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Part 2. 세계각지에서 보내온 추천 "한국어로 번역되어야 할 올해의 책"
해외에 거주하는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2023년에 당신의 거주국에서 출간된 책 중 한국어로 번역해 내야 할 책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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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 ‘크레딧 스위스’의 몰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추천인 : 김경민 나라 : 스위스 < Zu Hart Am Wind: Warum die Credit Suisse untergehen musste >
더크 쉬츠(Dirk Schutz) 빌란츠(Bilanz)
사람들이 스위스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정도일 것이다. 알프스산맥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자연경관, 명품 시계 그리고 전 세계의 검은 돈이 모여든다고 알려진 은행 산업. 스위스의 은행 산업은 특유의 비밀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2018년 들어서야 다른 나라들의 압박으로 외국인 명의 계좌 정보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정보를 해당 국가에 제공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많은 고액 계좌들이 예금주의 이름을 알지 못한 채로 거래된다. 잔존하는 비밀주의, 혹은 고객에 대한 맹종에 가까운 신뢰는 스위스 은행 전반에 여전히 유령처럼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3년 3월, 큰 사건 사고 없기로 유명한 이 작고 조용한 나라에서 전 세계 금융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스위스에서 두 번째 규모의 은행이자, 세계 9대 규모의 투자 은행이던 크레딧 스위스가 부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웬만한 일에는 동요를 잘 하지 않는 스위스 사람들도 평생 열심히 모은 자산이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많은 사람이 크레딧 스위스에 예치된 돈을 인출하고 주거래 은행을 변경하면서 뱅크런 사태도 벌어졌다. 다행히 정부의 공격적인 구제금융과 최대 은행이던 UBS(스위스연방은행)가 크레딧 스위스를 인수, 합병하면서 파산이라는 최악의 결과는 면했다. 그러나 스위스의 많은 사람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왜 우리의 자랑이던 은행에 이런 부실이 생겼는가?’
책은 이 질문에 답한다. 책은 크레딧 스위스의 설립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투자 은행으로 발돋움하기까지의 과정을 우선 그린다. 크레딧 스위스의 성공은 2007년 크레딧 스위스의 CEO로 취임한 미국인 브래디 더건의 공이 컸다. 리스크 관리에 특히 주력했던 그가 취임한 후로 크레딧 스위스는 UBS와 달리 위험 부동산에 대한 노출을 축소했고, 결과적으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촉발한 2008년 금융위기의 폭풍을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더건의 사임 후, 크레딧 스위스의 몰락은 시작된다. 후임인 티잔 티암(Tidjane Thiam)은 유능했으나 은행업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티암은 리스크 관리를 총괄했던 책임자를 퇴임시키고, 그 권한을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사 3인에게 분할했다. 자연히 은행의 리스크 관리 기능은 부실해졌고, 2015년 말, 유가의 급격한 하락으로 부실 신용 상품들이 거의 가치가 없어지면서 크레딧 스위스는 두 분기 동안 1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새로운 CEO의 해결책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티암은 2018년까지 은행 수익을 2~3배까지 늘리겠다는 다소 비현실적인 목표까지 세우고 내부 구성원들을 채찍질했다. 비용 목표는 각 지역의 리스크 관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크레딧 스위스는 이제 위험에 대한 노출을 세밀하게 평가하고 관리하는 대신에, 수익률 증대를 위해 적극적으로 고객들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결과적으로 크레딧 스위스의 큰 고객이었던 그린실 캐피털이 파산하고, 한국계 빌 황이 이끈 아르케고스 캐피털이 마진콜 사태로 파산하면서 크레딧 스위스는 회복하기 힘든 막대한 손실을 입고 말았다. 책에서는 이후 크레딧 스위스의 비밀계좌 폭로 사태와 잇따른 뱅크런, 마지막 주말 96시간 동안 이뤄진 스위스 정부의 개입 그리고 UBS의 인수까지의 과정이 현장감 있게 이어진다.
