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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포츠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국내 프로스포츠의 인기는 국제 대회 성적에 따라 좌우된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23년의 분위기는 다르다. 종목을 망라하고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지만, 프로스포츠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더 이상 국제 대회 성적과 프로스포츠의 흥행이 비례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3.09.28
 
처참한 성적표
6전 1승 3무 2패.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2023년에 기록한 A매치 성적이다. 한국인을 넘어 아시아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로축구(EPL) 득점왕이 된 손흥민과 아시아 출신 수비수 최초로 2023 발롱도르 최종 후보에 오른 김민재 등 역대급 선수단을 갖춘 상황임에도 썩 좋지 않은 결과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마지막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보여준 짜릿한 역전승과 드라마 같던 16강 진출이 불과 1년 전 이야기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웨일스와의 A매치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한 대표팀의 유효 슈팅은 단 1개였다. 조직력이 역대 최악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겨우 첫 승을 거두긴 했으나, 그야말로 1:0의 ‘꾸역승’이었다. 나름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축구 강대국의 매치라고 중계방송을 편성했을 베트남 방송의 해설위원은 이 경기를 두고 “너무 지루한 90분이었다”고 평가했다.
형들만 문제가 아니다.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조별 예선 경기를 진행 중인 U-22 축구대표팀은 지난 9월 6일 홈인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0:2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주전 선수들이 거의 빠진 상태였고 카타르가 아시안컵의 개최국인 덕분에 예선 성적이 반영되지 않는다고는 하나, 이와는 별개로 내용이 형편없었다. 이어진 키르기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1:0으로 겨우 승리를 거뒀다. 몇 수 아래 상대인 키르기스스탄을 상대로 끝에 가서는 수비 위주의 전술에 집중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현재 U-23 선수의 대부분이 2019년 FIFA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던 이들이다. FIFA 주관 세계대회에서 남자 축구팀으로서 한국 최고 성적을 거뒀던 선수들이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맥을 못 추고 있는 셈이다.
축구만 문제가 아니다. 올해 초, 일본에서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출전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졸전 끝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첫 경기인 호주전에서부터 7:8로 역전패를 당해 8강 진출 티켓을 사실상 놓치고 말았다. ‘쇼타임’이라는 별명을 넘어 ‘더 베이스볼’, 야구 그 자체로 불리는 오타니 쇼헤이를 필두로 최정예 전력으로 나선 일본에는 콜드게임 패를 겨우 면했다. 대회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그 이후 불거진 ‘음주 파문’은 여파가 더 컸다. KBO의 전수 조사 결과 최초 제기된 의혹과 달리 경기 전날이 아닌 휴식일이었고, 룸살롱이 아닌 스낵바라는 차이가 있긴 했으나 선수 세 명이 대회 도중에 술을 마신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팬들을 충분히 실망시킬 만한 일이었다.
남자만 문제도 아니다. 문제가 너무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2년 연속 ‘전패’했다. VNL 역사상 이런 기록을 가진 팀은 한국밖에 없다. 이어 2023 아시아배구연맹(AVC) 아시아선수권대회도 6위로 마무리했다. 역대 최악의 성적이다. 베트남, 태국에 연달아 패한 데 이어 카자흐스탄에는 셧아웃 완패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2년 전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강에 올랐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결과다. 축구, 야구, 배구. 몇 년 사이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 종목들의 국제 대회 성적이 믿을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대프로스포츠 시대
국제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내면 국내 프로스포츠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2002 FIFA 한일 월드컵 직후다. 2002 시즌 K리그는 257만 관중을 동원했다.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1만6000명 수준으로, 전년 대비 134% 상승했다. 월드컵 4강이라는 대기록으로 축구에 관심이 생긴 이들이 늘었던 것이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서 극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프로야구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2008년 프로야구 관중 수는 526만 명으로, 전년 대비 28.6% 늘어났다. 이후 2009 WBC 준우승,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이어진 높은 성적은 2012년 7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여자배구 대표팀이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기적적인 4강 진출에 성공한 뒤, 2022-2023 시즌 V리그 여자부 1라운드 평균 관중도 2490명으로 팬데믹 직전보다 늘어났다. 티켓 매진도 이어졌다. 국제 대회의 높은 성적이 프로스포츠 흥행으로 연결됐다는 증거다.
