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아트 컬렉터의 수집법 | 에스콰이어코리아

월급쟁이 아트 컬렉터의 수집법

월말마다 통장에 꽂히는 숫자로 한 달의 짜증과 우울을 견뎌내는 슬픈 우리 직딩들. 그러나 평범한 직딩들 중에도 거실에 걸린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맥주로 피로를 날리는 컬렉터들이 있다. 벽에 걸어둔 아트로 일상의 가치를 전복하는 월급쟁이 아트 컬렉터 4인에게 어떤 작품을 어떻게 모으는지 물어봤다.

ESQUIRE BY ESQUIRE 2023.08.30
 
(위) 정희민, ‘Exhale 날숨’, 2022. (아래) 이안리, ‘Mirro’, 2020.

(위) 정희민, ‘Exhale 날숨’, 2022. (아래) 이안리, ‘Mirro’, 2020.

이소희 / 8년 차 마케터
 
코로나19 때문에 컬렉팅을 시작하게 되었다면서요?
원래 해외여행 다니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갈 수 없게 됐죠.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해서 ‘어디라도 가보자’는 식으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가기 시작했고, 컬렉팅이라는 취미로 이어졌어요.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원래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라면, 컬렉팅을 시작하기 막막했을 텐데요.
성격 덕일 수도 있는데, 갤러리스트 또는 작가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그림 너무 예뻐요”라면서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면 대부분 친절하게 작품 설명을 해주시거든요. 책으로 배우기보단 귀동냥을 한 셈이죠. 그러다가 사석에서 밥도 먹고 술도 한잔 기울이는 사이가 되어 요즘 뜨는 작가는 누군지, 어떤 갤러리가 트렌디한지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어요.
컬렉팅이 취미라고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 반응은 어때요?
“그게 가능해?” 또는 “금수저였구나?”라는 반응이 제일 많죠. 근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아까 제가 원래 해외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해외여행 한 번 갈 돈이면 작품을 구매할 수 있어요. 아니면 명품 가방을 사는 대신 작품을 사는 식이죠. 컬렉팅을 시작한 후로는 적금이나 기초 생활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유 자금을 작품 구매에 쓰고 있어요. 참고로 카드 할부로도 작품을 살 수 있답니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요?
친구들이 저보고 ‘망상충’이라고 할 정도로 평소 상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도 추상적인 작품에 더 눈이 가요. 구매를 하면 집에 걸어두고 매일같이 볼 텐데 금방 감흥이 떨어지면 곤란하잖아요. 볼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나만의 이야기를 덧붙일 수 있는 일종의 ‘열린 결말’ 같은 작품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컬렉팅을 본업으로 삼는 건 어때요?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작품 보는 것도 좋고 갤러리스트나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관계를 쌓아가는 것도 너무 즐겁거든요. 근데 주변에서 다들 말리더라고요. 막상 일이 되면 지금처럼 해맑게 컬렉팅을 즐길 수 없을 거라면서요. 무엇보다 연봉이 적어서 컬렉팅을 할 수 없을 거라는 말이 제일 와닿았어요. 컬렉팅을 할 수 없게 되면 직업을 바꾼 의미가 사라지니까요.〈span style="font-size: inherit;"〉
 
TIP ‘장고’하지 마세요
처음 작품을 구매할 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경험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나만의 완벽한 작품을 찾고 말겠어!’라며 고심하는 건 추천하지 않는다.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할 때 ‘홀드’라는 시스템이 있다. 쉽게 말하면 ‘찜’ 같은 개념이다. 언젠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어 홀드를 걸었다가 구매를 포기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지인이 해당 작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 배가 많이 아팠다. 그때 얻은 교훈이 바로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자’다. 어떤 일이든 시작하는 단계에선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으므로 처음부터 수천만 원짜리 작품을 사려는 게 아니라면, 일단 본인의 취향과 갤러리의 추천을 믿고 일련의 구매 과정을 겪어보는 걸 권한다. 특히 갤러리에 걸려 있을 때와 내 방 벽에 걸렸을 때 느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컬렉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김한샘, ‘순환’, 2021.

김한샘, ‘순환’, 2021.