이미 크레딧 스위스에 대한 일부 사실들은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회사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떤 위험을 관리하지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졌는지는 알기 어려웠다. 책은 크레딧 스위스 내부에 곪아 있던 문제들을 드러내고, 최종 인수합병 결정이 내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도하여 이 역사적인 금융 스캔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한국 사회에도 코로나19 이후 주식 시장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 금융 시장의 흐름과 주식 투자에 관심을 갖는 독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이 책은 지적인 호기심과 궁금증을 채워줄 뿐 아니라 일종의 교훈도 전해줄 것이다. 위험을 관리하지 않는 투자는 실패로 이어질 뿐이라는 것을. 견제되지 않는 자본과 권력은 결국 공동체에 큰 손실로 돌아온다는 것을. 크레딧 스위스가 그러했듯이.
WHO’S THE WRITER? 김경민은 취리히대학교 신학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정상인 ‘마치스모’를 강타한 이치카와 사오의 데뷔작
추천인 : 요시노 다이치로 나라 : 일본 < ハンチバック >
이치카와 사오(市川 沙央) 분게이슌주(文藝春秋)
“복수하려고 했습니다. 오로지 분노만으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나에게 분노를 안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023년 9월 25일. 일본 문학상의 최고 권위인 제16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식장. 올해 하반기에 낸 소설 <헌치백>으로 이 상을 탄 작가는 전동 휠체어를 탄 만 44세의 이치카와 사오(市川沙央)였다. 진행성 근력 저하가 나타나는 ‘선천성 근육병증’(congenital myopathy)이라는 불치병에 열 살 때부터 시달려온 그녀는 등뼈가 구부러지고 얼굴이 초승달처럼 홀쭉했다. 인공호흡기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그녀는 가녀린 목소리로 수상 연설을 내뱉었다. 500여 명의 관중들이 바싹 긴장했다.
헌치백(hunchback)이란 ‘꼽추’를 뜻한다. 1979년생인 여성 ‘샤카’는 선천성 난병으로 보통의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산다. 부모가 거액의 유산을 남긴 까닭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는 그녀는 취미 삼아 가보지도 않은 유흥업소 체험담을 인터넷 매체에 투고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익명의 계정에 ‘보통의 인간 여자처럼 임신하고 낙태하는 게 내 꿈’이라고 쓴 트윗을 그녀가 사는 시설의 한 30대 남성 간호 직원이 보고 그녀가 쓴 것임을 알아차린다. 샤카는 노골적으로 그녀를 깔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온 그 직원에게 부모의 유산 1억5000만 엔을 대가로 ‘낙태하기 위해’ 자신을 임신시킬 것을 제안한다.
아마 디테일엔 지어낸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인공 샤카를 이치카와 작가의 자화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소설은 ‘마치스모’(machismo)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하다. ‘남성우월주의’로도 해석되는 이 단어를 그녀는 ‘정상인 우월주의’로 쓴다. “어떻게 하면 나는 걔들처럼 될 수 있어? 애가 생기고, 낙태하고, 헤어지고, 다시 붙고, 생기고, 낳고, 헤어지고, 붙고, 낳고. 그런 인생을 흉내라도 내고 싶다.” ”박물관이나 도서관이나 보존된 역사적 건조물이 나는 싫다. 완성된 모습으로 거기에 오래 있는 낡은 것이 싫다. 허물어지지 않고 낡아가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들이 싫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나의 신체는 일그러지고 허물어져 간다. 죽음을 향해 허물어져 가는 게 아니다. 살아가기 위해 허물어진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런 표현 하나하나가 정상인인 독자의 뒤통수를 강타한다. 아니, 나는 이렇게 힘겹게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는데, 너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 너에게 다양성 따위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을까?
