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빙수 문화'는 어디쯤 와 있을까?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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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빙수 문화'는 어디쯤 와 있을까?

오성윤 BY 오성윤 2023.06.26
 
올해는 호텔 망고빙수의 가격이 처음으로 10만원을 넘어선 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마루의 제주애플망고 가든 빙수 12만6000원. ‘애망빙(애플망고빙수)’ 신화를 이끈 주역인 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의 제주애플망고빙수 역시 9만8000원으로 10만원에 근접했다. 작년은 국내 최대 빙수 프랜차이즈 브랜드 설빙이 국내 500호 지점을 돌파한 해고, 동시에 미국 진출을 확정한 해다. 그리고 재작년은 ‘눈꽃빙수’의 원조 밀탑이 현대백화점에서 철수한 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있었지만, 어쨌든 빙수 명가의 원조로 회자되던 이름의 쇠락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2010년대 중반에 있었던 빙수 프랜차이즈 붐은 업계를 재편해버렸고, 빙수라는 음식의 특성상 팬데믹 역시 소규모 빙수 전문점들에 내려진 직격탄이었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서울의 빙수 전문점 대다수가 자취를 감춘 데에는 일련의 흐름이 끼친 영향이 컸을 테다.
“지금은 빙수 분야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일들의 중심이 호텔 쪽으로 옮겨온 것 같아요.” 자타 공인 빙수 애호가인 푸드 콘텐츠 디렉터 김혜준도 빙수 문화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소규모 빙수 전문점 몇몇이 작은 시장을 유지하고 있는 와중에, 최근 호텔에서 선보이는 빙수들을 보면 정말 칼을 갈고 나왔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가격대를 완전히 높여서 프리미엄 과일을 아낌없이 쓰고, 유명한 파티시에를 초빙하고, 제과적 관점에서 좀 더 발전된 구성의 빙수를 개발하기도 하는 거죠.” 그의 설명은 최근 언론에서 그 가격만을 지적하기 바쁜 포시즌스 호텔 서울의 제주애플망고 가든 빙수에 가 닿았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실제로 최근 유명 파티시에를 영입했고, 그는 과일 원물의 신선도가 잘 보여야 한다는 디자인적 편견을 깨고 서양 디저트 미학의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망고 빙수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혜준 디렉터가 보기에 이런 시도가 가능해진 가장 큰 요인은 ‘문화의 정착’이다. 호텔에 편하게 주차를 하고, 여기저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식사 한 끼 한다는 느낌으로 좋은 빙수를 하나 먹고 나오는 게 짧은 휴식의 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는 뜻이다. 그 흐름에 ‘비쌀수록 잘 팔리는’ 럭셔리 마케팅 전략이 편승한 것 같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존재하지만, 김혜준 디렉터는 그래도 의미 있는 시도가 많다는 점에 주목했다. “개인적으로는 진화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선택지가 넓어졌다는 측면에서는요.”
