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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DRAPER
2013년 앤디 머리(영국)와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의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이 열린 센터코트. 가득 찬 관중석 어딘가에 열한 살 소년 한 명이 머리의 우승을 간절히 바라며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조코비치의 백핸드 다운더라인이 네트에 걸리자 무려 77년 만에 영국 남자 선수로 윔블던 정상에 오른 머리는 얼굴을 감싸며 감격해했고 열한 살 소년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10년이 흐른 지금, 이 소년은 세계 48위(5월 1일 기준)에 오르는 등 ‘넥스트 머리’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잭 드레이퍼(21세) 다. 최근 ATP 무대에서 기량이 뛰어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즐비하지만 특히 드레이퍼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키 193cm, 몸무게 85kg의 탄탄한 체격을 갖춘 드레이퍼는 2021년 ATP투어 500시리즈 퀸즈클럽 챔피언십에서 와일드카드로 출전해 자신보다 세계 랭킹이 한참 높은 당시 23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 39위 알렉산레르 부블리크(카자흐스탄)를 차례로 꺾고 처음으로 투어 8강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당시 드레이퍼의 세계 랭킹은 겨우 309위에 불과했다. 지난해는 드레이퍼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이스트본 대회에서 처음으로 투어 4강에 올랐고 US오픈에서 당시 세계 8위 펠릭스 오제알리아심(캐나다)의 등을 돌려세우더니, 자신의 그랜드슬램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11월에 열린 21세 이하 신예 최강자전 ATP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는 4강에 진출하며 세계 테니스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올 시즌에도 그의 상승세는 이어졌는데 제2차 애들레이드 대회에서 4강에 올라 자신의 최고 기록인 세계 38위에 랭크됐다. BNP 파리바 오픈 32강에서는 자신의 영웅 머리를 두 세트 만에 물리쳤다. 드레이퍼는 한때 빅4로 불린 자신의 우상 머리와 닮은꼴이 많다. 두 선수 모두 위력적인 서브와 포핸드를 구사하고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머리의 백핸드만큼이나 드레이퍼의 백핸드 역시 상대에게 위협적인 무기다. 하지만 코트에서의 움직임은 머리보다 드레이퍼가 더 뛰어나다는 평가다. 머리 역시 “드레이퍼는 매우 훌륭한 선수다. 함께 훈련할 때마다 그의 뛰어난 재능에 감탄할 때가 많다. 머지않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될 것이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드레이퍼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3주간의 간격을 두고 열리는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의 코트 성격은 극과 극이다. 프랑스 오픈의 앙투카 코트는 공의 속도가 느리고 바운드가 높아 랠리가 길게 이어져 강철 체력을 요구한다. 이와는 반대로 윔블던의 잔디 코트는 공의 속도가 빠르고 바운드가 낮아 서브 앤 발리 등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가 강세를 보인다. 이처럼 정반대의 코트 표면 때문에 테니스 역사상 두 대회를 연속 우승한 남자 선수는 5명에 불과하다. 즉 테니스 전략 및 전술, 기술적인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갖추지 않으면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에서 동시에 좋은 성적을 거두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드레이퍼는 강력한 서브를 기반으로 하는 짧은 랠리 공격은 물론 긴 랠리 대결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어린 나이임에도 경기 운영 능력이 노련하다. 현재 드레이퍼는 다리 부상으로 대회에 나서지 못하고 있지만 프랑스 오픈을 통해 복귀할 예정이다. 올해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은 드레이퍼에게 세계 톱 선수로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 박준용(테니스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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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SHELTON
올여름 돌풍을 일으킬 선수로 벤 셸턴을 꼽는 건 어쩌면 너무 뻔한 정답일 수 있다. 잠깐 테니스의 서브에 대해 생각해보자. 오른쪽을 듀스 코트, 왼쪽을 보통 애드 코트라 한다. 자 그럼 왼손잡이 나달이 왼쪽 코트인 애드 코트에서 슬라이스로 와이드 서브를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상대편에 서 있는 선수는 공이 바닥에 튀기자마자 낮게 깔린 채 자신의 왼쪽으로 급격하게 휘어 코트 밖으로 빠져나가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즉 오른손잡이 리시버는 급격하게 휘어 나가는 공을 백핸드로 받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오른손잡이끼리 시합을 할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오른손잡이가 듀스 코트에서 넣는 슬라이스 역시 위협적으로 바깥으로 빠져나가기는 하지만, 상대의 포핸드에 걸린다. 애드 코트에서 넣는 슬라이스 서브는 왼손잡이의 강력한 무기다. 그런데 왼손잡이인 벤 셸턴은 당연한 옵션인 슬라이스 서브는 물론 왼손을 쓰는 전 세계의 테니스 선수 중 가장 빠른 플랫 서브까지 가지고 있다. 인디애나 웰스에서 기록한 플랫 서브의 최고 구속은 자그마치 147마일이다. 티존에 꽂아 넣으면 반응할 수 없다. 벤 셸턴을 완성시키는 건 듀스 코트에서 넣는 ‘톱 스핀 서브’다. 