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TYPE (1963)
그중에서도 1963년 세상에 나온 재규어 E-타입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꼽힌다. 경주용으로 기획된 이 차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차체 폭을 줄이고 높이를 낮췄다. 직렬 엔진을 넣기 위해 보닛이 길어졌다. 이런 극단적인 디자인은 미적 요소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이 차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심미안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E-타입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한결같다. 직선 하나 없는 풍성한 곡선이 우아하고, 가만히 서 있어도 달리고 있는 것 같은 속도감이 느껴지는 옆모습에선 감탄이 나온다는 것. 자신의 자동차에 대한 긍지가 하늘을 찔렀던 엔초 페라리도 1960년대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E-타입을 꼽을 정도였다.
재규어는 경주용으로 18대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소비자들이 차를 내놓으라며 아우성쳤다. 그래서 1974년까지 7만 대 정도의 E-타입이 세상에 나왔다. 당시 가격이 애스턴마틴의 절반, 페라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소비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후 2015년 재규어는 못다 만든 6대의 경주차를 당시 기술 그대로 재현했다. 그런데 섀시 비틀림 강성이 2015년 F-타입 스포츠카의 6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뭐 상관 있으랴. 우리는 이 차를 경주차로 기억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차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진우(자동차 저널리스트)

MIURA (1966)
엔초 페라리에게 “트랙터나 만들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은 페루치오는 이를 갈았다. 어떻게든 페라리를 짓밟고 싶었고 그렇게 드림팀을 결성한다. 차체 디자인은 마르첼로 간디니에게 맡겼다. 훗날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되는 디자이너다. 섀시는 파올로 달라라가 맡았다. 그는 최상위 자동차경주 F1 경주용 차의 섀시를 만드는 엔지니어다.
그렇게 350마력을 내는 12기통 엔진을 운전자 뒤에 얹는 독특한 형태의 스포츠카가 탄생했다. 이 차는 1966년 당시 일반 자동차는 닿을 수 없었던 시속 280km에 도달했다. 하지만 최고 속도는 이 차의 진정한 가치가 아니었다. 그 어떤 속도에서든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이는 차체였다. 그렇게 이 차는 당시 라이벌인 페라리 275를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이 차가 세상에 처음 나오던 날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자신의 별자리 황소 로고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스페인 투우 혈통 미우라(Miura)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지금의 람보르기니 로고와 싸움소 작명은 미우라부터 시작됐다.
미우라를 맞이한 인류는 아연실색했다. 미끈하고 아름다운 자동차는 탄환만큼 빨랐고, 영원할 것 같던 페라리의 아성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차에 ‘슈퍼카’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였다. 이후 이 단어는 초고성능 자동차만 가질 수 있는 명예로운 훈장이 됐다. 이진우(자동차 저널리스트)

F1 (1993)
아울러 비스듬히 위로 들어 올려 여는 형태의 버터플라이 도어는 보기에도 아름답고 차에 타고 내리기에도 편리했다. 이는 성능뿐 아니라 실용성까지 염두에 둔 설계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운전석을 실내 한가운데 만들고는 굳이 그 양옆에 각 한 명이 더 탈 수 있도록 시트를 배치한 것도 그래서다. 이는 포뮬러 원 레이스카 설계를 담당했던 자동차 설계자 고든 머레이와 디자이너 피터 스티븐스가 협력한 결과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아이디어를 충실히 따르면서도 슈퍼카의 본질을 꿰뚫는 스타일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이 맥라렌 F1의 아름다움의 비결이었던 셈이다. 류청희(자동차 저널리스트)

