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가 파생상품이 된 시대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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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커즈가 파생상품이 된 시대

김현유 BY 김현유 2023.05.16
 
지난 몇 년 사이, 스니커즈가 마치 ‘파생상품’처럼 거래되기 시작한 데는 발렌시아가의 영향이 컸다. 발렌시아가를 탓하기 전에, 스니커즈 시장의 변화 양상을 짚어보자. 스니커즈의 탄생은 고무와 함께였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며 고무 소재가 개발되자 이와 함께 발소리가 나지 않는, 즉 살금살금 걷는 것처럼 조용하다는 뜻의 스니커즈(Sneakers) 산업이 탄력을 받았다. 발 빠른 사업가들은 1970년대부터 컨버스, 아디다스, 푸마 등의 브랜드명을 앞세우며 혁신적인 스니커즈를 세계인에게 선보였다. 이후 브랜드들은 다양한 스타 마케팅을 내세웠고, 세계인은 푸마의 클라이드, 아디다스의 Run DMC, 나이키의 마이클 조던 등에 열광했다. 시간이 흐르며 스니커즈 시장은 더욱 치열해졌다. 살아남기 위해 브랜드들은 세계 곳곳에서 각축을 벌였고, 일부는 겨우 살아남았지만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아주 거대해졌다.
2010년대 초반까지, 신발에 크게 관심이 없던 일반 소비자의 경우 스니커즈의 발명은 물론 그간 조던의 몇 번째 모델이 발매됐고, 카니예 웨스트가 나이키에서 아디다스로 이적했으며 뉴욕의 어디서 어떤 콘셉트의 운동화가 공개됐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 생겨난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 즉 스니커즈 마니아들은 신발의 역사 및 마케팅과 함께하며 꾸준히 그들의 커뮤니티를 강화해왔다. 그들은 정보를 공유했고, 서로 사고팔았으며, 모여서 친목을 강화했다. 그야말로 소수 마니아들이었다.
2010년대 중반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나이키의 인기는 심상치 않게 높아졌다. 에어이지, 갤럭시 폼포짓, 프라그먼트 조던1, 조던6 카마인, 조던2 Don C 등이 연달아 출시됐다. 이 무렵 아디다스로 적을 옮긴 카니예 웨스트가 선보인 이지부스트 350까지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마니아를 넘어, 일반인에게도 스니커즈가 관심사에 오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미 스니커즈를 충분히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정보와 구매 방법에 통달한 기존 마니아들이 ‘리셀’을 부업으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는 환경이 형성됐다. 다만 이때까지 시장 분위기는 단순한 주식 시장과 비슷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더 많은 고객에게 브랜드를 각인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신발 브랜드들이 도입한 ‘스니커 추첨 제도’는 리셀러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등학생도 직장인도, 주부도 연예인도 모두 발매되는 신발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추첨에 참여했으며, ‘구매할 수 있는 권리’에 당첨되면 기뻐했던 것이다. 구매 이후에는 웃돈을 얹어 되판 뒤 치킨값을 벌었다. 그야말로 ‘대리셀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여기까지가 2019년까지의 이야기다.
판을 바꾼 건 발렌시아가였다. 발렌시아가는 2019년, 기존 신발의 상식을 깨는 신발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무겁고, 커다랗고, 투박했다. 사람들의 호불호는 갈렸다.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의 과감함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괴랄한 디자인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조롱과 찬사가 엇갈렸지만 발렌시아가 신발의 리셀가는 고공 행진을 했다. 수많은 브랜드는 발렌시아가를 따라 ‘어글리 슈즈’ 트렌드를 이어갔다. 나이키나 아디다스가 아닌, 명품 브랜드가 스니커 신을 주도한 첫 장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발렌시아가의 스니커즈는 그 순간부터 돈만 많은 부자가 돈 자랑을 하기 위해 사 신는 신발이 아닌, 힙하게 시장을 선도하는 신발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이때부터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은 고민에 빠졌다. 과연 어떤 새로운 디자인에 어떤 파격적인 기술을 더해야 비대해진 스니커즈 시장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명품 브랜드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스니커즈를 연달아 공개했고, 일부는 사랑받았으나 일부는 처절하게 외면당하며 브랜드 스니커즈 흥망의 역사를 써가고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스포츠 스니커즈 브랜드 시장도 빠르게 변했다. 