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한산〉이나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배들은 대부분 범선에 속한다. 넓게 보면 범선과 요트는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건 같지만, 형태와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범선은 사각형 돛을 가로로 달아 사용한다. 대륙을 오가는 범선의 경우 돛의 개수도 10여 개가 넘는다. 크고 무거운 배를 꾸준히 밀어내기 위해 강한 추진력이 필요한 탓이다. 반면 J 클래스 요트는 삼각형 돛이 세로로 달려 있으며 돛의 개수도 3개를 넘지 않는다. 망망대해를 미끄러지듯 순항하는 범선과 달리 J 클래스 요트는 1초라도 빨리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미세하게 변하는 바람과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스키퍼(선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수백 kg이 넘는 돛을 빠르게 접고 펴기 위해 건장한 체격의 선원 다수가 돛에 매달려 줄다리기하듯 일사불란하게 줄을 당긴다. 돛을 조작하는 것 외에도 다수의 선원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무게중심이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을 보면 제니퍼 코널리가 톰 크루즈에게 요트 조작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요트를 조작해본 적이 없는 톰 크루즈는 가파르게 기운 요트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며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선 달콤한 데이트 장면 정도로 그려졌지만, 알고 보면 요트의 실제 움직임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다. 요트는 바람의 힘으로만 달리는 배라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정면으로는 달릴 수 없다. 이때 요트는 맞바람을 이용해 선체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나아간다. 바로 이런 역풍 상황에서는 선체가 크게 기울어진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으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조작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배의 양력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돛과 선체의 기울기를 이용해 요트 좌우에 흐르는 공기의 속도를 다르게 만들어 추진력을 얻는다. 비행기 날개와 같은 원리다. 만약 요트가 스키퍼의 예상보다 더 기울었을 땐 선원들이 기운 선체의 반대 방향으로 모여 체중을 이용해 배의 균형을 잡는다. 멀리서 보면 유유자적 바다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만 같은 요트 위에서 거센 파도를 맞아가며 고군분투하는 선원들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1929년 영국이 선보인 샴록 V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1930년 열린 아메리카스 컵에 4대의 J 클래스 요트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윌윈드(Whirlwind), 양키(Yankee), 위타모에(Weetamoe)를 연달아 출시했다. 그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J 클래스 요트를 4대나 만든 건 단지 그들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메리카스 컵은 예선과 결선의 경기 방식이 다르다. 예선에선 참가한 배들이 일제히 출발해 결승선으로 내달린다(fleet race). 여기서 1등을 차지한 배가 도전자(challenger) 자격을 얻어 지난 대회 우승자의 배인 방어자(defender)와 1 대 1 승부를 벌이는 방식이다(match race). 예선을 거치지 않는 방어자는 피로도가 쌓인 도전자와 달리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에 임한다. 더구나 경기가 열리는 장소 역시 전 대회 우승 팀이 결정하는 것이 관례여서 영국 팀은 매번 대서양을 건너오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미국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요트를 찾기 위해 방어자로 쓰일 요트 후보를 여러 척 건조한 셈이다. 4척의 배는 각각 특징이 달랐는데 윌윈드는 워터 라인이 4척 중 가장 길었고 위타모에는 선체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았다. 결국 올라운더 성격을 지닌 엔터프라이즈가 결승에서 샴록 V를 4 대 0으로 가볍게 제압하며 첫 J 클래스 대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1934년과 1937년에 열린 대회에서도 영국은 ‘영국 요트 역사상 최고의 걸작품’이라 불리는 엔데버(Endeavor)와 엔데버Ⅱ(EndeavorⅡ)를 내세워 도전했지만 미국의 레인보(Rainbow)와 레인저(Ranger)에 번번이 패배했다.
라디오 중계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주목받던 J 클래스는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 영국에서 4척, 미국에서 6척으로 총 10척의 J 클래스 요트가 만들어졌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남은 건 고작 3척이었다. 나머지 7척은 전쟁 중 부족한 철, 구리 등을 보충하기 위해 해체됐다. 겨우 살아남은 배들 역시 선체를 분해해 헛간에 보관하거나 강바닥 아래에 침몰해 진흙에 파묻히는 등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J 클래스가 1998년 안티구아 클래식 위크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10년이 넘는 오랜 복원 작업을 거쳐 원래 모습을 되찾은 샴록 V, 벨세다(Velsheda), 엔데버가 나란히 카리브해를 미끄러지듯 질주한 것이다. 반세기 만에 돌아온 J 클래스 요트의 클래식한 디자인과 커다란 부피감은 여느 요트와 다른 존재감을 뽐내며 이목을 끌었다.
당시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자크 엘뤼(Jacques Helleu)가 워치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워치를 디자인했다. 첫 연필 선을 그리면서 그는 올 블랙의 타임리스하고 스포티한 워치를 상상했다.
그의 영감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두 세계로부터 왔다. 자동차, 그리고 항해. 그는 경주용 자동차의 클래식한 라인을 대단히 동경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메리카 컵 클래스 J12의 위엄 있는 실루엣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워치가 J12의 이름을 잇게 되었다.

다른 대회와 달리 트로피가 금이 아닌 은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처음 아메리카스 컵이 열릴 땐 지금과 달리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트로피 역시 소박한(?)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1933년 찍힌 사진으로 샴록 V가 브리타이나와 벨세다를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브리타니아는 J 클래스 요트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개량을 거쳐 J 클래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돛이 부풀지 않았으며 선체가 기울지 않은 것을 보아 순풍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