소설의 결말은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안겨주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럼에도 독후의 감상이 상쾌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중증장애인의 생과 성에 대한 욕구를 적나라하게 다루면서 정상인의 ‘무지와 오만’을 망설임 없이 찌르기 때문이다. “‘문학의 보편성을 죽였다’거나 ‘아쿠타가와상을 욕보였다’거나 ‘문학을 자칭하지 말라’는 여러 가지 욕을 들었다”라고 이치카와 작가는 스스로 밝혔다. 이 소설이 문학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내용에 대해 논란이 많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아침 출근 시간에 장애인들이 하는 시위에 정치인이 거친 말을 내뱉고, 온라인상에서 시비(그것도 압도적인 ‘비’)가 시끄럽게 일곤 하는 한국에서도 이 소설이 번역되면 상당한 논란이 있지 않을까?
이치카와 작가가 그런 마치스모 중에도 가장 큰 소리로 호소하는 것이 ‘독서 무장애화’(독서 barrier-free)다. 작가의 분신인 샤카는 소설에서 외친다. “나는 종이책을 미워했다. 눈이 보인다는 것, 책을 손에 들 수 있다는 것, 책장을 넘길 수 있다는 것,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갈 수 있다는 것…. 그 특권을 깨닫지 못하는 ‘책벌레’들의 무지한 오만을 미워했다.” ”종이의 향기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 안에서(일본의 경우 책장을 오른쪽으로 넘긴다) 줄어들어 가는 남은 책장의 긴장감이, 이런 문화적인 향기가 나는 말들의 연기만 내면 되는 정상인은 고민이 없어서 참 좋겠다.” 누군가가 남긴 문화적 유산을 접하고 지식과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욕구는 장애인에게도 있다. 전자책이 큰 도움이 될 수 있겠으나 일본의 출판계는 도서의 전자화에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치카와 작가 같은 존재가 아예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도 문제지만, 저작권 침해를 우려하거나 온라인 정보를 낫게 보는 지식인 특유의 고정관념 탓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독서 무장애화’라는 말이 화제가 된 후 전자판을 내기 시작하는 문학 잡지가 조금씩 나타난 것이 그나마 ‘수상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20대부터 끝이 없는 치료 생활을 하면서 소설가가 되기를 목표로 한 이치카와 사오에게 문학의 길은 가시밭길이었고 무려 20여 년 동안 여러 문학상 낙선을 되풀이해야 했다. 수상식에서 이치카와 작가는 이렇게 연설을 맺었다. “하지만 이렇게 여러분과 같이 있으며, 복수는 허무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전 어리석고 천박했습니다. 분노의 작가에서 사랑의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끝까지 수상의 기쁨이나 웃음이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소를 보이지 않은 것인지 보이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만큼 부족한 것이 나의 이해다. 이 작가가 진정한 ‘사랑의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그녀의 몫이 아니다. 우리의 몫이다.
*요시노 다이치로가 글을 보내온 후 <헌치백>의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WHO’S THE WRITER? 요시노 다이치로는 1997년 아사히 신문에 입사해 국제부와 사회부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현재는 아사히신문사 산하의 라이프스타일 인터넷 매체 ‘KOSHO-KOJITSU’의 부편집장이다.

소통의 수단인 언어는 어떻게 폭력의 수단으로 변모하는가
추천인 : 김정하 나라 : 스페인 < Historia de mi lengua>
클라우디아 아파블라사(Claudia Apablaza) 코미수라(Comisura)
언젠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마드리드 출신의 친구와 대화하던 중 ‘나비넥타이’를 말할 일이 생겼다. 나는 사전 검색 결과에 따라 ‘Corbata de lazo(코르바타 데 라쏘)’라는 스페인어 단어를 사용해 설명을 했다. 친구는 내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스페인에서는 ‘Corbata de lazo’가 아니라 ‘Pajarita(파하리타)’라고 해.”
