작가님 대학 때도 과방에 기타 치는 오빠들이 있었나요?
저 역시 졸업한 지 한참 되긴 했지만, 학부 땐 있었어요. 그냥 치는 친구들도 있었고, 여자한테 잘 보이기 위해 통기타를 굳이 들고 와서 시연하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으하하하.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군요.
어떻게 보면 정말 얄팍한 수법인데 저도 거기에 넘어간 적이 있었죠.(웃음)
작가님 때는 무슨 노래를 불렀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장범준이었어요. 〈슈퍼스타K〉로 한창 뜰 때였기도 하고, 또 생각해보면 그 노래들이 그리 어려운 코드는 아니어서 많이 쳤던 것 같기도 해요.
엄청 쉬운 곡들이긴 하죠. 저희 학번들은 주로 ‘Now and Forever’를 쳤던 것 같아요. 그때 〈상실의 시대〉라는 책이 엄청 유행하던 때라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치는 사람도 많았죠. 퀸도 많이들 쳤던 것 같고요.
저희 때는 장범준이 너무 폭발적이었던 기억인데, 그에 비하면 기자님 학교 다니던 시절이 좀 더 낭만적이었고 폭이 깊었던 것 같네요.
근데 뭐, 통기타를 잡는 그 마음의 본질은 똑같으니까요.
그렇죠.(웃음) 그런데 저희 때 꽤 효과적이었던 게 하나 더 있었어요. 기타 말고 보드요. 남자애들이 보드를 타고 다니면서 여자들한테 가르쳐주는 문화가 학내에 번졌었죠. 그때 한창 페니보드니 롱보드니 그런 게 유행할 때였거든요.
보드도 생각해보면 탈것 중에 제일 싼 것.
와, 그렇네요. 스피드를 과시하기에 가장 단가가 싸게 먹히는 아이템이네요. 가성비군요.
이런 얘기를 한 이유가 있어요. 이대왕이 장례식장에서 통기타를 치는 마음의 일부가 제가 과방에서 통기타를 쳤던 마음과 일치해요. 아주 넓게 말하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은, 그러나 너무 속이 보여서 웃기는 마음이죠. 그래서 느닷없이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웃겼어요.
저도 분명히 그런 욕망이 있는 사람이니까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선택들이 있잖아요. 전 정의의 투사처럼 이대왕이라는 사람을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보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대왕 안에는 제가 갖고 있는 면모들이 자조적으로 투사되어 있기도 하거든요.
 
뒷면 벽 중 기타 치며 노래하는 이대왕 씨의 모습을 확대한 부분.

뒷면 벽 중 기타 치며 노래하는 이대왕 씨의 모습을 확대한 부분.