그 반대도 성립했다. 1무 2패로 조 최하위라는 성적을 거뒀던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이 단적인 예다. 월드컵 직전 9381명이던 K리그 평균 관중 수는 월드컵 직후 7247명으로 하락했다. 1라운드에서 탈락해 ‘참사’라는 평가를 받은 2013년 WBC 이후 프로야구 관중 수 역시 715만 명에서 64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10% 가까운 관중이 빠진 것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현재 한국 프로스포츠는 관중 수가 대폭 줄어야 하는 상황이다. 국제 대회 성적이 그야말로 죽을 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프로야구는 WBC 직후였던 올 시즌 개막일, 전 구장이 매진됐다. 12년 만의 일이다. 지난 9월 9일에는 하루 동안 5개 구장에 12만8598명의 관중이 입장해 리그 역사상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현재 프로야구는 5년 만에 800만 관중을 바라보고 있으며, 곧 사상 첫 관중 수입 1000억원 시대를 열 전망이다.
축구장의 분위기도 뜨겁다. 2018년 유료 관중 집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평균 관중 1만 명을 기록했다. 가장 많은 관중을 유치한 구단인 FC서울의 경우 올 시즌 평균 관중이 2만 명을 넘었으며, 대전하나시티즌의 경우 전년 대비 관중 증가율이 500%에 달했다. 올여름부터 강릉에서 홈경기를 치르기 시작한 강원FC의 경우 지난 8월 1만 명이 넘는 관중을 동원했다. 강릉시 인구가 20만 명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치다. 2022-2023 시즌을 마무리한 여자배구도 여러 기록을 세웠다. 7월 30일에는 3200명의 관중이 입장하며 2023 KOVO컵 최고 관중 수를 기록했으며, 결승전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2679명을 동원했다.
국제 대회에서 참사나 다름없는 성적표를 받았음에도 프로스포츠를 찾는 관중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저 늘어난 정도가 아니라 여태껏 없던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더 이상 ‘국내 프로스포츠의 인기는 국제 대회 성적에 따라 좌우된다’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항상 정방향을 그리던 국제 대회 성적과 프로스포츠 인기의 상관관계는 어째서 이런 변화를 맞이하게 된 걸까?
 
 
아이돌에서 프로선수로
지난 8월 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울산현대 경기에는  3만 명 가까운 관중이 몰렸다. 원정을 온 팀을 응원할 수 있는 자리인 원정석은 찬 자리보다 빈자리가 많은 경우가 대다수지만, 이날 원정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이 중에는 이번 시즌 유니폼을 갖춰 입은 젊은 여성 팬들이 많았다.
지난 시즌 말부터 울산의 팬이 되었다는 이수정 씨는 경기도 출신이다. 그녀가 울산 팬이 된 것은 울산의 유스 출신으로 국가대표로도 뛰는 설영우 선수 때문이었다. “도쿄 올림픽 때 처음 보고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트위터에서 다른 팬들이 올려준 ‘짤’을 보고 입덕 했어요.” 설영우의 팬이 되었으니 설영우가 속한 팀 울산의 경기를 보러 다니게 됐고, 마침 울산이 17년 만의 우승을 거두는 것까지 지켜보고 나자 울산까지 좋아졌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실제로 올해 울산의 팬이 된 ‘뉴비’ 중에는 수정 씨 같은 케이스가 많다. 울산 서포터즈 ‘처용전사’ 출신으로 30년째 울산 경기를 보고 있는 윤승범 씨에 따르면 요즘처럼 여성 팬이 많은 적은 처음이다. “올드 팬들 사이에서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어요. 이동경을 응원하는 건 다 아저씨고, 설영우를 외치는 함성은 다 젊은 여성들이 낸다고요.” 이날 경기장 분위기는 확실히 그랬다.
프로야구 경기장에도 젊은 여성들이 많다. 그중 한 명인 김혜지 씨는 2009년 WBC 이후 잠시 야구에 관심을 가졌다가, 바쁜 일상과 몇몇 선수들의 ‘병크’로 마음을 접었다. 그랬던 그녀가 최근 야구장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발단은 <최강야구>였다. “사실 예전에 야구 좋아했을 때에도 ‘직관’을 간 적은 없었는데, 최강몬스터즈 경기는 꼭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프로야구보다 인기가 높다는 <최강야구> 경기 티켓은 매번 매진이라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나 혜지 씨는 대학 시절 수강 신청을 ‘올클’ 하던 실력으로 티켓 구입에 성공했다. “뿌듯함을 안고 고척돔에 처음 가봤는데, 기대보다도 훨씬 좋더라고요. 맛있는 것도 많고, TV에서만 보던 선수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도 좋았어요. 빈자리 없이 꽉 찬 구장에서 다들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이후 직관의 매력에 푹 빠진 혜지 씨는 최근 한 달에 두세 번은 야구장에 간다고 했다.
