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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전기차는 지속가능할 것이다

프로필 by 김현유 2024.03.07
 
지난겨울 시카고에 북극한파가 덮쳤고, 기온은 영하 40℃(영하 5℉)까지 내려갔다. 당시 주목받은 현상 중 하나는 테슬라의 슈퍼차징 스테이션이 ‘테슬라의 무덤’으로 불렸다는 사실이다. 슈퍼차징 스테이션 근처에는 테슬라의 차주들이 어슬렁거리며 어떻게든 따듯한 자신의 차고로 차를 끌고 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방법은 트레일러에 싣고 가는 방법뿐이었다. 이 사태로 전기차에 대한 불신이 번지고 있다. 그 전까지 전기차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은 마치 때가 왔다는 듯 말하기 시작했다. ‘전기차는 끝이야!’라고. 실제로 2015년 폭스바겐 그룹의 ‘디젤 게이트’ 이후 꽃길을 걷는 줄로만 알았던 전기차 시장은 성장 둔화를 겪고 있다. 전기차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기업인 테슬라는 올해 초 실적 발표에서 성장곡선이 꺾일 거라 점쳤고,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지난해 세계 전기차 등록 대수를 상반기 예상치보다 1484만 대 적은 수치로 하향 조정했다.
사실 이러한 판매 부진과 급격한 판매 감소는 그 시기가 문제였을 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수요와 공급, 고객의 자발적 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자유 시장과는 달리, 전기차 시장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친환경 정책을 기반 삼아 인위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각종 지원금과 세금 면제를 혜택으로 내세우는 한편,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 및 생산 금지 등 강력하고 성급한 규제를 배경으로 탄생한 ‘강요된 시장’이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전기차 시대는 이대로 계속 하향세를 타다 쇠락할 것인가?
전기차의 미래와 전기차 시대의 지속가능성을 점치기 위해서는 전기차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지금의 전기차 시대는 디젤 게이트에서 출발했지만, 훨씬 이전에도 전기차가 호황을 누리던 시대가 있었다. 전기를 활용한 운송수단의 역사는 무려 18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9년 배터리와 전기모터를 장착한 최초의 전기자동차가 발명됐고, 1896년부터 1900년대 초까지 유럽과 미국에서는 약 566개의 전기차 제작업체들이 7만8000여 종류의 다양한 전기차 모델들을 판매했다고 한다. 이때를 역사상 첫 번째 전기차 시대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1900년대 초에는 미국에서만 총 약 3만4000대의 전기자동차가 판매되었고, 그중 일부는 주행 가능 거리가 100km가 넘을 정도로 발전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잘나가던 전기차 시대는 1911년부터 급격하게 저물기 시작했다. 발단은 찰스 케터링(Charles Kettering)의 내연기관 시동 전동 모터 발명이었다. 내연기관 시동용 수동 크랭크는 사라져갔고, 때마침 시작된 석유산업 활황으로 가솔린이 저렴하게 대량 공급되며 시장의 판도가 뒤집혔다. 전기차의 짧은 주행거리와 부족한 충전 인프라도 당시 가솔린 엔진 자동차와의 시장경쟁력에 큰 단점으로 작용했다. 역사상 첫 번째 전기차 대중화 시대는 이렇게 서서히 막을 내렸다.
전기차는 쇠락했으나, 전기기관차 시장은 끊임없이 성장했다. 세계 대도시의 지하철과 이른바 트램(tram)이라 불리는 도시 전철에 널리 적용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전기차만 쇠퇴한 것은 왜일까. 문제는 배터리였다. 선로의 전선과 팬더그래프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많은 양의 전기에너지를 휴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100여 년 만에 다시 전기차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같다. 배터리다. 과거에 비해 성능이 개선되어 운행 거리와 주행 성능이 좋아졌다지만, 지속적으로 차 내에 에너지를 공급하지 못한다는 한계는 해결되지 못했다.