호텔들이 온갖 과일로 다양한 시도를 벌이는 동안, 망고빙수는 호텔의 울타리를 넘어 넓은 범주로 퍼졌다. 10년째 해마다 신라호텔 망고빙수를 먹고 있다는 김혜준 디렉터 역시 호텔 밖의 망고빙수 맛집 몇 곳을 열거할 정도였다. “망고는 산미와 단맛이 명확한 과일이잖아요. 빙수에 토핑으로 올리면 맛의 균형이 좋죠. 수분감도 좋고, 연유나 시판 퓌레처럼 가공된 단맛을 더했을 때의 인위적인 느낌도 없이 잘 어우러지고요.” 망고빙수가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또 하나의 클래식 빙수로 자리 잡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강남구 신사동의 쇼토도 김혜준 디렉터가 추천한 곳 중 하나다. 쇼트 케이크 베이커리인 쇼토는 여름 한정 메뉴로 망고빙수를 내는데, 그 맛은 으레 ‘신라호텔 스타일’이라고 회자된다. 그도 그럴 게, 쇼토는 신라호텔 디저트&페이스트리 파트에서 13년 동안 일한 이창기 파티시에가 운영하는 가게이기 때문이다. “사실 망고빙수 리뷰에 가장 많이 달리는 건 망고의 당도와 신선도에 대한 얘기예요. 그런데 저는 그런 평을 보면 좀 아쉬운 부분이 있죠. 물론 저희가 추구하는 것도 화려하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빙수이고 제주 농원과 직접 계약해 최고 품질의 애플망고를 쓰고 있긴 하지만, 최우선으로 고려한 건 맛의 조화거든요. 그런 부분을 알아봐주시면 제일 반가운 것 같아요.” 이창기 파티시에는 망고빙수를 가져다줄 때에도 짧은 조언을 곁들였다. 처음에는 그냥 망고만 먹어보고, 그 후에 망고와 얼음을 함께 먹어볼 것. 이후에 망고퓌레를 조금씩 곁들여 먹어볼 것. 망고와 얼음, 팥까지 함께 비벼서도 먹어볼 것. 특히 그가 생각하는 쇼토 망고빙수의 ‘킥’은 망고 위에 뿌린 라임 제스트다. “라임 향이 풍미를 한층 높여주는 것 같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때마다 ‘우리가 포인트를 잘 잡았구나’ 싶어 뿌듯하죠.”
해외에서 생각하는 한국 빙수의 이미지는 구글 검색창에 ‘Bingsoo’를 입력해보면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온갖 색상과 모양의 디저트가 검색창을 채운다. 지난 10년간 해외로 진출한 빙수 프랜차이즈의 전략이 끼친 영향일 테다. 주목할 부분은 ‘Bingsoo’에 비길 바는 아니어도 ‘빙수’의 검색 결과도 생각보다 꽤나 현란하다는 점이다. ‘캔모아 딸기빙수’ 정도가 특이한 빙수로 회자되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국내 빙수 신에서도 지난 10여 년간 굉장히 많은 시도와 인식 변화가 있어온 것이다. 부빙은 다양성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늘 첫머리에 거론되는 빙수 가게다. 55가지 빙수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을 출간하고도 사실 개인적으론 팥빙수만 즐겨 찾는다는 김보선 푸드 스타일리스트 역시 서울의 빙수 맛집 중 하나로 부빙을 꼽을 정도였다. “거기는 정말 뭘 시키든 다 맛있거든요.” 비결은, 단순히 얼음 위에 얹는 재료만 바꿔 메뉴로 내지 않는 것이다. 질 좋은 식재료를 택해 고유의 맛을 빙수로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 다음, 곁들이는 소스와 고명 하나까지 다 직접 만든다. “동생과 둘이서 계속 연구를 하죠. 이 재료에는 이렇게 간 얼음이 어울리겠다, 이건 우유를 넣지 않고 그냥 물얼음만 쓰는 게 맛있겠다, 첫맛부터 끝맛까지 다 맛있으려면 맛이 좀 더 진해야 할 것 같다, 상큼한 부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저희가 영업을 오래 못 해요. 재료 만들고 새로운 메뉴 개발하고 하면 오후 7시에 가게를 닫아도 결국 밤 12시에 집에 가거든요.” 김소연 대표의 설명이다.
부빙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 초당옥수수빙수. 부빙은 팥빙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를 고정 메뉴로 두고, 나머지 메뉴는 국산 제철 재료를 기반으로 개발한 온갖 창의력 가득한 빙수로 계속 바꾸고 있다.

