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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프로듀서이자 아티스트, 마크 론슨과 보낸 오후

힙합부터 록까지, 에이미 와인하우스부터 브루노 마스까지. 마크 론슨은 장르를 막론하고 유명 스타들의 음악을 만든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데마 피게의 앰버서더이자 프런트맨으로서,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한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아티스트였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3.11.08
 
이틀간 그를 지켜보며, 나는 (적어도) 두 명의 마크 론슨을 발견했다. 한 마디를 꺼내면서도 충분히 숙고하고, 그렇게 꺼낸 이야기를 소심할 정도로 천천히 전달하며, 모든 디테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뮤지션. 인생이 음악에 완전히 몰입된 남자. 마크1.
그리고 더블브레스티드 슈트를 입고, 디제잉을 하는 동시에 세계 최고의 소울 및 재즈 뮤지션 9명으로 구성된 밴드를 지휘해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야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Montreux Jazz Festival)의 피날레를 하얗게 불태운 남자. 마크2. ‘마크2’가 무대에서 일으킨 억누를 수 없는 음악의 물결이 ‘마크1’이 머릿속에 그린 음악의 물결과 일치할 때, 그것은 음악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피날레 공연이 열리던 당일 아침, ‘마크1’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얇은 테의 안경에 빛바랜 티셔츠를 입은 그는 결코 48세처럼 보이지 않고 훨씬 젊어 보였다. 몸집보다 다소 큰 소파의 코너에 앉아 있었지만, 그의 존재감은 피지컬과 달리 거대했다. 동시에 집중한 그의 표정에서는 연륜이 느껴졌다.
전날 만찬에서부터 나는 스위스 몽트뢰에 막 도착한 그를 지켜봤다. 그는 메릴 스트립의 딸이자 자신의 아내인 그레이스 거머를 부드럽게 꼭 끌어안기도 하고, 그녀가 안약을 넣는 걸 도와주는 한편, 뮤지션들이 즉흥 연주 세션을 갖는 모습을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 조금 크게 뜬 눈, 동물들이 상황을 살필 때처럼 약간 머리를 기울인 자세, 그리고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내는 시선과 함께. 인터뷰에서도 이런 그의 태도는 이어졌다.
마크 론슨이 촬영 내내 착용한 시계는 36mm 옐로 골드 케이스에 샴페인 다이얼이 장착된 오데마 피게의 골드 로열 오크. 의상 모두 구찌.

마크 론슨이 촬영 내내 착용한 시계는 36mm 옐로 골드 케이스에 샴페인 다이얼이 장착된 오데마 피게의 골드 로열 오크. 의상 모두 구찌.

  
 
