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코헤이 나와의 우주와 시간의 감각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자신의 전시 <Cosmic Sensibility>를 위해 서울을 찾은 코헤이 나와는 ‘자신은 그저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체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코헤이의 우주를 독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3.12.28
 
코헤이 나와가 손으로 집은 ‘PixCell-Perfume Bottle/Medicine Bottle/Murex/Stand’의 약병은 다이쇼 시대의 것이다.

코헤이 나와가 손으로 집은 ‘PixCell-Perfume Bottle/Medicine Bottle/Murex/Stand’의 약병은 다이쇼 시대의 것이다.

<픽셀>(‘PixCells’, pixels+cells)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20년 동안 꾸준히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 중에도 특히 코헤이 나와의 사슴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드물 거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설득력 있는 작품으로 남은 픽셀 시리즈의 저력은 뭘까요?
조각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조각의 역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어요. 인류는 거의 시초부터 조각을 하기 시작했죠. 고대의 조각이 있었고, 중세의 조각이 있었고, 종교와, 건축, 회화의 영향을 받은 시기도 있었죠. 매 시기 조각은 시대의 영향을 받았는데,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조각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새로운 조각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때 생각한 제 새로운 조각이 바로 픽셀 시리즈고요.
10년 전엔가 한국을 찾았을 때는 픽셀 시리즈에 대해 설명하면서 ‘존재해서 인지하는 게 아니라 인지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로 그 작품을 설명했어요.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우리는 픽셀 시리즈 안에 있는 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세히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거든요. 그런 존재론적 의문이 작품을 만드는 내적인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도 계속해서 아주 왕성하게 다른 새로운 연작들을 내고 있는데요, 새로운 동력들이 계속 생기나요?
어릴 때부터 가만히 있어도 예술에 대한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내적인 충동이 계속 마음속에 일었어요. 그런 충동이 여전하고 그것들이 계기가 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첫 픽셀 시리즈의 작품은 할머님의 귤이었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그 귤이 색깔도 변했고, 실체가 거의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픽셀 안에 들어 있는 본체가 변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영감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귤 다음에 픽셀 시리즈로 만든 것 중 하나가 양배추였어요. 박사과정 때였죠. 그때쯤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이 상용화되었죠. 전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현상을 할 만큼 사진을 좋아해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자마자 샀어요.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그 시대의 카메라들은 화소수가 형편없었어요. 그 디지털 카메라로 실제로 썩어가는 양배추를 찍은 사진과, 양배추를 픽셀로 만든 것을 대조하는 걸로 박사 논문을 썼지요.
아! 당시의 카메라는 화소수가 적으니 실제로 썩어가는 양배추를 찍어서 확대하면 코헤이 씨의 연작인 <픽셀>처럼 화면이 깨지겠군요.
맞아요. 전 사람들이 이미지라는 걸 디지털화해 저장하고 자신이 소유하려는 시대가 온 것에 대해 정말 큰 흥미를 느꼈어요. 제 연작 <픽셀> 자체는 대상이 되는 걸 저장하면서 그것을 ‘구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투명한 구슬들로 이뤄진 형태가 대상이 가진 이미지를 보존해주는 것이지요. 그 양상이 눈에 보이는 것을 디지털 화소로 찍어서 이미지화하고 이를 저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아…. 정말 절묘하네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합적으로 맞아떨어지는군요.
전 제 작품 <픽셀>이 실질적인 ‘메시지 인 더 보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영화 <쥬라기공원> 시리즈의 시작은 호박 안에 있는 수천만 년 전의 모기가 흡수한 공룡의 DNA로 공룡을 되살린다는 것이었죠. 제 작품 중에는 중고 장터에서 구입한 박제 등을 투명 구슬 안에 넣은 것들이 있어요. 실제로 그 안에는 동물의 털이나 뼈 등이 들어 있죠. 그리고 저는 그것들을 ‘픽셀화’해 저장해두었고요. 혹시 몇만 년 후에 지구의 생물들이 사라지더라도, 픽셀화된 그 외형 안에는 실제 DNA까지 들어 있으니 이런 동물이 존재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정보화 시대의 시작을 이렇게 픽셀로 저장해 기념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PixCell-Boombox’(2023) 전시 전경.

