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테니스 직관을 간 '테린이'가 허탈한 기분만을 느낀 이유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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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테니스 직관을 간 '테린이'가 허탈한 기분만을 느낀 이유

김현유 BY 김현유 2022.10.28
 
지난 9월 25일,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하나은행 코리아오픈 결승이 열린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의 센터코트 1만 석은 테니스 팬들로 가득 찼다. 사각의 경기장을 둘러가며 번쩍이는 2만 개의 눈동자가 코트 위에서 움직이는 단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은 스펙터클 그 자체. 그 광경에서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고대 로마 검투사들을 떠올린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고대에는 관람석에 앉은 귀족들이 더 높은 신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현대에는? 관람석에 앉은 나약한 인간들이 테니스 코트에서 뛰는 신들에게 경외를 보낸다. 2017년 코리아오픈에서 우승한 바 있는 옐레나 오스타펜코가 올해 결승에 올랐다. 한창 때 그녀의 포핸드 스트로크의 평균 구속은 시속 122km로 웬만한 남자 선수를 앞섰다. 예카테리나 알렉산드로바에게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이날 그녀가 뿜어내는 스트로크를 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듯했다. ATP 투어 유진투자증권 코리아오픈 테니스대회의 결승이 열린 10월 2일에도 같은 경기장을 찾았다. 레이븐 클라센과 한 조를 이뤄 복식 결승에 오른 너새니얼 라몬스는 시속 200km에 달하는 플랫 서브를 발사했다. 벼락 같은 서브가 코트 바닥에 꽂힐 때면 온몸이 움찔거렸다. 단식 결승에 오른 원핸드 백핸드의 슈퍼스타 데니스 샤포발로프의 점프 백핸드를 맨눈으로 보기도 했다. 마치 퓨마가 메추리를 사냥하는 모습처럼 날렵했다. 키 170cm의 단신 니시오카 요시히토가 그 화려한 샤포발로프를 하이 루프 톱스핀으로 착실하게 공략해 무너뜨리는 모습도 봤다.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코트 위를 빛의 속도로 가로지르는 테니스 공을 두 눈이 시릴 정도로 집중해 보다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원래대로라면 남녀 코리아오픈을 연달아 감상한 9월의 마지막 주는 테니스의 축복으로 가득 찬 행복의 순간으로만 남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멋진 경기를 보면 볼수록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게 다 페더러 탓이다. 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본 남녀 단복식 4개의 경기는 늦깎이 ‘테린이’인 내가 본 첫 프로 경기들이었고, 프로 테니스 경기의 박진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감탄이 나올 때마다 ‘페더러는 얼마나 더 멋질까?’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라몬스의 서브를 보면서도, 샤포발로프의 점프 백핸드를 감상하면서도, 로저 페더러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패배감만이 나를 감쌌다.
2006년,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뉴욕 타임스〉의 의뢰로 윔블던으로 건너가 로저 페더러를 취재했다. 주니어 테니스 선수 출신이기도 한 월리스는 윔블던 대회를 관람하고, 결승 사흘 전 프로테니스협회(ATP) 사무실에서 페더러와 2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그가 쏟아낸 약 7000단어에 달하는 페더러에 관한 에세이는 스포츠에 관해 쓴 글들 중 최고로 평가받는다. 이 글은 2006년 8월 〈뉴욕 타임스〉에 ‘종교적 체험으로서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as Religious Experience)’라는 제목으로 실렸고, 이후 그의 글들을 엮은 에세이 선집 〈끈 이론〉에는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Federer both flesh and not)’라는 제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지금 이 제목을 적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다. 이런 종교적인 제목을 지을 수밖에 없었던 월리스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페더러는 그런 존재다.
우리는 나달의 포핸드를 강렬하다고 표현하며, 조코비치의 백핸드를 컴퓨터처럼 정확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페더러의 원핸드 백핸드에 대해 말할 때는 ‘아름답다’는 단어 외에 다른 수식어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왼손으로 라켓 헤드 바로 아래 넥을 살며시 잡아 들어 올리며 오른발을 내디뎌 공을 타격할 적당한 거리를 잡은 뒤, 무릎을 구부렸다 펴며 단단하게 라켓을 붙든 오른 손목으로 공을 때린다. 이때 페더러는 앞으로 던지는 오른손의 반작용처럼 왼손을 뒤쪽으로 펼치고, 몸이 움직이는 진행 방향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체중을 이동시키느라 오른발을 발레의 푸앵트처럼 세운다. 이 일련의 과정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춤을 추는 것만 같다.
아! 하나가 더 있다. 그의 플레이를 표현할 때 ‘아름답다’는 말 외에 ‘불가사의하다’는 표현도 어울린다. 아직 테니스를 제대로 치기 전엔 어째서 테니스 선수들이 한참 동안 사이좋게 랠리를 주고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상대편이 쫓아가지 못할 코트 구석으로 공을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렵나?”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테니스 코트의 베이스라인(가장 바깥쪽 라인)에 서보면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될 것이다. 코트는 내 쪽 땅만 따져도 길이 11m가 넘고, 상대편 베이스라인까지 따지면 23.77m에 달한다. 베이스 라이너라면 샷을 한 번 때릴 때마다 약 20m 반대편으로 공을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날아오는 공을 맞받아치는 타이밍이 0.1초 빠르거나 느려지면, 내 라켓에 맞은 공의 각도는 크게 변해 라인 바깥에 떨어진다. 또 하나의 장벽은 네트다. 네트는 0.914m로 거의 성인의 허리까지 올라온다. 아마추어 남성 플레이어의 포핸드 스트로크라도 보통 시속 70~80km에 달하는 속도로 날아다닌다. 코트에 선 초보자라면,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 속도의 공을 쳐서 네트를 넘기고 반대편 코트 라인 안쪽에 떨어지게 할 방법은 힘을 줄여 아리랑 볼처럼 높이 띄우는 것뿐이다. 세게 맞받아치려 하면 공은 높이 떠 멀리 나가거나 직선으로 날아가 네트에 처박히기 마련이다. 운 좋게, 플랫하게 맞받아쳐서 공이 날카로운 속도로 네트 위를 지나간다고 해도, 그 공은 십중팔구 베이스라인 바깥에 떨어진다.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수없이 쌓이고 나면, 날아오는 공을 받아쳐 어떤 특정 지점에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는 ‘상상력’이 생긴다. 실행력이 아니다. 상상력이다. 그런데 페더러는 이 상상력의 범주마저 완벽하게 벗어나는 위치로 공을 보낸다. 그야말로 불가사의.
이 아름답고 불가사의한 남자는 지난 9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레이버컵 테니스대회를 끝으로 은퇴했다. ‘살과 빛의 몸을 입은 페더러’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로저 페더러를 비롯한 프로 테니스 선수의 박력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23.77m의 길이를 가로질러 날아오는 레이저 같은 공의 속도감, 그 공을 따라잡기 위해 내달리는 190cm짜리 육신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절대로 전달될 수 없다고. 남녀 코리아오픈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그 말은 전적으로 옳다. 텔레비전은 프로 테니스 경기의 박력을 절대로 다 전달하지 못한다. 이 말은 지금까지 내가 감상한 페더러의 아름다움 역시 전부 유튜브에 박제된 가짜들이라는 뜻이다. 나는 로저 페더러가 가진 진짜 아름다움의 10분의 1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로저 페더러의 경기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슴 한구석이 찌릿찌릿 아려온다. 테니스 사춘기의 주접에는 탈출구가 없다.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디렉터이자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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