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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세는 싱글 몰트 위스키

저마다의 기준을 넘어 확고한 기준을 제시하는 페르노리카의 싱글 몰트 위스키.

프로필 by 김장군 2024.01.26
 
지금 싱글 몰트 위스키의 인기는 의심할 여지 없는 하나의 현상이다. 일찍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찬양한 바 있다. ‘싱글 몰트 위스키를 코앞에 두고 블렌디드 위스키를 마신다는 건,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 텔레비전 재방송을 트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국내에도 하루키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원하는 보틀을 여름이건 겨울이건 줄을 서야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품귀 현상으로 인해 애타게 찾아 헤매야 하는 것도, 모두 다 싱글 몰트 때문이다.
보리에 싹을 틔워 만든 맥아, 즉 몰트를 원료로 사용해 단일 증류소에서 만든 위스키를 ‘싱글 몰트’라 부른다. 다른 곡물을 넣지 않고 오직 몰트만 사용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같은 재료를 써서 같은 방식으로 제조하면 맛도 같아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싱글 몰트는 같은 재료와 방식임에도 증류소와 브랜드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이치를 깨는 예상 밖의 즐거움, 싱글 몰트 위스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이유다. 맛을 크게 좌우하는 것은 오크통이다. 투명한 위스키 원액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건 이 안에서의 숙성 과정 때문이다. 오크통이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며 위스키의 맛과 향, 색을 변화시킨다. 생산 지역에 따라 위스키 풍미가 결정되는 만큼 자연환경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위스키는 ‘아버지들의 술’이었다. 아버지가 거실 진열장에 소중하게 간직하다 특별한 날 조심스레 꺼내 홀짝이던 비싼 술은 대개 위스키였다. 중장년층이 퇴근 후 술집에서 즐겨 마시던 ‘양주’가 위스키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청년의 술’이 가성비 좋고 가볍게 많이 마실 수 있는 소주와 맥주라면, 비싼 가격과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도수의 위스키는 ‘장년의 술’ 그 자체였다.
드라마틱한 변화가 시작된 건 코로나19 때다. 2020년 1월 이후 우리는 ‘혼술’과 ‘홈술’에 익숙해졌다. 여럿이 모이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홀로 급하게 많이 마시긴 어려워졌다. ‘술은 들이붓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며 음주 문화가 바뀌었다. 위스키에 토닉 워터와 레몬을 넣어 마시는 하이볼, 얼음과 물을 섞어 마시는 온더록과 워터드롭 등 술의 풍미를 다채롭게 즐기는 방식이 트렌드가 되었다. 획일적인 와인 보틀의 형태와 달리, 브랜드마다 고유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은 위스키 보틀은 수집 욕구도 불러일으켰다. ‘개성 있는 술’을 찾아 헤매는 MZ세대는 ‘아버지들의 술’이었던 블렌디드 위스키와 다르게 맛과 향이 독특하며 히스토리까지 갖춘 싱글 몰트에 꽂혔다.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른 유행을 좇는 MZ세대의 마음을 저격한 것이다. 핵심은 ‘취향의 다양성’이었다. 낯설고 새로우며 생산량이 적은 술, 저마다의 취향과 기준을 뛰어넘어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기준이 되는 술. 다시 말해 특수성과 희소성을 갖춘 술이 바로 싱글 몰트 위스키인 셈이다.
싱글 몰트 시장의 성장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주류수입협회에 따르면 2021년 12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싱글 몰트 위스키의 판매실적이 무려 56%나 성장했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 배경에는 유통 채널의 확대가 있었다. GS편의점 기준 싱글 몰트 위스키 매출이 전년 대비 71% 증가한 것이다. 수치가 아닌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는 사례도 많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품절 대란과 ‘오픈런’이 그 예다. 2023년 여름 세븐일레븐에서는 공정 과정이 까다롭고 생산량이 적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한정 판매해 개점 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 싱글몰트 위스키는 현상을 넘어 대한민국 술 문화를 다시 쓰는 중이다.