무수한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성공을 거둬왔어요. 도대체 어떻게 그 모든 작업이 가능했던 건가요?
20년도 더 전, 니카 코스타(Nikka Costa)의 앨범을 통해 첫 프로듀싱을 했어요. 그 앨범에 묻어났듯, 저는 소울과 재즈, 펑크, 록, 힙합을 좋아합니다. 그중 한 가지만 고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워낙 어릴 때부터 이 모든 장르를 들으며 성장했거든요. 저는 디제잉을 좋아했고, 양아버지는 록 밴드에 몸담고 있었습니다. 온갖 장르를 접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죠. 음악적으로만 보자면 다소 분열적인 시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요. 돌이켜보면 ‘지나치게 멀리 왔나’ 싶은 프로젝트도 있긴 해요. 하지만 장르의 구분을 떠나, 내가 사랑하는 음악의 근간에는 대개 훌륭한 멜로디나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 연주, 그룹, 리듬이 있었어요. 좋은 음악의 공통점이라면, 장르와 상관없이 뛰어난 그루브와 멜로디를 갖고 있다는 것이겠죠. 저는 거기에 집중하고요.
오데마 피게는 몽트뢰 페스티벌의 마지막 밤을 수놓을 주인공이 바로 당신이라고 발표했죠. 당신은 이번 페스티벌을 함께한 밴드를 두고 “여태껏 구성했던 밴드 중 최고의 라인업”이라고 극찬했고요.
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제 커리어 최고의 순간을 경신해준 이들이기도 하고요. ‘최고’라는 표현을 안 쓸 수 없겠죠. 몽트뢰 페스티벌은 그냥 축제가 아니잖아요. 축제를 뛰어넘어, 음악을 기념하는 많은 것을 표상하는 행사입니다. 몽트뢰 페스티벌을 생각하면 아레사 프랭클린, 마일스 데이비스 등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더불어 저를 음악에 빠지게 한 다양한 장르의 음반들이 떠올라요. 그런 페스티벌의 피날레라니, 뭔가 특별한 일을 벌이고 싶었죠. 그렇게 제가 가장 사랑하는 뮤지션들을 데려와 밴드를 구성해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연주를 할 수 있다면, 전에 없던 특별한 밤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겠다 싶었죠. 사실 제가 모은 뮤지션들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이나 브루노 마스의 ‘Uptown Funk’ 등 잘 알려진 작업을 저와 함께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동시에 무대에서 연주를 한 적은 없었습니다. 녹음실에서 딱 한 번 진행했을 뿐이죠. 저로선 정말 특별하고 감동적인 순간이 될 거예요. 완벽한 그들의 연주에 ‘뭐야, 이거 앨범 녹음 현장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것 같고요.(웃음)
특별한 밤을 위한 특별한 밴드인 만큼, 연습 과정도 특별했을 것 같네요.
미친 듯이 연습했어요. 아마 뮤지션들은 저를 죽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웃음) 물론 그들은 5분 만에 새 곡을 익혀 라이브 쇼에서 연주할 수 있는 슈퍼 프로페셔널 뮤지션들이죠. 저는 그들의 수준에 맞춰 그들의 연주가 빛날 수 있게 노력해야 했고요. 우리는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18개의 곡을 연습했어요. 불과 닷새 동안에 말이죠.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일부 무대 세트에서는 밴드가 연주하는 동안 아카펠라 디제잉이 이뤄질 예정이에요. 조금만 잘못하면 연주 자체가 흐트러질 여지도 있지만, 라이브 현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없죠. 위험하지만 재미있을 거예요. 이건 오로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가 생기더라도, 그건 ‘훌륭한 실수’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을 위해 여기 몽트뢰에 온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당신은 오데마 피게에게 브랜드 앰배서더 그 이상의 존재 같아요. 오데마 피게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나 마찬가지죠.
오데마 피게와는 정말 긍정적인 관계죠. 오늘 밤 공연 역시 오데마 피게 없이는 진행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들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진심 어린 후원자입니다. 오데마 피게의 CEO인 프랑수아 앙리 베나미아스 역시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처음 우리가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눴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몽트뢰 페스티벌이었습니다.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공연은 재정적으로 정말 부담이 크거든요. 만약 저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하려면 한 달 가까이 이곳에서 연주를 하고, 공연 애프터 파티마다 디제잉을 하며, 테라스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도 해야 했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오데마 피게 덕분에 공연에 집중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오데마 피게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는 다양했는데, ‘이게 될까’ 싶은 것들을 함께 이뤄가는 재미가 있어요. 특히 오늘 밤은 비주얼 아티스트 다프네 라쥐네스가 제 공연에 함께할 거고, 믿을 수 없는 장면을 연출할 겁니다. 이처럼 오데마 피게와 저는 흥미로운 생각을 현실에 구현하고자 하죠. 우리는 단순히 브랜딩을 위해 만난 게 아니에요. 그나저나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게 오늘 저녁뿐이라는 게 아쉽네요. 분명 멋진 시간이 될 거거든요.
프로듀서로서, 또 가수로서 성과를 거두며 많은 상도 받았죠. 특히 레이디 가가가 부른 ‘Shallow’로는 오스카, 골든글로브 그리고  7개의 그래미를 수상했잖아요. 상과는 별개로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요?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Back to Black’을 통해 받게 된 ‘올해의 프로듀서’ 상을 꼽겠어요. 저는 스스로를 아티스트보다는 프로듀서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신이 올해 최고의 프로듀서였어요’라고 말해준 사람이 있다는 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 작품에서 느껴진 장인정신이나 본질에 관한 것을 짚어준 상이라고 봐요.
의상 모두 구찌.

