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하늘을 지붕 삼아 사는 사람들에게 물은 비박의 매력

텐트 없이 야외에서 자는 걸 비박(biwak)이라고 한다. 언뜻 보면 노숙과 다름없는 비박을 즐기는 까닭이 궁금해 ‘프로 비박러’ 6명을 만났다. 그들이 입을 모아 “결국엔 비박을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3.11.01
 
김순종 씨는 아이슬란드 호른스트란디르(위)와 문경 둔덕산(아래)의 비경을 보내왔다. 그는 자연의 웅장함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드론 촬영을 선호한다.

김순종 씨는 아이슬란드 호른스트란디르(위)와 문경 둔덕산(아래)의 비경을 보내왔다. 그는 자연의 웅장함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드론 촬영을 선호한다.

 
“비박의 매력은 자연과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김순종 (유튜브 <도깨비들> 운영자)
 
보기만 해도 아찔한 사진 속 장소는 어딘가요?
문경의 둔덕산 언저리입니다. 아직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죠. 사진 각도 때문에 엄청 가팔라 보이지만 실은 로프를 사용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발 디딜 곳이 많아요. 바람이나 비가 심한 날만 아니면 이만한 비박 장소가 없어요. 방해받을 일이 없으니까요. 이런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여주면 “굳이 이런 곳을 왜 가?”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그럴 때마다 전 웃으며 “가보면 알아”라고 대답해요.
비박 장소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바위를 선호해요.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어두워지는 숲속에 비해 바위는 한밤중에도 달빛이 반사돼서 꽤 밝아요. 갑자기 비가 오더라도 땅이 질척거리지 않고요. 상대적으로 바위 위는 낙엽이 쌓인 흙 위보다 벌레가 적은 것도 장점이죠. 깊은 산속에선 체온과 먹을 것에 이끌려 각종 야생동물과 벌레가 사람 주변으로 꼬이거든요. 한번은 자고 일어났는데 배낭 안에 뱀이 들어가 있던 적도 있어요.
비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요?
시간 날 때마다 산에 다닌 지 벌써 17년 정도 됐어요. 당일치기로 산에 다니다가 종주에 발을 들였고 결국 해외 트레킹까지 갔다 왔죠. 근데 비박을 주로 하게 된 건 3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나이 드니까 무거운 배낭을 지고 오랫동안 걷기가 부담스럽더라고요. 배낭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텐트를 빼게 된 겁니다. 얇은 천에 불과하지만 텐트에 들어가면 아늑한 기분이 들어요. 반대로 말하면, 답답하죠. 비박의 매력은 자연과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내년엔 아이슬란드에 간다고요?
작년 5월에 열흘간 갔다 온 곳인데 다시 가려고요. ‘호른스트란디르’라는 곳인데 아이슬란드 최북단에 자리한 거대한 협곡이에요. 사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작년에 거기서 드론을 날리다가 갈매기한테 공격을 받아 드론이 협곡 아래로 추락했어요. 여정 내내 찍은 영상이 전부 그 안에 담겨 있었죠. 결국 드론을 찾으러 가는 바람에 목적지까지 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재도전하는 겁니다.
 
 

 
 
지우철 씨는 울릉도 성인봉 근처의 비박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말했다. 눈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곳에서는 설동을 파는 게 지혜로운 비박법 중 하나다.

지우철 씨는 울릉도 성인봉 근처의 비박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고 말했다. 눈이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곳에서는 설동을 파는 게 지혜로운 비박법 중 하나다.

 
“여름보단 겨울 산행이 수월해요. 벌레도 없고 땀도 덜 나니까요.”
지우철 (코오롱스포츠 마케팅팀)
 
