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이 사람들이 릴데크와 마스터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이유
바이닐 레코드 판매량이 CD 판매량을 앞지른 지도 벌써 몇 년째. ‘아날로그의 재림’에 대한 무수한 기사가 쏟아졌지만, 턴테이블과 LP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굳이 릴데크와 릴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찾아 그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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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새로 출시된 릴데크 모델인 아날로그 오디오 디자인의 TP-1000.
이쯤에서 릴테이프와 릴데크가 어떤 물건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풀네임인 ‘릴투릴 테이프’는 이름처럼 두 개의 릴을 걸어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보내며 녹음하거나 재생하는 테이프를 아우르며, 릴데크는 이 녹음과 재생에 운용되는 기기다. 카세트테이프가 이 움직임과 원리를 축소한 발명품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카세트테이프와 가장 큰 차이는 무지막지한 정보량이다. 릴테이프는 대부분 자기장을 이용해 소리를 저장하는 ‘마그네틱 테이프’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데, 1950, 60년대에 주로 사용된 테이프는 초당 15인치 속도로 4분의 1인치 포맷을 녹음할 때 초당 약 6500만 개의 자성 입자를 담았다. 오늘날 가장 높은 디지털 포맷의 해상도가 초당 약 400만 비트의 스위칭을 제공하니 그야말로 넘을 수 없는 벽인 셈이다. 실제로 인간이 그 정보를 다 받아들이고 식별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으나 아무튼 릴테이프가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아날로그 매체’라고 회자되는 건 그런 이유다. 1990년대까지 바이닐 레코드, 카세트테이프, CD 등 모든 음반 제작의 ‘마스터’ 매체로 통상 릴테이프가 쓰인 이유도 마찬가지. 소리 정보를 손실이 가장 적은 상태로 저장한 후 그것을 각 매체에 적용하기에 용이했기 때문이다.

릴데크 애호가인 포토그래퍼 이정규의 자택 거실 풍경.
하지만 재미있는 지점은, 이렇게 표상적 문화에 비판을 가하던 이정규도 릴데크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디자인을 첫 번째로 꼽았다는 것이다. “사실 제일 첫 번째는 디자인이에요. 두 번째는 저와 소리 성향이 맞는가 하는 거죠.” 하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그가 말하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인테리어 측면이 아니다. 그것을 작동시킬 때 눈이나 손과 조응하는 ‘물리적 속성’에 가깝다. 아날로그란 매체의 저장 방식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매체에 인간이 관여하는 방식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트는 일련의 과정이 되게 물리적이라서 좋은 거거든요. 손 한 번 더 가고 귀찮더라도 좀 더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거죠.” 프리랜스 오디오 회로 설계자인 이재홍 박사는 분야를 막론하고 유행하는 ‘빈티지 열풍’에서 릴데크가 갑자기 주목받는 이유를 짚기도 했다. “요즘은 코부즈나 타이달 같은 음원 서비스에서 하이엔드 음원을 스트리밍으로도 들을 수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릴테이프를 찾는 데에는 아무래도 레트로의 의미가 있겠죠. 갑자기 빈티지 롤렉스가 주목받는 것처럼요.” 물론 그 역시 음질 측면도 함께 짚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게 들려주는 소리가 디지털과는 뭔가 다르다는 거예요. 따뜻하고, 편안하고,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은 느낌이 있죠. 그건 기술적으로만 설명하기는 도무지 불가능하고 아직은 감성으로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요.” ‘아날로그의 따뜻한 소리’라는 건 이제 다소 공허하고도 진부해진 구석이 있는 이야기. 하지만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과학기술처, 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기술 관료로 일한 후 직접 오디오 회로를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재홍 박사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을 때, 그 명제는 새삼 새로운 힘을 얻는 듯했다. 물론 그 역시 자기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일단 음악을 들려주고자 했다. 직접 설계한 온갖 앰프와 스피커에 연결된 리복스 B77 릴데크로. 데크에 걸려 있던 릴테이프에서는 재즈 연주곡이 흘러나왔고, 그는 곧 에디터가 바이닐 레코드를 모은다고 했던 사실을 기억해낸 듯 이렇게 물었다. “릴테이프가 좋은 게, 소리에 잡음이 없죠?” 릴테이프와 바이닐 레코드의 차이는 사실 정보량에만 있는 게 아니다. ‘아날로그’라는 카테고리로 한데 묶이지만 사실 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재생한다. 자기장을 사용하는 릴테이프는 바이닐 레코드 특유의 ‘판 튀는 소리’도, 톤암이 레코드의 안쪽으로 들어가며 생기는 트래킹 에러도 없고 (녹음 속도에 따라 저장 가능 곡 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한 번 재생하면 뒤집을 필요 없이 오래도록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대신 좀 거추장스러운 부분이 있죠. 돈도 많이 들고.” 오리지널 릴 마스터 음반의 가격은 통상 한 장에 5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단순 비교하는 것은 사실 불공평한 일이기도 하다. 릴데크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이것이 재생 기기일 뿐만 아니라 녹음 기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재홍 박사가 릴데크를 활용하는 주요 방법도 바이닐 레코드의 곡들을 릴테이프에 녹음해 듣는 것이다. “귀한 LP는 그렇게 릴테이프에 소리를 옮겨둔 후에 잘 보관하는 거죠. LP는 재생할 때마다 음반이 상하는 매체이니까. 음반 하나를 억지로 다 들을 필요 없이 제가 좋아하는 곡만 따로 모아 들을 수 있으니 그것도 큰 장점이고요.” 릴데크와 릴테이프로 일종의 ‘믹스테이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추억 돋는다’고 하기에는 공 릴테이프도 하나에 10만원이 넘어간다는 점이 걸리지만 말이다.


릴투릴클럽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릴데크 제품들. 릴투릴클럽은 릴데크 역사의 전설적 모델들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한편 상주 기술자를 두고 모든 제품을 오버홀, 수리, 관리하고 있다.

릴투릴클럽에서 유통하고 있는 오리지널 마스터 릴 음반들. 최근 릴테이프가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며 명반으로 회자되는 앨범들의 오리지널 마스터 릴 버전이 재발매되고 있는 추세다.
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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