STRATOS ZERO (1970)
“차가 잘 조각된 청동 조각품처럼 보이길 원했습니다.”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 전문 그룹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로 스트라토스를 디자인했던 마르첼로 간디니의 말이다. 지금 봐도 눈에 띄는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대상을 엿볼 필요가 있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우주 개발을 서두르면서 공기역학적 구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때다. 여기에 1969년, 암스트롱이 처음 달에 발을 디디며 우주에 대한 전 지구적 관심이 치솟았다. 콘셉트카의 이름을 성층권(스트라토스)으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주선을 떠올리게 하는 특유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덕에 차는 마이클 잭슨의 영화 〈Moonwalker〉에 등장하기도 했다.
스트라토스가 공개된 후 각진 쐐기형 자동차 디자인이 1970~1980년대를 휩쓸게 되는데, 1974년 출시된 람보르기니 쿤타치가 그 예다. 얼마 전 양산 소식을 밝힌 테슬라의 사이버트럭도 넓게 보면 각진 쐐기형 디자인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스트라토스에 적용됐던 가늘고 긴 수평형 헤드램프와 리어램프는 반세기가 지난 요즘 신차에 자주 쓰이는 디자인이다. 어쩌면 옆이 아니라 앞에 달린 문, 측면부를 50:50으로 가로지르는 날렵한 라인, 차체에 숨긴 사이드미러와 같은 요소들도 가까운 미래에 주류 자동차 디자인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남석(캐딜락 자동차 디자이너)

356 SPEEDSTER (1957)
역사 공부는 이 정도로 하고, 어째서 356이 아름다운 차인지 살펴보자. 1950년대 만들어진 모델이니 클래식한 감성이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부분은 뒷모습이다. 각진 부분 하나 없이 매끈한 엉덩이 라인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겠지만, 356이 요즘 차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뒷모습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엔진을 운전석 앞이 아니라 뒤에 놓는 ‘RR(Rear engine-Rear wheel)’ 구조 덕분이다. 뒷바퀴 축보다 더 뒤에 엔진을 놓으면 자동차의 앞뒤 무게배분 설계와 실내 공간 확보 면에서 유리하다.
스피드 마니아였던 제임스 딘이 타던 차로도 유명한 356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디자인을 조금 다듬었는데 그 모델이 바로 사진 속 ‘356 A 1600 스피드스터’다. 곧추서 있던 짧은 앞유리창을 둥글게 교체했고 버킷 시트를 장착해 차의 역동성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911의 조상이라는 헤리티지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 덕분에 356 모델을 복각하는 전문 업체까지 인기를 얻는 중이다. 박호준(〈에스콰이어〉 자동차 담당 에디터)

33 STRADALE (1967)
첫 번째는 버터플라이 도어다. 양쪽 도어를 열었을 때 그 모습이 나비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여러 슈퍼카 브랜드가 애용하는 디자인 중 하나다. 버터플라이 도어를 처음 양산차에 적용한 게 33 스트라달레다. 문을 열면 둥근 유리 지붕까지 같이 열린다. 이렇게 하면 운전자가 차에 타고 내릴 때 좀 더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는 전투기 조종석을 떠오르게 하는 넓은 개방감이다. 앞유리창을 감싸는 프레임을 최대한 얇게 만들어 사각지대를 줄였고 지붕까지 유리를 적용했다. 또한 33 스트라달레는 ‘미드십’ 차량이라 엔진이 운전석과 뒷바퀴 사이에 위치하는데 이 부분을 차체가 아닌 유리로 덮어 차체를 열어젖히지 않고도 엔진이 작동하는 걸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은 독특한 앞모습이다. 두툼하게 부푼 앞 펜더와 커다란 헤드램프, 과감하게 각도를 뚝 떨어뜨리는 낮은 노즈의 조화는 33 스트라달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여기에 알파로메오 엠블럼과 방패 모양 장식이 귀여움 한 스푼을 더한다. 김동범(KG 모빌리티 디자이너)

