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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게 매뉴팩처에서 본 워치메이킹의 세계

평화롭고 조용한 스위스 발레 드 주에 이룩한 경이로운 브레게의 워치메이킹 세계.

프로필 by 김유진 2024.05.24
스위스 발레 드 주에 위치한 브레게 매뉴팩처 전경.

스위스 발레 드 주에 위치한 브레게 매뉴팩처 전경.

나폴레옹이 구매한 여행용 클락 심퍼티크 No. 178.

나폴레옹이 구매한 여행용 클락 심퍼티크 No. 178.

스위스 쥐라산맥을 따라 굽이진 길을 올라가다 보면 골짜기 사이로 웅장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에 당도한다. 아름다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곳 발레 드 주의 작은 마을 로리앙(L'Orient)엔 브레게의 매뉴팩처가 자리하고 있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1775년에 설립해 24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급 시계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브레게의 시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건물 전면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Breguet Manufacture de Haute Horlogerie.’ 그러니까 브레게의 시계는 수작업으로 만드는 최고급 시계라는 의미다. 창립자이자 뛰어난 워치메이커였던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1747년 스위스 뉴사텔에서 태어난 후 어린 시절 프랑스 파리로 옮겨가 시테섬 퀘드올로지에 그의 공방을 열고 난 후 페페추얼 시계, 공 스프링, 충격흡수장치 ‘패러슈트(Pare-chute)’, 투르비용 등 혁신적인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천재적이고 대담한 그의 발상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도 열렬한 고객이 될 정도였다. 그가 떠난 후 브레게 하우스는 1999년 스와치 그룹에 소속되며 니콜라스 G. 하이에크가 창립자의 유산을 계승함은 물론 하우스의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고, 현재 대표인 마크 A. 하이에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매뉴팩처를 확장하고 발전시키며 다양하고 놀라운 걸작을 선보이고 있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기요셰, 인그레이빙, 앙글라주 공정.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기요셰, 인그레이빙, 앙글라주 공정.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기요셰, 인그레이빙, 앙글라주 공정.
BREGUET MANUFACTURE
걸작의 뒤편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장인들이 있다. 발레 드 주의 브레게 매뉴팩처에서는 많은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번엔 대표적인 4개 분야를 경험할 수 있었다. 먼저 1786년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워치메이킹에 처음으로 도입한 기요셰(Guilloché). 하우스의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는 클루 드 파리, 선버스트, 발리콘 등 상징적인 기요셰 패턴들은 극소수의 숙련된 장인들에 의해 새겨진다. 빈티지 기요셰 엔진 터닝 기계와 자체 개발 및 제작한 현대식 기계 두 가지를 사용하는데 빈티지 기계를 복원하는 부서가 따로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기요셰 기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왼손으로는 손잡이를 돌려 도구를 작동시키고, 오른손으로는 캐리지에 고정된 끌을 움직여 세심하고 정확한 패턴의 기요셰를 새기는 고난도 작업이다. 단순했던 표면에 기요셰 장식이 더해지며 심미성을 강조함은 물론 이전보다 마모와 변색에 강해지고 빛 반사를 줄여 다이얼의 가독성도 높일 수 있다. 