‘덕업일치’를 이뤘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중학생 때 스포츠 클라이밍에 입문했고 고등학생 땐 산악부 활동을 했어요.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꾸준히 산에 다녔죠. 그러다가 산과 관련한 다큐를 찍는 팀에 들어가 조연출을 맡았고요. 좋아하는 것과 일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큰 즐거움인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아내를 처음 만난 곳도 산이었어요. 원랜 비박을 하려고 했는데 날이 갑자기 흐려져 1.5인용 텐트에 3명이 들어가 겨우 잠을 청했죠. 그렇게 인연이 돼서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텐트를 칠 때와 비박을 할 때를 가르는 기준이 있나요?
그날그날 다릅니다. 날씨와 장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죠. 요샌 텐트 대신 타프를 자주 챙기는 편입니다. 타프는 활용도가 높아요. 비가 오면 지붕처럼 쓸 수도 있고 방수포 대신 바닥에 깔아서 냉기를 막을 수도 있죠. 아니면 우비 대용으로 몸에 두르거나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연결해 해먹처럼 쓰기도 해요. 비박 경험이 많아질수록 자연스레 텐트보단 타프를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겨울 산행을 선호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굳이 고르라면 여름보단 겨울 산행이 수월해요. 벌레도 없고 땀도 덜 나니까요. 제가 인생 비박으로 꼽는 곳 중 하나가 울릉도 성인봉 근처인데, 눈이 많이 왔을 때 설동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잔 적이 있어요. 1명이 들어가 누울 만한 크기의 설동을 만드는 데 3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려요. 계속 삽질을 해야 하니 체력 소모도 심하죠. 설동을 만들 땐 아무 데나 파는 게 아니라 비탈길에 쌓여 있는 눈의 옆구리를 공략해야 해요. 만들 땐 힘들지만 안에 들어가면 꽤 아늑합니다. 외부 온도가 영하 15℃일 때도 설동 내부는 영하 2~3℃ 수준이거든요.
히말라야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해외 경험도 많던데, 국내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다른가요?
우리나라는 국립공원에서 잠을 자는 게 불법입니다. 당연히 불도 피울 수 없어요. 그에 비해 일본의 국립공원은 허들이 낮아요. 산이 높고 구역이 넓어서 그럴 수도 있죠. 그 대신 ‘문제가 생기면 전적으로 네 책임이야’라는 분위기가 강해요. 미국은 또 달라요. 허가받기가 까다롭지만, 일단 허가를 받고 나면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우리나라도 조금 유연하게 바뀌었으면 좋겠어요.<span style="font-size: inherit;">
 
 

 
 
도리산 씨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 강원도 인제(아래)와 미국 동부의 어느 산(위)이 그 예다.

도리산 씨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을 일부러 찾아다닌다. 강원도 인제(아래)와 미국 동부의 어느 산(위)이 그 예다.

“비박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도리산(가명) (회사원)
 
유튜브 채널명 ‘도리산’은 어디 있는 산인가요?
전라남도 진도에 도리산이 있긴 하지만, 저의 도리산은 특정 지명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제가 어릴 때 살던 곳이 완전 시골이었는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도 전부 산이 있다고 해서 지역 사람들끼리 그냥 도리산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제 나이가 40대 후반인데, 제 또래 중에서도 저만큼 시골 경험이 있는 친구가 별로 없거든요. 나무 하러 다니고 아궁이에 불 지피고 버섯 채취하면서 놀았어요.
유년 시절의 경험 덕에 산이 좋아진 거군요.
저에겐 산이 마음의 고향 같아요. 산에 들어가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요. 저도 처음엔 배낭에 각종 도구를 잔뜩 넣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그건 장비 자랑을 하는 거지 산을 즐기는 게 아니였죠. 그리고 가방이 무거우면 산을 보지 못하고 자꾸 앞사람 꽁무니만 보게 돼요. 힘드니까요. 요새 ‘경량 백패킹’이 유행하는 걸 보면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요.
부러 유명하지 않은 산들을 찾아다닌다고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려고 하는 건 맞아요. 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이면 더 좋아요. 제가 산에 가는 건 일종의 명상과 같거든요. 일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산에서 씻어낼 수 있거든요. 예전엔 두세 명이 같이 다니기도 했는데 아무리 편한 사이라도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살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소주 한잔하고 마는 식이죠. 저한테는 비박이 삶의 원동력입니다. 어떨 땐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혼자 엉엉 운 적도 있어요.
유튜브 영상을 봤는데, 산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흔적이 남지 않는 비박을 추구해요. 저는 산을 그냥 산으로만 보지 않거든요. 산신령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웃지만, 어떤 형태로든 산은 영험한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산악인이 ‘산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겸손이 별게 아니에요.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얌전히 머물다 가는 겁니다. 사고는 꼭 자만할 때 발생하더라고요.
어떨 때 비박을 하길 잘했다고 느끼나요?
지난 5월에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휘트니산에 갔어요. 4400m나 되는 산인 데다 눈도 많이 내린 상태였죠. 혼자서 산에 올랐는데 마주치는 다른 백팩커들이 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들이 보기엔 제가 위험해 보였나 봐요. 남들이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걸 이겨내고 성공하면 성취감이 커요.
 