의상 모두 구찌.

각기 다른 장르와 장점을 가진 스타 뮤지션들을 프로듀싱하고 그들의 곡을 만들어왔죠. 어떻게 매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앨범을 만들 수 있었던 건가요?
그들의 삶과 재능을 이해하고, 그들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해요. 레이디 가가와의 ‘Joanne’ 작업을 예로 들게요. 그녀를 직접 만나기 전, 알려진 그녀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대강의 작업을 머릿속에 구상해두었어요. 하지만 작업 첫날,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만난 후 제 구상은 방향을 틀게 되었죠. 그녀는 제가 이전에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함께한 작업들을 봤기 때문에, 우리가 재즈 음악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그녀가 물어봤거든요. “에이미 와인하우스는 재즈였죠?”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랬죠. 하지만 저는 재즈를 그렇게 잘 알진 못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를 바라봤는데, 데님 반바지와 부츠 그리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더라고요. 마침 우리는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있었고요. 문득 그녀에게서 컨트리 향기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Joanne’의 작업은 방향을 틀었습니다. 처음 구상과 달리, 핑거 피킹에 가까운 어쿠스틱한 곡이 나오게 됐죠. 이처럼 제 안테나는 항상 아티스트가 소화할 수 있는 어떤 바이브라도 포착할 준비가 돼 있어요. 그걸 찾으려고 매번 노력하고요. 모든 변화에 대비하고, 지속적으로 방향을 바꿀 준비가 돼 있어야 하죠. 훌륭한 프로듀서이자 제 친구이기도 한 리처드 러셀은 저에게 항상 이런 얘기를 했어요. “프로듀서는 끊임없이 조화를 이끌어내고, 이를 위한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아티스트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그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사람들은 작사나 편곡을 우선적으로 떠올리지만, 저는 감정적 이해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듣는 건 프로듀서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에요. 프로듀서라면, 기술 그 너머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해요.
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했는데, 그들이 스타가 될 자질이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나요?
휘트니 휴스턴을 발견한 프로듀서 클라이브 데이비스처럼 아티스트의 스타성을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부자가 되었겠죠!(웃음) 그런 능력은 없어요. 다만 아티스트가 이전에 본 적 없는 표현력, 그리고 누구도 닮지 않은 독특한 사운드를 갖고 있음을 포착할 수는 있어요. 물론 그게 감춰진 재능을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혼자서는 원석을 찾더라도 다이아몬드로 다듬지는 못해요. 그 과정에는 본인의 노력이 가장 중요할 거고요. 어쨌든 저는 이제 막 시작한 아티스트, 약간 다듬으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이들과의 작업이 굉장히 즐거워요. 열정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끝없이 찾아낼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참 이상하게도, 내 것임에도 감정이란 존재는 통제가 안 되죠.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가 만드는 음악에 반영이 될 수밖에 없고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우울할 때면 그 감정이 고스란히 음악에 영향을 줘요.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좋아, 이제 멜랑콜리한 노래를 써야 하니까 우울해져야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행복하던 기분이 갑자기 우울해질 수도 없잖아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저라고 매일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진 못해요. 그저 그날의 감정을 열심히 따라갈 뿐이죠.
창의력이 고갈되었다고 느낄 때, 어떤 방식으로 충전하나요?
명상을 하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안 보는 것도 제 나름의 방법이에요. 스튜디오에 있는 동안은 스마트폰을 다른 방에 두려고 해요. 45초에 한 번씩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프로세스에 큰 방해를 주는 일이니까요. 아, 그리고 또 하나. 이게 결정적이에요. 아내와 딸과 함께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재충전에는 가장 큰 도움이 되죠.
의상 모두 구찌.

의상 모두 구찌.

