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여전히 보아

톱 엔터사의 임원이고, 신인상을 수상한 연기자지만, 보아는 한국인이 그 전에 목격한 적 없는 완벽한 스테이지 퍼포머였다. ‘무대 위의 보아’가 신곡 ‘정말, 없니?’로 돌아왔다.

프로필 by 김장군 2024.04.29
셔츠 앤서이즈예즈. 팬츠 익스파이어드걸.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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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을 하나 발표해도 데뷔 몇 주년이라는 수식이 붙어요. 근데 그게 벌써 24주년이고.
이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20년, 25년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23, 24년은 좀 애매하잖아요.(웃음)
매번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을 느끼지는 않나요.
압박감은 아직 느껴본 적 없어요. 전 오히려 다음엔 뭘 해볼까 기대하는 쪽이죠.
이틀 전에 신곡이 나왔어요. 보아 정도의 정점에 서면 발매 시기에 구애받지 않을 텐데요.
곡이 완성됐을 때는 생각을 좀 하죠. ‘언제 해야 되겠다’보다는 ‘이때 가능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정도예요.
‘정말, 없니?’라는 제목에서 이미 보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보아에게 어울리는 문장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 노래는 처음부터 ‘정말 없니’가 될 운명이었어요. 노래 첫 소절을 그대로 따온 거거든요. 단어가 아니라서 오히려 사람들이 처음 보고 무슨 말일지 궁금해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대체 뭐가 없는 거지?’라고 추측하고 궁금해할 수 있는, 추상적이고 확실한 메시지가 없는 네 글자가 좋았어요.
사랑하고 이별하는 그 곡의 가사를 직접 썼어요. 가사를 쓰면서 감정을 이입하는 편인가요?
살을 도려낼 정도로요. 진짜 뼈를 깎아가면서 쓰는 거예요. 제 경험이든 주변의 경험이든 아픈 곳을 찌르고 찾아가면서 써 내려가는 거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이입해보려고 했는데 큰 도움은 안 됐어요. 결국 ‘영화다’라는 감상밖에 안 남더라고요.
재킷, 스커트 아크네 스튜디오. 톱, 양말 아미먼트.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 스커트 아크네 스튜디오. 톱, 양말 아미먼트.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 가니. 재킷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 가니. 재킷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신곡을 들으면서 새롭다는 생각이 자주 떠올랐어요. 처음 듣는 듯한 목소리에 가장 놀랐고요.
혼자 녹음하고 편집하는데 노래를 되게 잘 부르고 싶었어요. 첫 소절에 힘이 들어가면 이 노래가 안 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말끝도 흐리고 소리가 예쁜 위치를 찾도록 신경 썼어요. 많은 분이 새롭게 들린다고 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나라 음악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아프로비트가 주는 생경함도 있어요.
808 비트(롤랜드사의 드럼 머신 TR-808 사운드로 대표되는 댄스와 힙합 비트)를 골랐다면 뻔한 노래였을 거예요. 아프로비트에 슬픈 노래가 붙으면 어떨까 싶었죠. 트랙 메이커랑 재미로 시도해봤는데 은근 잘 붙는 거예요.
지금까지 동작 하나하나가 눈에 각인되는 힘 있는 동작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컨템퍼러리처럼 춤조차 한 장면으로 보이더군요.
맞아요, 약간 기괴한 컨템퍼러리 같죠? 인트로부터 춤이 아닌 이상한 형태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안무가인 루트한테 노래 가사가 느껴지는 춤을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워낙 잘 캐치하는 친구라 아주 수월하게 작업했어요. 요즘 젊은 안무가들은 정말 놓치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소리와 소리 사이에 잠깐 심어놓은 스네어까지 다 찾아내요. 예전에는 스텝을 ‘쿵 빡, 쿵 빡’ 이렇게만 살렸다면 이제는 모든 악기 소리를 고려한 현란한 스텝이 되어버려요.
게다가 (쪼개는 게 많은) 아프로비트였고요.
(안무를 보면) 다리로 계속 리듬을 타고 있거든요. 사실 엄청 어려운 춤인데 <뮤직뱅크> 녹화한 걸 보니까 쉬워 보이는 거예요. 우린 진짜 죽어라 했는데 티가 안 나서 좌절했다니까요.
2018년에 쓴 곡을 2024년으로 가져왔어요. 아직 보여줄 곡이 많이 남았나요?
‘정말, 없니?’가 끝까지 갖고 있던 곡이에요. 작업은 좀 쉬려고요. 내내 일했으니까 새로운 걸 만드는 건 좀 쉬고 싶어요.
홈 레코딩하는 작업실은 어떤 공간이에요?
완전 간소해요. 녹음 부스도 없이 방 하나를 통째로 쓰는데 컴퓨터 앞에서 혼자 노래 부르고 편집하고 노래 부르고 편집하고 무한반복. 아 팬더 인형이 있어요.
작업을 마치면 자축도 하겠죠.
축하주 마셔요. 이번에도 해냈다.
그렇게 후련해지나 봐요.
녹음하고 믹싱 끝내면 노래랑 이별해요. 할 수 있는 만큼 다 쏟아부으니까 미련이 없어요.
톱 가니, 재킷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톱 가니, 재킷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얼마 전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마쳤을 때도 미련 없이 보내줬나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배우들은 더 오랫동안 각자의 역할로 살았는데 저는 좀 짧았어요. 떠나보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저는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 안 하고 하거든요. 매력 있는 역할이 온다면 당연히 해야죠. 저는 연기 재밌어요. 연기하는 동안은 오유라로 살 수 있으니까. 언제 그런 시간을 보내보겠어요.
할리우드 영화에서 단독 주연을 맡고 배우로 신인상도 수상한 적이 있어요. 눈물, 액션, 허당, 악녀까지 꽤 폭넓은 연기를 했잖아요.
영어 대사 죽어라 외우고 액션도 죽도록 배웠어요. 독립영화도 찍어보고. 안 해본 거니까 항상 재미있고 그래서 열심히 했어요.
내내 일했다고 했는데 NCT Wish 프로듀서 타이틀도 빼놓을 수 없어요. 많은 이의 롤 모델이었기에 언젠가 후배들을 돕는 그림을 그렸을 것 같은데요.
예전부터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 앨범을 만들 때도 안무, 재킷 사진, 뮤직비디오까지 다 신경 썼으니까. 제가 해온 일에서 그냥 이 친구들의 담당이 됐을 뿐인 거예요.
어떤 프로듀서인지 자평해본다면.
장난기 많은 것 같으면서도 꼰대.(웃음) “오래 연습한 친구들은 연습 기간이 많은 만큼 실력이 좋지만 1년을 한 친구들도 이만큼 따라왔다. 자만하면 안 된다. NCT라는 이름에 책임감을 가져라. 연습해.” 잔소리가 많았죠.
전 보아의 아이들은 왠지 여성 팀일 거라 생각했어요.
남자 형제들만 있어서 그런가 이 친구들을 대할 때 편하더라고요. 잘 따라와주니까 조금 힘들더라도 더 따라오게 하고 싶고.
그래서 멤버들을 ‘천사’라고 부르는 거예요?(웃음)
그게…큐피드 콘셉트라.(웃음)
스웨터, 셔츠, 팬츠 모두 막스 마라.

