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블리치드 트위드 트러커 재킷, 카키 니트 톱, 와이드 트라우저, 선 블리치드 아노락, 코튼 슬리브리스, 벨티드 트라우저, 헤드피스, 지용킴 x 알파 인더스트리 후디드 아우터, 슬리브리스 톱, 플리츠 트라우저 모두 지용킴.
김 지 용
도쿄 문화복장학원과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공부한 후 2021년 지용킴을 설립한 김지용은 햇빛, 바람, 눈, 비 등 자연이 남기는 흔적을 옷에 적용한 선 블리치 기법을 중심으로 패션의 새로운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탐구한다. 서울과 도쿄, 런던, 파리 등 여러 도시를 경험했다. 당신에게 각 도시는 어떤 의미인가?
도쿄엔 히라가나도 모른 채 겁도 없이 정착했다. 문화복장학원에서 미싱 사용법을 처음 배웠고 미하라 야스히로에서 일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 런던에선 오리지낼리티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콘셉트를 잡고 리서치를 하고 디자인을 견고히 하는 과정 말이다. 운 좋게도 석사 졸업 작품을 발표한 후 SSENSE나 미스터포터, GR8, 도버 스트리트 마켓 같은 유명 편집숍에 입점하며 상상했던 일을 이뤄냈다. 파리에선 1년 좀 넘게 르메르, 루이 비통에서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일했다. 대형 패션 하우스의 실무를 경험했고 버질 아블로 같은 상징적 인물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도 특별했다.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도시는 역시 서울이다. 브랜드를 운영하기에도 좋은 곳이고.
지용킴의 상징적인 선 블리치 기법에 대해 설명해달라.
선 블리치는 오직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탈색 기법이다. 빛이 바래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것에서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이러한 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원단은 오랜 시간 태양과 바람, 눈과 비 등 자연현상을 거치며 깊이 있는 색조와 풍화 효과를 낸다.
브랜드가 인정받고 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브랜드 리스트에 지용킴 이름이 적힌 걸 본 순간.
이번 2024 S/S 컬렉션과 〈JiyongKim Exhibition〉 전시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바가 있다면?
2024 S/S 컬렉션 역시 지용킴이 지켜나가고 있는 ‘가치 없는 것에서 찾은 새로운 미학'을 유지한다. 그 안에 데님과 니트를 활용한 새로운 워크웨어, 아이코닉한 원형 디테일 룩, 알파 인더스트리와의 협업 아이템 등을 담았다. 〈JiyongKim Exhibition〉에선 그동안 받은 영감들을 선보이고 관객과 소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선 블리치로 변모시킨 이수화학의 폐근무복, 고장 나고 버려진 탓에 햇볕에 변색된 오토바이 커버, 옷을 입힌 형태 그대로 장시간 노출되어 흔적이 남은 마네킹 등 설치 작업을 통해 가치를 잃었다고 여겨진 대상에서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찾고 컬렉션으로 발전시켰는지 면밀히 소개한다.
지용킴은 설명할 게 많은 브랜드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패턴 워크나 디테일, 인위적 방법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빛바랜 톤의 대조와 색상 레벨의 깊이가 있다. 런웨이 위 찰나의 순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긴 어렵다. 물론 쇼 형식의 장점도 있기에 언젠간 패션쇼도 해보고 싶지만.
전시장에서 양혜규 작가가 방문한 것을 우연히 봤다.
양혜규 작가님은 꾸준히 지용킴 브랜드를 눈여겨봐줬다. 나 역시 존경해온 아티스트이고. 전시를 기획한 김선정 예술감독과 함께 방문해 작업에 대한 많은 영감을 나눌 수 있었다. 선 블리치 기법을 과학자들과 함께 연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이 기억에 남는다.
지용킴은 빠르게 제작하고 소비되는 패스트패션과 정반대에 서 있다.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방식을 고수하며 대량생산도 하지 않는다. 디자인 철학과 브랜드 운영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런던 셀프리지 백화점과의 미팅에서 받은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은 성장하고 싶나요, 아니면 머무르고 싶나요?” 충격적인 말이었다. 우리는 되도록 빨리, 크게 성장해야 성공하는 거라고 배웠으니까. 하지만 유럽에는 아직도 머무르며 자신의 색깔을 보여주는 브랜드가 많더라. 머무를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급하게 성장하고 싶지도 않다. 지용킴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중이다.
2023년 내 인생에서 제일 바쁜 시기에 결혼을 했다.
W6 모터 컬렉션 네이키드 골드, W6 모터 컬렉션 네이키드 실버, W6 모터 컬렉션 네이키드 레드 & 실버 모두 우직조.