BALLANTINE’S GLENBURGIE 12

200년간 감춰둔 비밀, ‘싱글 몰트 글렌버기’ 발렌타인은 블렌디드 위스키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가 알던 블렌디드 위스키는 재료가 되는 여러 위스키를 섞어 먹기 편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발렌타인은 오랜 세월 블렌딩 레시피를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약 50개의 싱글 몰트 위스키와 5개의 그레인 위스키를 원료로 품질을 유지해왔으나 ‘어떤 원료’인지, 즉 어떤 증류소의 원액을 사용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비밀이 많았던 발렌타인이 2017년, 싱글 몰트 위스키 라인업을 발표했다. 글렌버기 15년이 그것이다. 블렌디드 위스키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회사에서 갑자기 싱글 몰트 위스키라니. 회사 창립 200년 만에 벌어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글렌버기 12년, 18년이 라인업에 추가되며 완전한 시리즈를 이루게 되었다. 위스키 풍미의 핵심을 책임지는 ‘키 몰트’라고 공개한 싱글 몰트 위스키가 바로 ‘발렌타인 글렌버기’ 라인이다. ‘이대로 숨겨두기엔 너무 좋아서’ 모두에게 소개한다는 고백도 곁들였다.
무엇이 발렌타인 위스키의 핵심이었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종류의 위스키를 생산하는 스코틀랜드의 스페이사이드 지역이자 위스키 애호가들의 성지인 이곳에 글렌버기 증류소가 있다. 1810년 설립되어 발렌타인 블렌딩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발렌타인이 역사상 최초의 12년산 싱글 몰트 제작을 글렌버기로 결정한 배경이기도 하다. 글렌버기 12년은 싱글 몰트 라인업 중 처음 접하기 좋고, 무엇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엔트리급 위스키다. 이를 통해 싱글 몰트 위스키 맛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쉽고, 편안하며 부드러울 것. 그래서인지 첫눈에도 산뜻함이 느껴진다. 아메리칸 오크통 숙성이 더해져 투명하고 가벼운 인상을 준다.
글렌버기 12년은 마시기도 쉽다. 위스키 잔을 가볍게 흔들어 코 밑으로 가져가면, 잘 익은 사과 향이 먼저 느껴진다. 상큼하고 달큰한 향이다. 입안으로 부드럽게 흘러 넘기면 풍부한 바닐라 향과 과하지 않은 스파이시함이 남는다. 사과, 자두, 잘 익은 포도와 꿀의 맛이 차례차례 지나가고 나면 바닐라가 거세게 다가온다. 풍부한 향이 코와 입, 목구멍을 가득 채우며 피니시까지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위스키 그 자체로도 균형이 완벽하지만, 하이볼을 통해서도 여전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달콤한 과일 향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덕에 매운 음식은 물론 해산물이나 고기, 채소 요리, 디저트와도 궁합이 좋다.
‘발렌타인’이라는 브랜드의 진중하고 엄숙한 분위기와 다르게 글렌버기 12년은 경쾌한 무드를 자아낸다는 점이 재밌다. 맛있는 위스키를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 발렌타인 글렌버기 12년의 탄생 이유다.

THE GLENLIVET 15 

더 글렌리벳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다. 스코틀랜드에서 1824년 처음 법적 면허를 딴 증류소의 이름이자 정관사 ‘The’를 붙이는 것이 아깝지 않은 위스키이기도 하다. 당시 조지 4세가 에든버러를 방문했을 당시 바친 밀주였으나, 그 맛에 반해 정식 제품으로 납품하라는 명이 떨어진다. 이를 위한 입법이 진행되면서 설립자인 조지 스미스가 면허를 따게 된 것. 이처럼 궁에서 명성을 얻게 되자 너도나도 글렌리벳의 이름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나뿐인 브랜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단 하나’이자 ‘진짜’를 의미하는 정관사를 붙여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음지의 밀주를 양지의 술로 바꾼 역사적인 위스키다.
더 글렌리벳이 무려 200여 년간 꾸준히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고유의 증류 방법 덕분이다. 해발 274m 이상인 곳에 위치한 글렌리벳 지역은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북부에서도 가장 춥다. 연중 내내 일정한 기온을 유지해 인공적인 방법을 가하지 않아도 12년 이상의 싱글 몰트 위스키가 잘 숙성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더 글렌리벳 증류소 내에는 ‘조시 우물’이라 부르는 풍부한 광천수가 있다. ‘위스키의 젖줄’이라는 별명을 가진 조시 우물은 다량의 칼슘과 마그네슘을 함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일반 지하수와 달리 풍부한 미네랄을 포함하고 있어, 보리에서 당분을 추출하는 ‘매싱’ 과정의 촉진을 돕는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추가되면 당분은 독특한 향미와 풍미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조지 스미스가 개발한 몸통이 넓고 목이 긴 호롱불 형태의 증류기가 위스키에 ‘킥’을 더한다. 증류 과정에서 넓은 몸통은 효모 간의 상호작용을 촉진해 풍부한 과일 향을 뽑아내고, 긴 목을 통해 불순물과 잡맛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더 글렌리벳만의 가볍고 섬세한 스타일의 위스키가 바로 이 한 끗 차이에서 탄생한다.
더 글렌리벳 15년은 스파이스와 달콤함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강렬한 금빛으로 또렷한 첫인상을 새기고 나면 감귤의 달콤하면서도 톡 쏘는 향과 잘 익은 망고 향, 계피와 흰 후추의 강렬함을 코로 느낄 수 있다. 생산 마지막 3년을 최고급 와인이나 코냑을 숙성하는 데 사용하는 프렌치 리무쟁 오크통에서 선별적으로 숙성해, 특유의 우디 향과 드라이한 느낌을 더한 것도 더 글렌리벳 15년의 개성을 더하는 요소다. 워낙 맛과 향의 밸런스가 좋다고 호평을 받고 있기에 입문용 위스키로 정평이 나 있다. 부드러운 버터 향과 이국적 풍미, 달콤한 아몬드의 맛이 입안 가득 긴 여운을 남긴다. 싱글 몰트 위스키가 지닌 맛의 균형,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기분 좋은 향 덕분에 위스키를 낯설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무려 200년 동안.