인디애나 웰스에서 벤 셸턴이 테일러 프리츠를 상대로 구사한 톱 스핀 서브는 속도는 느리지만 붕 하고 날아와 지면을 박차고 타격 지점에서는 210cm까지 튀어 올랐다. 프리츠는 포핸드를 간신히 뻗어봤지만, 라켓 끝에 공이 걸렸을 뿐이다. 벤 셸턴의 이름을 알린 건 가장 먼저 열리는 그랜드슬램인 호주 오픈 때였다. 국제 대회에 처음 나왔다는 선수가 단번에 8강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전까지 아예 공식적으론 국외에서 대회를 치러본 적이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만 참가해 ATP 100위까지 올랐으며, 첫 해외 무대인 호주 오픈에서 8강에 올라 100위 안에 안착했다. 현재 랭킹은 본인의 최고 랭킹인 35위. 이제 스무 살인 신출내기가 돌풍을 일으키며 유럽의 클레이코트 시즌을 뚫고 롤랑가로스와 윔블던에 도전한다. 알카로스와 얀니크 신네르의 신인 시절을 보는 것처럼 지켜보는 마음마저 설렌다. 아직 그와 맞붙어본 선수가 많지 않아 장단점이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이번 시즌까지는 엄청난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에게는 서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한 그라운드 스트로크는 물론이고 저돌적인 네트플레이도 수준급이다. 호주 오픈에서 J.J 울프를 상대로 보여준 앵글 샷이 작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 장면은 오래전 라파엘 나달이 컨디션이 좋을 때 보여주던 그런 샷을 떠올리게 했다.
- 임규태(tvN 테니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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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ASTIAN KORDA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2023년 새해 벽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스포츠 금수저의 돌풍을 지금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서배스천 코다. 갓 스물두 살을 넘은 떠오르는 유망주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뉴페이스는 아니다. 이미 충분히 유명세를 탔다. 아버지가 1990년대 피트 샘프러스, 앤드리 애거시와 정상을 다투던 테니스 레전드 페트르 코다인 데다, 두 명의 누나 역시 스포츠계에서 이미 유명 인사이기 때문이다. 제시카와 넬리 코다 두 누나 중 특히 작은누나인 넬리는 도쿄올림픽 골프 종목에서 우리나라의 고진영과 박인비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어 국내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다. 서배스천 코다는 이미 1월 호주 오픈에서 잠재력을 충분히 드러냈다. 당시 남자 단식 32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다닐 메드베데프를 꺾었다. 그것도 3-0. 완벽한 셧아웃이었다. 단 한 번의 이변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코다는 16강을 넘어 8강까지 안착했는데 워낙 코다의 테니스가 완벽해,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를 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거의 유일한 선수라는 평론가들의 기대와 찬사까지 받았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 8강전에서 불의의 손목 부상을 당해 그 이상 진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 뒤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5월을 넘어섰다. 코다는 손목 부상으로 그 금쪽같은 시간을 재활과 회복에 집중했다.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마드리드 오픈에서 보기 좋게 첫판 탈락. 하지만 부상 후유증은 더 이상 없었고 남은 건 이제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로 올라서는 일뿐이다. 만약 코다가 손목 부상만 없었다면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독차지한 ‘최고의 젊은 스타’라는 찬사는 두 갈래로 갈렸을 것이다. 코다는 196cm의 큰 키를 갖고 있는, 현대 테니스의 이상적인 챔피언 상이다. 키가 커 높은 타점의 빠른 광속 서브를 터트릴 뿐 아니라, 요즘 장신 선수들이 흔히 보여주듯, 긴 다리를 이용해 정말 코트 위에서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뛴다. 테니스 테크닉적으로 보자면 서배스천 코다는 노바크 조코비치, 다닐 메드베데프에 비견될 만한 훌륭한 투핸드 백핸드의 장인이다. 호주 오픈에서 메드베데프를 꺾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백핸드였다. 백핸드 대결에서 코다는 바로 그 메드베데프에게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압도한 바 있다. 코다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코트 표면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아홉 살에 이미 클레이코트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 오픈 16강에 올라, 끝판왕 라파엘 나달과 한판 승부를 벌였다. 이듬해 코다는 잔디 코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16강에서 러시아의 장신 스트라이커 카렌 하차노프와 5세트, 4시간 넘는 피 말리는 접전을 끝내 이겨내지 못했지만 클레이와 잔디에서 두루 통할 수 있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임을 입증했다. 과거의 데이터와 올해 호주 오픈에서 사고를 친 이력을 따져볼 때, 서배스천 코다야말로 의심의 여지없이 올여름 남자 테니스계를 뒤흔들 요주의 인물이다. 손목 부상에서 갓 회복했으니 프랑스 오픈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절한 실전 경험이 쌓일 7월 윔블던에서, 테니스 금수저 가문의 막내아들 코다는 폭발할 것이다.
- 김기범(테니스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