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빙수 분야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들의 중심이 호텔 쪽으로 옮겨온 것 같아요.” 자타 공인 빙수 애호가인 푸드 콘텐츠 디렉터 김혜준도 빙수 문화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소규모 빙수 전문점 몇몇이 작은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최근 호텔에서 선보이는 빙수들을 보면 정말 칼을 갈고 나왔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가격대를 완전히 높여서 프리미엄 과일을 아낌없이 쓰고, 유명한 파티시에를 초빙하고, 제과적 관점에서 좀 더 발전된 구성의 빙수를 개발하기도 하는 거죠.” 그의 설명은 최근 언론에서 그 가격만을 지적하기 바쁜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제주애플망고 가든 빙수에 가 닿았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실제로 최근 유명 파티시에를 영입했고, 그는 과일 원물의 신선도가 잘 보여야 한다는 디자인적 편견을 깨고 서양 디저트 미학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망고 빙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혜준 디렉터가 보기에 이런 시도가 가능해진 가장 큰 요인은 ‘문화의 정착’이다. 호텔에 편하게 주차를 하고, 여기저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식사 한 끼 한다는 느낌으로 좋은 빙수를 하나 먹고 나오는 게 짧은 휴식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는 뜻이다. 그 흐름에 ‘비쌀수록 잘 팔리는’ 럭셔리 마케팅 전략이 편승한 것 같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존재하지만, 김혜준 디렉터는 그래도 의미 있는 시도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개인적으로는 진화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측면에서는요.”
호텔들이 온갖 과일로 다양한 시도를 벌이는 동안, 망고빙수는 호텔의 울타리를 넘어 넓은 범주로 퍼졌다. 10년째 해마다 신라호텔 망고빙수를 먹고 있다는 김혜준 디렉터 역시 호텔 밖의 망고빙수 맛집 몇 곳을 열거할 정도였다. “망고는 산미와 단맛이 명확한 과일이잖아요. 빙수에 토핑으로 올리면 맛의 균형이 좋죠. 수분감도 좋고, 연유나 시판 퓌레처럼 가공된 단맛을 더했을 때의 인위적인 느낌도 없이 잘 어우러지고요.” 망고빙수가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하나의 클래식 빙수로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강남구 신사동의 쇼토도 김혜준 디렉터가 추천한 곳 중 하나다. 쇼트 케이크 베이커리인 쇼토는 여름 한정 메뉴로 망고빙수를 내는데, 그 맛은 으레 ‘신라호텔 스타일’이라고 회자된다. 그도 그럴 게, 쇼토는 신라호텔 디저트&페이스트리 파트에서 13년 동안 일한 이창기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사실 망고빙수 리뷰에 가장 많이 달리는 건 망고의 당도와 신선도에 대한 얘기예요. 그런데 저는 그런 평을 보면 좀 아쉬운 부분이 있죠. 물론 저희가 추구하는 것도 화려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빙수이고 제주 농원과 직접 계약해 최고 품질의 애플망고를 쓰고 있긴 하지만, 최우선으로 고려한 건 맛의 조화거든요. 그런 부분을 알아봐주시면 제일 반가운 것 같아요.” 이창기 파티시에는 망고빙수를 가져다줄 때에도 짧은 조언을 곁들였다. 처음에는 그냥 망고만 먹어보고, 그 후에 망고와 얼음을 함께 먹어볼 것. 이후에 망고퓌레를 조금씩 곁들여 먹어볼 것. 망고와 얼음, 팥까지 함께 비벼서도 먹어볼 것. 특히 그가 생각하는 쇼토 망고빙수의 ‘킥’은 망고 위에 뿌린 라임 제스트다. “라임 향이 풍미를 한층 높여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때마다 ‘우리가 포인트를 잘 잡았구나’ 싶어 뿌듯하죠.”
해외에서 생각하는 한국 빙수의 이미지는 구글 검색창에 ‘Bingsoo’를 입력해보면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온갖 색상과 모양의 디저트가 검색창을 채운다. 지난 10년간 해외로 진출한 빙수 프랜차이즈의 전략이 끼친 영향일 테다. 주목할 부분은 ‘Bingsoo’에 비길 바는 아니어도 ‘빙수’의 검색 결과도 생각보다 꽤나 현란하다는 점이다. ‘캔모아 딸기빙수’ 정도가 특이한 빙수로 회자되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국내 빙수 신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굉장히 많은 시도와 인식 변화가 있어온 것이다. 부빙은 다양성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늘 첫머리에 거론되는 빙수 가게다. 55가지 빙수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을 출간하고도 사실 개인적으론 팥빙수만 즐겨 찾는다는 김보선 푸드 스타일리스트 역시 서울의 빙수 맛집 중 하나로 부빙을 꼽을 정도였다. “거기는 정말 뭘 시키든 다 맛있거든요.” 비결은, 단순히 얼음 위에 얹는 재료만 바꿔 메뉴로 내지 않는 것이다. 질 좋은 식재료를 택해 고유의 맛을 빙수로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다음, 곁들이는 소스와 고명 하나까지 다 직접 만든다. “동생과 둘이서 계속 연구를 하죠. 이 재료에는 이렇게 간 얼음이 어울리겠다, 이건 우유를 넣지 않고 그냥 물얼음만 쓰는 게 맛있겠다, 첫맛부터 끝맛까지 다 맛있으려면 맛이 좀 더 진해야 할 것 같다, 상큼한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저희가 영업을 오래 못 해요. 재료 만들고 새로운 메뉴 개발하고 하면 오후 7시에 가게를 닫아도 결국 밤 12시에 집에 가거든요.” 김소연 대표의 설명이다.