스웨터, 셔츠, 팬츠 모두 막스 마라.

어린 일본인 멤버들을 보면서 데뷔 때를 떠올렸을 것 같아요.
일본어로 질문하니까 한국어로 대답을 해요. 형들이랑 숙소 생활을 해서 그런지 언어를 습득하는 게 진짜 빨라요. 내가 데뷔했을 때도 저런 느낌이었겠구나 싶더라고요.
얼마 전 ‘고전짤’로 킨키 키즈와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을 봤어요. 한국에서는 ‘밥 먹었어?’가 인사라고 말하는 내용이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어른들의 사회를 잘 알고 있구나 싶은 왠지 찡한 마음이 들었단 말이죠.
항상 주변에 어른들이 많아서 자연스러웠죠. 어릴 때 또래들과 평범한 생활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딱히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할 일을 하면서 보낸 시간이니까요.
“밥 먹었어?”라고 물음으로 인사하는 타입인가요.
저는 그냥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마스터, 멘토의 포지션이죠.
친근함을 부각하기 위해 일부러 예능에 나가고 싶지는 않아요. <댄스 가수 유랑단>을 했지만 저는 여전히 저잖아요. 이미 온 국민이 생각하는 보아가 있기 때문에 뭔가 변화를 주려고 애쓰고 싶지는 않아요.
속상한가요?
크게 관심 있는 분야는 아니에요.
확실하네요.
할 말만 딱 하는 스타일이라. 그리고 팩트 폭격.
MBTI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INTJ, 여성에게 극히 드문, 성공한 전략가. 집을 나서는 순간 집에 가고 싶어요. 일 빼고는 거의 집에만 있어요.
연예계 활동 연차와 회사 직급을 비교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 보아 씨는 정말 이사님이잖아요.(웃음)
전 사실 이사 안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너무 놀려요. 이사님이니까 이렇게 하셔야죠 하면서.(웃음)
드레스 본봄.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드레스 본봄. 스타킹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4년 장기근속의 비결은 무엇일지.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음악 장르의 변화도 마찬가지예요. 유심히 보고 들으면서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해요. 콘서트 때면 무대 위에서도 아는 얼굴들이 보이거든요. 어떻게 한 사람을 이리도 오래 사랑할 수 있을까, 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고 힘을 얻어요.
이렇게 열심히 한 자신에게 내리고 싶은 포상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건강. 무릎이 다 망가졌어요.
‘아시아의 별’ 외에 얻고 싶은 수식어가 있나요?
옛날에 어떤 기자님이 헤드라인으로 썼던 건데 여전히 좋아요.
지금까지 세운 기록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죠. 더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재미있는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크고 화려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 안 불러본 노래도 불러보고 관객과 더 많이 소통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요.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자신의 모습은요?
음악에 대한 열정. 글자 떼고 시작한 게 음악이니까요. 내 인생이에요.

Credit

  • FASHION EDITOR 김장군
  • PHOTOGRAPHER 양중산
  • STYLIST 이지은
  • HAIR 천아람
  • MAKEUP김해민
  • ASSISTANT 박수은/김정호/신동주
  • ART DESIGNER 김대섭
  • CONTRIBUTING EDITOR 박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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