부빙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 초당옥수수빙수. 부빙은 팥빙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를 고정 메뉴로 두고, 나머지 메뉴는 국산 제철 재료를 기반으로 개발한 온갖 창의력 가득한 빙수로 계속 바꾸고 있다.

김소연, 김아연 두 자매가 운영하는 부빙은 김아연 대표가 일본에서 조리학 공부를 했다는 사실 때문에 으레 ‘일본식 빙수 전문점’이라 소개되곤 하지만, 정작 두 사람은 그런 분류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희가 일본식 빙수를 추구했다면 이렇게 팥빙수를 계속하지는 않았겠죠. 한국의 제철 식재료를 이렇게 연구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제가 일본에서 공부를 했으니 그게 출발점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저희가 팥빙수를 해보자고 한 결정적인 이유는 저희 엄마가 팥을 좋아해서거든요.” 김아연 대표는 부빙에서 더 중요한 키워드는 ‘제철 식재료를 쓰는’ ‘사계절 찾는 빙수가게’라고 설명한다. 부빙은 사계절 메뉴인 팥빙수, 딸기빙수, 카라멜빙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끊임없이 바꾼다. 두 곳의 지점에서 따로 내놓는 특별 메뉴도 있다. “빙수 전문점은 겨울을 버티는 게 정말 힘들어요. 뻔한 얘기겠지만 생각보다 격차가 정말 크거든요. 저희한테도 겨울이 매년 가장 큰 과제지만, 그래도 사정이 좀 나은 편이죠. 제철 빙수를 만드니까 겨울마다 밤빙수 같은 메뉴를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고, 팥을 직접 쑤니까 팥죽을 낼 수도 있고요.” 김소연 대표는 더디지만 조금씩 빙수업계에도 사계절 찾는 문화가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지난 몇 년간 냉면의 입지가 사계절 음식으로 확장되었듯이 말이다.
부빙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팥빙수도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다. 팥빙수의 맛과 창작 빙수의 맛이 두루 호평을 받는 가게는 흔치 않다. 둘 중 하나만 잘하려고 해도 투입되는 노동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저희는 전라도 완주에서 계약 재배한 팥을 쓰고 있어요. 쭉정이나 벌레 먹은 알을 하나하나 골라내고 씻고 졸이는 작업을 하는데, 그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죠.” 사실 요즘은 팥을 직접 쑤는 빙수 전문점이 그리 흔치 않다. 수준급으로 팥을 쑤는 공급 업체들이 생겼기 때문에 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려워졌을 뿐. 부빙에도 팥소를 납품받아 써볼 생각이 없냐는 제의가 정말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자기네가 어디 어디 호텔에 팥소를 납품하고 있는 업체라고 하면서 말이다. 두 대표가 해당 제안들을 계속 물리치는 이유는 역시 ‘수준 차이’일까? 김아연 대표는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답했다. “고집이죠. 저희가 모든 걸 관여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으니까. 그리고 저희 가게는 매번 팥빙수만 드시러 오는 분도 있거든요. 그분들은 조금만 바뀌어도 정말 다 알기 때문에 계속 직접 할 수밖에 없어요.” 병과점 합의 신용일 대표도 팥에 대한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팥의 맛을 제대로 컨트롤할 역량이 없는 경우에는 전문적으로 팥소를 제조하는 업체의 것을 사용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뚜렷한 맛이 있고 작은 디테일 차이도 용납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면, 싫어도 팥을 직접 쑤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팥의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팥 삶은 물을 빼는 과정이 있거든요. 보통은 한 번 정도만 빼는데, 저희는 그걸 10번 정도 우려요. 그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먹어보면 다르거든요. 직원 중에 누가 대충 우리거나 하면 영락없이 걸리죠.”
쇼토의 제주애플망고빙수. 제주의 농가와 직접 계약해 공수하는 생 애플망고를 사용하며, 망고퓌레, 국내산 팥소, 다과와 함께 구성해 각자 취향에 맞는 조합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다.

쇼토의 제주애플망고빙수. 제주의 농가와 직접 계약해 공수하는 생 애플망고를 사용하며, 망고퓌레, 국내산 팥소, 다과와 함께 구성해 각자 취향에 맞는 조합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다.

합은 서울의 팥빙수 맛집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가게다. 떡집의 팥빙수가 빙수 전문점들과 나란히 호명되는 것을 신기해 하는 시선도 있겠으나, 신용일 대표의 생각에는 딱히 별난 일은 아니다. 떡집은 팥을 직접 쑤는 곳이며, 빙수 위에 올릴 떡의 맛까지 직접 디자인할 수 있으니까. 합의 팥빙수는 그야말로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팥빙수’ 이미지의 표본처럼 생겼다. 곱게 간 얼음 위에 알알이 잘 살아 있는 빛깔 좋은 팥소, 보기만 해도 든든한 인절미까지. 하지만 그 생김새에서 대충 맛을 가늠하고 먹으면 첫 입부터 놀라게 된다. 아래에 우유와 함께 깔린 유자 향이 팥빙수 특유의 텁텁함을 날리고 입안에 길게 머물기 때문이다. 팥의 무거운 단맛과 우유의 고소한 맛 위에 또 하나의 레이어를 만들어준달까. 합의 팥빙수가 ‘유자빙수’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회자되는 이유다. “합이 인사동에 있었을 때 할머니 한 분이 팥빙수를 시켜 드시더니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자기 어릴 때는 엄마가 팥빙수에 유자 한 숟가락 얹어주셨다고. 유자를 뭐 어떻게 했다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듣고 보니 유자가 잘 어울릴 것 같았던 거죠. 그 할머니 제가 정말 꼭 한번 다시 뵙고 인사 드리고 싶은데 찾을 방법이 없네요.” 김혜준 디렉터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그는 최근에 맛본 재미있는 빙수들을 얘기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진주의 수복빵집 팥빙수 이야기를 꺼냈다. 지극히 옛날 방식으로 만든 빙수가 오히려 굉장히 새롭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계피 향이 나는 팥과 시럽이 섞인 맛에 갈아낸 생얼음을 씹는데, 이게 바로 옛날 팥빙수의 청량한 맛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제 생각엔 그게 오히려 새로운 방향의 발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할머니가 집에서 쑤었던 농밀한 팥소와 거친 얼음, 그런 느낌을 제대로 구현했을 때 또 새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거죠.”
합의 팥빙수. 매장에서 직접 쑨 팥소와 떡, 좋은 얼음을 사용한 ‘기본’에 충실한 빙수로, 아래에 우유와 함께 유자 향이 자작하게 깔려 있어 ‘유자빙수’라고도 불린다.