부빙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 초당옥수수빙수. 부빙은 팥빙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를 고정 메뉴로 두고, 나머지 메뉴는 국산 제철 재료를 기반으로 개발한 온갖 창의력 가득한 빙수로 계속 바꾸고 있다.
부빙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팥빙수도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다. 팥빙수의 맛과 창작 빙수의 맛이 두루 호평을 받는 가게는 흔치 않다. 둘 중 하나만 잘하려고 해도 투입되는 노동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저희는 전라도 완주에서 계약 재배한 팥을 쓰고 있어요. 쭉정이나 벌레 먹은 알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씻고 졸이는 작업을 하는데, 그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죠.” 사실 요즘은 팥을 직접 쑤는 빙수 전문점이 그리 흔치 않다. 수준급으로 팥을 쑤는 공급 업체들이 생겼기 때문에 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워졌을 뿐. 부빙에도 팥소를 납품받아 써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가 정말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자기네가 어디 어디 호텔에 팥소를 납품하고 있는 업체라고 하면서 말이다. 두 대표가 해당 제안들을 계속 물리치는 이유는 역시 ‘수준 차이’일까? 김아연 대표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고집이죠. 저희가 모든 걸 관여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리고 저희 가게는 매번 팥빙수만 드시러 오는 분도 있거든요. 그분들은 조금만 바뀌어도 정말 다 알기 때문에 계속 직접 할 수밖에 없어요.” 병과점 합의 신용일 대표도 팥에 대한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팥의 맛을 제대로 컨트롤할 역량이 없는 경우에는 전문적으로 팥소를 제조하는 업체의 것을 사용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뚜렷한 맛이 있고 작은 디테일 차이도 용납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면, 싫어도 팥을 직접 쑤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팥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팥 삶은 물을 빼는 과정이 있거든요. 보통은 한 번 정도만 빼는데, 저희는 그걸 10번 정도 우려요. 그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먹어보면 다르거든요. 직원 중에 누가 대충 우리거나 하면 영락없이 걸리죠.”

쇼토의 제주애플망고빙수. 제주의 농가와 직접 계약해 공수하는 생 애플망고를 사용하며, 망고퓌레, 국내산 팥소, 다과와 함께 구성해 각자 취향에 맞는 조합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다.

합의 팥빙수. 매장에서 직접 쑨 팥소와 떡, 좋은 얼음을 사용한 ‘기본’에 충실한 빙수로, 아래에 우유와 함께 유자 향이 자작하게 깔려 있어 ‘유자빙수’라고도 불린다.
오래도록 서울에서 팥빙수를 만들어온 합의 신용일 대표가 보기에도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빙수의 입지는 급등과 폭락과 온갖 새로운 유행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서울의 빙수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그런 게 있을까’ 하는 헛웃음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하지만 곧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자세를 고쳐 이런 견해를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그간 온갖 유행이 생기고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이제는 그냥 맛있으면 잘되는 것 같아요. 클래식하게 만들었든 망고를 올렸든 토마토가 들어갔든, 뭐가 어떻게 됐든 그냥 맛있게 만들면 받아들여지는 거죠.” 이 기사의 취재를 위해 사람들에게 받았던 온갖 빙수 추천을 돌이켜보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