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로버트 나바, 슈퍼 배드로 슈퍼 스타가 되다
미국 화단의 떠오르는 슈퍼스타 로버트 나바의 그림은 정말 나쁘다. 나쁜 걸로 따지면, 적수가 없을 만큼 나쁜데, 그래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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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나바에 관한 한 미국 기자의 기사가 기억나요. 대략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예뻐지려고 필터도 쓰고 포토샵도 하는데 로버트 나바는 나쁜 것(bad)을 추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미(美) 그리고 추(醜)라는 개념은 아주 느리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개념이에요. 전 그렇다고 소셜미디어에서 사람들이 필터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건 아녜요. 물론 그것들은 그것이 묘사하는 현실과 정확히는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필터를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미추의 개념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변한다는 것이고, 전 지금 사람들이 나쁘다 혹은 추하다고 말하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당신의 작품을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개념은 ‘배드 페인팅’(bad painting)이죠. 그건 동시대가 합의한 아름다움의 정의에 의도적으로 반하는 회화 작품을 말해요.
굳이 편을 정해보자면, 전 전통적인 미의 관점에서 ‘잘못됐다’(wrong), 혹은 ‘추하다’(bad)라고 묘사되는 작품들 쪽에 서서 그것들을 지지합니다. 그 기준 자체가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가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을 보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무너져 있거나(broken down), 거칠게 다뤄진(mishandled) 요소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었거든요. 저는 그러한 작품들 안에 제가 좋아하는 일종의 ‘정직성’(honesty)이 있다고 봐요. 제가 느끼는 ‘정직성’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 같아요. 그건 가공되지 않은 날것(rawness)의 특성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비슷한 면에서 진실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또 그 진실함은 어떤 실수와 오차 같은 것을 허용하는 좀 더 인간적인 열려 있는(openness) 상태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네요.
‘배드 페인팅’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네요.
사실 그 용어는 1980년대에 ‘마샤 터커’가 처음 만들고 쓴 미술 용어예요. 어쩌면 하나의 미술 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큐레이터였던 마샤 터커는 당시에 자신이 생각하는 나쁜 그림들을 모아 뉴욕 맨해튼에 있는 ‘뉴 뮤지엄’에서 <“Bad” Painting>이라는 전시회를 열었죠. 이때 그녀가 생각한 개념의 ‘배드 페인팅’이 지금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젊은 세대 화가들의 흐름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인 것 같아요. 아카데미적인 회화, 개념적이고 이성적인 미를 지닌 회화의 전통에 반하는 흐름이죠. 실제로 학교에 다닐 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너네 진짜 그림은 그릴 줄 아니?”라는 말이요. 물론 그릴 줄 알죠. 저도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제 그림도 극사실주의 회화만큼 ‘진짜’거든요.
고등학생 때 있었던 일인가요?
아뇨. 대학 때였죠. 저도 고등학생 때는 시키는 대로 보이는 걸 그렸어요.(웃음)
(웃음) 미국이나 한국이나 입시 미술은 똑같군요. 당신 그림이 얼마나 더 ‘배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게 문제인데요, 제가 지금 그리고 있는 작품들이 언제가는 아름다움의 영역에 속하는 순간이 오겠죠? 미추의 기준은 움직이니까요. 그러면 어딘가에서 새로운 배드 페인팅이 출몰할 거예요. 혹은 제 그림이 너무나도 나빠져서 더는 그림이라고 볼 수 없거나 혹은 거기에 그림이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고요. 그렇게 되면 반회화(anti-painting) 등으로 설명해야 하는 개념미술에 더 가까운 것이 되겠죠. 꽤 오래전에 인스타그램에서 한 사용자가 아까 우리가 얘기한 마샤 터커의 배드 페인팅이라는 개념을 언급하며 제 그림을 두고 ‘슈퍼 배드 페인팅’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마치 익스프레셔니즘 다음에 새로운 표현주의 사조로 ‘네오 익스프레셔니즘’이 나온 것처럼요.
배드 페인팅 영역에서 당신의 라이벌은 누군가요?
제 자신이죠.
‘배드 페인팅’을 떠올리면 컨벤셔널한 것들을 무너뜨린다는 의미에서 내추럴 와인이 생각나기도 하고, 로파이한 사운드 혹은 멜로디를 무너뜨린 인디 뮤직들도 떠오르네요.
역사를 보면 예전에는 나쁜, 심지어 예술이라고 여겨지지도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아주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요. 인상주의 작품들만 보더라도 당시의 기준으로는 정말 끔찍한 예술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것들을 우러러보고 있죠.

