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켄을 바라보는 가장 합리적이고 솔직한 마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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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켄을 바라보는 가장 합리적이고 솔직한 마음

김현유 BY 김현유 2023.02.03
“기분 좋은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반려견 훈련사 ‘개통령’ 강형욱이나, 국내 정신의학계의 권위자 오은영 박사, 혹은 요식업계의 큰손 백종원이 할 듯한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저 문장을 처음 읽은 것은 6년 전 우연히 구입한 책 머리말에서다. 책 제목은 〈시미켄의 베스트 섹스〉. 저자는 당연히 시미켄 본인이다.
시미켄은 누구인가. 1979년 일본 치바현에서 태어난 ‘시미즈 켄’은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남성 중 하나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당장 ‘한국에서 시미켄보다 유명한 일본인 남성’이라면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여기까지 쓰고서 오랫동안 책장에서 먼지 쌓인 〈시미켄의 베스트 섹스〉를 꺼냈다. 저자 소개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17년 현재, 배우 경력 19년, 그동안 함께 해온 파트너 9000명, 연평균 500 작품에 출연하며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최고의 AV 배우”.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압도적인 지식과 경험으로 여배우들의 신뢰가 두텁다. ‘시미쿠니’ ‘롤스로이스’ 등 오리지널 체위를 고안하기도 했다.”
시미켄은 20년 넘게 AV 배우로 활동했지만, 그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9년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한 이후다. 한국 구독자를 타깃으로 문을 연 ‘시미켄 TV’는 개설과 동시에 급속도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2023년 1월 기준 71만3000명의 구독자를 보유 중이다.
원고를 청탁한 담당 에디터는 내게 시미켄의 인기 현황과 그 이유를 추측해보라고 주문했다. 시미켄처럼 ‘샤이 지지층’이 많은 인물의 인기 비결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를 알고 좋아할 만한 이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을 터. 책장을 덮고 평소 시미켄을 좋아할 것 같은 이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다.
“시미켄은 잘 몰라요. 그쪽 취향이 아니거든요.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일본이요.” 천안에서 의류업에 종사 중인 31세 이성애자 남성은 갑작스레 자신은 서구권에서 제작된 영상물을 선호한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그는 시미켄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웬만하면 먼저 나서서 시미켄 좋아한다고 말하긴 힘들 거예요. 요즘은 여자들도 야동 보는 게 잘못됐다고 말하진 않지만, 굳이 배우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이야기하면 좀 그렇죠. 무슨 말인지 아시죠?”
흥미롭지만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하게 시미켄을 좋아할 것 같은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째 수신자는 6년째 연애 경력이 단절된 이성애자 미혼 남성. 그는 일본 거주 경험이 있으며, 현재 불혹의 나이를 앞두고 있다. “내가 중학생 때였을 거야. 얼굴을 먼저 알았지. 이름이 시미켄이라는 건 한참 뒤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알았어. 보통 야동에서 남배우는 얼굴조차 제대로 안 보여주거든.” 그렇다면 그는 시미켄의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게 됐을까? “그 양반이 20년 넘게 헤어스타일이 똑같아요. 워낙 다작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역시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어 더 들어보기로 했다. “작년에 일본에서 법이 하나 만들어졌어. ‘AV 신법’이라고 여배우들 인권을 보장하자는 게 그 목적이지.” ‘AV 신법’의 핵심 중 하나는 배우와 제작사 사이의 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출연자가 요구하면 작품 판매도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신인 배우들의 기용을 크게 줄이고, 업계의 현금 흐름을 더디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법이 발효되기 직전에 소위 ‘인기 배우’들이 엄청나게 다작했다고. ‘마지막 황금기’로 불리면서 이때 명작이 많이 나왔어요.” 시미켄이 내수 시장의 위기로 해외 진출을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한국에서 광고를 찍고 유명 프로그램에 섭외될 만큼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여성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기분 나빴어요. 