기요셰 아틀리에 옆에선 또 다른 예술이 탄생한다. 바로 인그레이빙(Engraving) 작업이다. 오랜 시간 훈련한 장인들은 브레게만의 문법을 따라 각자의 예술적 표현을 시계에 담아낸다. 파인 워치메이킹 기술 중에서도 정교한 작업 중 하나로 전통적 도구와 공예 기법을 고수하며 불가능에 가까운 복잡하고 아름다운 인그레이빙 장식을 완성해낸다. 현장엔 30년 이상 경력의 장인과 젊은 장인들이 어우러져 각자에게 맞는 디자인을 맡아 작업하고 있었다. 음각, 부조 등 여러 가지 조각 기법을 사용하며 그에 맞는 도구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부품과 디자인마다 완성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인그레이빙 아틀리에는 무엇보다 예술성을 요하는 곳으로 속도나 생산량보다는 제품의 완성도에 중점을 두고 장인 각자의 예술 세계를 무척 존중하고 있다.
앙글라주(Anglage)라고 일컫는 피니싱 기법 역시 단순해 보이지만 극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한 과정. 모든 부품들의 날카로운 가장자리 단면을 여러 차례 깎아내 균일한 광택을 만들어내는 공정으로, 미세한 마이크로미터 사포와 폴리싱 페이스트를 사용해 단계별로 보이지 않는 부품까지 섬세하게 마무리함으로써 브레게 무브먼트의 품질을 한층 더 높이는 작업이다.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계가 없을뿐더러 이 공정의 훈련 프로그램 역시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브레게의 앙글라주 워크숍은 매우 중요하다. 시연용 플레이트를 직접 작업해보면서 눈으로 쉽게 알아챌 수 없지만 앙글라주가 얼마나 난도가 높은 기술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깊고 탁월한 브레게의 예술 세계를 직접 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브레게 매뉴팩처는 기요셰 엔진 터닝 기계를 복원 및 제작해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브레게 매뉴팩처는 기요셰 엔진 터닝 기계를 복원 및 제작해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브레게 시계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컴플리케이션 워크숍을 통해 투르비용과 미니트 리피터 공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투르비용은 19세기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던 회중시계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발명한 메커니즘으로 휠, 밸런스 스프링, 이스케이프먼트를 회전하는 케이지 안에 넣어 중력을 상쇄시키는 장치다. 당시 ‘투르비용’이란 단어에는 우주의 회전운동 혹은 태양 주위의 천체가 회전하는 에너지를 뜻하는 천문학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즉 투르비용은 단순한 기계가 아닌 그 자체에 물리학과 인류의 탐험, 산업혁명기의 대서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첫 발명은 1793년부터 1795년에 걸쳐 스위스에서 이뤄졌고 파리로 돌아와 1801년 특허를 취득한 후 실제 판매까지는 6년이 더 걸렸으며 그 이후에도 더욱 정교하고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연구는 계속됐다. 1980년대에 들어서 작은 손목시계 안에 담기기까지 말이다. 지난 2021년은 투르비용 탄생 220주년으로 이를 기념해 리미티드 에디션 클래식 투르비용 엑스트라-플랫 애니버서리 5365를 출시하기도 했다. 오프센터 투르비용 케이지를 강조하고 1801년 아브라함-루이 브레게가 투르비용 특허 신청 당시 제작한 오리지널 수채화 스케치를 인그레이빙해 특별한 의미를 담은 시계다. 현장에선 운 좋게 지난해 선보인 여성용 클래식 투르비용 3358의 완성된 무브먼트를 직접 볼 수 있었다. 미드나이트 블루 머더오브펄로 완성한 다이얼 12시 방향에 오픈워크로 노출한 투르비용 케이지는 그야말로 예술과 기술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1801년 투르비용 레귤레이터 특허를 위해 제작한 수채화 판.