조 우 직
독창적인 디자인의 핸드메이드 아이웨어 브랜드 우직조.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에서 공부하고 월터 반 베이렌동크와 벨루티에서 경험을 쌓은 조우직은 넘치는 영감과 상상력을 아이웨어에 담는다. 본명을 브랜드 이름으로 정했다.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알파벳의 곡선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디자이너라면 본명을 브랜드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여권상 스펠링과는 다르지만 알아봐준 것처럼 알파벳의 시각적인 조화 때문에 정했다. 발음이 그리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틴 마르지엘라, 앤 드뮐미스터, 월터 반 베이렌동크, 크리스 반 아쉐, 뎀나 바잘리아 등… 앤트워프 출신 디자이너들을 생각해보라. 사람마다 우직조를 다르게 발음하는 것이 오히려 더 흥미롭다.
2019년 벨루티에 합류했다. 당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크리스 반 아쉐도 앤트워프 출신이다. 하이더 아커만도 마찬가지고.
당시 크리스 반 아쉐가 벨루티로 이동하는 시기였다. 디자인 팀을 새로 꾸려야 했고 LVMH 프라이즈에 있던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연락이 왔다. 후일담이지만 신기하게도 LVMH 프라이즈 심사에서 크리스 반 아쉐와 하이더 아커만 두 사람에게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 선배들이 내 작업을 알아봐준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벨루티에선 체계적인 팀워크가 필요했고 적응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나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팀원들과 소통하는 게 중요했다. 그때의 경험이 우직조를 이끄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월터 반 베이렌동크와 꼼 데 가르송에서는 일러스트, 그래픽 디자인, 스타일링 등 패션 디자인 외의 일도 했다.
앤트워프 3학년이 끝나자마자 월터 반 베이렌동크에서 일했다. ‘월터 반 베이렌동크×이케아’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월터의 모든 컬렉션에 들어가는 드로잉과 일러스트 작업을 진행했다. 코로나로 한국에 머물면서도 몇 개의 컬렉션을 진행했고. 앤트워프는 우리가 생각하는 패션 디자인 범주에 있는 카테고리를 포함해 공간, 그림, 조각, 음악 등 본인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가치를 둔다. 때문에 그 모든 일이 나에겐 그저 패션 디자이너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벨기에, 프랑스 각각의 삶은 어떻게 달랐나?
한국에서의 삶은 조금 더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노후의 삶도 상상할 수 있는 곳. 반면 벨기에에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오직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디자이너만을 위한 삶을 살아간 장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
졸업 작품을 위해 안경 브랜드 테오(THEO)에 스케치를 보냈다.
졸업 작품을 좀 더 전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옷, 신발, 액세서리 각각에 맞는 회사들의 도움을 받고자 제안서를 보냈고 마침내 협업이 성사됐다. 아이웨어는 테오, 옷의 메이킹과 원단 수급은 수트 서플라이, 신발은 일본 슈 메이커, 졸업 컬렉션 주제였던 ‘미스터 빈’을 위해 영국 필름 제작사에서도 도움을 줬다. 테오가 특별한 이유는 이례적으로 졸업 작품이 한정판으로 제작되어 판매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이웨어는 패션이란 큰 범주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웨어엔 분명 다른, 독립적인 영역이 존재하고 그 부분에 이끌렸다. 결정적으로는 테오와의 협업이 큰 역할을 했다.
아름다운 안경은 그 자체로도 뛰어나지만 얼굴 위에 얹어졌을 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HIS BOAT’ 모델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폴딩 방식이 인상적이다. 미학과 공학을 아우르는 것이 특히 어려운 작업일 것 같다.
디자인 구현을 위해 일본의 테크니션과 함께 많은 고민을 한다. 우직조는 기본적으로 클래식 안경의 가치를 유지한다는 디자인 철학을 고수하므로 형태와 부품, 공학적 설계의 전통성을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재미있는 디자인일수록 제약이 많다. ‘HIS BOAT’ 역시 디자인은 독특해 보이지만 서양의 접이식 돋보기 안경을 기초에 두고 진행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디자인 영감과 소재를 다양한 곳에서 찾는다.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하기 위한 처음과 끝이 궁금하다.
영화, 소설, 시, 문장, 음악, 페인팅 등 제한을 두지 않고 좋은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먼저 글로 자세하게 적어놓고 한참 뒤에 그 글을 비주얼로 옮겨본다. 추상적인 영감을 비주얼로 구현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디자인을 시작한다. 그 이후 메이킹 테크닉에 따라 순서대로 출시한다.
2024 S/S 파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인 보터(BOTTER) 협업 컬렉션도 인상 깊다.
보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셰미 보터와는 앤트워프 석사과정 동기다. 서로의 디자인을 좋아했고 신뢰가 있었다. 우직조의 첫 번째 컬렉션을 출시한 후 협업 요청이 왔는데 당시 몇 가지 이유로 고사했다가 이제야 함께하게 됐다.