나이키는 오프화이트의 디자이너였던 버질 아블로와 역사에 남을 만한 신발 10켤레를 발매했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 신발을 딛고, 버질 아블로는 루이 비통의 디자이너로 발탁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명품’과 ‘스니커즈’의 경계가 빠른 속도로 허물어졌다고 본다. 명품 브랜드들에 지금까지 높게 쌓아두었던 벽을 허물고 나이키, 슈프림, 팔라스와 같은 스니커즈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리셀가는 치솟았고, 사람들은 한정판 스니커즈를 마치 미술품처럼 재산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버질 아블로의 유작 프로젝트가 된 루이 비통과 나이키의 컬래버 제품 에어포스원은 세계적인 경매 회사 소더비를 통해 경매로 판매되며 신발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규모가 큰 건물을 매입하거나 거액의 주식 등을 거래할 때 많은 지주를 모아 ‘조각투자’를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루이 비통과 나이키가 협업한 에어포스원은 현재 시가가 2억원에 달한다. 이를 활용해 사용자들에게 스니커즈에 대한 조각투자를 판매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스니커즈를 일종의 ‘파생상품’으로 본 셈이다. 건물이나 예술품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스니커즈에도 조각투자를 권유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였다. 한정판 신발이 곧 돈이고 재산인 시대인 것이다. 한정판 마케팅이 계속되고, 정보가 빠른 리셀러들이 그것을 전부 구매해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시장의 흐름이 됐다.
브랜드들은 리셀 마켓의 가격을 보고 해당 컬래버나 제품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리셀가를 올리기 위한 프로젝트는 지속된다. 하이엔드 제품이나 컬래버 제품을 발매하며 수량을 조절하고, 이를 통해 리셀가와 브랜드 가치를 동시에 높이는 방식이다. 쏟아지는 리셀가와 한정판 소식에 노출되다 보면, 마니아가 아닌 소비자도 어느덧 그 브랜드의 신봉자가 된다. 꼭 리셀가가 굉장히 높은 조던1 시카고 컬러가 아닌, 매장에서 판매하는 평범한 조던1도 비슷하게 멋있어 보이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낙수효과의 일종으로, 해당 브랜드의 일반 모델에 적용되며 매출을 견인한다. 브랜드들이 한정판 마케팅을 놓을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그 뒤편에는 자신의 매출을 확보하기 위한 리셀러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다. 그 노력에는 제품 발매 정보를 공유하는 ‘유료’ 커뮤니티와 자동으로 빠르게 결제를 해주는 ‘결제 봇’도 포함된다. 유료 커뮤니티야 그렇다 쳐도, 이 ‘결제 봇’의 존재는 여러모로 악영향이다. 결제 봇은 특정 사이트에서 사람의 손보다 빠르게 여러 아이템을 담을 수 있도록 제작된 것으로, 봇이 개입할 경우 사람의 속도로는 한정판 신발을 도저히 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봇이 무한으로 생성돼 모두가 봇을 이용한다면 성공률이 낮아질 테니, 봇을 만드는 제작사는 봇의 수량을 통제한다. 이 때문에 리셀러들은 자기들끼리 웃돈을 주고 성공률이 높은 봇을 구입하기도 한다. 리셀을 위해 만들어진 봇마저 ‘리셀’하는 것이다. 그 옛날 포장마차 자리세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소비자는 봇에게 밀려 구매에 실패하고, 한정판 신발은 리셀로 구매할 수밖에 없게 된다. 브랜드는 이런 봇의 활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쉽게 사라지지는 않고 있다. 평범한 소비자가 나이키나 뉴발란스 같은 브랜드가 멋지다고 생각하며 매장에서 한정판이 아닌 제품을 구매할 때, 이 시장의 뒷단에서는 이런 일들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동화가 단순히 발을 보호해주던 시기는 끝났다. 이제 신발은 ‘내가 신을 신발’과 ‘투자 목적의 신발’ 두 가지로 갈린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읽은 보통의 소비자라면 리셀 시장과 신발에 대한 투자에 약간의 관심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신발은 어쨌든 신발이라는 것이다. 내가 직접 신기 위한 구매라면 본인의 능력껏 리셀이든 당첨이든, 구매를 말릴 마음은 없다. 하지만 단순 투자 목적이라면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다. 와디 때문에 돈을 잃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가치가 고공 행진 중이지만, 앞으로 이 업계가 어떻게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끝없는 한정판 마케팅과 치솟는 리셀가, 그리고 그 뒷단에서 가격 조정을 위해 돌아가고 있는 결제 봇까지, 과도한 것들의 결합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일 테니까.
 
와디는 스니커즈 전문 유튜버로 본명은 고영대이다. 유튜브 채널 〈와디의 신발장〉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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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와디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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