한동안 친구와 나눈 이 대화를 자주 생각했다. 물론 친구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내 스페인어를 교정해준 것은 아니겠지만, 다 알아들었는데 굳이 내 말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뒤 학과 교수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에게 친구와 있었던 일을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교수님은 스페인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와 중남미 국가들에서 사용하는 스페인어 사이의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면담을 마칠 무렵 그는 나에게 “킴, 스페인에 살면서 너와 비슷한 경험을 한 라티노들에게 큰 영감을 준 책이 하나 있어. 읽어볼래?”라면서 클라우디아 아파블라사의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칠레에서 태어나 스페인 마드리드로 이주한 작가가 스페인어에 대한 기억들을 모아 낸 이 책은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는 아니다. 그러나 스페인으로 이민 온 많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공감을 산 책이다. 왜냐하면 책을 통해 그녀가 스페인에서 경험한 스페인식 스페인어와 라틴아메리카식 스페인어의 차이를 말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차이 때문에 경험한 폭력들을 날카로우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서술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화는 스페인 학교에 다니던 멕시코 출신 아이가 C, S, Z 발음 사이의 차이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그 아이를 무려 ‘언어 치료사’에게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 스페인어에 비해 스페인식 스페인어는 C, S, Z 발음이 강한 편이다. 유튜브에는 실제로 이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나오는 영상도 많다. 스페인식 스페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데도 ‘개선 대상’으로 분류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점이다. ‘개선 대상’으로 여겨지는 동안 스페인에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점차 자신의 언어, 문화 대신 스페인의 언어와 문화를 택하게 된다. 외부 압력에 의해 스스로를 잃어가는 셈이다. 더욱 서글픈 것은 내재화된 외부 압력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인들이 자신만의 고유의 것을 스스로 앞장서 지워나간다는 것이다. 작가도 스페인에 이주하고 난 뒤 먼저 한 일이 칠레식 스페인어를 ‘중성화’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에 남은 칠레식 스페인어를 그녀의 딸이 매번 지적했다. “엄마, 스페인에서는 차를 Auto(아우토)가 아니라 Coche(코체)라고 부른다니까?”
책에서 작가는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만 여겨졌던 언어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성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학계, 출판업계, 남녀 사이에서 언어가 어떻게 폭력의 수단으로 변하는지를 설명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특성으로 만들어지는 억압 때문에 점점 더 ‘획일화’되어 가는 언어와 우리의 삶을 꼬집는다. 그녀는 칠레의 스페인어처럼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이들의 언어가 침묵을 강요받고 결국에는 사라지는 현실 앞에서 슬퍼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의 언어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언어를 몸에서 지우지 말고 오히려 세상으로 내뱉자는 선언으로 읽을 수 있다.
클라우디아 아파블라사는 책을 통해 다수가 정해놓은 기준보다는 스스로의 기준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이민자, 여성 그리고 작가라는 소수의 정체성을 모두 소유한 작가는 ‘조금 달라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말을 해!’라는 위로를 전한다. 이런 위로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한국 사회의 개인에게 유효하지 않을까. 이러한 이유로 언젠가 이 책이 번역되어 한국의 독자를 만나길 바란다. 아! 참고로 글의 제목에 있는 ‘lengua(렝구아)’는 ‘혀’라는 뜻도 있지만 ‘언어’라는 뜻도 있는 스페인어다.
