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힙은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가?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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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힙은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가?

김현유 BY 김현유 2023.04.04
 
살면서 겪는 어떤 일은 종종 우리도 모르게 역사적 맥락으로 남는다. 일리네어레코즈가 해체됐을 때 역사적 국면의 전환이 시작됐다고 느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리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리네어의 세 멤버가 바꾸고 이끌어온 한국 힙합이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뜻했다. 하이라이트레코즈의 해산은 일종의 굳히기였다. 래퍼들이 직접 회사 대표가 되고 각자 레이블의 수장이 되어 경쟁하며 공존하던 시대의 종언을 의미했다. 다시 크루로 돌아가겠다는 VMC의 선언은 이런 흐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2010년대의 한국 대중문화를 관통했던 한국 힙합의 중흥기는 이렇게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주요 힙합 레이블의 해체(해산)는 기본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일리네어레코즈의 해체 후 더콰이엇은 (조금 더 새 시대에 맞는 형태를 찾아) 데이토나레코즈를 창립했고, 오랫동안 대표직 자리의 무게를 짊어졌던 팔로알토는 비로소 온전한 솔로 아티스트로만 남게 됐다. 한편 VMC의 설립 동기는 크루로 활동하던 그들이 법적·제도적 장치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레이블 창립 9년 후 VMC는 다시 크루로 돌아가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대의 흐름과 맞닥뜨렸다. 모든 것은 흐르고 변한다.
언제부턴가 불안감은 늘 있었다. 한국 힙합이 예전만 못하다, 한국 힙합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리고 〈쇼미더머니〉는 이와 관련해 사람들이 참조하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기준이었다. 〈쇼미더머니〉의 시청률이 낮게 나올 때마다, 〈쇼미더머니〉의 음원이 차트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둘 때마다 사람들은 한국 힙합에 관한 불안감을 떠올렸다. 그러던 중 악동뮤지션 이찬혁의 한마디가 뜬금없이 모든 풍선을 터뜨렸다.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이거 정말 큰일 난 거 아냐? 어떡하지.
물론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저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이찬혁이 직접 설명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진의가 무엇이든 이찬혁의 말이 사람들의 무언가를 강하게 건드린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에 방영한 〈쇼미더머니〉 시즌11이 보여준 결과물은 이 모든 것의 진짜 마지막이었다. 많은 래퍼가 처음으로 큰돈을 만졌던 시대, 많은 래퍼가 성공을 누리고 성공을 꿈꿨던 시대, 축제 및 행사에 래퍼가 섭외 1순위였던 시대, 10대의 꿈이 래퍼였던 시대, 그리고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을 좌우했던 시대. 그 시대가 끝난 것이다.
〈쇼미더머니〉의 종영은 한국 힙합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인 래퍼의 중요한 등용문을 잃는 동시에 한국 힙합 신에 들어오는 경제적 이득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내리긴 힘들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한국 힙합이 몰락한다거나 위기에 빠진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대신 ‘이제 한국 힙합에서 거품이 빠질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가졌던 시대, 누리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누렸던 시대가 끝났지만, 그 시대를 통과하며 새롭게 얻고 깨달은 것들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이렇게 정리해보자. 한국 힙합은 지금 〈쇼미더머니〉의 스테이지에서 습득한 아이템들을 들고 새로운 판을 개척해야 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더콰이엇 역시 나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을 망쳤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렇게 말하기에는 우리가 얻은 게 너무 많거든요. 힙합 신이 얻은 것이요.” ‘국힙이 망했다’는 말이 밈처럼 유행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지난 10여 년을 통과하며 한국 힙합의 많은 부분이 오히려 그전보다 발전했고 단단해졌으며 훌륭해졌다는 사실이다.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의 숫자, 작품의 수준과 좋은 작품이 발매되는 빈도, 힙합 매체들의 다양화와 영향력 등 어떤 부분을 살펴봐도 그렇다. 꼭 무언가가 망했다고 반드시 말해야 한다면 어쩌면 그것은 〈쇼미더머니〉뿐일지도 모른다.
〈쇼미더머니〉가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곧바로 한국 힙합의 몰락으로 연결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관점의 너비와 경험의 유무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쇼미더머니〉 이전의 한국 힙합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 힙합을 손쉽게 〈쇼미더머니〉의 동의어로 등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더콰이엇의 열렬한 팬이지만 〈쇼미더머니〉 시즌4를 통해 힙합에 입문했기에 소울컴퍼니 시절의 더콰이엇에 대해서는 겪어본 적 없는 사람과 비슷한 세대가,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세대가 지금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은 〈쇼미더머니〉 없는 한국 힙합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 어떤 누구도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쇼미더머니〉 이전을 아는 사람은 그 말에 휩쓸리진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내가 조금 특이한 건 아닐까? 한국 힙합에 대한 판단을 늘 최소한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의 통시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나로서는 〈쇼미더머니〉가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만의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쇼미더머니〉가 생겨나기 전보다 더 준비되어 있고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미더머니〉가 없던 시절의 한국 힙합을 직접 살아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오히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새로운 기대를 갖고 있다. 거품의 시대를 사는 동안 잠시 뒤로 미뤄놓았던 실험과 시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닥치면서 공연을 못 하게 된 래퍼들이 앨범 작업에 보다 열중하는 방식으로 시대에 적응했듯, 앞으로는 래퍼들이 그동안 차트인을 위해 고민했던 에너지를 정반대 방향의 실험과 시도에 사용하리라고, 나는 기대하고 있다. 전자보다 후자 쪽이 더 훌륭한 음악이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후자는 전자와는 다른 음악일 것이고 그런 다른 음악들이 세상에 더 자주 등장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어우 무신사 냄새…” 요즘 유행하는 이 말을 접하고 나는 재미있다기보다 낯선 감정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무신사는 스트리트 · 힙합 의류를 판매하는 작은 회사였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끊은 오랜 세월 동안 무신사는 엄청나게 성장해 이미 거대해져 있었다. 이런 유행어가 돈다는 것 자체가 무신사의 영향력과 지배력을 말해준다. 한국 힙합도 지난 10여 년간 이런 존재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원래는 도전자였던 한국 힙합이 지난 10여 년 동안은 챔피언 자리에 있었던 것이고, 사람들은 이제 챔피언에게 새로운 멋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힙합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은 딱 이 정도로 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챔피언에 등극했던 때만큼 이제는 멋지지 않아요. 그게 힙합의 잘못인지 우리의 싫증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느낌은 그래요. 혹시 이제 망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이제 망한다는 말에 지나치게 자극받지 않을 것이다. 힙합은 원래 새로운 멋, ‘힙’을 찾아내지 않으면 망한다. 모두가 망했다고 하는 지금은 새로운 멋을 찾지 못한 시대일 뿐이다. 새로운 멋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인물이 새로운 시대의 한국 힙합의 구세주로 떠오를 것이다. 컨트리 차트에 올랐던 릴 나스 엑스의 시작을 떠올려보라!
 
김봉현은 힙합 저널리스트다. 〈래퍼가 말하는 래퍼〉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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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김봉현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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