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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매니저가 본 '한국의 저출산 해결'이라는 프로젝트
프로젝트 매니저가 본 '한국의 저출산 해결'이라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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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유튜브 창에 뜬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2023년 4분기 대한민국 출생아 수가 5만2618명이라는 기사였다. 출산율로는 0.65 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보다 낮은 출산율이다. 세계사에 관한 책 어디선가 본 듯한 유럽에서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라는 흑사병. 그 흑사병 때보다 더 심할 것이라 전망되는 인구 감소의 내리막길이 한국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내가 노인이 되면 세금 낼 사람은 줄고 복지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많아지겠지. 그렇다고 모두가 세금을 무한하게 많이 낼 수는 없을 테니 당연하게 누려온 사회의 많은 인프라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인구 감소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인구수가 900만 명이 넘는 서울시에서는 최근에 초등학교가 폐교하고 92만 명이 사는 성남시에서는 작년에 버스터미널이 폐업했다. 이미 보이는 현상과 비교도 안 되게 모두 힘들어지는 방향으로 우리나라가 변할 것 같다.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걸 어찌해야 하는가?
프로젝트 매니저의 시각에서 한국의 출산율을 늘리는 일과 우리 앱의 결제자 수를 늘리는 일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과정은 비슷한 구조로 이뤄질 수 있다. 한 가지 좋은 사고방식은 ‘퍼널적 사고’다. 퍼널적 사고란 일련의 단계로 구성된 프로세스나 경험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사용되는 사고방식으로, 보통 웹/앱에서의 퍼널 분석은 유입된 유저가 목표로 하는 행위(주로 결제를 통한 매출 발생)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단계별로 정의하고 각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전환과 이탈을 분석하는 사고방식이다. (고맙다, 챗지피티). 예를 들어 앞에서 후배와 얘기한 ‘앱의 결제자 수를 늘리는 일’을 목표로 잡으면 각 단계는 Acquisition(획득)→Activation(활성화)→Retention(유지)→Referral(추천)→Revenue(매출)로 잡아볼 수 있다. 말이 어렵지 일단 앱을 다운로드해 유입되고(획득), 회원가입을 통해 앱을 사용하고(활성화), 그러다 앱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유지), 남들에게 추천하고(추천), 앱 내 구매를 하는(매출) 단계로 나눈 것이다. 퍼널의 단계는 각 프로젝트의 특성에 적합하게 구분하기 나름이지만 지금 사용한 ‘AARRR’은 IT 웹/앱 프로젝트에서 퍼널 분석에 가장 많이 쓰이는 모델이다. ‘매출’과 ‘유지’와 ‘추천’은 무료 앱/유료 앱 등 특성에 따라 순서가 달라지기도 하고 노출이나 재구매 등 여러 단계를 추가해볼 수도 있겠지만 대충 앞서 말한 방식이다. 출산 과정에서도 단계를 나눠서 정의해보면 MRWEIRD(‘미스터 위어드’라 읽을 수도) 정도가 되겠다. 만남(Meeting)→연애(Relationship)→결혼(Wedding)→출산(Event)→육아(Infant-care)→둘째 출산(Re-Event)→확산(Diffusion). 말 그대로 이상하고 억지로 짜맞춘 첫 글자지만 뭐라도 단어가 맞춰지긴 하니 그냥 넘어가자. 침대에 누워서 이런 딴생각을 하다 보니, 누군가 옆에서 말한다.
“우리 애는 어떻게 할까?”
맞다. 내 침대는 더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 아니다. 사실 나는 최근 결혼을 했다. 인터넷 어디선가 본 ‘여자 친구가 집에 안 가…’라는 글이 머리를 스치고 고개를 돌아보니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인형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오목조목한 눈과 입을 움직이고 있다. 그러게. 애는 어떻게 하지? 어릴 때는 결혼하면 당연히 아기도 생기고, 이왕이면 4명쯤은 키워서 대대손손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중요한 주제에 대해 난 가설도, 분석도, 계획도 명확히 없다. 그런데 내 주변 친구들은 다들 왜 이렇게 애를 안 낳지?
