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가족이 만든 위대한 와인 '로스 콥의 피노 누아'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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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족이 만든 위대한 와인 '로스 콥의 피노 누아'

위대한 와인은 가족이 만든다. 한 세대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하나의 가족이 위대한 와인을 만들어낸다. 소노마 카운티의 피노누아 장인으로 불리는 ‘로스 콥(Ross Cobb)’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박세회 BY 박세회 2023.03.31
 
로스 콥이 만든 리슬링, 샤르도네, 피노누아 품종의 와인들은 지난 3월부터 한국에 출시되어 권숙수 등의 레스토랑 및 보틀숍에서 판매 중이다.

로스 콥이 만든 리슬링, 샤르도네, 피노누아 품종의 와인들은 지난 3월부터 한국에 출시되어 권숙수 등의 레스토랑 및 보틀숍에서 판매 중이다.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포도밭에 포도나무를 심었을 때 당신은 몇 살이었나요?
제 부모님이 1989년에 마음에 드는 땅을 물색하고 그곳에 처음 포도나무를 심었을 때 제 나이는 19세였어요.
지금 당신이 가족들과 살고 있는 그 포도밭이죠?
맞아요. 제 아버지인 데이비드 콥은 해양생물학자였고 생태학 학위도 취득할 정도로 생물학 쪽을 깊이 공부하신 분이에요. 심지어 와인에 푹 빠진 이후인 1974년에는 피노누아를 어떤 토양에 재배해야 좋은지에 대한 논문을 쓸 정도로 학구적이시죠. 1980년대 후반에 아버지는 노후 준비를 위해 제 어머니 다이앤 콥과 함께 피노누아를 키워보기로 마음먹으셨어요. 그러려면 밭을 찾아야 하잖아요? 와인을 재배하기 좋은 캘리포니아의 서쪽 면, 산호세 근처에 있는 산타크루즈 마운틴부터 오리건주의 경계까지가 대략 800km인데, 온도계를 가지고 이곳을 죄다 돌아다니며 피노누아를 재배할 땅을 찾으셨어요.
온도계요?
아버지는 과학자였고 뭐든지 조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거든요. 온도계를 나무에 묶어두고 가장 낮은 일중 온도와 가장 높은 일중 온도를 잰 거죠. 그렇게 찾은 땅이 바로 지금 저희 포도밭이 있는 코스틀랜드예요. 당시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우리 가족과 부모님의 친구들이 포도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심으셨죠. 지금은 저와 제 아내, 딸까지 세 식구가 함께 살고 있어요.
코스틀랜드의 땅을 고른 이유는 뭔가요?
바다 얘기를 먼저 해야겠네요. 캘리포니아에선 여러 종의 포도를 재배하지만, 대부분의 피노누아는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기릅니다. 그 이유는 캘리포니아만에 흐르는 한류 때문이에요. 산호세부터 오리건까지 이르는 바다에는 북태평양 한류가 흐르죠. 로스앤젤레스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제 코스틀랜드 포도밭 인근 바다엔 1년의 대부분 10℃ 정도의 차가운 물이 흘러 추워서 수영도 못 해요. 하루 종일 서늘한 해무가 낀 날이 일주일 동안 지속되기도 하고, 여름에는 아침엔 추웠다가 오후엔 겉옷을 벗을 정도가 되기도 하죠. 바다에서 5~10km 정도 떨어진 곳들의 기온이 피노누아를 기르기 적당한 16~18℃가 됩니다. 저희 가족의 밭인 코스틀랜드 빈야드는 바다에서 약 7km 떨어진 구릉지에 위치하죠. 토양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하는데요. 캘리포니아는 지각 대이동 때 다른 곳에서 온 지각판과 북미의 지각판이 부딪쳐 생긴 땅입니다. 원래는 바다 아래 있던 토양이에요. 다양한 미네랄을 품고 있는 땅인 셈이죠. 흥미로운 지점이 있는데, 부르고뉴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구릉지의 정상은 비옥하지 않고 영양가가 없다고 얘기하죠. 그런데 캘리포니아의 경우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솟구친 토양이다 보니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고지대에도 꽤 많은 양분이 있어요.
그때까지는 아직 포도농장일 뿐이고, 와인을 만들어 파는 곳은 아니었죠.
맞아요. 쓸 만한 포도가 열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1992년에 윌리엄 셀럼의 버트 윌리엄스가 코스틀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포도를 사갔죠. (윌리엄 셀럼은 캘리포니아 최고의 부르고뉴 스타일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로 유명하다.) 포도밭은 부모님께서 은퇴 후 노후를 위해 시작한 사업이었으니, 누군가는 포도를 사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처음으로 와주신 분이 버트 윌리엄스예요. 윌리엄스는 저희 가족의 은인이자 제 와인 메이킹의 멘토이죠. 그 당시 저는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 UC데이비스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있었죠.
