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Part 2. 뉴 네임, 영 보이스

패션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 젊은 패기로 거대 패션 하우스 사이에서 조금씩 선명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브랜드들이 있다.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생소한, 하지만 앞으로 더 자주 듣게 될, 그래서 지금 기억해두고 싶은 이름 스무 개를 골랐다.

프로필 by ESQUIRE 2023.11.12
 

PDF

▶ 밀라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메니코 포르미케티(Domenico Formichetti)가 올해 초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했다. 포르미스튜디오(Formy Studio)의 설립자이자 스타일리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인플루언서로 이미 이름을 널리 알린 만큼 스트리트와 힙합 신의 이목이 빠르게 집중됐다. 하지만 이 관심이 비단 그의 유명세 때문만은 아니다. 이누이트 부족의 고글에서 영감받은 선글라스와 에어팟 맥스를 닮은 플라스틱 가방, 양쪽에 날개를 단 볼캡, 공격적인 푸퍼 부츠…. 그의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는 프로토타입만 봐도 알 수 있듯 PDF의 디자인에는 고유하고 유별난 캐릭터가 있다. 옷도 마찬가지. 특히 빈티지한 컬러와 텍스처를 구현하는 특유의 워싱 테크닉은 PDF 특유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채롭고 자유분방하고 능청스럽게 젊음을 모사하는 것. 이것은 도메니코 포르미케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색채다.
 

AVAVAV 

▶ ‘보통의 아보카도 피하기(Avoding Avertage Avocados)’. 유별난 브랜드명만큼이나 아바바브가 추구하는 스타일은 전형적이지 않다. 손 모양을 3D로 프린팅한 핑거 슈즈나 킴 카다시안의 엉덩이를 모티브로 만든 실리콘 쇼츠는 이들의 파격적인 발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또 하우스 브랜드의 자투리 원단을 재조합해 선보인 ‘AVAVAV × F*endi × B*rberry × J*cquemus’ 컬렉션처럼 참신한 시도도 있었다. 아바바브의 2023 F/W 컬렉션 역시 인스타그램 피드를 뜨겁게 달궜다. 첫 컬렉션에 부담감을 느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베아테 칼손(Beate Karlsson)은 아예 ‘의도적으로 망친 쇼’를 기획했고, 모델들이 런웨이 위에서 일부러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는 퍼포먼스를 펼쳤기 때문. 반짝이는 글리터와 로라이즈 팬츠, 오버사이즈 스웨트셔츠와 거대한 퍼 부츠 등 Y2K 스타일링이 MZ세대에게 아바바브를 또렷하게 각인시켰다.
 
워시드 레더 재킷 268만원 노페이스 스튜디오 by 샘플라스.

워시드 레더 재킷 268만원 노페이스 스튜디오 by 샘플라스.

NO/FAITH STUDIOS

▶ 루이스 도벨가르텐(Luis Dobbelgarten)은 독일 쾰른 근교의 작은 도시 아이펠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열다섯 살이 되던 2015년, 집 정원에서 프린팅한 몇 장의 티셔츠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노페이스 스튜디오의 시작이었다. 이후 몇 개의 디스트레스드 워싱 데님을 더 선보인 이들은 sns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마침내 켄들 제너, 트레비스 스캇에게까지 선택받으며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펠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폐쇄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하는 태도에 MZ세대는 더 크게 열광했다. 그러나 노페이스 스튜디오를 단순히 SNS가 만든 브랜드로 치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2022년 ‘RAUM 233’ 컬렉션을 기점으로 한층 건축적이고 복잡한 디자인, 실험적인 워싱과 패브릭, 추가된 백과 슈즈 라인 등 완성도 높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틀림없이 즐거운 일이다.
 

SKY HIGH FARM WORKWEAR

▶ 수확물의 100%를 뉴욕 지역 사회와 저소득층에게 전달하며 식량 불안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농장 스카이 하이팜. 전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직원 다프네 세이볼드(Daphne Seybold)와 가고시안 소속 아티스트 댄 콜렌(Dan Colen)은 이 농장의 운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2020년 스카이 하이팜 워크웨어(SHFWW)를 론칭했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도버 스트리트 마켓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3537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이때 제작한 티셔츠를 시작으로 발렌시아가, 컨버스, 디키즈, 데님 티어즈 같은 브랜드와도 협업을 하게 된다. 또 여기에 라이언 맥긴리, 앨리스터 매킴, 무라카미 다카시, 제프 쿤스 같은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합세하며 SHFWW는 순식간에 ‘핫’한 브랜드로 격상한다. 데님 재킷, 셔츠, 워커 부츠, 스웨트셔츠, 볼캡 등 일상적인 아이템이 다양한 협업으로 변주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SOHO YACHT CLUB

