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스방거 박사의 치료실’(1988), 거즈, 그물, 라텍스, 360x525x525cm.
히스테리 연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저서 중 하나는 요제프 브로이어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연구〉다. 이 연구는 그전까지 신체적 문제로 인해 발현되는 질병으로 여겨온 ‘히스테리’를 정신질환적 측면에서 접근한 전환적 연구로 평가받는다. 해당 저서에는 5명의 사례 연구가 등장하는데, 그중 첫 번째 환자인 ‘안나 오’가 독일 페미니즘 운동가로 유명한 베르타 파펜하임이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파펜하임은 브로이어에게 치료를 받던 환자 중 하나로 병상의 부친을 간호하던 와중에 심각한 언어장애와 섭식장애, 신체 마비 증상을 겪었으며 이는 부친의 사망 이후 더욱 심해졌다. 자신을 치료 중인 의사 요제프 브로이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상상임신 증상까지 있었던 파펜하임은 1882년 브로이어의 친구인 로버트 빈스방거가 원장으로 있는 크로이츨링겐의 벨뷰 정신병원으로 옮겼으며,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그해 겨울 퇴원했다.
1988년 말 하이디 부허는 로버츠 빈스방거의 아들이자 4대 원장인 루트비히 빈스방거를 끝으로 운영을 중단하고 폐허가 된 벨뷰 요양원을 발견하고 이곳에 있는 빈스방거 박사의 진료실을 ‘스키닝’ 한다. 빈스방거 박사의 진료실 벽에 부레풀을 발라 거즈를 붙이고 액상 라텍스를 덮어 말린 뒤 이를 벗겨냈다. 해당 작업이 바로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2층 전시관에 있는 ‘빈스방거 박사의 치료실’(1988)이다. 그녀가 이 라텍스를 건물의 외피에서 뜯어내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하이디는 뜯어낸 진료실의 피부를 자신의 몸 위에 뒤집어쓴다. 마치 오열을 속으로 삼키듯이. 히스테리라는 이름 아래 갇히고 억압당한 수많은 여성의 과거, 정신분석학의 사례 연구로 남은 안나 오의 정신, 성욕을 인간의 근원적 욕구로 두고 인간의 정신을 파악하는 남성 중심의 정신분석학이 쌓아온 오류들이 겹겹이 쌓인 벨뷰의 요양원 빈스방거 진료실의 껍질을 뜯어내는 행위는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그렇게 뜯어낸 스킨을 화이트 큐브에 마치 초라한 껍질처럼 걸어두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스키닝 작업 중에 하이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We cover and dis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