ABERLOUR 18 DOUBLE SHERRY CASK FINISH

좋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고르기 위해선 위스키 라벨에 적힌 숫자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숫자는 숙성 연수로 오크통에 담겨 있는 시간을 의미한다. 위스키 세계에선 내부를 약간 태운 오크통을 캐스크라 부르는데, 싱글 캐스크는 ‘하나의 오크통’에서 추출한 원액을 다른 원액과 섞지 않고 병입한 제품을 뜻한다. 따라서 숙성 당시의 기후와 오크통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더블 캐스크는 숙성 과정에서 두 가지 오크통의 장점을 결합해 밸런스를 만들어낸 위스키다. 오랜 세월 한결같은 품질과 풍미를 지키고 있는 최고급 부티크 위스키로 불리는 아벨라워는 더블 캐스크 방식으로 만들었다. 140여 년간 고수해온 이 방식으로 소량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원료 선별부터 제조 과정까지 위스키 한 모금에 진정성을 담는다. 먼저 증류소의 15마일 이내에서 생산되는 최상급 보리만을 사용해 희소 가치를 높인다. 각 캐스크에서 독자적으로 일정 연수를 숙성한 뒤 마스터 장인의 섬세한 기술을 요하는 매링(Marrying)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매링은 위스키 만들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공정으로, 각각 숙성된 위스키를 혼합해 병입하기 전까지의 안정화 단계를 말한다. 매링의 첫 단계는 캐스크를 고르는 것. 서로 다른 캐스크의 상호작용으로 완벽한 시너지를 내는 것이 더블 캐스크의 묘미다. 아벨라워가 손꼽히는 더블 캐스크 싱글 몰트 위스키인 이유는 복합적이면서도 깊은 풍미를 담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 특히 아벨라워 18년은 기존 더블 캐스크 라인업(12, 14, 16년)과 숙성 과정에서도 차별화를 둔다. 풍부한 과실과 향신료의 풍미를 위해 퍼스트 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와 PX 셰리 캐스크에서 피니시 숙성을 거쳐 완성한다. 퍼스트 필 캐스크는 다른 술이 담겨 있던 오크통에 처음으로 위스키를 통입하는 것을 뜻한다. 올로로소 셰리 와인이 담겨 있던 통에 처음으로 위스키를 담은 것이 퍼스트 필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다. 강렬한 맛과 드라이함이 특징으로, 숙성이 잘 되었을 경우 단맛과 진한 고소함을 느낄 수 있다. PX는 ‘페드로 시미네스(Pedro Ximenez)’의 줄임말로 스페인 청포도 품종 중 하나다. 단맛이 강한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품종이기에 PX 캐스크에서 피니시 숙성했다면 자연스레 ‘달콤함’이라는 특성을 예상할 수 있다. 아벨라워만의 더블 캐스크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풍미를 더하기 위해 추가 숙성을 거치는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아벨라워 18년은 완벽한 밸런싱을 자랑한다. 단 한 잔을 마시더라도 다채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먼저 PX 셰리 캐스크의 아로마를 풍부한 과실, 허브 향과 함께 느낀다. 첫 모금에 살구와 초콜릿을 입힌 건포도, 향신료의 풍부함과 과일 맛을 음미한다. 깊고 풍부한 달콤함이 마지막 여운으로 남는다. 이 정도 정성이면 위스키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Credit

  • EDITOR 김장군
  • WRITER 차동식
  • PHOTOGRAHER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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