합의 팥빙수. 매장에서 직접 쑨 팥소와 떡, 좋은 얼음을 사용한 ‘기본’에 충실한 빙수로, 아래에 우유와 함께 유자 향이 자작하게 깔려 있어 ‘유자빙수’라고도 불린다.

합이 팥빙수를 내놓은 지는 올해로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 세월 동안 레시피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신용일 대표는 간단하게 답했다.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팥빙수의 조건을 하나하나 열거하는 동안, 합의 팥빙수가 계속 발전해왔다는 사실이 한 귀퉁이씩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합의 팥빙수에 올리는 인절미는 얼음에 닿아도 굳지 않도록 식품첨가제 일절 없이 특수 고안한 것이고, 모친에게 선물 받은 수동식 빙수기로 직접 갈아 만들던 빙수 얼음은 응집된 기술력으로 놀라운 식감을 만들어주는 일제 빙수 기계의 몫으로 넘겨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얼음을 바꾸기도 했다. 칵테일용 얼음을 전문으로 만드는 공장에 따로 발주를 넣어 받은 얼음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얼려낸 얼음을 어떻게 갈아 쓰는가 하는 빙질(氷質) 개념은 일본의 빙수 문화와 비교해 그간 국내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한 요인이기에, 의미가 큰 개선이다. “물론 훨씬 비싸죠. 그런데 사실 얼음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거든요. ‘팥빙수’잖아요. 팥이 중요하고, 얼음도 중요한 거예요. 그 두 가지에 진심이 아니라면 팥빙수라고 할 수 없죠.” 사람들이 가진 빙수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의 하나는, 일반 빙수는 물얼음을 쓰고 우유 빙수는 얼린 우유를 갈아서 쓴다는 것이다. 사실 팥빙수를 내는 많은 업소에서 실제로 우유 얼음을 갈아 쓰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히 오해라고 하기도 어렵다. 얼린 우유를 갈아서 쓸 때의 문제는 위생 관리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상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우유 빙수를 기반으로 한 프랜차이즈가 사용하는 빙수 기계는 보통 통얼음을 갈아내는 게 아니라 얼음 결정을 ‘만드는’ 기계다. 고유의 레시피가 담긴 액체를 넣으면 냉각 기술을 품은 기계가 순식간에 그걸 얼리고, 하단의 칼날이 흩날리는 얼음 결정으로 만들어 뿜어내는 것이다. 물론 합에서는 그런 기계를 쓰지 않는다. 박람회 같은 곳에서 흥미롭게 보긴 했지만, 결국 그가 하고 싶은 건 ‘클래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기계와 이 기계로 만든 빙수는 결정이 달라요. 당연히 식감도 다르겠죠. 그렇게 냉각한 빙수는 안 녹고 더 오래간다고도 하는데,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건 아닌 거예요.” 그는 물얼음으로 어떻게 우유 빙수 같은 맛을 낼 수가 있는지, 빙수 기계의 핸들을 어떻게 조정해서 그릇 속에 층마다 다른 빙질을 만들 수 있는지, 이후로도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았다.
오래도록 서울에서 팥빙수를 만들어온 합의 신용일 대표가 보기에도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빙수의 입지는 급등과 폭락과 온갖 새로운 유행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서울의 빙수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앞에서 ‘그런 게 있을까’ 하는 헛웃음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하지만 곧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자세를 고쳐 이런 견해를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그간 온갖 유행이 생기고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이제는 그냥 맛있으면 잘되는 것 같아요. 클래식하게 만들었든 망고를 올렸든 토마토가 들어갔든, 뭐가 어떻게 됐든 그냥 맛있게 만들면 받아들여지는 거죠.” 이 기사의 취재를 위해 사람들에게 받았던 온갖 빙수 추천을 돌이켜보니, 과연 맞는 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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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오성윤
    PHOTOGRAPHER 박현성
    FOOD STYLIST 김보선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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