‘PixCell-Boombox’(2023) 전시 전경.

픽셀의 경향을 보면 안에 있는 대상이 유기물에서 무기물로 바뀌어 간다는 인상이 있습니다. 최근의 연작들을 보면 오래된 붐박스나 텔레비전 등이 있지요.  
지금과 같은 물류 시대에는 물질이 넘쳐나요. 제가 중고 장터를 기웃거리는 이유입니다. 필요 없어진 물건들, 소장자가 사망해 이 세상을 떠돌게 된 물건들이 인터넷에 나오거나 벼룩시장에 올라오죠. 제게는 그 과정이 목적 없이 바다를 떠도는 표류와 비슷하다고 여겼어요. 강이나 바다 위에 떠오른 표류물들인 셈이죠. 전 그런 것들을 주워서 보존해요. 아까 유기물들이 뭔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얘기한 것처럼 무기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유적을 발굴해보면 그 안에 그릇도 있고, 테이블도 있어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픽셀로 보존된 제 작품을 보면서 당시에 어떤 사물들이 존재했고, 작가인 코헤이 나와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궁금해하며 흥미를 갖게 되겠죠.
이번 픽셀 신작들 중 붐박스나 텔레비전 등을 보면 과거를 향한 개인의 향수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렇지는 않아요. 전 제 자신을 작품에 표현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매체일 뿐 제 자체를 작품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요. 전 이전의 시대와 지금의 이 시대 그리고 이후의 시대를 이어가는 존재로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Cosmic Sensibility>의 1층에 전시된 픽셀 작품을 보면 약병 하나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데, 그 약병은 다이쇼 시대의 것입니다.
<픽셀>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요?
전 원래 타로점을 보는 편은 아닌데, 올해 초에는 타로점 보는 분을 스튜디오로 불러 점을 보고 당시의 모든 상황을 픽셀로 저장했어요. 사물이 아니라 상황을 저장하면 그 상황에 쓰인 사물들에서 관계성이 생겨나죠.
이번에 픽셀화된 코요테 작품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요. <픽셀>로 만든 시리즈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픽셀>처럼 만든 사슴인데 그 안에 사슴 박제가 없는 거죠.
이미 그런 시리즈가 있어요. ‘트랜스’ 시리즈라고 해서 3D로 스캔하고 그 스캔 모양대로 조금 더 자유로운 형태를 만든 시리즈죠. 안에 박제나 사물이 들어 있지 않아요. 지금 오사카에서 공공예술의 일환으로 하는 프로젝트 중에는 한 미술 대학생을 아이폰으로 3D 스캔하고 그걸로 ‘트랜스’ 시리즈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이폰으로 3D 스캔이 가능하군요.
예, 하면 됩니다. 저와 함께 일하는 영화 스튜디오에는 그런 여러 장비나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이 있어요. 아키텍처도 있고, 디자이너도 있고, AR, VR 등을 다루는 전문가들도 다 있어요. 2주 전에도 오카다 준이치(자니스 사무소 ‘V6’의 멤버)라는 일본의 유명 배우를 95대의 카메라로 스캔했죠.(그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오카다 준이치를 스캔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엄청난데요? 여러 컷들의 의상도 다 다르군요. 그걸로 어떤 작품을 만들 예정인가요?
어떻게 할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오카다 준이치 씨와는 친구라 일단 뭐라도 재밌는 걸 할 수 있을까 싶어 찍어둔 거죠. 아이폰으로는 이렇게까지 리얼하게는 못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Spark’ 연작의 전시 전경, <Kohei Nawa: Cosmic Sensibility>, 2023년 11월 22일~2024년 1월 6일까지, 페이스 갤러리 서울.