이형관 / 10년 차 엔지니어
 
처음 구매한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김민희 작가님 작품이었어요. 2020년으로 기억해요. 저는 원래 영화 포스터에 관심을 두다가 판화를 알게 되고, 판화를 모으다가 원화까지 넘어오게 됐어요.
얼마였는지도 기억나세요?
70만원으로 기억해요. 15호(대략 긴 변 65cm, 짧은 변 53cm)짜리 작품이었어요. 처음 작품을 구매해서 집에 가지고 왔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누추한 내 방에 이런 귀한 작품이 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어요. 근데 자꾸 보다 보니 작품이 제 삶의 일부로 녹아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 그렇게 컬렉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컬렉터로서 어느 순간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혼자 맥주 한잔하면서 거실 벽에 걸린 작품들을 볼 때 기분이 좋아져요. 위안을 받는 거죠. 작품 하나하나도 전부 스토리가 있고 소중하지만, 여러 작품을 어떻게 배치해서 모아놓는지도 컬렉터에겐 중요한 작업이자 즐거움이거든요. 이미 거실 벽이 작품으로 빼곡해서 새로운 작품을 구매할 때마다 어디다 놓아야 할지 고민이 되죠. 물론 즐거운 고민이지만요.
어떤 기준으로 컬렉팅을 하고 있나요?
얼굴, 양면성, 젊은 시도라는 세 가지 기준이 있어요. 얼굴은 말 그대로 얼굴을 통해 작가나 제3의 인물을 드러낸 작품을 말해요. 예를 들면 김진희 작가의 ‘쌓여가는 공백’ 같은 작품이죠. 양면성은 ‘이면의 이면’을 뜻해요.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재미있어요. 젊은 시도는 신진 작가가 도전적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담아 선보이는 작품을 가리켜요. 그 방식이 거칠거나 미완성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시도 자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컬렉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모은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40대, 50대가 되더라도 컬렉팅은 꾸준히 할 생각이니까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죠. 그렇다고 갤러리나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건 아니고, 그냥 소소하게 커피 한잔하는 장소면 충분해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이형관이라는 사람은 이런 기준으로 작품을 모았구나’ 정도만 알아줘도 뿌듯할 것 같아요.
 
TIP 문턱은 높지 않아요 
미술이나 컬렉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갤러리는 낯설고 어색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갤러리에 그냥 들어가도 되는 거야?”라고 물어본 지인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갤러리에 들어가는 건 옷을 사러 옷가게에 들어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어떤 사람이고 그의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편하게 물어봐도 된다는 소리다. 가격을 물어보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꾸준히 갤러리에 방문하는 건 작품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갤러리 문턱을 넘는 데 성공했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작품에 다가가는 방법도 있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작가에게 DM을 보내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는 식으로 말이다. 때론 작업실에 초대받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으니 지레 겁먹지 말고 갤러리와 작가의 문을 자주 두드리길 바란다.
 

Ayako Rokkaku, ‘A girl and an animal’, 2007.

Ayako Rokkaku, ‘A girl and an animal’, 2007.

오선민 / 17년 차 직장인, 세 아이의 엄마
 
컬렉팅을 시작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신입 사원이던 2006년부터 시작했어요. 어릴 때부터 예쁜 그림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취미 삼아 한참을 이어가다가 2012년에 결혼을 하고 육아도 시작하며 컬렉팅을 쉬게 되었어요. 그러다 재작년부터 그림이 다시 눈에 들어와 컬렉팅을 재개하고 있어요.
함께 촬영한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아야코 로카쿠의 ‘A girl and an animal’이라는 작품이고요. 2007년, 도쿄의 한 갤러리에서 열린 그녀의 첫 개인전에서 구입했어요. 직접 일본까지 가서 산 거죠.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그녀가 무척 놀라고 고마워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작품은 제가 한동안 쉬었던 컬렉팅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줬어요. 2021년 인스타그램에 서울옥션의 광고가 떴는데, 이 작품을 소개하고 있더라고요. 아야코 로카쿠가 그사이 완전히 스타가 된 거예요. 그때부터 잊고 있던 컬렉팅에 다시 흥미가 생겼어요.
처음 컬렉팅을 시작했을 때와 17년이 지난 지금, 작품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제 마음에 드는 작품을 컬렉팅한다는 점은 변치 않아요. 그러나 취향은 달라졌죠. 어릴 때는 보기에 예쁜 게 좋았지만, 지금은 내 삶과 경험을 반추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좋아요. 그런 작품에서 치유의 힘을 느끼기도 하고요.
세 아이의 엄마라고 들었는데,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작품을 어떻게 보관했나요?
대부분 작은 작품을 샀어요. 아이들의 손이 닿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집에 걸 수 있는 작품은 무조건 액자에 넣었고요. 걸 수 없는 것들은 침대 옆 협탁에 세워뒀고, 옷장 위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기도 했어요. 결혼 전에 산 작품 일부는 친정집에도 있고요.
컬렉팅 과정 중 겪은 시행착오가 있나요?
재작년에 다시 컬렉팅을 시작하면서, 의욕만 앞서 잘 알아보지 않고 외국 작가의 작품을 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전시 이력에 비해 가격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더라고요. 재입문에 너무 비싼 수업료를 치른 거죠. 이제는 구입 전에 작가의 이력이나 소장처 등을 꼼꼼히 살피고 있어요.
 
