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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현실에선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
메타버스에서 놀기 위해선 가상의 옷들로 가득 찬 옷장이 필요할 것이다. 그 옷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 옷들을 만들어 파는 건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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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지 못한 손님처럼 멀뚱히 서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주소를 잘못 찾아온 동네 아저씨 같아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다. 물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전투를 치르듯이 댄스 플로어를 가로질러 출구까지 갈 필요는 없다. 버튼 두 개만 누르면 그곳을 벗어날 수 있다. 패션도 음악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기말 분위기의 클럽에서 서재 책상으로 돌아온 나는 ‘VR 챗’의 알록달록한 인터페이스를 들여다보며 뜨거워진 플라스틱 VR 헤드셋을 벗는다. VR챗은 개인 혹은 단체가 만들어놓은 수많은 가상 세계를 한데 모으고 이어주는 가상 세계 플랫폼으로 수백 가지 음식을 한데 모아놓은 뷔페와 비슷하다.
방금 나를 가상 세계로 인도해준 헤드셋은 마크 저커버그의 작품이다. 모든 사람을 그의 가상 세계로 융화하고 싶어 하는 바람이 담긴 이 헤드셋은 1000달러가 넘는 경쟁 모델과 달리 고작 399달러면 구매가 가능하다.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버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소녀와 바나나맨, 로봇 갑옷이 판치던 것과 달리 시종일관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메타버스라는 말은 들어봤을 뿐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고 해도 걱정할 것 없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본질적으로 모호한 아이디어를 확고하고 간결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메타버스의 기본 개념은 소셜미디어, 쇼핑, 비디오게임, 증강현실 애플리케이션, 채팅 등 이미 익숙한 인터넷 서비스와 플랫폼을 한데 모아 통합한 상위 플랫폼이나 인터페이스를 통해 접속할 수 있게 만든 광대하고 지속적이며 공유되는 가상 세계다. 앱 각각에 따로따로 로그인하는 대신 메타버스에 단 한 번만 로그인한 후 거기서 그 모든 앱에 접속하는 것이다. 메타버스에 열렬한 믿음을 보내는 일부 메타버스 신도들은 메타버스가 인터넷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말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회사 이름을 ‘메타(Meta)’로 리브랜딩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메타버스가 자신의 사업에서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Instagram)’ ‘메신저(Messenger)’ ‘왓츠앱(WhatsApp)’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다. 메타는 이 모든 플랫폼을 아우르는 상위 브랜드다. 모든 것을 한 곳에 두겠다는 메타버스 모델의 약속과 맞아떨어진다. 저커버그가 자신의 비전에 진심이라고 보든 혹은 최근 몇 년 동안 페이스북과 관련하여 일어난 수많은 논란거리를 잊게 하기 위해 리브랜딩을 앞세운 것이라고 보든 간에 메타버스를 현실로 가져올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그보다 더 나은 적임인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가 소유한 서비스에 로그인하는 사용자 수를 합하면 한 달에만 30억 명이 넘는다. 게다가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가상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헤드셋을 저렴한 가격에 보급하고 있다. 올해까지 그가 선보인 헤드셋 ‘메타 퀘스트 2’의 누적 판매량은 1500만 대나 된다.
메타가 제 살 깎아 먹기에 가까운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까닭은 사용자들의 개인 정보나 행동 정보를 수집해 광고주들에게 팔기 위함이다. 구글처럼 말이다. '어떤 상품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이 바로 상품이다'라는 말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 이유로 메타는 벌써 다양한 앱을 선보이고 있다. 그 시작은 ‘호라이즌 월즈(Horizon Worlds)’와 ‘워크룸(Workrooms)’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콘서트와 스포츠 경기에 가고, 원격 업무 회의를 할 수 있는 앱이다. ‘워크룸’은 아직 베타 버전이지만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메타의 어떤 앱을 사용하더라도 당신의 아바타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휴대전화, 데스크톱, 게임 콘솔, VR 헤드셋 혹은 스마트 글라스를 이용해 가상 세계에 로그인할 것이다. 친구, 인플루언서, 셀러브리티, 심지어 명품 브랜드들도 전부 거기 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당신은 그곳에 들어가고 싶어질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의 눈에 띌 기회, 3D로 렌더링 될 기회, 발 아프게 돌아다니지 않으면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쇼핑을 즐기는 등의 수많은 기회를 놓치게 될 테니 말이다.