이미 큰 성공을 거뒀는데, 당신의 삶에서 성공은 어떤 의미인가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무도 길에서 저를 쫓아오지 않거든요.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마크, 당신의 음악을 사랑해요!’ 그리고 그냥 갔어요. 저에게 사진을 찍자고 요구하지도 않았고, 그저 제가 만든 작업물에 대한 애정을 알리고 싶어 했던 거죠. 저는 그것이 이상적인 성공의 형태라고 느꼈어요. 수많은 사람과 함께 작업을 해오면서, 일정 수준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익숙해진 과거를 억지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많이 지켜봤죠.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그저 길을 걷는 방식까지 바꿔야 했던 이들도 있어요. 전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아요. 내 가족을 위해서도 좋지 않죠. ‘성공’ 같은 거창한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지금의 상태가 좋아요.
평생을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것 같은데,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세 살 때부터 드럼을 연주하긴 했죠. 본격적으로 영향을 준 건 양아버지였어요. 잘 알려진 대로, 저희 어머니는 밴드 포리너(Foreinger)의 기타리스트였던 믹 존스와 재혼했죠. 양아버지가 된 그는 녹음 스튜디오를 갖고 있었고, 멋진 장비들이 정말 많았어요. 고작 열 살 정도였던 저는 장비 사용법을 거의 몰랐지만, 이리저리 눌러서 조그만 데모를 녹음해보곤 했죠. 재미있었거든요. 그리고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드럼을 친 다음에 거기에 베이스와 키보드를 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실제 시도를 했죠. 굉장히 몰입하던 시기였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을 정도로요. 프로듀싱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그 후의 일이에요. 처음에는 커버를 주로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해 녹음해보는 식으로요. 예를 들어 테렌스 트렌트 다비의 ‘Wishing Well’ 같은 곡들.
정말 아름다운 곡이죠. 저도 자주 들었어요.
정말요? 놀랍네요. 특별한 곡이에요. 재미있는 게, 질문을 받기 전까지 저는 제가 언제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됐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확실히 프로듀서가 되기로 결심했던 건, 음악에 대한 제 열망을 제대로 파악한 뒤였어요. 저는 무대에서 죽이는 록 기타를 연주하고 싶다기보단, 소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즐거웠거든요. 디제잉을 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고요. 콘솔에 앉아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을 제어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양아버지의 작업실에 처음 방문했던 열 살 때, 그때가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결정적 순간이었던 것 같네요.
프로듀서,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살아가게 될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언제였나요?
처음부터 프로듀서로서 성공을 거둔 건 아니었어요. 확신할 수 없던 시기도 분명 있었죠. 그럼에도 저는 음악을 너무나 사랑했어요. 학창 시절에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롤링스톤>에서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어요. 음악에 관해 글을 쓰고 싶은 건지, 음악을 만들고 싶은 건지 스스로도 감이 잘 오지 않았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악기 신동’으로 불린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음악이 내 길이라고 확신하긴 어려웠어요. 16, 17세가 되었을 쯤에야 음악을 만드는 게 내 길이 될 거라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10년 뒤 당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정말로. 그런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없다는 게 늘 아쉬워요. ‘달에서 최초로 라이브 콘서트를 연 가수가 되고 싶어요’ 같은 답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전 그런 목표는 없거든요. 그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지속해왔을 뿐이고, 내가 하는 일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노력할 따름이죠. 음악적으로 도전할 때 저는 행복해져요.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을 느껴요. 그렇기 때문에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계속할 뿐이죠. 그리 큰 야망은 없어요.
 
 
의상 모두 구찌.

의상 모두 구찌.

인터뷰를 마친 뒤, ‘마크1’은 정중하게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뒷모습은 마치 스탠더드 재즈처럼, 가볍고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약간 나른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 나는 피날레 무대 위에 선 프런트맨 ‘마크2’를 마주했다. 그는 “내 이름은 마크 론슨, 우리 곧 다시 만나요!”라고 외치며 관객들과 포옹했다. 무대 위 ‘마크2’와, 낮에 내가 만났던 ‘마크1’은 정말 같은 사람인가? 나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Credit

  • WRITER Massimo Russo
  • PHOTOGRAPHER Caroline Tompkins
  • stylist Antonio Autorino
  • PHOTOGRAPHER’S ASSISTANT Patrick Woodling
  • GROOMING Laila Hayani using Caswell-Massey
  • at Forward Artists
  • PRODUCTION Sabrina Bearzotti Project
  • made in collaboration with Audemars Piguet
  • TRANSLATOR 우정호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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