‘Burial Shark(TBC)’, 2023, 188x238.8 cm. © Robert Nava, courtesy Pace Gallery
배드 페인터 혹은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은 구상에서 추상으로 향하는 ‘해체 모드’(deconstruct mode)에 접어드는 시기가 있지요. 기억나나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꽤 오랜 시간 트럭 기사로 일했어요. 그때 그린 초기의 작품들은 다른 트럭의 뒷면을 보고 그린 것들이었죠. 좌우 대칭 형상이고 언뜻 보기엔 거의 추상적이기까지 하죠. 그런데 이 작품을 그리면 그릴수록 트럭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들이 마스크 혹은 사람의 얼굴 형상처럼 변하기 시작했죠. 어떨 때는 신 혹은 신화에 나오는 것들, 괴물 같은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그런 그림을 그릴 때면 ‘트럭을 신적인 존재로 표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재료 면에선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스프레이 페인트는 단면이 칼같이 그어지지 않는데,) 그런 면에서 그것들이 어떤 영혼이나 유령을 묘사한 것 같았죠. 그다음에 ‘그렇다면 아예 작품에 신적인 존재, 괴물 같은 것을 그려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단순한 오브제 안에서 생명력을 발견하기도 했고, 간혹 어떤 오브제에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작업이 전환의 시점을 맞이했어요. 여기 이 그림을 봐요. (자신의 사진첩에 있는 트럭 드라이버 시절의 그림을 보여주며) 이건 겨울에 브루클린을 지나는 제설차의 뒷모습을 그린 거예요.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작품이죠. 뉴욕의 페인터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한 화가 캐서린 브래드포드가 한번은 제게 그런 말을 했어요. “트럭의 뒷모습이 캔버스와 같은 직사각형이라는 건 너에겐 정말 큰 축복이다”라고.
트럭 드라이버로 일할 때 어떤 음악을 들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요.
운전해보셨다면 제 말을 이해할 텐데요. 사실 오랜 시간 도로에 있다 보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다 느끼죠.(웃음) 전 주로 ‘트라이 스테이트’라고 불리는 뉴욕 주변의 주들, 뉴욕주와 뉴저지, 코네티컷을 돌아다녔고, 조금 더 멀면 매사추세츠, 아주 멀 땐 미시간이나 플로리다까지 다녀온 적도 있어요. 일을 하다 보면 차는 막히고 엉망진창으로 운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죠. 처음에는 분노 조절 문제가 생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게 됐죠. 운전할 때는 주로 핫 나인티세븐이라는 힙합을 주로 틀어주는 뉴욕 방송을 들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미국의 트럭 드라이버들이 주로 듣는 컨트리 뮤직을 좋아해 약간 로맨틱하게 들리기도 하네요. 트럭 드라이버야말로 <브로크백 마운틴>에 나오는 양치기의 현대 버전이잖아요.
(웃음) 맞아요. 사실 플로리다처럼 먼 곳에 다녀와야 할 때는 오히려 도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좋아하기도 했죠. 도시 밖으로 나가면 탁 트인 길에서 조금 헤맬 수도 있으니까요. 종종 명상에 빠지는 것 같은 경험을 하기도 했어요. 박스를 들고 나르는 일을 하면서, 마치 제가 거기에 없는 듯한 경험을 하는 거죠. 전체적으로 보면, 트럭 기사 시절이 그립지는 않아요. 그러나 종종 장거리 운전을 한 기억은 그립기도 해요.
지금 미국 아트 신의 슈퍼스타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부상하기도 했고요. 지속적으로 전시를 시작한 시기가 궁금해요.
계속 작품 활동을 했지만, 지속적으로 제 전시를 열기 시작한 건 2018, 2019년부터죠. 제가 일하던 트럭 회사에 열쇠를 반납한 게 2019년이니까요.
작품을 보면서 전 오히려 일상의 언어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수사가 많지 않고 매우 지시적이죠. 예를 들면 ‘사랑’만 해도 극도로 추상적인 단어지요. 지시적인 단어인 ‘책상’과는 다르게요. 물론 둘 다 섞여 있겠지만, 지시적인 말의 비중이 높은 일상어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멋진 설명이네요. 이를테면 테이블 위에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하트가 실제로 얹어져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니 그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당신의 작품은 인스타그램에서만 봤을 때와 실제로 봤을 때 큰 차이가 있어요. 일단 그 어마어마한 화폭 크기에 놀랐고, 또 다른 하나는 ‘이리디센트’(iridescent)한 아크릴 물감의 효과적인 활용이었어요. 예를 들면 골드나 실버 등 펄감이 들어간 물감들이 그랬지요.
맞아요. 일부러 그런 물감들을 썼어요. 전 제 작품들이 마치 어떤 행위를 하다가 정지된 상태에 있는 것처럼 혹은 특정한 운동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어요.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 Axel Dupeux/courtesy of PACE
- ASSISTANT 송채연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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