디자인. 아직 생산 단계로 넘어가지 않은 디자인이 너무 많고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전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안경 브랜드로서 더 깊고 멀리 나아갈 생각인가? 여기에서 영역을 더 확장할 생각도 있나?
우직조는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다. 먼저 아이웨어 브랜드로서 가치를 확고히 한 후 자연스럽게 영역을 넓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이 되든 우직조의 디자인을 보여줄 자신이 있다.
더비 슈즈 페라가모, 블랙 사커 부츠 아크네 스튜디오.
김 준 태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석사과정을 졸업하는 동시에 준태 킴을 론칭했다. 전통 복식과 현대적 디자인을 결합한 젠더 플루이드 컬렉션을 선보이며 2023년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진출했다. 준태 킴은 젠더 플루이드 브랜드다. 과거 전통 공예 기법에 데님 워싱, 레이저 커팅, 패턴 커팅 테크닉을 병행하면서 히스토리컬한 동시에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디테일과 실루엣을 디자인한다. 이를테면 코르셋, 이브닝드레스, 더블렛 아머 같은 역사적 레퍼런스, 코스튬 의상들을 현대화하는 것. 동서양의 과거 요소들을 동시에 취하며 우리의 것들을 다른 인종, 다양한 성별에게 소개하고 또 그들의 것을 가져와 보여주고자 한다.
202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몇몇 영국의 유명 매체에서 커버 촬영용 커스텀 의상을 의뢰했고 이후 석사 졸업 작품을 발표함과 동시에 주목을 받으며 자연스레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브랜드를 시작하고 몇 시즌을 겪으면서 준태 킴 브랜드를 ‘디자이너 브랜드’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한 한계를 생각했다. 디자인, 생산, 세일즈, PR 등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전문가를 만났고 디자이너 브랜드 그 이상의 크리에이티브 그룹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다. 세상엔 똑똑한 사람이 너무나 많고, 그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끌면서 좋은 리더로 남을지를 생각하고 있다.
불과 2년여 만에 LVMH 프라이즈 세미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LVMH 프라이즈는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결국 평생 가지고 갈 이름표가 되었다. 브랜드를 꾸리다 보면 매 순간 ‘내가 가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다. 크리에이티브와 커머셜 사이에서 뭔가를 포기하거나 타협해야 하는 일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LVMH 프라이즈 노미네이션은 그 과정에서 브랜드 방향성의 이정표가 되어줬다. 많은 관계자에게 고유한 미학을 갖고 있다는 찬사를 받으며 내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이 더욱 견고해졌다.
전 세계 여러 편집숍에 입점했고 그 결과 준태 킴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인기를 실감하나?
불과 네 시즌 만에 다양한 마켓에 준태 킴을 소개하고 있다. 무척 행복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상업적인 성공만큼 브랜드의 가치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젠더 플루이드, 웨스턴, 코르셋, 펑크, 빈티지, 르네상스, 바로크…. 준태 킴 컬렉션을 관통하는 테마는 복합적이다. 많은 요소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것이 있나?
‘낭만’. 다양한 비주얼을 선보이지만 결국 우리가 옷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낭만이다.
지금의 준태 킴 그리고 김준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셀러브리티가 준태 킴을 입었다. 준태 킴을 입었으면 하는 셀러브리티가 또 있나?
최근엔 해리 스타일스. 그의 스타일리스트와 연락하며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보려고 기획 중이다.
서울과 런던을 오가며 컬렉션을 전개한다. 두 도시는 어떻게 다른가?
큰 변수가 없다면 서울에서 계속 브랜드를 진행하고 싶다. 런던은 좀 더 과감하고 공격적인 브랜딩을 하는 데 적합한 환경이고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반면 서울은 브랜드 운영이나 상업적인 면을 발전시키기 좋다. 준태 킴에게 런던은 이상적이고 서울은 현실적이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함께 공부한 한국 디자이너들이 동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같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꿈을 키운 사람들이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게 있다. 지금 제너레이션에게 경쟁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주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평일에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주말에는 조용히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가고 싶었던 레스토랑을 찾는다. 다음 주를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 등 정적인 시간이 꼭 필요하다.
차에 관심이 간다. 빈티지 카나 새로 나온 디자인을 찾아보기도 한다. 옷을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이 주된 일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면에 시야가 고정되는 경향이 있는데 패션 이외의 카테고리를 보다 보면 환기가 된다.
가을에 서울에서 첫 전시를 기획 중이다. 브랜드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소개되지 않았던 아카이브 피스들과 아트워크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더불어 준태 킴을 더 다양한 마켓에 소개하기 위해 해외 프레젠테이션과 인디펜던트 쇼룸도 계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