방금 이 글을 읽으며 쇼핑몰에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노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정상이다. 저커버그의 메타버스가 지향하는 모습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방대하고 끝없이 깨끗하며 눈부실 정도로 조명이 밝게 켜진 자본주의 소비자들의 놀이터 말이다. 미국 전역의 대형 쇼핑몰들이 하나씩 문을 닫는 요즘, 후기 자본주의라는 비대한 공룡이 자신의 멸종을 막기 위해 좀 더 새롭고, 좀 더 비싸고, 좀 더 빛나는 쇼핑몰을 탄생시키기 원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이 멋진 신세계에서 당신은 무엇을 살 것인가? 당신의 아바타가 업무 미팅과 VR 콘서트, 쇼핑, 친구들과의 모임 사이를 계속 오가며 참석한다면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옷이 필요해질 것이다. 패션의 중요성이 증대된다는 뜻이다. 현재 메타는 사용자들에게 한정판 옷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 옷들은 모두 플라스틱 느낌이 강해 장난감처럼 보인다. 아마도 렌더링하기 쉽고 무난한 디자인이라는 이유로 꼽힌 디자인일 것이다. 지난 6월, 메타는 옷을 선택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메타 아바타 스토어가 새롭게 서비스되고, 여기에는 발렌시아가, 프라다, 톰 브라운 같은 유력 패션 브랜드들의 디지털 의류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메타버스가 남들에게 보이는 게 중요한 곳이라면 패션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메타 관계자는 해당 브랜드의 의류들이 처음에는 2.99달러에서 8.99달러 사이의 가격대로 판매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게임을 해봤다면 익숙할 소액결제 사업 모델이다. 게임 내 아이템을 사는 소액결제를 통해 사용자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 온라인 슈팅 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가 소액결제 시스템을 이용해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둔 후 소액결제는 비디오 게임 회사들의 주요 수입원이 됐다. 메타와 마찬가지로 메타버스에 주목하고 있는 ‘에픽 게임스(Epic Games)’는 포트나이트 덕분에 2018년과 2019년에 총 9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벌어들였다. 포트나이트가 무료 게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대단한 수치다. 이는 수억 수천만의 사용자 중 일부 사용자가 정기적으로 캐릭터의 의상을 바꾸면서 돈을 지출한 덕이다.
이러한 수익 모델은 게임 회사뿐 아니라 패션 브랜드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다. 디지털 세상에 반한 것이 분명한 발렌시아가는 포트나이트용 화장품과 스킨을 만들었다. 몽클레어도 마찬가지다. 몽클레어가 1000달러 이상인 다운 재킷을 본떠 만든 아바타 스킨 2개의 가격은 약 12달러 정도로 오리지널 재킷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가격이다. 물리적 제약에 구속받지 않으면서 브랜드 가치만을 이용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잠재 고객을 창출할 수 있다면 패션 브랜드 입장에선 메타버스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패션 디자이너들과 레이블들은 떠오르는 디지털 패션 세계에서의 자기 몫을 서둘러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에서 열린 쇼케이스 행사인 ‘메타버스 패션 위크(Metaverse Fashion Week)’에 모였다. 디센트럴랜드는 가상의 부동산을 판매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현재는 사명을 ‘에브리렐름(EveryrRealm)’으로 바꾼 뉴욕의 '디지털 부동산' 회사 ‘리퍼블릭 렐름(Republic Realm)’은 지난해 디센트럴랜드를 90만 달러에 매입했다. 그러곤 가상의 쇼핑몰을 지었다. 패션 위크에는 DKNY, 타미 힐피거, 파코라반, 돌체앤가바나, 에트로 등 여러 패션 브랜드가 참여했는데 '궁극의 패션 NFT 시장'을 자처하는 ‘드레스X(DressX)’같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적은 스타트업도 함께였다.
“우리의 목표는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메타 옷장(metacloset)을 주는 겁니다.” 드레스X의 공동설립자 다리아 샤포발로바가 보낸 이메일에 쓴 말이다. 드레스X만의 독특한 셀링 포인트는 ‘즉석 AR 시착’ 기술이다. 드레스X는 스냅챗과 같은 형식의 증강현실 필터를 사용해 고객들이 사진과 영상 형태로 구매한 디지털 패션을 자유자재로 꾸며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면 결과물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고 ‘줌(Zoom)’과 같은 화상 회의에서 구매한 가상 주얼리와 의상을 입을 수 있다.