‘Spark’ 연작의 전시 전경, <Kohei Nawa: Cosmic Sensibility>, 2023년 11월 22일~2024년 1월 6일까지, 페이스 갤러리 서울.

이번 신작인 ‘스파크’의 설명에는 ‘세포의 운동이 발생하는 에너지가 만들어내는 현재 상태의 균열’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보면 볼수록 빅뱅이라든지 슈퍼노바라든지 우주적인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스파크’는 중력과의 싸움이라는 조각의 역사에 반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마치 무중력 공간에 있는 것 같잖아요. 빅뱅도 초신성도 중력이 왜곡되는 시공간이기도 하고요.
우주론에 대해서는 저 역시 관심이 엄청 많아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간이 어떤 우주적 원리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따라 사실을 해석하곤 하죠. 그런데 누군가가 그 원리에서 벗어나는 현상을 관측하면, 결국 그 원리는 수정돼요. 그런 단계가 수없이 반복되며 지금의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래서 결론은 우리는 우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겁니다. 블랙홀에 관한 이론이 있고, 또 관측되었다고들 말하지만, 실제 블랙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전 모르는 세계에 큰 매력을 느낍니다. 결국 인간의 지성이 이 미지의 세계를 어디까지 해명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많거든요. 다시 ‘스파크’로 돌아오면, 저는 이게 평면이 아닌 멀티버스적인 공간에서 밖에서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 힘으로 생각했어요. 우리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힘인 셈이죠. 그런데 그 반대편의 멀티버스에서 보면 스파크는 뭔가가 폭발할 때 발산되는 에너지의 힘이기도 하지요. 여러 개의 멀티버스에서 서로 다른 중력으로 터지는 어떤 현상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이게 발산이기도 하지만 수렴이기도 하다는 거죠?
그렇죠. 결국에는 양쪽의 우주에서 다 보이는 거니까요.
바이오 매트릭스는 유체 아래에 그리드가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체가 순환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치 세포벽 같은 그리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코헤이 씨가 기자 회견장에서 바이오매트릭스의 유체를 막대기로 흐트러뜨려서 그걸 보여주기도 했고요.
맞아요. 네모난 그리드는 그려져 있는 게 아니라 같은 압력으로 순환하는 유체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문양이죠. 결국엔 그 자체가 셀 하나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인각 객체의 순환 상태랑 똑같아요. 각 셀들이 호흡을 하고 있는 모습인 셈이죠. 예를 들어 한 객체의 식물을 생각해보세요. 태양의 빛과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광합성을 하며 산소를 뿜어내고 그 산소로 호흡한 동물들이 배출한 유기물을 양분 삼아 성장하죠. 크게 보면 하나의 식물도 순환하고 신진대사를 하는 하나의 셀인 셈이에요. 우리 피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요. 피부의 세포 하나도 흡수하고 호흡하고 배출하고 분열하고 죽고 또 다른 셀이 생겨나며 순환하죠. 생각해보면 우리 몸의 세포들은 일정 주기마다 몸의 모든 세포를 갈아치우며 항상성을 유지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억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동일하게 인식하죠. 물질적으로 보면 모든 게 바뀌었는데도 말이죠. 그게 정말 대단해요.
종종 하나의 세포 안에 우주가 있다는 얘기를 하죠. 반대로 인간 역시 우주의 범위에서 보면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하고요.
태초의 우주를 상상해보면, 생명을 가진 세포 하나가 이 우주에 생성됐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죠. 인간이, 또 우리가 태어날 운명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 자체로 정말 흥미롭고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코헤이 나와의 설치 작품 <Biomatrix>는 마치 타일처럼 고른 격자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는 순환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일 뿐이다.

코헤이 나와의 설치 작품 <Biomatrix>는 마치 타일처럼 고른 격자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는 순환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일 뿐이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PHOTOGRAPHER 이현준
  • PHOTO 김상태/Courtesy Pace Gallery(전시 전경)
  • ART DESIGNER 주정화

MOST LIKED ART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