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클래스 요트의 부활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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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클래스 요트의 부활

J 클래스 요트는 럭셔리 세일링 요트의 시작이자 카테고리 중 정점에 있는 모델들이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지만 전 세계에 고작 9척밖에 없다. 2000년 론칭 후 수많은 셀러브리티의 손목을 장식한 샤넬 워치 J12의 이름과 디자인은 이 J 클래스 요트에서 영감을 받았다.

박호준 BY 박호준 2022.08.25
 
1851년 8월 22일 오전 10시, 런던에서 남쪽으로 약 120km 떨어진 와이트섬(Isle of Wight)에서 요트 대회가 열렸다. 빅토리아 여왕이 주관했던 이 경기는 와이트섬의 연안을 따라 일주하는 방식이었다. 이날 대회에 출전한 15대의 요트 중에는 평소와 달리 성조기를 단 요트가 한 대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 요트클럽의 요트 ‘아메리카(America)’였다. 놀라운 사실은 아메리카가 5000km가 넘는 대서양을 건너 와이트섬까지 찾아온 것도 모자라 다른 영국 요트를 모두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말이다. 아메리카는 결승선을 10시간 34분 만에 통과했지만, 영국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로열 웨스턴 요트 클럽(Royal Western Yacht Club)의 요트 이클립스(Eclipse)는 1시간 11분 뒤처져 11시간 45분이 걸렸다. 뜻밖의 결과에 놀란 빅토리아 여왕은 2등은 누구냐고 물었지만 “폐하, 세상에 2등은 없습니다(Your Majesty, there is no second)”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아메리카스 컵(America’s Cup)을 상징하는 문구가 탄생한 순간이자 미국과 영국의 길고 긴 요트 대결의 서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영국 요트협회는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회를 이어가자고 제안했고 뉴욕 요트클럽이 이를 승낙했다. 영국 국내 대회에서 국제대회로 바뀌면서 첫 우승한 요트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스 컵(America’s Cup)이라 명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아메리카스 컵은 월드컵보다 79년, 올림픽보다 45년 먼저 열린 국제 스포츠 대회다. 전통 있는 스포츠 대회로 꼽히는 테니스의 윔블던(1877년)이나 골프의 브리티시 오픈(1860년)보다도 더 긴 역사를 자랑한다. 여담이지만, 1851년 아메리카스 컵이 열린 이래로 총 35번의 대회에서 영국은 단 한 번도 1등을 차지하지 못했다.  
사진 속 파이프를 문 남자는 토머스 소피스다. 그는 엔데버와 엔데버Ⅱ 제작에 자금을 댄 인물로 스스로 J 클래스 요트를 몰 수 있을 만큼 세일링 실력이 출중했다. 요트 외에도 자동차와 비행기, 아이스 스케이팅에 많은 관심을 두었는데 영국에서 유럽까지 홀로 비행했으며 1901년 열린 제1회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영국 대표팀 선수로 출전해 아이스하키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침몰하고 있는 게 아니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 요트 경기 중 흔히 발생하는 광경으로 역풍이 불 때 배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나아가기 위한 기술이다. 경기 중이 아니라 평상시 항해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3~4년 간격으로 열리던 아메리카스 컵은 1930년대에 들어서며 유니버설 룰(Universal Rule)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자꾸 커지는 요트의 크기를 제한해 소모적인 경쟁을 막기 위한 장치였다. 구체적인 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워터 라인(선체와 수면이 만나는 선의 둘레), 체인 거스(배의 하단부터 상단까지의 길이) 프리 보드(흘수선부터 덱까지의 높이) 등 배에 대한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배의 크기와 성능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한 것이다. 자동차로 예를 들면 엔진은 2000cc 이하, 공차 중량은 1500kg 이상, 휠은 18인치로 규정하는 식이다. 크기를 제한했다고는 하지만, 요즘 요트와 비교하면 J 클래스의 요트는 여전히 거대하다. 1929년 만들어진 첫 번째 J 클래스 요트인 샴록 V(Shamrock V)는 배의 길이가 36.6m(약 120피트)에 이른다. 2017년 아메리카스 컵의 우승을 차지한 요트의 길이가 15m인 것과 비교하면 2배가 넘는다. 배가 큰 만큼 승조원도 많다.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에 육박한다. 노를 젓는 것도 아닌데 선원이 많이 필요했던 건 J 클래스 요트가 원양 항해가 아닌 연안에서의 단거리 경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한산〉이나 〈캐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배들은 대부분 범선에 속한다. 넓게 보면 범선과 요트는 돛을 달아 바람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건 같지만, 형태와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 일반적으로 범선은 사각형 돛을 가로로 달아 사용한다. 대륙을 오가는 범선의 경우 돛의 개수도 10여 개가 넘는다. 크고 무거운 배를 꾸준히 밀어내기 위해 강한 추진력이 필요한 탓이다. 반면 J 클래스 요트는 삼각형 돛이 세로로 달려 있으며 돛의 개수도 3개를 넘지 않는다. 망망대해를 미끄러지듯 순항하는 범선과 달리 J 클래스 요트는 1초라도 빨리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미세하게 변하는 바람과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스키퍼(선장)의 지시가 떨어지면 수백 kg이 넘는 돛을 빠르게 접고 펴기 위해 건장한 체격의 선원 다수가 돛에 매달려 줄다리기하듯 일사불란하게 줄을 당긴다. 돛을 조작하는 것 외에도 다수의 선원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무게중심이다.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을 보면 제니퍼 코널리가 톰 크루즈에게 요트 조작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요트를 조작해본 적이 없는 톰 크루즈는 가파르게 기운 요트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며 어설픈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선 달콤한 데이트 장면 정도로 그려졌지만, 알고 보면 요트의 실제 움직임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장면이다. 요트는 바람의 힘으로만 달리는 배라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정면으로는 달릴 수 없다. 이때 요트는 맞바람을 이용해 선체를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나아간다. 바로 이런 역풍 상황에서는 선체가 크게 기울어진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으면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조작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배의 양력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돛과 선체의 기울기를 이용해 요트 좌우에 흐르는 공기의 속도를 다르게 만들어 추진력을 얻는다. 비행기 날개와 같은 원리다. 만약 요트가 스키퍼의 예상보다 더 기울었을 땐 선원들이 기운 선체의 반대 방향으로 모여 체중을 이용해 배의 균형을 잡는다. 멀리서 보면 유유자적 바다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만 같은 요트 위에서 거센 파도를 맞아가며 고군분투하는 선원들의 모습은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자동차와 달리 요트의 조종석은 선체 후미에 위치한다. 선원들이 금세라도 바다에 빠질 것같이 위험해 보이지만 가느다란 로프에 몸을 고정한 상태이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단단한 팀워크 외에도 J 클래스에 많은 돈과 관심이 쏠린 이유는 요트 대결이 곧 그 나라의 기술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는 돛대, 가볍고 질긴 소재로 만든 돛,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속력을 높인 선체 디자인 등 요트 한대에 구조역학, 재료역학, 유체역학, 건축학 같은 공학 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오늘날 많은 자동차 제조사가 자신들의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매년 수천억 원의 돈을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메리카스 컵의 기록에 따르면, 1937년 J 클래스에 출전하기 위해 한 개의 팀이 부담해야 했던 금액은 약 50만 달러였다. 당시 미국 노동자 연간 임금 소득이 1300달러 내외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액수다. 참고로 최근 아메리카스 컵에 출전하는 요트 팀의 1년 예산은 8000만~1억 달러다.
 
