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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에 미요' 선정 올해의 파티시에, 김나래가 말하는 새로운 목표

프랑스 레스토랑을 다루는 가이드북 <고 에 미요(Gault & Millau)>가 선정한 올해의 파티시에, 김나래의 목표는 지금도 똑같다. 매일 균등한 품질의 좋은 디저트를 만들고 싶을 뿐이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4.03.10
 
새해부터 먼 길을 오셨네요. 한국엔 무슨 일로 방문한 건가요?
제가 일하고 있는 파크 하얏트 파리 방돔과 파크 하얏트 서울의 컬래버레이션 행사가 있었어요. 3월부터 서울에서 구테(goûter) 메뉴를 선보일 예정이거든요. 구테는 애프터눈 티타임을 뜻하는 단어예요. 메뉴를 소개하고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죠. 덕분에 1년 만에 한국에 왔네요.
<고 에 미요>가 선정한 ‘2024 올해의 파티시에’에 이름을 올렸어요. 파티시에 부문에서 외국인을 선정한 것은 처음이었다고요.
정말 놀랐어요. 일단 한국인, 아시아인으로서 선정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었어요. 마지막에 제 이름이 불렸을 때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고요. 사실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웃음) 상 같은 경우는 제가 대회에 참가해서 받은 거지만, <고 에 미요>는 제가 도전한 게 아님에도 그쪽에서 먼저 선정해주신 것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어요. 감사한 일이죠.
한국에서는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토박이라는 점이 굉장히 부각됐어요. ‘당진의 딸’ 같은 제목으로요.(웃음)
프랑스에서는 출신 지역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처음 선정되고 난 후 현지 매체가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물어본 것도 고향이 어디냐는 거였어요.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가 각 지역별 특색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도시에서 나고 자랐는지를 한국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죠. 현지 기사가 한국어로 번역되며 ‘당진의 딸’이 되었나 봐요.(웃음)
당진과 파티시에, 사실 큰 연결 고리가 있어 보이진 않아요.
어릴 때만 해도 케이크는 정말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어요. 케이크라는 음식에 대한 로망을 품기에 충분한 환경이었죠. 마침 중학생이던 2000년대 중반, 시내에 제과제빵 학원이 생긴 거예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그 시기에 파티시에 신드롬을 일으킨 <내 이름은 김삼순>도 나왔죠.
맞아요. 제과를 배우고 있을 때 방영돼서 친구들이 ‘빵나래’라고 부르곤 했어요.(웃음)
지역에 하나뿐인 제과 학원에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제법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느꼈을 것 같은데요.
재능보다는… 파티시에는 기술직이거든요. 들이는 노동력과 별개로 배워야 할 것이 끝이 없어요. 예를 들어 제빵사 자격증 너머에는 초콜릿이나 설탕 공예처럼 전문적인 테크닉이 있죠. 저는 재능이 뛰어나기보단 호기심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기술에 늘 관심이 있었고, 꼭 배우려고 했어요. 덕분에 바쁜 학창 시절을 보냈죠. 주말에는 동네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학교를 마친 뒤 서울에 가서 제과 수업을 듣고 오는 식으로요. 다들 힘들었겠다고 하지만 당시에는 배우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 힘든 줄도 몰랐어요.(웃음)
덕분에 충남기능경기대회 금상, 전국기능경기대회 은메달, 주니어 페이스트리 월드컵 종합 2위 등 어린 나이에 다양한 수상 경력을 쌓았죠. 그런데 정작 대학에서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했더라고요.
지망하던 대학이었는데, 합격한 건 그 과였어요. 당시에는 ‘제빵을 해야 하는데, 왜 이 전공을 택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어요. 그때 배운 영양소라든지 식품 전반에 대한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됐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교환학생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괌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으니까요.
인턴십을 마친 후에는 한국에 돌아왔다가, 몇 년 안 돼 다시 베트남으로 떠났더라고요.