WHO’S THE WRITER? 김정하는 마드리드 콤플루텐세대학교에서 히스패닉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용기와 응원이 될 수 있는 솔직하고 과감한 자기 고백
추천인 : 손준배 나라 : 브라질 < Trinta segundos sem pensar no medo: Memorias de um leitor >
페드로 파치피코(Pedro Pacifico) 인트린세카(Intrinseca)
한국인 부모님을 두었지만, 나는 브라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브라질 국적을 택한 100% 브라질 사람이다. 한국의 친척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브라질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을 엿듣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브라질은 성적인 면에서 개방적이다’는 것이다. 한국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극의 절반이 다 지나갈 동안 겨우 손만 잡는 K-드라마와 시작하자마자 강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브라질 드라마를 비교해보면 그런 생각이 이해가 가기는 한다. 그러나 성소수자 관련 인식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가톨릭이 주류 종교인 국가라 보수적인 부분도 있고, 아직도 ‘남자는 남자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반적인 인식인 만큼, 성소수자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스스로를 부정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개방적이라고 생각하는 브라질이 이 정도면, 아마 한국은 성소수자들에게 더욱 쉽지 않은 나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 페드로 파치피코(Pedro Pacifico)는 상파울루의 변호사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인스타그램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현재는 팔로워가 50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다. 그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은 데에는 어떤 현상에 대한 통찰력이나 뛰어난 글솜씨도 한몫했으나, 스마트폰 시대 이후 독서와 다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스마트폰이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사람들은 독서와 멀어졌다. 책을 읽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확실히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과 스마트폰을 통해 글을 읽는 것은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책을 읽고는 싶지만 어떤 책으로 시작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페드로가 전하는 간결하고 재미있는 큐레이션은 큰 도움을 줬다. 신문이나 잡지 등을 통해 긴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던 젊은 세대를 다시 서점으로 불러들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책은 페드로가 직접 쓴 첫 책이다. 워낙 호감도 높은 인플루언서였던 만큼 여러 브라질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지만, 그저 인플루언서라는 것이 높은 판매량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페드로는 책을 통해 자신이 정체성을 깨달은 과정과 그 시간들 사이에 마음의 병 그리고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독서의 힘에 대해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사회가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그는 진짜 자신을 숨긴 채 생활해야만 했다. 무려 스물일곱 살 때까지 말이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성애자의 모습을 연기하는 동안, 부모나 여자 친구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세상에 나설 용기를 준 건 세상의 다른 책이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이상적인 삶의 모델에 스스로를 끼워 맞춰야 하는 사회적 압력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지, 그리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부터 레모니 스니켓까지 문학은 어떻게 병든 마음을 치유했는지, 책과 글이 어떻게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하고 세상과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연결된다. 무거운 주제지만 그는 가벼운 문체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 책을 내려놓기 힘들게 한다.
이처럼 게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보여준 것이 이 책의 인기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질에서도 이 책에 ‘별점 테러’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아마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다면 그런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과 이를 극복해낸 과정을 용기 있게 담아낸 책을 통해 - 페드로와 마찬가지로 - 누군가는 마음의 병을 치료할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책이 한국에서도 읽히길 바란다. 각 장마다 페드로가 자신의 이야기와 엮어 소개하는 문학가들을 알게 되는 재미도 쏠쏠할 테고 말이다.
WHO’S THE WRITER? 손준배는 브라질 FEI(Fundação Educacional Inaciana)대학교 학생이다.

교육 붕괴의 처참한 현실 이면에서 우리가 놓치는 것은 무엇인가
추천인 : 이도형 나라 : 대만 < 那些少女沒有抵達 >
우샤오러(吳曉樂) 미러 픽션(鏡文學)
교사 일을 하는 친구가 있다. 고등학생을 가르친다. 얼마 전에는 이번 학기에 유달리 두 번이나 민원이 들어왔다고 하소연을 했다. 휴대폰 사용과 수거 방법에 대해 불만을 품은 학생이 제기한 민원일 거라고 의심한다. 친구는 민원이 접수된 후 교무 담당 선생님과 협의를 하고, 다른 반에서는 어떻게 운영하는지를 물어보며 주어진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온당한 조치가 갑자기 교사의 잘못된 행정 처리의 가능성은 없었는지, 목적은 합당했는지 같은 문제를 논하는 다른 국면으로 전환된다. 분명 친구는 온갖 감정에 휘둘렸을 것이다. 교사의 존엄은 간데없이 상처 가득한 노동의 피로감이 밀려왔을 것이다. 내 친구의 실제 이야기지만 소설 <那些少女沒有抵達>(소녀들은 도착하지 않았다)의 주인공 우이광이 겪는 이야기와도 매우 닮았다.