1929년 영국이 선보인 샴록 V에 맞서기 위해 미국은 1930년 열린 아메리카스 컵에 4대의 J 클래스 요트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윌윈드(Whirlwind), 양키(Yankee), 위타모에(Weetamoe)를 연달아 출시했다. 그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J 클래스 요트를 4대나 만든 건 단지 그들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아메리카스 컵은 예선과 결선의 경기 방식이 다르다. 예선에선 참가한 배들이 일제히 출발해 결승선으로 내달린다(fleet race). 여기서 1등을 차지한 배가 도전자(challenger) 자격을 얻어 지난 대회 우승자의 배인 방어자(defender)와 1 대 1 승부를 벌이는 방식이다(match race). 예선을 거치지 않는 방어자는 피로도가 쌓인 도전자와 달리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에 임한다. 더구나 경기가 열리는 장소 역시 전 대회 우승 팀이 결정하는 것이 관례여서 영국 팀은 매번 대서양을 건너오는 수고스러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미국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요트를 찾기 위해 방어자로 쓰일 요트 후보를 여러 척 건조한 셈이다. 4척의 배는 각각 특징이 달랐는데 윌윈드는 워터 라인이 4척 중 가장 길었고 위타모에는 선체의 폭이 극단적으로 좁았다. 결국 올라운더 성격을 지닌 엔터프라이즈가 결승에서 샴록 V를 4 대 0으로 가볍게 제압하며 첫 J 클래스 대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1934년과 1937년에 열린 대회에서도 영국은 ‘영국 요트 역사상 최고의 걸작품’이라 불리는 엔데버(Endeavor)와 엔데버Ⅱ(EndeavorⅡ)를 내세워 도전했지만 미국의 레인보(Rainbow)와 레인저(Ranger)에 번번이 패배했다.
 
