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S/S 시즌, 디자이너들은 계절의 경계를 무시하기로 약속이나 한 듯 가죽을 대거 활용했다. 레트로 스포티즘을 표방한 마틴 로즈의 레더 베스트, 록 스타의 전형을 보여준 셀린느의 가죽 재킷, 신비로운 마라케시 모래바람 사이를 헤치고 등장한 생 로랑의 거대한 레더 코트, 레이싱에서 영감을 받은 루드와 루이 비통의 모터사이클 재킷까지. 다양한 테마 사이에서 가죽은 유일한 교집합이자 필수 불가결한 아이템이었다.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이 다시 활발해진 탓일까? 한 시즌 안에서도 점점 더 다양한 계절이 혼재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여름을 위한 가죽이라니. 언뜻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히지만, 프라다가 선보인 카프 레더 슬리브리스와 마이크로 쇼트 팬츠만큼은 기꺼이 입고 싶다. 소매와 바짓단을 과감하게 잘라 시원하게 드러낸 팔다리 덕분에 쿨하고 펑크적이면서 묘한 관능미까지 자아낸다. 이왕 입는 김에 단단한 가죽 부츠까지 갖추고 여름밤의 방탕함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카프스킨 슬리브리스 레더 톱, 쇼츠 모두 가격 미정 프라다. PHOTOGRAPHER 장기평 MODEL 김호용 HAIR 오지혜 MAKEUP 서아름
당신의 귀를 매료시킬 런웨이 속 음악들.
동심을 잃지 않은 삶을 상상해본다. 매일 팍팍한 일상에 치이는 현대인에겐 어쩌면 그런 장난스러움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디자이너들도 다르지 않은 걸까. 언제부터인가 하이패션과 키치의 영역을 구분 짓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카툰을 큼지막하게 그려 넣은 티셔츠, 장난감을 주렁주렁 단 재킷, 로봇 모양 귀고리…. 이번 시즌엔 가방에서 이런 경향이 유독 도드라진다. 해양생물에서 영감을 얻은 보터의 하드웨어 백과 개구리를 그대로 본뜬 JW 앤더슨, 판다와 토끼 탈을 재해석한 더블렛의 가방이 그렇듯. 레코드판을 닮은 아미리와 손전등처럼 생긴 루이 비통의 백 또한 한 번쯤 들어보고 싶은 가방임에 틀림없다. 다 큰 어른이 들기엔 민망하지 않냐고? 오히려 유치하고 일차원적일수록 좋다. 가볍게 들고 더 많이 웃으라는 배려니까.
매번 똑같은 스타일이 지겹다면? 런웨이 위에서 발견한 헤어 아이디어 여섯 개.
K-컬처의 저력을 새삼 실감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패션쇼장이다. 입구 300m 앞에서부터 장사진을 친 인파. 대부분이 우리나라 셀럽을 보기 위해 모인 팬들이다. 저마다 공들여 만든 플래카드를 흔들며 짧은 한국어로 함성을 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 열정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글로벌 브랜드들도 그 에너지를 피부로 느낀 건지 몇 년 새 한국 셀럽을 향한 러브콜이 눈에 띄게 잦아졌다. 작년에는 티파니가 지코를, 버버리가 손흥민을, 프라다가 재현을 앰배서더로 발탁한 데 이어, 올해 디올은 BTS 지민을, 발렌티노는 BTS 슈가를, 셀린느는 박보검을, 지방시는 태양을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물론 여자 셀럽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뉴진스 다니엘과 민지, 혜인은 각각 버버리와 샤넬, 루이 비통의 얼굴이 됐고, 아이브 안유진은 펜디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는 ‘앞으로 누가 또 어떤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될 것인가’. 그리고 그 중심엔 이제 막 개인 활동에 나선 BTS 멤버들이 있다. 뷔는 셀린느, RM은 보테가 베네타, 정국은 캘빈 클라인의 앰배서더가 될 것이라는 팬들의 추측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세간을 떠도는 중이라고. 빅데이터 회사 메트릭스는 샤넬 쇼에 참석한 블랙핑크 제니의 사진 한 장이 43억원의 미디어 효용 가치를 가진다고 추산했다.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한국 셀럽을 욕심내는 게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국 셀러브리티는 앞으로도 계속 그 영향력을 키워갈 수 있을까?