배터리의 효율이 온도에 매우 민감하다는 점 역시 해결해야 할 난제 중 하나다. 주변 온도가 일정 범위를 넘어 낮거나 높으면 배터리의 효율은 현저히 낮아진다. 현재 기술에서 배터리 효율이 최대인 온도 범위는 20℃에서 25℃ 사이다. 즉 이론상 23℃가 최고점으로, 그보다 낮거나 높아도 효율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충전 시간도 길어진다. 온도에 따른 배터리의 화학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게 되면 배터리 성능은 최하 38%에서 최고 107%까지 떨어진다. 영하 15℃ 이하의 극저온에서는 외부 충전기로 충전이 안 될 수도 있고, 외부 센서나 소프트웨어 등이 얼어서 전기차가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현재 배터리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자 한계다. 노르웨이의 견인 서비스업체 바이킹(Viking)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14일까지 총 1만7400대의 고장 난 자동차들을 견인한 결과 이 중 13%가 전기차의 배터리 문제였다. 나머지 87%가 내연기관 자동차의 문제였으니, 전기차의 문제는 거의 전부 배터리에서 비롯된다고 봐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독일의 세계적인 자동차 클럽인 ADAC가 국제(Green NCAP) 기준으로 테스트한 결과에 따르면, 전기차는 저온에서의 에너지 효율도 낮다. 예를 들면 현대 아이오닉 5는 23℃에서 100km 주행당 18.2kWh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영하 7℃가 되면 34.8kWh를 소비한다. 이는 영하의 기온에서는 무려 85%나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이야기다. 여담이지만, ADAC 테스트에서 겨울철 에너지 소비 증가율이 가장 낮다는 평가를 받은 모델은 38%에 머문 BYD Atto 3 모델이었다.
전기차업계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기에 끊임없이 해결 방안을 찾는 중이다. 저온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외부 충전기에 히터를 설치하거나, 지나치게 온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배터리에 작용하는 에어컨을 가동시켜 일정 온도를 유지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또 배터리업체와 차량업체 사이에 동맹을 맺는 것 역시 트렌드가 되고 있다.
전기차의 문제가 모두 배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배터리 문제만 해결된다면 전기차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일단 잘 알려져 있듯, 사람과 대기에 해로운 일산화탄소와 질소, 탄화수소, 매연 등을 배출하지 않아 공해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적고 소음공해도 없다. 게다가 전기에너지는 전기모터에 대한 에너지변환 효율이 높다. 이는 이동수단으로서 엄청난 장점이다. 전기모터는 자동차 바퀴를 구동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동력발생장치로, 그 어떤 피스톤 왕복운동 내연기관도 여전히 전기모터를 능가하는 회전모멘트(토크)를 낼 수 없다. 엔진 회전수에 따라 토크가 증가하는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모터는 회전수 제로(0)에서부터 거의 무한대의 토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나 현대 아이오닉 같은 전기차를 구매한 이들은 하나같이 일반 승용차임에도 가속력이나 속도 등에서 포르쉐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 스포츠카의 주행 능력과 비슷하거나 넘어선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다수의 엔지니어들은 이구동성으로, 바퀴를 구동하는 궁극의 동력발생장치는 전기모터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기차를 포함한 전기 모빌리티 분야는 탄생 이후 지금까지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다만 전기를 휴대해야만 하는 특성상, 지금까지 배터리의 성능에 따라 성장기와 쇠퇴기 그리고 회복기라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의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안전성이 높고 용량이 큰 전고체배터리가 상용화되거나, 배터리를 대체할 다른 에너지저장장치가 개발된다면 전기차 시대의 미래는 더욱 밝을 것이다. 희망적으로 보면 그렇지만, 단기적으로는 당분간 전기차의 휴지기나 정체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한계를 극복하는 기술이 금방 등장할 것 같진 않으니 말이다.
지금은 전기차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묻기보다는, 내연기관차 독점 시대를 전기차가 비집고 들어오며 시작된 새로운 춘추전국시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내연기관이 석유 자원에 종속적이라고는 하지만, 석유 자원이 정확히 언제 고갈될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인공석유 이퓨얼(e-Fuel)이 상용화에 성공하면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연합(EU) 의회가 2035년 이후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을 금지한다고는 하나, EU 규정에는 ‘인공석유 기반의 엔진’이 여전히 예외 조항으로 남아 있다. 내연기관차 시대가 하루아침에 끝나진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동시에 전기차가 완전히 쇠락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당분간은 양강 체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이경섭은 독일 베를린공대 자동차공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에서 자동차 신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책 <베를린&자동차> <미래 자동차의 통신 시스템>을 썼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이경섭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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