라디오 중계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주목받던 J 클래스는 1939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1929년부터 1937년까지 영국에서 4척, 미국에서 6척으로 총 10척의 J 클래스 요트가 만들어졌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남은 건 고작 3척이었다. 나머지 7척은 전쟁 중 부족한 철, 구리 등을 보충하기 위해 해체됐다. 겨우 살아남은 배들 역시 선체를 분해해 헛간에 보관하거나 강바닥 아래에 침몰해 진흙에 파묻히는 등 과정이 순탄치 못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J 클래스가 1998년 안티구아 클래식 위크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10년이 넘는 오랜 복원 작업을 거쳐 원래 모습을 되찾은 샴록 V, 벨세다(Velsheda), 엔데버가 나란히 카리브해를 미끄러지듯 질주한 것이다. 반세기 만에 돌아온 J 클래스 요트의 클래식한 디자인과 커다란 부피감은 여느 요트와 다른 존재감을 뽐내며 이목을 끌었다.
당시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였던 자크 엘뤼(Jacques Helleu)가 워치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한 워치를 디자인했다. 첫 연필 선을 그리면서 그는 올 블랙의 타임리스하고 스포티한 워치를 상상했다.
그의 영감은 그가 가장 사랑했던 두 세계로부터 왔다. 자동차, 그리고 항해. 그는 경주용 자동차의 클래식한 라인을 대단히 동경했으며 무엇보다도 아메리카 컵 클래스 J12의 위엄 있는 실루엣을 사랑했다. 그리하여 워치가 J12의 이름을 잇게 되었다.
다른 대회와 달리 트로피가 금이 아닌 은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처음 아메리카스 컵이 열릴 땐 지금과 달리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트로피 역시 소박한(?)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다른 대회와 달리 트로피가 금이 아닌 은으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처음 아메리카스 컵이 열릴 땐 지금과 달리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트로피 역시 소박한(?) 편이었다고 전해진다.

 2000년 J 클래스 협회(J Class Association)가 설립되면서 J 클래스 요트의 복원 속도도 탄력을 받았다. 배는 사라졌지만 설계도면은 온전히 남아 있던 덕에 2004년에는 레인저, 2009년엔 엔데버Ⅱ를 복각한 하누만(Hanuman)이 만들어졌다. 한발 더 나아가 과거엔 설계도로만 존재했던 요트를 건조하기에 이르렀는데 라이언하트(Lionheart), 토파즈(Topaz), 스베아(Svea)가 그 주인공이다. 특히 스베아는 미국과 영국이 아닌 스웨덴의 J 클래스 요트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 만하다. 1937년 설계됐지만 80년간 종이 위에만 존재했던 스베아는 가장 최근 만들어진 요트답게 선체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두르고 돛대 제작에 탄소섬유를 사용했다. 요트의 크기도 43.6m로 현존하는 J 클래스 요트 중 가장 길다. 무게는 가벼워졌는데 선체는 길어졌으니 성능이 뛰어날 수밖에. 실제로 지난 7월 2일 스페인 마요르카섬에서 열린 슈퍼요트 컵 팔마(Superyacht Cup Palma) J 클래스 부문에서 스베아는 5라운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레인저, 토파즈, 벨세다를 누르고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J 클래스 협회는 건조 연도에 따라 요트 간의 성능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보정 계수를 적용해 환산한 기록으로 순위를 매긴다. 쉽게 설명하면, 핸디캡이 있는 요트에 일정 수준의 가산점을 부여해 형평성을 맞춘다는 이야기다. 2010년대에만 5척의 J 클래스 요트가 추가되면서 2022년 기준 총 9척의  J 클래스 요트가 바다를 누비고 있다. 혹시 모른다. J 클래스 100주년 기념으로 2030년 아메리카스 컵의 주인공은 J 클래스 요트가 될지도.  
1933년 찍힌 사진으로 샴록 V가 브리타이나와 벨세다를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브리타니아는 J 클래스 요트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개량을 거쳐 J 클래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돛이 부풀지 않았으며 선체가 기울지 않은 것을 보아 순풍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1933년 찍힌 사진으로 샴록 V가 브리타이나와 벨세다를 이끌고 있는 모습이다. 브리타니아는 J 클래스 요트로 제작되지 않았지만, 개량을 거쳐 J 클래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돛이 부풀지 않았으며 선체가 기울지 않은 것을 보아 순풍을 이용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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