사회생활을 괌에서 시작하고 보니 한국의 직장 문화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어요. 또 지금은 한국에 호텔도 많고 인력 수요도 많아 상황이 다르지만, 그 당시에는 승진도 어려워 커리어와 관련해 여러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베트남에는 수셰프 신분으로 갔고, 실력을 인정받아 파리에 가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믿기 어려운 기회였죠. 어린 시절부터 항상 가보고 싶었던 제과의 종주국이니까요. 로망을 안고 도전했죠.
주변의 반대는 없었어요?
당시 총주방장님이 이탈리아 출신이었는데, 굳이 프랑스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만류했죠.(웃음) 또 그때가 한국 나이로 딱 서른 살이었을 때라, ‘지금 가서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같은 잔소리도 듣긴 했어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어요.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에게는 더 넓은 세계에서의 경험이 절실하게 필요했고요.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죠.
파리에서는 결국 로망을 충족했나요?
처음에는 상상과는 전혀 달랐죠. 프랑스 하면 노동 시간이 짧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과업계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매일 14시간씩 일하는 데다가 노동 강도도 높았어요. 게다가 프랑스 문화를 알기는커녕 프랑스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로 갔으니, 처음 3개월은 매일 울면서 보냈죠. 살아남기 위해 버티는 서바이벌 게임 같은 하루하루였어요. 힘든 한편으로 본토에서 접한 디저트의 매력에는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텍스처를 살리고, 이런 맛을 내는지… 매 순간 감탄했죠.
훌륭한 디저트들 덕분에 프랑스어도 많이 늘었겠군요.
디저트 때문이라기보단… 많이 혼나다 보니 늘었네요. 메인 셰프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저의 프랑스어 실력도 늘어갔죠.(웃음)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이기도 하잖아요. 직접 겪었을 때, 식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모두가 어릴 때부터 맛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부모가 먼저 물어보죠. ‘오늘 음식 맛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그럼 애들이 ‘오늘은 오일 향이 더 강해’ ‘양배추가 더 많이 들어간 것 같아’ 하면서 맛에 대한 대화를 나눠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모여 음식에 대한 가치관을 넓히고, 프랑스의 미식 문화를 이룬다고 느꼈어요.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갖지 못한 제가 적응하고, 또 잘하기 위해서는 더욱 노력이 필요했어요.
반대로,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 부분이 있어요?
문화권이라기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시골에서 성장한 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닭장에서 꺼낸 달걀의 고소함, 초여름에 밭에서 딴 딸기의 새콤함, 아카시아꽃에서 빨아 먹는 꿀의 달콤함 같은 것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거든요. 어릴 때는 시골 출신인 게 싫었는데, 지금은 원재료 본연의 맛을 경험한 게 귀한 자산이 되었어요. 그렇게 체득한 맛을 디저트에 자연스럽게 녹이려고 해요. 설탕 같은 첨가물은 최소화하고요.
디저트를 만들 때 어떤 것에 가장 중점을 두나요?
맛이죠. 보기 좋은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일단 음식의 기본은 맛이잖아요. 제 디저트를 드신 분들은 굉장히 펀(fun)하다고 표현하세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분명 디저트인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자 한 시도가 흥미롭게 다가왔던 모양이에요. 또 매일 똑같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싶어요.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차이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을 최소화하고 늘 좋은 품질의 디저트를 만들고자 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파티시에계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목표는 전혀 없어요. 그저 매일같이 좋은 디저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그거야말로 지금 저에게 가장 큰 과제라고 봐요. 수셰프로 베트남에 간 것도, 프랑스에 오게 된 것도, 또 이번 <고 에 미요>까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기회가 생긴 거잖아요. 또 열심히 디저트를 만들다 보면 누군가 알아주고,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전까지는 그저 제가 만든 디저트를 드시는 분들이 ‘펀’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송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앙금 대신 망고 패션 후르츠를 넣은 단호박 떡.노트르담 대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영감을 받은 부활절 디저트. 30시간 이상의 작업이 필요했다.파리 방돔 광장의 형태에서 착안한 갈레트. 반짝이게 만든 아몬드를 보석처럼 둘렀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PHOTOGRAPHER 박기훈
  • HAIR & MAKEUP 권호숙
  • ASSISTANT 신동주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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