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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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심했다. 기자는 원래 의심이 많은 편이다. 콜롬보가 등장한 2010년대에도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라는 건 있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세상이 다 연결돼 있는 시대에 아는 사람만 아는 브랜드가 어떻게 존재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열심히 팩트 체크를 했더니 콜롬보가 이탈리아 출신 브랜드인 건 사실이었다. 1937년 창업주 루이자 콜롬보가 밀라노의 모레티 가문과 결혼 후 부모 사업을 물려받아 피혁 가공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됐고, 1953년에 밀라노에 첫 부티크를 열었다고 했다. 에르메스가 1837년, 루이 비통이 1854년에 설립됐으니 역사는 좀 밀린다만, 보테가 베네타가 1966년에 설립됐으니 헤리티지가 없다고 하긴 또 힘들다. 하지만 콜롬보가 정말로 위에 언급한 브랜드들과 함께 거론될 만한 ‘명품’인가?
아니다. 콜롬보는 한국 브랜드다.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그렇다. 이 브랜드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11년 제일모직이 콜롬보를 인수한 이후다. 보테가 베네타도 작은 가죽 브랜드였다. 2001년 구찌그룹이 인수하면서 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성장한 케이스다. 제일모직은 아마도 구찌그룹, 그러니까 케링처럼 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작은 브랜드를 하나 매입해 세계적인 명품으로 키우고 싶었을 것이다. 2011년 기사에 따르면 제일모직은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 100개의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 콜롬보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 가방’으로 가장 유명한, (아마도 제일모직과 친분이 있을) 연예인들의 공항 화보나 인스타그램에나 가끔 등장하는 브랜드다. 그리고 콜롬보는 2021년 SG세계물산에 인수됐다. 이 브랜드의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만 콜롬보 가방이 버킨 백을 위협하는 일은 영원히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큰돈을 가진 기업들의 ‘명품’에 대한 집착이다. 모두가 명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명품 비즈니스는 21세기에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LVMH 그룹의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는 2023년 9월 현재 세계 2위의 부자다. 그는 한동안 1위 자리를 지켰다. 최근 중국의 경기침체로 주가가 약간 하락한 탓에 1위 자리를 테슬라 대표 일론 머스크에게 내줬다. 하지만 오로지 명품 사업으로 재산을 247조8000억원이나 모았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굉장하다. 베르나르 아르노의 영원한 경쟁자인 케링 그룹 명예회장 프랑수아 피노도 2023년 현재 세계 29위의 부자다. LVMH와 케링은 물론 리치몬트와 프라다 그룹까지, 유럽을 기반으로 한 명품 그룹들에게는 경쟁자가 없다. 그들은 서로와 경쟁할 뿐이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모든 역사적 명품 브랜드를 다 삼켰다. 그들이 노리는 건 유럽 바깥에는 없다. 지금은 독립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는 에르메스와 샤넬이 유일하게 남은 타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에르메스와 샤넬이 독립 체제를 지켜주길 바라지만, 미래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유럽 바깥의 대륙에서는 더는 명품 브랜드를 만들 가능성이 없는 걸까? 시도는 있다. 제일모직의 콜롬보 인수도 미약한 시도 중 하나였다. 그보다 더 큰 시도는 언제나 유럽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하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 미국 브랜드 코치의 모회사인 태피스트리가 카프리홀딩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태피스트리는 코치 외 케이트 스페이드 같은 브랜드를 보유한 회사다. 미국 패션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설립한 카프리홀딩스는 마이클 코어스를 비롯해 베르사체와 지미추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인수가는 85억 달러, 한화로 11조에 달한다. 시장가치 100억 달러와 40억 달러의 브랜드가 합병을 한 셈이다. 태피스트리가 카프리홀딩스를 인수한 이유는 당연히 LVMH나 케링 같은 유럽 명품 그룹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미국 최대 명품 그룹이 유럽 명품 그룹들에 일종의 도전장을 낸 것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미국 기업이라고 명품 산업에 비비지 말라는 법은 없다. 태피스트리의 가장 큰 돈줄인 코치 역시 1941년 뉴욕에서 설립돼 거의 반세기 만에 꽤 인정받는 엔트리급 명품 브랜드가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태피스트리는 장렬하게 실패할 것이다. 그들은 미국 최고의 명품 그룹 자리를 지키겠지만 유럽 명품 그룹들의 뒤에서 영원히 발버둥을 칠 운명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유러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명품은 일종의 환상이다. 19세기에 시작돼 왕가에 가죽 제품을 납품했다는 역사가 명품을 만든다. 에르메스와 루이 비통은 그림 형제가 지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기반이 된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푼젤> <헨젤과 그레텔> 등의 동화를 출간하던 시대에 탄생했다. 20세기와 21세기 전 세계 아이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이야기가 탄생하던 시절에 티에리 에르메스는 마구에 올릴 가죽을 무두질하고 있었다. 루이 비통은 왕가에 납품할 여행용 트렁크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구찌오 구찌는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던 시절에 가죽 기술을 익혔다. 러시아 제국의 괴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암살을 당한 해 가브리엘 샤넬은 두 번째 컬렉션을 발표했다. 프라다는 비교적 최근의 명품 아니냐고? 마리오 프라다와 마르티노 프라다 형제는 파리가 말이 끄는 마차를 금지하고 첫 전차를 운행하기 시작한 해 밀라노에 첫 가죽 제품 매장을 열었다. 우리가 그들의 무시무시한 가격표를 보고도 지갑을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그냥 가죽 가방을 사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사는 것이다.
1941년 뉴욕 가죽 장인 6명이 모여 만들었다는 코치의 역사는 유럽 명품 브랜드의 역사를 따라갈 수가 없다. 창립자 인터뷰 하나 제대로 없는 콜롬보도 따라갈 수 없다. 미국과 아시아 패션 그룹들은 다다를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 혹은 착각을 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아시아에도 명품은 존재한다. 미국은 온갖 컬래버레이션을 내놓으며, 종종 수십만 달러에 거래되는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로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고 심지어 운동화 한 켤레가 버킨 백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도록 하는 재주는 미국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아시아? 중국은 결코 에르메스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대신 그들은 말린 찻잎 한 통을 수천만 원에 팔아치우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버킨 백을 종류별로 옷장에 보관하고 있는 유럽의 거부들이 오늘도 최상급 보이차를 거실에서 음미하며 마셔대는 것이다. 각 대륙은 각자의 명품이 있다. 패션 영역에서라면 유럽은 영원히 명품의 지배자로 남을 것이다.
어머니는 더는 콜롬보 가방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녀는 콜롬보라는 이름을 완벽하게 잊어버렸다. 가장 유명한 콜롬보는 여전히 콜롬보 가방이 아니라 ‘콜롬보 형사’다. 요즘 어머니는 아들들 결혼 예물로 에르메스 버킨 백을 희망하고 계신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어머니는 영원히 결혼 예물 가방 따위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의 링크는 절대 어머니에게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불효자는 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책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낯선 사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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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DITOR 김현유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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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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