 

 
 
베네수엘라 로라이마 테푸이는 약 10년 전 국내 TV CF에 등장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민미정 씨처럼 현지 가이드와 동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베네수엘라 로라이마 테푸이는 약 10년 전 국내 TV CF에 등장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민미정 씨처럼 현지 가이드와 동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비박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민미정 (아웃도어 브랜드 ‘피엘라벤’ 매니저)
 
베네수엘라에선 비박을 하려면 변기를 챙겨야 한다고요?
베네수엘라 로라이마 테푸이(2810m) 트레킹을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신의 탁자’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 산을 오르는 일주일짜리 일정이었죠. 베네수엘라는 해당 구역을 우리로 치면 ‘국립공원’과 같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자연보호를 위해 용변조차 버리지 못하게 해요. 그래서 간이 용변기와 비닐, 응고제를 챙겨 입산해야만 하죠. 처음엔 ‘설마 정말로 검사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하산할 때 진짜 확인하더라고요.  
비박에도 호텔이나 스위트룸이 있다면서요?
정상부의 캠프사이트를 호텔이라고 불러요. 말만 호텔이지 그냥 야영하기 좋은 공터 수준이죠. 스위트룸은 그 야영 장소 중에서도 유독 뷰가 좋은 곳을 가리킵니다. 따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선 아침 일찍 선점해야 하죠. 반대로 동굴처럼 뷰가 전혀 없는 곳에서 자야 할 때도 있는데 저는 그런 곳을 ‘여관’이라고 불러요. 로라이마 테푸이는 호텔에서만 잘 수 있기 때문에 스위트룸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더 치열해요.
캠핑 대신 비박을 선택하는 이유는 뭔가요?
텐트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되도록 비박을 선호할 뿐이죠. 지역 전체가 돌로 된 곳은 텐트를 치기가 어려워요. 바람이 강한 곳도 텐트를 칠 수 없고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비박을 하면 자연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 좋아요. 비박을 할 정도면 이미 산에 푹 빠진 사람일 텐데, 굳이 텐트를 쳐서 산과 나를 가로막을 이유가 없는 거죠. 저처럼 일주일 넘는 장거리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일수록 비박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오래 걷기 위해선 짐이 가벼워야 하니까요.
비박을 즐기는 여성이 드물던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엔 야간 산행으로 시작했어요. 친언니가 클라이밍을 오랫동안 취미로 하고 있어 같이 산에 따라다니면서 재미를 붙였죠. 산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비박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그게 벌써 15년 전이네요. 한국에 있을 땐 몰랐는데 해외 트레킹을 다니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비박을 즐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다음 여정이 궁금합니다.
일을 그만두고 러시아와 북유럽을 훑는 1년짜리 로드 트립을 계획 중이에요. 워낙 넓은 지역이다 보니 산과 산 사이는 차로 이동하면서 중간중간 백패킹을 하는 식으로요. 사실 올해 가려고 했다가 사정이 생겨 취소했거든요. 특히 덴마크의 ‘페로 제도’에 꼭 가고 싶어요.
 
 

 
 
박주성 씨에 따르면 완주 기차산(위)과 같은 곳이 아니라면 가평 호명산(아래)처럼 타프를 치는 게 안정적이라고 한다. 새벽에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단잠을 깨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박주성 씨에 따르면 완주 기차산(위)과 같은 곳이 아니라면 가평 호명산(아래)처럼 타프를 치는 게 안정적이라고 한다. 새벽에 갑자기 내리는 비에 단잠을 깨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비박에 어울리는 성향은 태생적으로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박주성 (유튜브 <야만인들> 운영자)
 