남자 친구가 저 사람 몰랐으면 좋겠다 싶었죠.” 최근 남자 친구와 200일을 넘긴 20대 중반의 이 여성은 시미켄을 ‘유튜버’로 처음 알았고, 자극적인 제목과 비주얼의 섬네일에 불쾌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런데 어떤 영상에서는 여자들에게 유익할 이야기를 ‘올챙이들(시미켄이 구독자들을 부르는 애칭)’에게 전하기도 하더라고요. 이런 내용이라면 남자 친구에게 보여줘야겠다 싶은 것도 있었어요.” 실제로 시미켄 TV’의 상위 인기 동영상 리스트에는 ‘연기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 ‘정액받이가 없는 콘돔을 써야 하는 이유’ ‘G 스폿 찾는 법’ 같은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5만 명이 넘는 30대 여성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프로페셔널해 보이던데요? 그분 직업은 연기력, 건강한 신체, 정신력을 다 갖춰야 하잖아요. 세 가지를 전부 컨트롤하면서 20년 넘게 커리어를 쌓았다는 건 리스펙해야죠.” 그녀는 시원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분이 남자들에게 환대받고 있다는 걸 알아요. 스킬 중요하죠. 그런데 무슨 유명 수능 강사처럼 떠받들면서 볼 필요까지 있나 싶죠. 대한민국 모든 남자가 수능 문제 풀듯이 그걸 똑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별론데요.”
일본에서 살았던 경험이 시미켄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 유학생 출신의 37세 미혼 남성에게도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시미켄이 일본 사람이어서 맘 편히 좋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시미켄의 인기 요인으로 그가 외국인이라는 점을 꼽았다. “다나카를 보세요. 다나카 직업이 ‘호스트’입니다. 저는 여자분들 앞에서 〈비스티 보이즈〉 좋아한다 말하기도 좀 그렇던데요. 방송에서 한국인 호스트 본 적 있으세요?” 엄밀히 말하면 다나카는 한국인 코미디언이 연기하는 일본인 캐릭터지만, 다나카 대신 ‘승우’ ‘재현’ 같은 이름이 붙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갔다. “막연히 일본은 ‘성진국’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일본도 한국만큼 성적인 부분에서 보수적인 나라거든요.” 실제로 시미켄은 직업 때문에 월세방을 구하지 못하거나 신용카드 발급이 어렵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제2의 시미켄’이 한국에서 나오길 바라는 이도 있었다. “아직도 섹스의 ‘섹’만 나오면 다들 얼어붙잖아. 다들 좋아하고, 심지어 잘하고 싶은 거면서. 그런 점에서 나는 ‘심익현’이 아니라, ‘김익현’ ‘이익현’ ‘박익현’도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고 봐.” 내년이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30대 초반 유부남은 역시 정력적이었다. 그는 전화를 끊기 전, 한 번 더 목에 핏대를 올렸다. “모르는 척하는 놈들이 있어. 다들 그 형님 덕분에 한 번쯤은 베네핏을 얻었잖아. 고마워하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을 못 본 체해서는 안 돼. 그건 비겁한 거지.”
시미켄은 채널 개설 이유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고, 우리 모두가 건강한 성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건전한 정보만을 공유”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잘못되고 왜곡된 성인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짜는 포르노업계에서 일하면서 건강한 성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니, 그야말로 입체적인 인물이 아닌가?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시미켄을 알고, 그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입체적인 면까지 이해했던 건 어쩌면 시미켄의 콘텐츠를 제대로 본 누군가의 여자 친구, “남자 친구가 저 사람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면서도 “그러나 그의 유튜브 영상 중에는 남자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고 답한 여성이 아니었을까? 남자 친구가 일본 포르노에 나온 배우 시미켄은 몰랐으면 좋겠다. 그러나 남자 친구가 일본 포르노에 수천 회 출연한 심익현 씨가 자신만의 경험으로 전달하는 제대로 된 성 정보는 알았으면 좋겠다. 언뜻 듣기엔 모순적이면서도, 그 자체로 가장 솔직하고 무척 합리적이지 않은가?
 
주현욱은 서울에 거주 중인 n년 차 에디터다. 패션, 스니커, 자동차, 스포츠 관련 기사를 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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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주현욱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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