한국의 교사들이 겪는 이야기와 지나치게 비슷하지 않은가? 굳이 2023년의 대만 교육 현실의 이야기일 필요도 없다. 나 스스로에게도 있었던 일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에, 교편을 잡기 시작한 동기들이 여럿 있었다. 바로 회사에 들어갈까? 따놓은 교사 자격증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할까?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당장의 진로는 잡았지만 여전히 교직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던 나에게 동기들은 여러 사례들을 거론하며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육 현장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시큼한 조언을 해주었더랬다.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임에도, 그때 동기들과 얘기를 나누던 그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이 처한 교육 붕괴 상황은 대만의 교육 환경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된다.
대만 작가 우샤오러는 신작에서 교사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지금의 선생님은 힘들다. 직업이 주는 책임은 물밀듯이 밀려드는데 학생들이 이 일로 민원을 제기하지는 않을지 걱정해야 한다.” “요즘 시대의 교사가 한 마디 말실수로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나다. (…)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지.”
시대적 통찰과 사회적 필요라는 과업을 이행하기 위해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설령 세상이 교사라는 직업에 높은 수준의 윤리적 책임을 부여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현재를 살아가는 교사 스스로가 그 직업을 선택할 때 그것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우이광은 학생 시절부터 교사가 된 지금까지 이어지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지닌 채로 아이들 앞에 서 있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 위로 새로운 현안들이 쌓여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가르치던 학생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단순한 교육 붕괴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교육 붕괴와 부모들로부터 내몰리는 교사의 처지 이면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우샤오러는 2014년 <네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에서부터 줄곧 교육 문제와 여성을 둘러싼 다소 민감한 이슈들을 주로 다뤄왔다. 작가가 첫 책을 낸 지 10년이 되었다. 한국에는 <우리에겐 비밀이 없다>와 <상류아이> 두 권이 출간되어 있다. 작가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소설의 맥락이 될 스토리의 감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학생들의 인스타를 수년간 따라다녔다고 한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아파하며 그리고 자주 소셜미디어 본연의 속성을 닮아 허영이 드러나는 학생들의 소통 모습을 진지하게 관찰했다. 작가는 한때 소녀들의 나이였던 자신과도 마주했을 것이다. “요 몇 년, 줄곧 생각해본다.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너희가 집에서 학교로 와, 공부하는 것 말고 내가 너희를 도와 무엇을 완성시킬 수 있을지.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이 인용문이 우샤오러의 말처럼 읽히는 이유다.
우샤오러는 우리가 사회 현안을 대하는 태도와 책임에 대해 실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전작 <우리에게 비밀은 없다> 말미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기사를 보면 무릎반사처럼 꼬리를 꺼내 들고 당사자들에게 붙이려 한다. 이럴 때 문학이 대중에게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올해 한국 사회는 교육 현장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소식들을 견뎌내고 있다. 한 교사가 아이들의 부모에게 악성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로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내다 결국 목숨을 끊었다. 그릇된 판단으로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옹호하는 부모들, 자신들의 아이가 그런 일을 했을 리 없다고 우기는 사람들, 자신의 아이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고 호소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며, 우려와 불안이 쌓여간다. 작가는 “실수나 실패를 기준으로 우리는 진정한 인격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사건들을 통해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지만, 그것은 점점 더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첨예한 다짐으로 바뀌어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우리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그렇게 세상이 실수를 더해가는 와중에도 학생들은 자꾸만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다. 계단 수가 몇 개 남지 않았다. 책의 표지처럼.
WHO’S THE WRITER? 이도형은 대만에 거주하며 광고회사 미디어랩에서 콘텐츠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오성윤/김현유
- PHOTOGRAPHER 정우영
- TRANSLATOR 이원열(프랑스/태국/영국)/우정호(이탈리아)
- ART DESIGNER 주정화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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