1801년 투르비용 레귤레이터 특허를 위해 제작한 수채화 판.

컴플리케이션 세계에서도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인 미니트 리피터는 전기가 도입되기 전인 17세기에 어두운 밤에도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개발됐다. 아브라함-루이 브레게는 1783년, 그때까지 사용되던 종 유형 대신 공 스프링 블레이드(코일)를 타격하는 최초의 공 스프링(Gong-spring) 미니트 리피터 시계를 제작했고 초기 직선형으로 뒷면 플레이트를 가로질러 배치되었던 블레이드(코일)는 이후 무브먼트 둘레를 감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는 차이밍 시계의 두께를 크게 줄이면서도 보다 맑고 조화로운 소리를 내게 했다. 시, 쿼터(15분), 분을 알리는 미니트 리피터는 전문적인 하이 컴플리케이션 워치메이커와 사운드를 담당하는 음향 전문가의 협업으로 완성된다. 워치메이커가 무브먼트를 완성한 후 여러 명의 음향 담당자가 공 스프링 작업을 진행하고 세밀한 주파수와 디테일 테스트를 여러 번 거치게 된다. 보통 미니트 리피터 제작에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대표적인 모델은 클래식 미니트 리피터 7637로 인하우스 수동 미니트 리피터 칼리버 567.2를 탑재했다. 칼리버 567.2는 플레이트가 아닌 케이스 미들에 공을 고정해 직접적으로 진동하며 소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낸다. 또한 공은 골드 소재로 제작되어 부분음이 풍부한 배음으로 조화로운 소리를 연출하고 케이스 역시 골드 소재로 제작해 시계 전체가 음향적으로 동일한 임피던스를 공유하며 소리 전달 및 성능 면에서 더 우수한 결과를 낸다. 이는 브레게가 특허를 취득한 기능이기도 하다. 이 놀라운 미니트 리피터 메커니즘은 9시 방향에 위치한 레버를 통해 작동할 수 있다. 클래식 미니트 리피터 7637의 음향 작업 전과 후를 들어보니 무브먼트의 완성도만큼이나 음향의 예술적 감도에도 브레게가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느껴졌다.
직접 경험한 브레게 매뉴팩처는 하나의 시계에 우주를 담고 있었다. 마치 전통과 현대, 미학과 기술, 예술과 과학 그리고 정확성이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완벽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 작품처럼.
미니트 리피터 제작 과정. 오픈센터 투르비용이 돋보이는 클래식 투르비용 엑스트라-플랫 5367.
TYPE XX COLLECTION
지난해 브레게는 새로운 타입 XX를 선보였다. 타입 XX 컬렉션은 군용 유산을 물려받은 타입 20 크래노그래프 2057과 민간용 버전의 타입 XX 크로노그래프 2067 두 가지 버전으로, 타입 XX 컬렉션은 4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칼리버와 함께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 기능을 탑재한 인하우스 무브먼트로 신뢰성 높은 정확성을 자랑한다. 올해는 브레게 타입 XX 컬렉션에 새로운 스틸 브레이슬릿 모델이 추가됐다. 기존의 카프스킨 스트랩과 블랙 나토 스트랩 버전보다 한층 스포티하고 남성적인 인상을 준다. 더불어 군용 시계와 어울리는 샌드, 그레이, 카키 색상의 나토 스트랩도 추가됐다. 스틸 브레이슬릿은 모두 컴포트 이지-핏을 채택해 착용자가 브레이슬릿 길이를 미세 조정할 수 있다.
스틸 브레이슬릿을 장착한 타입 XX 컬렉션. 샌드, 그레이, 카키 색상의 나토 스트랩을 제공한다.
TYPE 20 CHRONOGRAPHE 2057
- The military heritage 군용
1955년부터 1959년 사이 프랑스 공군에 공급된 1100피스의 타입 20에서 영감을 받았다. 블랙 다이얼을 장착해 타입 20의 정체성을 충실히 드러냈고, 여타 모델과는 달리 로마숫자가 아닌 아라비아숫자로 타입 20을 새겨 차별화를 뒀다. 인덱스와 베젤의 삼각형 디테일 그리고 모든 핸즈는 야광 처리된 민트 그린 컬러를 적용하고 42mm 스틸 케이스에는 과거 공군에 공급되었던 모델과 마찬가지로 플루티드 양방향 베젤을 탑재했다. 3시와 9시 방향에 사이즈를 달리한 30분 카운터와 60초 카운터의 배치는 신작에서 눈에 띄는 부분. 배(pear) 모양 크라운을 통해 중립, 날짜 조정, 시간 설정 세 가지 포지션으로 조정할 수 있고 위아래로 크로노그래프 푸셔와 플라이백 푸셔를 장착했다.
42mm 스틸 케이스, 두께 14.1mm,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7281, 60시간 파워 리저브, 100m 방수.

TYPE XX CHRONOGRAPHE 2067
- The line of civilian versions 민간용
타입 XX 민간용 버전인 2067 모델은 1950년대 및 1960년대 등장한 최고급 민간용 타입 XX, 특히 1957년에 제작된 2988 모델에서 영감을 얻었다. 3시 방향에는 15분, 6시 방향에는 12시간, 9시 방향에는 러닝 세컨즈가 위치한 것이 시각적으로 보이는 군용 모델과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다. 한층 유려하게 배치되어 다이얼에 역동성을 더하고 가독성을 높였다. 인덱스와 핸즈, 베젤의 삼각형 디테일에 아이보리 컬러 야광 코팅을 더했고, 4시와 5시 방향에 날짜 창을 배치했다. 홈이 파인 양방향 눈금 디테일 베젤을 탑재했고 직선 형태의 클래식한 크라운은 중립, 날짜 조정, 시간 설정 세 가지 포지션으로 조정할 수 있고 군용과 동일하게 위아래로 크로노그래프 푸셔와 플라이백 푸셔를 장착했다.
42mm 스틸 케이스, 두께 14.1mm, 셀프와인딩 무브먼트 칼리버 728, 60시간 파워 리저브, 100m 방수.

민간용 버전을 위한 셀프와인딩 칼리버 728, 군용 버전을 위한 칼리버 7281을 개발했다. 민간용 버전을 위한 셀프와인딩 칼리버 728, 군용 버전을 위한 칼리버 7281을 개발했다.

Credit

  • PHOTO 브레게
  • ART DESIGNER 박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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