드레스X에서는 비트코인 다음으로 몸값이 높은 이더리움을 지불 수단으로 쓸 수 있다. 제이슨 우가 디자인한 NFT 드레스의 경매 입찰 최저가는 8.5이더리움이었다. 들썩이는 가상화폐 환율을 고려하더라도 대충 1000달러가 넘는다. L.A.에서 활동하는 패션 컨설턴트 겸 작가인 아라벨 시카르디는 “이런 공간에 투자하는 브랜드들 중 다수의 목적은 암호화폐로 빠르게 부자가 된 명품 소비자들을 끌어오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난 몇 달간 암호화폐 시장에서 2조 달러가 사라지고 NFT 시장도 함께 무너진 지금,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뛰어들기에 가상 옷장은 리스크가 큰 도박이다. 제이슨 우의 NFT 드레스가 경매에 부쳐지고 2주가 지났을 때, 드레스 입찰 건수는 0건이었다.

글을 시작하며 언급한 VR챗으로 돌아가보자. VR챗은 사용자가 로그인한 후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무한대에 가까운 다채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이용자들은 놀이공원, 애니메이션 박람회, 채팅방, 스트립바, 나들이, 음악 페스티벌, 시 발표회, 비디오게임, 언더그라운드 클럽 파티 등 어떤 장소라도 간단한 클릭 몇 번이면 갈 수 있다. 이런 면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메타버스의 혼란스러운 면인 동시에 현실과 다른 신선한 경험을 준다. 2019년 기준 사용자 수가 400만일 정도로 VR챗의 인기는 높다. 이는 지난 2월 기준,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의 사용자 수 30만을 압도한다. VR챗 사용자들 중 많은 수가 메타가 손해를 감수하며 저렴하게 만든 헤드셋을 이용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아이러니다.
구성이 근본적으로 다른 탓이다. 자신만의 굳건한 왕국을 세우려는 메타와 달리 VR챗은 유저들이 직접 만든 서로 연결된 수천 개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한계를 결정하는 건 오직 사용자의 기술적 능력과 노력 그리고 사용자 기기의 성능뿐이다. 아바타를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다. “(VR챗에서) 한계는 문자 그대로 ‘기술적으로 할 줄 아는가? 혹은 할 줄 아는 친구를 아는가?’의 문제입니다. 그 외엔 어떤 제약도 없죠.” VR챗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클럽을 운영하는 유저 호르니악의 말이다. 한마디로 VR챗의 자유도가 훨씬 높다는 소리다.
물론 현재 VR챗에서 유행하는 패션 트렌드는 첫눈에 반하기 어렵다. 특히 애니메이션 속 가녀린 소녀들이나 늑대인간, 토끼 소년같이 수인화된 캐릭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3주에 한 번씩 모든 사람의 아바타가 일정한 변화를 갖는 걸 볼 수 있어요. 그게 곧 VR챗의 패션 트렌드인 셈이고요.” 어디를 봐야 할지 깨닫는다면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호르니악의 말이다. 그는 조금씩 평판을 쌓아가는 VR챗 세계의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였다. 이 디자이너들은 VR챗 안에서 입을 옷들을 booth.pm과 같은 사이트에서 판매하는데 때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무료 나눔을 하기도 한다. 개중 성공한 몇몇 인물은 아예 VR챗 전용 패션 하우스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다. 2년 넘게 아바타 의상을 만들어왔으며 수많은 서브 브랜드를 갖고 있는 일본의 ‘요요기 모리’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들은 VR챗 세계에서 전시회와 패션쇼를 주기적으로 연다.
호르니악과의 대화를 통해 VR챗 파티에서 오래전 향수까지 느껴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1990년대 나의 10대 시절 보았던 우중충한 술집의 펑크 밴드들과 버려진 창고에서 열렸던 불법 파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칠고 어설프며 때론 위험했지만 틀에 박히지 않고 개성 넘쳤던 모습 말이다. 처음으로 가상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던 때도 떠올랐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가상 세계는 경계를 깨는 기회의 창이 될 것이며 부족한 자금과 지리적 한계에 구속되지 않는 유토피아이자 파라다이스였다.
VR챗은 과거 서브컬처가 그랬던 것처럼 영원히 아류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메타버스 세계에 참여하려고 혈안이 된 패션 브랜드들은 저커버그의 메타 외에 다른 곳에서도 파티가 열리고 있으며 재능 있는 사람들과 잠재적인 고객들이 바글거리는 중이라는 걸 곧 깨닫게 될 것이다.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구경하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메타버스를 이용하는 다음 세대는 부디 과거 ‘아바타 꾸미기’ 수준보단 발전된 세상을 구현해주길 바란다. 현실에선 펼칠 수 없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해나가기를 응원한다. 그래야 우린 다음 세대의 코코 샤넬과 이브 생 로랑의 탄생을 메타버스에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
Credit
- WRITER TIM MAUGHAN
- PHOTO 게티이미지스코리아
- TRANSLATOR 박수진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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