 
예를 들면 이대왕 씨가 “애견 화장장은 가스를 얼마 안 쓰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라는 말을 하지요.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라고 생각했다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오히려 솔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솔직함이 가끔은 무척 섬뜩할 때가 있기도 하고, 또 그 모습이 동시에 엄청 순수한 모습일 수도 있는 거죠. 순수하게 자신의 욕망을 이렇게 전시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 순수가 순수 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사실 저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선과 악이 그렇게 주요하게 작동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대왕 씨가 부르는 ‘진짜배기 사랑’은 휘 씨가 작곡하신 거지요?
맞아요.
이대왕에 딱 어울리는 곡도 곡이지만, 사운드 메이킹도 참 정교한 것 같아요.
휘는 정말 기가 막히는 친구예요. 사실 저랑 휘님 역시 제가 협업하고 있는 ‘업체(eobchae)’라는 미술 컬렉티브 소속이에요. 저희는 최대한 서로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진짜배기 사랑’이라는 걸 작업할 때는 제가 가사와 레퍼런스 한두 개를 전달하며 ‘이런 식의 뽕짝 바이브였으면 좋겠다’ 정도의 최소한의 정보만 전달하는 식이죠. 그러면 기가 막힌 걸 만들어 와요. 반대로 업체가 요청한 작업을 제가 해주는 경우도 있고요. 서로가 서로의 작업물에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랍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같은 분위기네요.
하하하. 업체는 그 자체로도 개성 넘치고 퀄리티가 매우 높은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이번에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아서 9월에 수상의 일환으로 전시도 열어요. 그런 맥락에서 제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어요. 휘는 본인이 뮤지션이기도 하거든요. 뮤지션 휘의 노래는 제 작업에서 보여지는 그런 맥락이나 뉘앙스랑은 전혀 달라요. 항상 이 점을 미안해하지만, 그래서 더 재밌는 작업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대가족 안에서 자랐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봤는데, 그 점도 작업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고 느꼈어요. 예를 들면 장년층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너무 핍진해서 깜짝 놀라요.
그런 게 물론 있어요. 저희 집이 좀 대가족이에요. 아버지가 8남매시거든요.
와….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늦둥이고, 또 제가 늦둥이거든요. 조카보다 고모인 제가 더 어린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집이라 접하는 인물들의 세대 스펙트럼이 또래 친구들에 비해 많이 넓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장년층) 레퍼런스를 찾기에 최적화된 환경이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제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선악으로 구분하지 않고, 항상 그 캐릭터들에 애정을 담아요. 그렇게 애정과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더 풍성한 것들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캐릭터들이 너무 평면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비슷한 얘기를 이번 달에 만난 심달기 씨도 했어요. 예술가들은 다 연결되는 구석이 있군요.(웃음)
그런가 봐요. 사실 제가 제 가족 안에서 좀 재밌다고 느끼는 포인트가 있어요. 한학자이신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대가족의 가족주의 질서와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 이를테면 경제 논리가 우선하는 사고방식이 공존하고 가끔은 충돌하거든요. 예를 들면 재산을 두고 싸운다든지요.
그럴 땐 어떤 가치가 이기나요? 신자유주의?
항상 이기죠. 돈의 가치는 그 모든 전통적 질서 위에 가볍게 올라서더라고요. 이 가족 안에서 살면서 그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될 계기가 정말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 집안의 행사 중에 시제라고 역대 조상님들의 위패를 다 모셔두고 각각 모든 분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먹지도 않는 밥 100그릇 정도를 만들어야 하는 때가 있어요. 제사상 차리는 건 다 여자들의 몫이고, 보통 절은 남자들만 하죠. 그런데 여자인 제가 거기에 참여해서 절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여자가 어떻게 감히 거기에 들어가서 절을 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절하는 걸 아무도 제지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어요. 제사 지내는 그 집을 저희 아버지가 지으셨거든요.
하하하. 제사만 지내는 집이 따로 있어요?
사당 같은 걸 크게 지어놨어요. 그 건물을 지은 막내의 딸이 절을 한 그 순간 돈의 가치가 유교적 질서를 초월해버린 거죠.
그 두 가치가 충돌하고 전복되는 장면을 봐와서 이런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던 건가 봐요.
제가 작년에 점을 보러 갔어요. 전 점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 어깨 위로 조상님들이 에펠탑처럼 서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좋은 의미로요.
이번 전시 도록에 실린 안소연 디렉터와의 대담을 보면 할아버지 장례식 얘기가 나와요. 좀 자세히 얘기해줄 수 있나요?
제가 열 살쯤 되었을 때였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저희 가족은 5일장을 치렀죠. 보통 3일장을 치르지만, 저희는 대도시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사흘을 치르고 본가가 있는 고흥으로 내려가 이틀을 더 치러야 했거든요. 화환만 싣고 내려가는 버스를 따로 대절해야 할 정도로 화환이 많았어요. 그 화환들을 곱게 모셔와서 일렬로 세워뒀는데, 그날따라 비바람이 불어서 도미노처럼 우다다 다 쓰러지고, 사람들은 달려나가서 그걸 또다시 세우고, 세워두면 또 쓰러지고, 그 과정이 계속 반복됐죠. 어린 나이에 생각했어요. 대체 이 화환의 정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이 시골까지 이것을 가져와야 했나.
영민했네요.(웃음)
제게 그 장례식의 시작과 끝은 결국 화환으로 항상 연결돼요. 병원 장례식장에 끝없이 늘어서 있던 그 화환들, 그리고 결국에는 비를 쫄딱 맞아 장례가 끝날 때쯤엔 잉크가 다 번져 흘러내린 화환의 모습으로요. 나중에 저희 가족들에게 여쭤본 적이 있어요. 대체 그 화환을 왜 그렇게까지 가지고 내려가야 했느냐고요. 허례허식 아니냐고 했더니, “그때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라고 답하시더군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체리장은 공짜로는 부활하지 않는다”고 한 적이 있어요. 얼마면 부활할 수 있나요?
하하하. 인터뷰하다 이렇게 웃은 적은 처음인 것 같네요. 그건 체리장 선생님만이 아시지 않을까 싶어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시긴 하지만, 조금 ‘땡겨야 하는’ 때가 오면 다시 내려오시지 않을까요?
아, 하늘나라도 신자유주의 아래 있군요.
아, 거기도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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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박세회
    PHOTOGRAPHER 송시영
    PHOTO 류성실/에르메스 재단
    ASSISTANT 송채연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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