바위가 캡슐호텔처럼 생겼네요.
완주 기차산에 있는 해골바위입니다. 장군봉 근처죠.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듬성듬성 뚫려 있는 생경한 광경 덕에 인증샷을 남기려는 등산객이 많아요. 특전사가 유격훈련을 자주 하는 곳이라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레펠이나 외줄 타기 훈련을 하는 군인들을 종종 마주쳐요. 비박을 즐기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출발할 때부터 잘 곳을 정해두진 않거든요. 산을 오르다가 해 질 무렵이 되면 그제야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편이죠.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저는 잘 곳을 고를 때 산의 기운을 유심히 관찰해요.
산의 기운이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같은 산 같은 봉우리라도 장소에 따라 느껴지는 기운이 다 달라요. 기운이 달라지는 이유는 바위나 나무의 형태 때문일 수도 있고 해가 드는 방향일 수도 있어요. 저도 산을 다니기 전엔 잘 몰랐는데, 흔히 ‘양지바른 곳’이라고 말하는 장소가 기운이 좋은 곳이죠. 예를 들어 다른 곳은 눈이 다 녹았는데 유독 어떤 구역만 얼음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잖아요. 습한 곳도 피하는 편입니다.
캄캄한 산속에서 혼자 자는 게 두렵진 않나요?
비박에 어울리는 성향은 태생적으로 타고난다고 생각해요. 저는 처음 혼자 비박 했을 때도 무섭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지인들을 여러 번 산으로 초대해봤는데 옆에서 물심양면 도와줘도 안 맞는 사람은 결국 포기하더라고요. 반대로 한번 해보고 ‘너무 좋다’며 입문한 사람도 있고요. 영상으로 볼 땐 풍경 좋은 곳에서 홀로 잠을 청하는 게 낭만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많이 달라요. 비박이 궁금하면 일단 한번 해보는 게 백 마디 말보다 빠릅니다.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면서요.
강원도 양구 쪽으로 비박을 간 적이 있어요. 산 밑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산에 올라 자고 내려왔는데 어떤 분이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묻더라고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제가 간첩인 줄 알고 신고를 하려고 했대요. 그분 집에 가서 커피 한잔 얻어 마시면서 다른 비박 사진도 보여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한번은 ‘외국인 노동자가 산을 떠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마주친 적도 있어요. 제 행색이 동남아 사람처럼 보였나 봐요.
 
 

 
 
이태윤 씨는 정선 백운산(위)의 매력으로 자작나무 숲을 꼽았다. 해발 3500m가 넘는 히말라야 마르디히말(아래)에 가면 그림 같은 운해를 만끽할 수 있다.

이태윤 씨는 정선 백운산(위)의 매력으로 자작나무 숲을 꼽았다. 해발 3500m가 넘는 히말라야 마르디히말(아래)에 가면 그림 같은 운해를 만끽할 수 있다.

 
“덜어내는 연습을 통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경험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이태윤 (유튜브 <오지브로> 운영자)
 
비박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스무 살 때 처음 비박을 경험했어요. 일본에서 유학 중이었는데 낯선 환경 탓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그때 일본인 선배 한 명이 같이 산에 가자고 하길래 얼떨결에 따라 나섰죠. 근데 그 선배나 저나 비박 경험이 없다 보니 노하우나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힘들게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몸과 마음이 너무 가벼운 거예요. 그때부터 산의 매력에 빠져서 15년째 비박을 하게 됐습니다.
‘사서 고생’에 가까운 비박을 오랫동안 즐기는 이유는 뭔가요?
수백 번을 산에서 잤는데도 볼 때마다 감동하는 순간이 있어요. 산속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 때죠. 보통 산이 고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밤에 혼자 산에 누워 있으면 야생동물 울음소리부터 돌 굴러가는 소리 등 별별 소리가 다 들립니다. 솔직히 겁이 날 때도 있죠. 근데 일출이 시작되면서 햇빛이 온몸을 감싸면 마치 보호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아 오늘 밤도 무사히 지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성취감도 느낄 수 있죠. 그게 제가 비박을 즐기는 이유입니다.
위험했던 순간은 없나요?
비박을 하다가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고요. 자고 일어났는데 턱이 살짝 돌아간 적은 있어요. 주사 맞고 금방 괜찮아지긴 했지만요. 저는 항상 처음 비박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쉬운 곳부터 가세요’라고 조언을 드려요. 경치가 멋지다고 무작정 도전했다가 된통 고생만 하는 경우를 자주 봤거든요.
인생 비박이라고 꼽을 수 있는 곳은 어딘가요?
남해에 호구산이라는 곳이 있어요. 산과 바다, 이름 모를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라 경치가 뛰어나요. 풍경에 감탄하면서 산에 올라 카메라를 꺼냈는데 메모리카드가 없었어요. 유튜브를 막 시작했을 때라 허술했죠. 결국 부랴부랴 하산했다가 다시 산을 올랐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정상까지 가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비박을 해야 했죠. 근데 그 영상이 조회수 400만을 넘기면서 대박을 쳤어요. 비박을 통해 전화위복을 배운 셈이죠. 그래서 그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비박을 즐기는 나만의 요령이 있을까요?
가방 속 짐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걸 추천해요. 보통 처음엔 가방에 각종 도구를 전부 욱여넣고 산에 가거든요. 예를 들면 ‘산 정상에서 별을 바라보며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셔야지’라는 식으로요.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비박의 묘미는 자연과 좀 더 가까워지는 데에 있다고 생각해요. 덜어내는 연습을 통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김순종/지우철/도리산/민미정/박주성/이태윤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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