자, 다시 퍼널적 사고가 시작된다. 만남(Meeting)→연애(Relationship)→결혼(Wedding)→출산(Event)→육아(Infant-care)→둘째 출산(Re-Event)→확산(Diffusion). 한국의 출산을 높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퍼널적 사고를 한다면 일반적으로 세 가지 접근을 해볼 수 있다. 1. 유입을 늘린다. 2. 퍼널의 단계 자체를 줄인다. 3. 각 단계의 이탈률을 줄이고 전환율을 올린다. 우선 유입을 늘리고자 한다면 만남을 늘려야 한다. 생각해보니 본질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웹/앱 비즈니스와 다른 점이 있다. 개인 입장에서 연애와 결혼, 출산은 동시에 많은 수의 유저(상대방)가 단계를 진행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보통은 1명이 1명과 만난다. 그럼에도 만남을 늘려야 한다면 연애 전환 가능성이 낮은 상대방과의 빠른 이탈(이별)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유입(새로운 만남)까지의 기한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기약 없는 이성과의 결혼 약속과 상관없이 기한 없는 시간을 함께하기도 하지 않은가? ‘결혼하지 않을 거면 헤어져’라는 말은 사랑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또 이별부터 새로운 만남까지는 환승연애로 오해받지 않을 만큼의 애도 기간이 필요한 법이다. 10년 전쯤 방영한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이라는 코너에서는 연애 기간 1년당 1개월의 애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정해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3년을 만났다면 적어도 한 3개월은 지난 뒤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해야 한다.
퍼널의 단계를 줄이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면 결혼 단계 없이 미혼 출산을 하려는 사람들이나 비혼 출산을 하려는 여성들이 그렇다. 간혹 더 파격적으로 연애 단계도 없이 만남 후 바로 출산 단계로 가는 경우도 본 적은 있다. 그런데 미혼 출산은 유교문화가 뿌리깊은 한국에서는 정서적으로도 쉽지 않고 개인적으로도 힘들다. 또 여성들의 비혼 출산은 불법은 아니지만 아직도 대한산부인과학회의 윤리 지침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대체 이게 21세기에 무슨 말이람?
마지막으로 이탈률을 줄이고 전환율을 늘리는 데 가장 힘든 장애물은 이미 사용자가 이 프로젝트의 미래에 소모될 자원을 너무도 명확히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앱에 들어온 사용자는 유입 단계부터 결제(회사 입장에선 매출)와 확산(타 사용자에게 추천하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 결혼 프로젝트의 사용자들, 특히 결혼 적령기에 가까운 사용자들은 만남 단계부터 결혼, 출산, 육아 단계의 비용을 계산하고 있다. 해답이라면 결혼, 출산, 육아 단계의 사회적 비용을 충격적으로 낮추는 것일 텐데, 지금 상황을 보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또 명확히 계산하기 쉬운 비용과 달리 자녀와 가정으로부터 오는 보상은 너무나 주관적이어서 계산이 서질 않는다. 확실한 행복에 대한 긍정과 불확실한 책임에 대한 부정이 득세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아직 출산을 고민하는 한 지인은 나에게 “출산은 1장에 1억인데, 당첨 확률도 당첨 상품도 알려주지 않는 복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걸 사라고 권유하는 느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는 틀렸다. 사실 한국의 평균 육아 비용은 3억원이 넘는다.
‘우리 애는 어떻게 할까?’
여전히 나의 어릴 때처럼 시끌벅적한 가정을 꾸리고 싶긴 하지만 아직 답은 모르겠다. 출산과 육아가 우리 가정이 지불한 시간과 비용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까? 솔직히 말하면 경험해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인생과 우리 가정의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개발자이고 유저인 사람은 바로 나와 나의 아내다. 그러니 내가 잘할수록 더 좋은 결과도 만들 수는 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앞서 언급한 지인의 복권이라는 비유 또한 틀렸다. 한편으론 ‘모든 가정에 프로젝트 매니저가 있다는 생각으로 한국의 출산율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답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각 가정의 프로젝트 매니저들은 멍청하지 않다. 그들은 영리하고 합리적이기에 적은 비용으로 큰 보상을 기대할 만한 프로젝트를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두고 실행할 것이다. 의식주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해보면, 어떤 단계가 가장 넘어서기 힘든지에 관한 꽤 많은 답이 이미 나와 있다.
조재연은 사이버 보안, IT 서비스, 글로벌 게임 회사 등에서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주요 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주로 IT 영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글로벌로 진출시킨 경험이 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조재연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CELEB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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