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소셜미디어만 쓸 수 있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 에스콰이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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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소셜미디어만 쓸 수 있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김현유 BY 김현유 2023.09.09
 
나도 스레드에 가입해볼까 고민했다. 나는 소셜미디어 중독자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에 적어도 다섯 시간은 될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이 발명되기 전에 페이스북에 가입한 고인물이다. 모두가 싸이월드를 하고 네이트온으로 채팅을 하던 2006년에 페이스북에 가입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였다. 외국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몰랐다. 소셜미디어라는 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줄은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기분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없는 세상이라는 건 여러분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소셜미디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100년 정도 지나면 역사책은 분명 두 시대를 단호하게 다른 챕터로 구분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스레드에 가입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트위터에 대한 어떤 향수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열성적인 트위터 이용자였다. 아이폰을 손에 넣자마자 가입한 트위터는 굉장한 놀이터였다. 페이스북처럼 뭔가를 고민한 뒤 글을 올릴 필요도 없었다. “배고파” 한 마디만 올려도 반응이 쏟아졌다. 우리 모두는 외롭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떻게든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외로움으로부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 예측한 몇몇 테크 천재들에 의해 탄생했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와 트위터 창립자 잭 도시도 외로운 천재들이었다. 우리는 외로우면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찾는다. 천재들은 외로우면 외로움으로 돈을 번다. 역시 돈 버는 사람들은 생각의 구조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나는 기껏해야 소셜미디어에 대한 글을 쓰면서 푼돈을 버는 반면… 아니다. 이런 자학은 페이스북에나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는 그만두자.
나는 트위터를 몇 년 전 그만뒀다. 탈출했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문제는 어뷰징이었다. 140자 제한 정책은 이용자들이 좀 더 자극적인 글을 쓰게 만들었다. 하나의 트윗으로 다수의 팔로워들에게 반응을 얻고 리트윗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는 일이었다. 아이덴티티를 공개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익명 게시판이라는 자유로움도 곧 이빨을 드러냈다. 무엇을 써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인간의 가장 거친 면모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2010년대 후반에 이르자 무수한 말과 조리돌림의 향연에 지쳐 트위터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2017년 트위터를 인수하려 했던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트위터 이용자들의 더러움이 상상 이상이어서” 인수를 포기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한때 트위터를 이끌던 셀러브리티와 기업들도 인스타그램으로의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신규 사용자 증가율과 수익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트위터는 2022년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미친 테크 천재인 일론 머스크가 인수했다. 그리고 트위터는 X가 됐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X를, 아니 트위터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140자 제한이라는 것은 트위터의 한계인 동시에 정체성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제한을 4000자로 확장했다. 암호화폐 송금 기능 등을 추가했다. 심지어 그는 챗봇, 간편결제, 데이팅 등의 기능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맙소사. 그렇다면 이건 대체 무엇인가. 나는 일론 머스크가 그냥 트위터를 파괴하고 싶어서 트위터를 인수했다고 확신한다. 이 골 때리는 세계 최고 부자는 그냥 트위터가 싫었던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트위터가 창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정치적 올바름’에 상당히 삐딱한 태도를 보여왔다. 그가 트위터를 인수하자마자 내린 가장 큰 결정은? 국회의사당 폭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정지당한 도널드 트럼프 계정을 복구시킨 것이다. 솔직히 일론 머스크는 별생각이 없을 것이다. 푼돈으로 인수했으니 뭐라도 해야 하니까 뭐라도 하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지금 트위터를 하는 사람들도 내심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가 트위터와 똑같은 스레드를 재빨리 론칭한 것은 꽤 영리한 전략이었다. 그는 2022년 11월 긴급하게 60여 명의 팀을 꾸려 오픈 소스를 이용해 뚝딱뚝딱 스레드를 만들고 외쳤다. “머스크에 지친 자들이여, 여기로 오라!”
스레드는 론칭 5일 만에 가입자 수 1억 명을 돌파했다. 트위터 가입자가 2억3000만 명 정도이니 빠르게 따라잡은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입을 보류하고 기다렸다. 트위터의 절반이 옮겨갔다면 결국 그것은 트위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랜 트위터 탈주자로서 다시 그 지옥에 뛰어드는 일 따위는 할 생각이 없었다.
재미있게도 스레드의 약점은 그게 아니었다. 스레드는 론칭 이후 유저당 사용 시간이 꾸준히 급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레드는 트위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레드는 트위터처럼 완벽한 무명으로 활동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가 아니다. 마음속 어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다. 온리팬스에서 활약하며 만든 홍보용 야동을 올릴 수도 없다(사실 지금 트위터는 현존하는 최강의 포르노그래피 플랫폼이나 마찬가지다). 마크 저커버그가 그런 걸 만들 리가 없지. 메타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거의 결벽증적으로 표현을 제한하는 플랫폼이다. 누군가가 ‘폭력적인 표현’을 이유로 신고하는 순간 당신의 계정은 정지된다. 스레드에는 트위터의 무한한 자유가 없다. 게다가 메타는 사용자의 데이터를 과도할 정도로 수집해 자사 알고리즘을 통한 광고 노출로 돈을 버는 것이 목표인 회사다. 트위터와 똑같이 운영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스레드 가입을 포기했다. 트위터와 같아서가 아니라 트위터와 다르기 때문에 포기했다. 새로운 지옥이 열리나 싶었더니 익숙한 연옥이었다.
스레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스레드는 트위터도 아니고 페이스북도 아니고 인스타그램도 아닌 무언가다. 그런 것은 누구에게도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최후까지 남는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뭐가 될 거냐고? 나는 미래 예측가가 아니다. 스레드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예측도 실현될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다만 이 질문을 나는 아주 개인적인 질문으로 바꿔서 되물어야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딱 하나의 소셜미디어만 쓸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페이스북은 나이 든 고인물들의 정치 대리전이 됐다. 젊은 사용자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나는 매일매일 등산복을 입고 꽃과 함께 사진을 찍은 중장년 남성들의 친구 신청을 거절하는 데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페이스북에서 벌어지는 늙은이들의 정치 싸움이 지긋지긋해질 때마다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기어 들어간다. 누구 말마따나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외로움이 없다. 안전하다. 안온하다.
사실 우리 모두는 지난 20여 년간 천천히 깨달았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을 통해 외로움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소셜미디어는 우리의 존재론적 외로움을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알고 보니 트친은 당신의 친구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페친도 당신의 친구가 아니었다. 다만, 인친은 어차피 처음부터 당신의 친구가 아니었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친들의 과장된 행복의 조각을 담은 사진들이 안겨주는 환상일 것이다. 그들이 포토샵으로 매만진 몸매로 공구를 호소하는 효소만 사지 않는다면, 환상 속의 친구들은 언제나 당신의 즐거운 친구일 것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낯선 사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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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WRITER 김도훈
    ILLUSTRATOR MYCDAYS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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