젊은 여성 팬들이 대거 늘어난 데에는 의외의 ‘가심비’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같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을 때 만족도가 더 높다는 의미다.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것에 비하면 선수 덕질 하는 게 가성비가 좋아요.” 수정 씨는 원래 아이돌을 좋아했다가 설영우의 팬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이돌을 한 번 만나기 위해 앨범을 잔뜩 구매해도 ‘팬싸’에 당첨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콘서트가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고, 콘서트 티켓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축구는 매주, 야구는 거의 매일 경기를 한다. 경기장에 가기만 하면 덕질의 대상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다.
덕질의 필수 항목인 ‘떡밥’도 많다. “구단 자체에서 만든 콘텐츠가 많아서 덕질 하는 데 도움이 돼요.” 축구를 덕질 중인 수정 씨에게는 울산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공개하는 다큐멘터리 <푸른파도>가 혜지 씨의 <최강야구> 같은 존재인 셈이다.
이처럼 수정 씨와 혜지 씨 같은 신규 유입 ‘뉴비’들은 덕질을 목표로 경기장을 찾는다. 여자배구도 비슷한 양상을 띤다. “도쿄 올림픽 때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특히 김희진 선수가 정말 멋있더라고요. 올림픽 이후 그녀가 나오는 예능 영상을 찾아보다가 실제로 한 번 보고 싶었죠.” 그렇게 장선미 씨는 IBK 기업은행의 경기를 보러 갔고, 본격적인 덕통사고를 당했다. “저는 김희진 선수 팬이었기 때문에 ‘돌잡이’로 IBK를 택한 건 당연한 결과였어요.” 여기서 ‘돌잡이’란 올림픽으로 유입된 뉴비가 팬이 될 구단을 택하는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김희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배구 자체가 즐겁다는 선미 씨는 주변 친구들에게 ‘영업’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김희진 선수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주면서 입덕 시키려고 하고 있죠.” 실제로 선미 씨를 따라왔다가 배구의 매력에 빠진 친구도 몇 있다고 했다.
프로스포츠 흥행의 이면에는 ‘덕질’이 있었다. 업계도 움직이고 있다. 스타와 팬이 ‘일대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팬 플랫폼이 스포츠계로도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까지 이런 플랫폼은 아이돌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 들어 축구선수 정승원과 배구선수 김연경, 야구선수 최지만 등이 참여하며 스포츠 스타와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도 늘어나는 추세다.
 
 
본질은 재미
갑자기 늘어난 프로스포츠 팬들 중에는 이런 ‘덕후’들도 있으나, 평범한 시민들도 많다. 열혈 축구팬으로 ‘덕업일치’를 이뤄 축구 관련 기관에서 일했고 현재는 스포츠 마케팅 회사에 재직 중인 신민철 씨는 축구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에 대해 뿌듯하다는 듯 말했다. “요즘 경기 진짜 재밌게 하거든요.” 민철 씨는 2002년의 K리그 열풍이 짧게 끝난 것은 축구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월드컵 수준을 기대하고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이 본 건 ‘뻥 축구’였으니까 금방 식었죠. 지금 분위기는 달라요.” 그는 관중 수 증가에는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의 여파가 있다고 봤다.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월드컵이 열린 덕분에 그 열기가 자연스럽게 K리그로 옮겨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입된 이들을 계속 잡아둘 수 있을 만큼 경기의 질이 올라갔다는 게 민철 씨의 설명이다. “올 시즌에는 하위권에 있는 몇 팀을 제외하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축구를 보여주는 팀이 늘었어요. 2부에서 승격한 광주FC나 대전이 1위 울산을 격파하는 등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된 것 같고요. 또 직관을 하지 않더라도, 쿠팡플레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장점이라고 봐요. 덕분에 젊은 팬들의 유입이 늘어났거든요.” 덕질을 할 수 있는 요인에 더해 프로축구 자체가 경기를 재미있게 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야구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1위 LG트윈스 밑으로는 순위 다툼이 치열해요. 연승 또는 연패도 유독 이번 시즌에 많아요.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고 순위가 휙휙 바뀌니까, 유입되기는 쉬워도 끊을 수는 없을 거예요.” 한 언론사의 스포츠팀 소속인 A기자의 말이다. 실제 기아타이거즈는 최근 파죽지세의 행보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9연승을, 한화이글스는 6연승을 기록했다. 9월 12일 기준 2위 KT위즈와 6위 두산베어스는 불과 5경기 차이로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팬들을 붙잡는 것은 스포츠의 본질인 ‘재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해 초, WBC 참사 이후에도 사람들이 프로야구를 계속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A기자는 더 이상 야구팬들이 국제 대회에 관심 자체를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봤다. “올림픽에서도 야구 경기를 하지 않고, 아시안게임에는 한국을 제외하면 프로 선수가 나오는 국가도 거의 없잖아요.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는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으로 ‘시청률’을 꼽았다. “WBC가 참사였다고는 하지만, 최고 시청률이 10% 수준이었거든요. 월드컵 중계 방송이 40% 찍기도 한 것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낮죠. 그냥 국제 대회에 큰 관심이 없는 거예요. 프로야구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거고요.”