TIP 숫자만 얘기하는 곳은 피하세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담겨 있는 주제나 문제의식이 아닌 향후 투자 가치에 대해서만 말하는 갤러리나 작가는 피하는 것이 좋다. 내실이 없는 갤러리이거나 작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의 가격은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다. 작가의 성장과는 별개로 시장이 흔들려 투자 대상이 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너무나 훌륭한 작가임에도 시대와 기회가 닿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제대로 평가받은 수많은 예술가를 떠올려보라. 이 때문에 예측 불가능한 미래 가치에 얽매이기보다는 내 취향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품을 투자 목적으로만 봐서는 오래도록 만족할 수 있는, 내 마음에 꽉 차는 좋은 작품을 구입하기 어렵다. ‘샀는데 가격이 안 오르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집에 걸 만한 그림을 하나 사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충분히 입문할 준비가 된 것이라 본다.
 

(좌) 권오상, ‘Buddha & Bird’, 2013-2022 (우) 정수정, ‘Tronie#4 Hawking’, 2021.

(좌) 권오상, ‘Buddha & Bird’, 2013-2022 (우) 정수정, ‘Tronie#4 Hawking’, 2021.

박시연 / 10년 차 기획자
 
컬렉팅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됐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빠지게 된 건가요?
지금 서른일곱인데, 제 또래에서 신발이나 토이를 사고 모으는 것이 한창 유행했어요. 저 역시 그런 취미가 있었고요. 원래 전시회라고 하면 미술관만 갔다가, 5년 전 우연한 기회로 갤러리를 찾게 됐어요. 작품에 붙은 가격표를 통해 ‘그림을 살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깨닫고, 흥미가 생겼죠.
초창기 컬렉팅 방식과 지금의 방식에 차이가 있나요?
처음에는 대중적인 판화 위주였는데, 점차 컬렉팅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미술품은 먹을 수도 없고, 입고 다닐 수도 없으니 정말 내 취향이 중요하거든요.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확실히 취향이 명확해졌어요. 지금은 대중적이지 않더라도 제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골라요.
컬렉팅이 취미라고 하면 ‘금수저’냐는 오해를 받곤 하죠.
직장인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취미 중 하나예요. 모든 작품이 비싼 게 아니기 때문이죠. 화랑미술제나 더프리뷰 성수 등에서는 100만원대, 혹은 그 아래 가격으로 좋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어요. 저렴하게 구입한 작품의 작가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컬렉팅의 재미 중 하나죠.
고가의 작품을 구입하기 전 무엇을 가장 고민하나요?
응원하던 작가가 시장이나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제가 구입한 작품의 작가가 성장하고 오래 활동하길 바라고요. 일종의 ‘덕질’이라 볼 수 있겠죠. 그렇기 때문에 구입 전에는 내가 혹시라도 나중에 좋아했던 마음을 후회하진 않을지, 작가와의 신의를 긴 시간 지킬 수 있을지를 가장 크게 고민해요.
작가와 만난 적이 있나요?
많죠. 작품을 구입하기 전에 웬만하면 작가를 만나려고 해요. 작품을 창조한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작품 소장에 큰 영향을 주니까요. 관심 가는 작가라면 전시 오프닝 날 반드시 방문해 인사를 나눠요.
컬렉팅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작년에만 150개의 전시를 봤고, 연차를 전부 그림 보는 데 쓰고 있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약속은 일요일에 잡게 됐어요. 일요일에는 갤러리가 문을 닫거든요.(웃음)
 
TIP 당신의 취향을 믿으세요 
개인적으로, 작품 컬렉팅 관련해서 유튜브는 참고하지 않는다. 갤러리와 아트 페어를 직접 다니며 발품을 팔고, ‘래리스 리스트(Larry’s List, 현대미술 컬렉터 리서치 기업)’나 옥션, 갤러리와 작가 페이지를 통해 공부하며 쌓아온 굳건한 내 취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감정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댓글을 보면 괜히 부정적인 생각이 들거나 ‘덕질’하는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어서 일부러 피하고 있다. 컬렉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 작품의 평판이나 미래 가치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가려 들으려 한다. 작품은 쉽게 팔 수도 없고 들고 다닐 수도 없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소비일지도 모른다. 결국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것이기에, 가장 중요한 건 오직 나의 취향뿐이다. 최대한 나의 판단과 결정을 믿어보려 한다. 어려운 선택을 하고 난 뒤 찾아오는 충만함은 그 어떤 소비를 통해 얻는 것보다 클 것이다.

 

Keyword

팝업 닫기

로그인

가입한 '개인 이메일 아이디' 혹은 가입 시 사용한
'카카오톡, 네이버 아이디'로 로그인이 가능합니다

'개인 이메일'로 로그인하기

OR

SNS 계정으로 허스트중앙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아니신가요? SIGN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