LVMH 그룹에 인수된 이후, 티파니는 유례없이 과감하고 역동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집중하고 있는 전략 중 하나는 컬래버레이션. 펜디와 함께 만든 바게트 백, 다니엘 아샴과 협업한 아트 피스 등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티파니는 마침내 나이키와도 손을 잡았다. 나이키 역시 지금까지 수많은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지만 주얼리 브랜드와 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포츠와 주얼리 업계를 견인하고 있는 이 두 거인은 에어포스 1 1837의 출시 40주년을 기념한다는 명분 아래 만났다. 그러니 이들의 협업물이 에어포스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고, 티파니 블루 스우시가 돋보이는 에어포스와 슈즈 박스가 SNS를 뜨겁게 달군 것도 충분히 예상 가능한 전개였다. 하지만 이번 협업은 단순히 스니커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실버 액세서리 컬렉션이 오히려 이번 협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이키 스우시가 박힌 휘슬 펜던트와 슈혼, 슈 브러시, 듀브레, 칫솔은 그 자체로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오는 3월 7일, 두 곳의 티파니 뉴욕 매장과 나이키의 SNKRS 앱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컬렉션을 확장하는 브랜드도 있다. 이번 시즌을 기점으로 남성복을 전개하는 피터 도와 시몬 로샤, 반대로 얼마 전 첫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인 보디가 그 주인공이다. 유려한 테일러링으로 이미 이름 높았던 피터 도는 어떤 남성복을 만들까? 그 대답은 NCT 제노가 런웨이에서 입은 테일러드 재킷에서 찾을 수 있다. 극적인 아워글래스 실루엣과 날렵한 재단, 우아한 새틴 라펠… 피터 도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성별과 무관하다는 것을 이 재킷이 또렷하게 보여준다. 한편 시몬 로샤는 2021년 H&M과의 협업으로 남성복을 살짝 시도한 후, 제대로 된 컬렉션을 론칭한 케이스다. 당시엔 심플한 룩을 주로 소개했지만, 2023 S/S 남성복 컬렉션엔 시몬 로샤 특유의 아방가르드하고 로맨틱한 무드를 적극 반영했다. 보디의 수장인 에밀리 아담스 보디는 크로셰와 패치워크, 에스닉한 디테일을 강조한 아기자기하면서도 낭만적인 남성복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보디를 입는 여성 고객들도 많았다고. 지난 1월 파리 패션위크에서 첫선을 보인 보디 우먼은 남성복보다 한층 더 화려했다. 시퀸과 거대한 왕관 등 남성복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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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ROYED & DISTRESSED DENIM
데님은 늘 트렌드 안에 있었다. 워싱과 디테일, 실루엣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법한 형태로 언제나 런웨이에 있었다. 그런데 이번 시즌은 사뭇 양상이 다르다. 전보다 더 대범하고 파격적이다. 바로 디스트로이드 데님 얘기다. 돌체앤가바나의 데님 팬츠가 이러한 트렌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두 군데 구멍이 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쭉쭉 잡아 찢은 듯한 디테일, 삭아서 해진 듯한 피니시, 빈티지보다 오히려 더 낡아 보이는 오버다이 컬러…. 이 넝마 같은 청바지는 오히려 거칠고 투박한 캐릭터로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디스트레스 데님을 위시한 브랜드는 또 있다. 발렌시아가는 과격하게 찢어진 바지로 2023 서머 컬렉션 오프닝을 열었고, 디젤과 베트멍, 디비전, 에곤랩도 디스트로이드 팬츠를 컬렉션 곳곳에 선보였다. 이런 트렌드를 보고 있으면 멀쩡한 청바지도 찢어 입고 싶어진다.
오버다이 데님 디스트로이드 팬츠 가격 미정 돌체앤가바나. PHOTOGRAPHER 채대한 ASSISTANT 김성재, 이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