꽤나 현실적인 이야기도 나왔다. “사실 요새 물가가 너무 올랐잖아요. 어디 가서 문화생활 좀 하려면 5만원, 10만원이 금방 깨지죠. 그런데 2만원 정도의 돈으로 몇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으니 이만큼 가성비 높은 취미가 없어요.” 혜지 씨의 말이다. 선미 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좋아하는 선수를 접할 수 있고,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데, 가격은 고작 1만~2만원 수준이니 예매하면서 황송할 정도예요.” 다른 문화생활의 물가가 너무 올라버려 프로스포츠 관람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프로스포츠에 유입된 팬들도 있을 법하다.
결국 뗄 수 없는 사이
국제 대회 성적과 무관하게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높아진 것에 대해 A기자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봤다. “한국 프로스포츠도 자체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만큼 경쟁력이 높아진 거죠. 스포츠를 삶의 일부로 즐기는 문화가 뿌리내리기도 했고요. 프로스포츠의 인기가 바탕이 돼야 국가대표의 경쟁력도 더 올라갈 거라고 보기에 좋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부정적인 관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자배구팬은 아이돌을 덕질하듯 선수를 덕질하는 현재의 팬 문화가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몇 년 사이 실력이 안 좋아도 매력이 있어 인기가 높은 선수에 대해서는 정당한 비판조차 못 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어요. 하지만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매력이 아니라 실력이잖아요.”
그는 여자배구의 국제 대회 성적도 언급했다. “김연경 이후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못해도 ‘우쭈쭈’ 해주는 팬 문화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결국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거죠.” 그는 이런 상황에서는 제2의 김연경, 제2의 양효진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철 씨는 어떤 종목이든 스타플레이어에게 과도하게 기대는 모습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재 국제 대회 성적이 저조한 것 역시 스타플레이어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축구 국가대표 선발 명단을 보면 그저 ‘높은 가격 순’으로 쭉 줄 세우기를 한 것만 같거든요. 부상이나 리그에서의 플레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스타플레이어 순으로만 기용하는 느낌이 있죠. 전술 자체도 전혀 새롭거나 특별할 것이 없고, 스타플레이어의 개인 기량에만 기대고 있잖아요.” 그는 리그 분위기가 좋은 지금, 선수들을 더더욱 잘 살펴 국제 대회에 나설 인재 풀을 늘리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기자는 야구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일본의 예를 들었다. “일본도 오타니 쇼헤이 한 명 덕분에 우승한 게 아니거든요. 일본은 2013년 WBC를 3위로 마무리한 뒤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령별 대표팀에 대한 체계적 관리에 나섰어요. 즉각 세대교체를 위해 역대 최연소 대표팀을 꾸리고 쇄신에 나섰죠. 그 결과가 WBC에서 드러난 거고요.”

한국도 WBC 참사 이후 세대교체 작업에 돌입했다. 가장 가까운 시일에 열리는 국제 대회인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야구선수에 대한 연령 제한이 없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자체적으로 연령 규정을 만들어 만 25세 이하 또는 입단 4년 차 이하 선수를 선발하기로 했다. 유망주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부분이다.

직관을 하는 프로스포츠 팬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스포츠에 대해 애정을 갖고 지켜보는 이들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국제 대회 성적과 프로스포츠의 흥행을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이유다. 가장 최고의 결과는 프로스포츠 흥행에 힘입어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일 테다. 역대급 프로스포츠 관중 수를 기록하고 있는 지금, 과연 대표팀은 오는 아시안게임에서 그 기대를 반영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까. 지켜봐야 알 일이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정우영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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