250 GTO (1961)
250 GTO의 옆모습을 보면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입이 닳도록 강조하는 비율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12기통짜리 커다란 엔진을 넣기 위해 운전석을 최대한 뒤로 배치하다 보니 차의 앞부분이 ‘이렇게 길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길다. 이때 어색해 보일 수 있는 디자인을 보완하는 장치가 앞바퀴와 뒷바퀴 위에 넘실거리는 볼륨 넘치는 펜더다. 앞 펜더가 우아하게 곡선을 그렸다면, 뒤 펜더는 길이가 짧은 대신 급격하게 구부러지며 뒷바퀴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모터스포츠에서 달성한 성과, 단 39대만 제작된 희소성, 흠잡을 곳 없는 디자인이 더해진 250 GTO는 2018년 소더비 경매에서 7000만 달러에 거래되며 자동차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기도 했다. 김동범(KG 모빌리티 디자이너)

AUSTIN SEVEN (1959)
그러나 미니에서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점은 단순함 속에서도 형태와 요소가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뤘다는 데 있다. 단순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차체는 한정된 크기 안에서 실내 공간을 키우기 위해 택한 단순한 형태와 잘 어우러졌고, 앞뒤 램프와 범퍼 등 차체 밖으로 드러나는 요소들은 최대한 차체 바깥쪽에 놓여 안정감을 더했다. 그리고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려 당시 차들에 흔히 쓰인 크롬 장식도 미니에서는 최소화했다. 덕분에 미니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조화와 균형에서 비롯되는 세련미를 갖출 수 있었다.
미니가 1960년대 영국 젊은 세대에게 환영받은 이유다. 미니의 스타일은 동시대뿐 아니라 과거의 어떤 차들과도 구분되는 특별함이 있었다. 억지스럽게 꾸미기보다 형태 자체로 차의 특징과 매력을 나타내는 모습이 심플하지만 멋스러웠던 당시의 패션 유행인 모즈 룩과도 맞아떨어졌다. 다시 말해, 미니는 간결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멋지게 증명한 차였다. 미니의 생명력이 오래 이어진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류청희(자동차 저널리스트)

TYPE 57 ATLANTIC COUPE (1936)
볼륨을 강조한 앞 펜더, 앞바퀴보다 뒷바퀴에 더 가까운 운전석, 위로 비스듬히 열리는 문 등 지금 기준에선 타입 57이 배트맨이 타고 다닐 것같이 화려해 보이겠지만, 1930년대의 다른 고급 승용차와 비교하면 오히려 담백한 디자인에 속한다. 장식을 더해 럭셔리를 달성하려 했던 경쟁 모델들과 달리 부가티는 형태와 기능의 조화를 추구했다. 예를 들면, 항공기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알루미늄 합금 차체와 공기역학을 염두에 둔 물방울 형태의 유선형 차체가 그렇다. 덕분에 직렬 8기통 엔진을 탑재한 타입 57은 당시로선 엄청난 속도인 시속 200km까지 가속할 수 있었다. 부가티가 이와 같이 아름다움과 기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가구 장인이었던 아버지와 조각가 형제들을 둔 창립자 ‘에토레 부가티’의 공이 크다고 본다. 이남석(캐딜락 자동차 디자이너)

CORVETTE C2 (1963)
같은 시기 판매되던 다른 차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스팅레이의 디자인이 얼마나 뛰어난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자동차를 예술 작품처럼 다루었던 이탈리아, 엔지니어링의 관점으로 접근한 독일과 달리 미국은 ‘거거익선’과 같은 디자인이 유행이었다. 뒷유리를 양쪽으로 나눈 ‘스플릿 윈도’와 라인이 또렷한 앞뒤 펜더 디자인이 이 차를 유럽산 쿠페와 확연히 구분되는 요소다. 운전자의 후방 시야가 나쁘다는 이유로 스플릿 윈도는 출시 1년 만에 일반적인 통유리로 교체됐는데 유니크한 디자인 때문에 현재는 스플릿 윈도가 적용된 스팅레이의 가격이 훨씬 높다. 비교적 크기가 작은(?) 엔진인 V8 엔진만으로 최고 360마력을 뿜어내며 경쟁 모델들을 압도하기도 했다. 박호준(〈에스콰이어〉 자동차 담당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