▶ 런던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인기는 여전히 뜨겁다. 그런데 팔라스나 템즈 같은 브랜드가 식상해졌다면 다음엔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독창적인 마케팅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코르테즈(Corteiz)도 물론 좋은 대안이지만, 조금씩 떠오르고 있는 소호 요트 클럽 또한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던 엘리스 길버트(Ellis Gilbert)는 2021년 체 샤리프(Che Shariff), 해리 클레멘트(Harry Clements)와 함께 소호 요트 클럽을 시작했다. 레이싱에서 영감받은 코듀로이 캡과 유니폼 형태의 폴로셔츠, 트랙 슈트, 낙천적인 무드의 티셔츠나 후디가 이들의 대표작. 코르테즈와 컬래버레이션한 모자, 나이키와 협업한 첼시 2022/23 시즌 유니폼 등 다른 브랜드와 활발한 교류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중이다. 발매와 동시에 솔드아웃이 되는 일도 부지기수.
 

SS DALEY

▶ 영국 리버풀에서 유년기를 보낸 스티븐 스토키-데일리(Steven Stokey-Daley)는 어릴 적부터 사립학교 교복과 상류 계층의 라이프스타일에 매료됐다고 고백한다. 2020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 이후엔 전통 복식에 위트를 더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디자인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그가 만드는 옷에는 영국 특유의 엘리트 문화와 고전적인 낭만, 연극적인 장치, 문학적인 요소가 빠지지 않는다. 이것이 클래식을 현대적으로 변주하려는 많은 브랜드 사이에서 S.S. 데일리를 유독 특별하게 만드는 지점일 터. 2022년 LVMH 프라이즈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영국의 국민 배우 이언 맥켈런 경이 오프닝 모델로 등장해 화제를 모은 2023 F/W 컬렉션은 선원이었던 증조부와 자신의 퀴어 경험을 한데 엮은 한 편의 성장 드라마다. 파도처럼 밀려드는 31개의 룩을 보고 있으면 그가 그리는 아름다움의 형태가 선연하게 떠오른다.
 

BLEUE BURNHAM

▶ 블루 위컴-번햄(Bleue Wickham-Burnham)이 만든 주얼리 브랜드. 2018년부터 본격적인 컬렉션을 출시했다. 블루 번햄의 주얼리는 핸드 모델링한 왁스 캐스트로 만드는 것이 특징. 모든 공정은 런던에 있는 워크숍에서 수작업으로 진행되는데, 자연과 다양한 문화적 요소에서 영감을 받아 MZ세대가 열광할 만한 컨템퍼러리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또한 리사이클 실버와 9캐럿 골드, 랩 그로운 컬러 스톤을 사용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도 잊지 않는다. 링과 브레이슬릿, 이어링, 네크리스, 브로치와 단추에 이르는 여러 카테고리에서 공통적으로 독특한 양감과 텍스처, 재기 발랄한 디테일이 도드라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구찌, 팜엔젤스 같은 브랜드와도 활발하게 협업하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LU'U DAN

▶ 아내 레아 디클리와 함께 콰이단 에디션스를 이끌던 훙 라(Hung La)는 2022년 브랜드 루단을 론칭했다. 그가 콰이단 에디션스에서 독립한 데는 남성복에 대한 애정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겪으며 베트남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각성했기 때문이다. 또 뉴욕과 런던, 파리를 오가며 경험한 인종, 성별, 종교에 대한 차별 또한 레이블을 설립하는 원동력이 됐다. 루단은 베트남어로 ‘위험한 남자’를 뜻하는데 브랜드 이름처럼 강렬하고 원색적인 컬러, 화려한 프린트와 패턴이 도드라진다.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 찾은 전통 문양과 컬러에 갱스터 무드를 더해 도발적인 비주얼을 선보이며, 이런 방식으로 그동안 과소평가되어 온 동양 남자들의 남성성을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 발렌시아가, 셀린느 등 대형 패션 하우스 경험으로 쌓은 노련미, 뚜렷한 색깔, 명확한 지향점. 최근 루단을 주목하는 것엔 다 이유가 있다.

Credit

  • EDITOR 윤웅희/김유진/성하영/이다은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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