버트 윌리엄스와의 인연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버트는 정말 흥미로운 분이에요. 윌리엄 셀럼의 창업주이자 소노마에서 가장 유명한 부르고뉴 스타일의 피노누아 와인을 양조하는 와인 메이커지만, 정작 프랑스 부르고뉴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죠. 비행기를 무서워했거든요. 엽서를 통해서, 또 전화로 부르고뉴 생산자들과 교류하며 부르고뉴 스타일 와인 메이킹을 공부했죠. 전 대학을 졸업하고 윌리엄 셀럼에 들어갔어요. 저희 가족이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한 셈이죠. 그곳에서 전 버트 바로 다음인 넘버 투의 지위까지 올라갔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일했죠.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그분이랑 같이 일을 하면서 점점 자신감이 좀 붙었죠. 부모님과 함께 콥 와이너리를 시작한 건 2001년도예요. 아버지를 설득했죠. 그해 처음 와인을 만들었으니 이걸 숙성시켜 시장에 내놓은 건 2003년이에요. 그해는 대단했죠. 지도에 유명 레스토랑을 전부 표시하고 돌아다니며 소믈리에들을 만나 우리의 와인을 맛보게 했어요. 납품하기 위해서요. 피노누아는 온도에 예민하니 온도계를 가지고 다니며 16~17℃에 맞는 온도로 시음할 수 있게 항상 확인했죠. 그렇게 그해에 120개 레스토랑에서 콥 와인을 들여놨어요.
그러니까 윌리엄 셀럼에 다니면서 집에서는 아버지와 콥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거군요?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부터요.
그렇죠. 윌리엄 셀럼을 그만둬야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가족이 포도를 납품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같은 포도로 제 와인을 만든다는 건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이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와이너리에 취직해야 했어요. 그 와이너리는 제가 그곳의 와인을 메이킹하면서도 2000캐스크까지는 콥 와인을 생산하도록 허락해줬거든요. 그 후에는 또 더 많은 캐스크를 허락해주는 회사로 옮겼죠. 제가 독립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아요. 2015년에 마지막 회사를 그만뒀고, 이후에도 여러 와이너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또 제 와인을 만들며 가족을 부양해 왔죠.
당신의 와인을 보면 클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점도 흥미로워요.
포도는 씨앗을 뿌려서 재배하지 않아요. 가지를 잘라서 꺾꽂이로 번식시키죠. 완벽하게 같은 유전형질을 가진 포도를 복제(clone)해 재배하는 게 가능해요. 그래서 ‘클론’이라고 부르는 거죠. 처음 우리가 포도를 심을 때 UC데이비스에는 일종의 클론 카탈로그가 있었어요. 생산량은 높은데 퀄리티는 낮은 것부터 생산량은 좀 떨어지지만 퀄리티는 높은 것까지 다양한 클론을 선택할 수 있었죠. 당시 저희는 카탈로그에 있는 피노누아 18종을 다 사와서 18개로 구획을 나눈 밭에 심고 매년 포도가 익을 때마다 따 먹어보면서 어떤 포도가 우리 밭에 가장 잘 어울리는지 지켜봤어요. 저희 빈야드의 각 구획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클론을 찾아가며 심었죠. 그때보다 훨씬 넓고 복잡해진 저희 밭의 구획에는 각기 다른 클론이 심어져 있어요.
당신의 와인 중 가장 높은 가격이 매겨진 와인에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죠.
제 빈야드에는 작고하신 어머니의 이름을 딴 ‘다이앤 콥 블록’이 있어요. 1989년에 처음 우리가 심었던 수많은 클론이 이곳에 있지요. 이 블록의 포도나무에서 난 포도로 빚은 와인에 제 어머니의 이름을 붙였어요. 34년 된 나무니까 올드 바인이라고 볼 수 있겠죠.
지금은 당신의 밭에서 나는 포도만으로 와인을 만들지는 않지요.
맞아요. 한국에 소개하는 것만 해도 제 밭인 코스틀랜드 빈야드의 포도로 생산한 다이앤 콥 피노누아의 2개 빈티지를 비롯해 보나버그 빈야드의 리슬링, 독스 랜치 조앤스 블록의 샤르도네, 독스 랜치 카렐라 셀렉션까지 다양합니다. 모두 제 친구들의 밭이라 세심하게 제 요구대로 포도를 길러주고 있죠.
당신은 밴드 생활도 했었고, 음악 애호가로도 유명하죠. 그게 와인 메이킹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고, 6000장의 LP를 모았을 만큼 다양한 음악을 사랑합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든 결과물이 10년 뒤에 어떻게 들릴 것인지, 한 시대의 팝송으로 생명을 다할지, 오랜 시간 뒤에 더 사랑받는 음악이 될지를 생각하게 되죠. 그런 과정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낍니다.
콥 와인의 2018 다이앤 콥 코스틀랜드 빈야드.

콥 와인의 2018 다이앤 콥 코스틀랜드 빈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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