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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범죄도시>만 잘될까?
왜 <범죄도시>만 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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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한국 영화 만세는 아니다. 오늘부터 쏟아져 나온 기사들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문제는 당연히 스크린 독과점이다. 아니. 독점이다. <범죄도시4>는 전국 스크린 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영화들은 밀려서 개봉관도 잡지 못하는 처지다. 스크린을 확보하지 않으면 관객을 만날 수도 없다. 5월 2일에는 ‘한국 영화 생태계 복원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많은 한국 영화 제작자들이 독과점 문제를 지적하며 “극장이 영화계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성토했다. 사실 스크린 독과점은 이 글에서 크게 초점을 맞출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한 마디 하고 넘어갈 필요는 있을 것이다.
사실 <범죄도시4>의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예전 독과점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개봉하는 한국 영화 숫자가 팬데믹 이전보다 지나치게 적어졌다. 어차피 관객들이 지금 극장가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영화, 아니 한국 상업영화는 <범죄도시4>밖에 없다. 한 네티즌은 댓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해외 영화도 별로 없고 어차피 <범죄도시4>뿐이라서 봤다.” 사실이다. 한국 영화 산업은 엄청난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개봉한 상업영화 중 충분한 돈을 번 영화는 거의 없다. 과장이 아니다. 거의 없다. 극장은 관객을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에 빼앗긴 지 오래다. 극장과 안방의 경계는 무너졌다. CJ도 롯데도 쇼박스도 대체 뭘 만들어야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일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혼돈의 카오스다.
그런데 대체 왜 <범죄도시> 시리즈는 잘되는 걸까. 아니, 왜 <범죄도시>만 잘되는 걸까. 그게 과연 스크린 독과점 때문일까. 나는 영화평론가로서 이런 경우 영화계의 가난한 제작자들 편을 들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사실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깨닫고 있다. <범죄도시4>가 천만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내 예상은 이미 <범죄도시4>를 극장에서 보면서 무너졌다.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 재미없는 영화는 분명 천만을 기록하겠네”라고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시리즈는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할리우드 스타일의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이다. 아니 잠깐. 한국 영화에도 프랜차이즈는 존재하지 않았냐고? 아니. 없었다. 우리가 프랜차이즈라고 생각했던 건 그냥 ‘속편’일 뿐이었다.
물론이다. <투캅스> <공공의 적> <조선명탐정> <타짜> 등 속편으로 이어진 영화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리즈들은 전편의 성공에 힘입어 제작된 단순한 속편으로 기능할 뿐이다. 배우와 캐릭터를 고정해놓고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점점 규모를 넓혀가는, 완벽하게 계획된 할리우드식 프랜차이즈는 한국 영화 역사에서 제대로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전무후무한 성공을 파악하려면 한국 영화를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리썰 웨폰> <다이하드> <제이슨 본> <존 윅>, 심지어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를 가져와야 한다. 할리우드 액션 프랜차이즈들의 특징은 일관적이다. 스타 퀄리티가 있는 한 명의 배우, 그가 만들어낸 하나의 캐릭터가 중심이다. 속편은 끊임없이 변주한다. 프랜차이즈는 아니다. 프랜차이즈는 늘 익숙하다. 익숙함이야말로 프랜차이즈의 기본이다. 사람들은 기대하는 것을 보러, 내가 정확하게 아는 그 맛을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이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한국화다.
이 시리즈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범죄도시> 1편은 프랜차이즈로서의 계획 없이 만들어진 전형적인 한국 범죄 액션영화였다. 잔혹한 범죄를 잔혹한 방식으로 다루는 18금 영화 말이다. 한국 영화는 기본적으로 장르영화에서도 리얼리티를 따지는 편이다. 2편부터 이 시리즈를 본 관객이 지금 다시 1편을 본다면 ‘이게 이런 영화였어? 마석도가 이런 캐릭터였어?’라며 놀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마석도는 룸살롱을 버릇처럼 다니는 데다 몰래 여기저기서 돈을 받아먹는 게 분명해 보이는 한국 영화 속 형사의 클리셰에 가깝다. 2편부터 <범죄도시>는 장르의 급격한 턴을 보여준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바뀌었다. 잔인한 악역이 여전히 등장하지만 피비린내 나던 1편의 폭력 수위는 확연히 줄어들었다. 마석도 캐릭터는 더는 ‘룸살롱 개저씨 형사’가 아니다. 거의 마블 히어로에 가까운 비인간적 파워를 지닌, 피겨로 생산할 가치가 있는 할리우드식 캐릭터다. 리얼리티를 제거하는 대신 첨가한 것은 유머다. 그것 역시 속편에 ‘감초 캐릭터’를 첨가하는 할리우드 방식이다.
그 모든 것의 위에 마동석이라는 존재가 있다. 마동석은 그냥 배우가 아니다. 시리즈를 총괄하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는 2편 개봉 시 이렇게 말했다. “1편도 자랑스러운 영화지만 잔혹한 부분에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더 대중적으로 액션에 대한 통쾌함을 줄 수 있게 디자인했다.” 그렇다. 이것은 마동석의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그 디자인의 근원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보기에 그건 <범죄도시>가 아니라 <부산행>이다. <부산행>은 2000년대 이후 개봉한 한국 영화 중 해외 관객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국제적 브랜드가 됐다. 그 이후 거의 모든 마동석 영화 캐릭터는 임신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던 <부산행> 캐릭터의 변주다. 아니. 변주라기보다는 반복에 더 가까울 것이다. 할리우드 진출작인 마블 영화 <이터널스>의 캐릭터를 한번 생각해보시라. 그것 역시 그냥 마동석이다.
반복은 나쁜 것인가? 한국 배우들은 지속적으로 다른 캐릭터와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시달린다. 관객들도 그걸 배우의 최우선 가치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할리우드는 다르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멜 깁슨, 키애누 리브스, 톰 크루즈, 드웨인 존슨, 빈 디젤 같은 액션 스타들을 떠올려보시라. 그들은 종종 새로운 역할에 도전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력 내내 그들을 스타로 만들어준 이미지를 반복해왔다. 그들도 오스카에 대한 염원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오스카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할리우드 제작자들과 스타들은 알고 있다. 관객들이 무엇을 바라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걸 굳이 벗어던질 생각은 없다. 스타를 만드는 것은 연기가 아니다. 이미지다. 캐릭터다. 마동석은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할리우드식 스타다.
그러니 나는 여기서 영화평론가로서 (또 틀릴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또 하나의 예언을 남겨야 할 것 같다. <범죄도시5> 역시 천만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일 것이다. 매년 익숙한 시리즈가 찾아온다는 개념을 한국 관객들은 <범죄도시> 시리즈로 처음 깨달았다. 마치 <다이하드> <리썰 웨폰>과 <존 윅>, 나아가서는 <미션 임파서블> 속편을 기다리듯이, 관객들은 마석도의 미션을 기다릴 것이다. 물론 이쯤에서 한 번은 변주가 있어야 한다. 흥미롭게도 마동석은 얼마 전 이렇게 말했다. “1~4편이 1부라고 친다면 (계획 중인 5~8편은) 2부가 될 것이다. 톤도 많이 바뀌고 <범죄도시> 같지 않은 작품도 있을 것이다. 스핀오프도 생각 중이다.” 나는 시리즈의 디자이너인 마동석에게 감탄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한국 영화는 어쩌면 가장 큰 산업적 위기의 순간에 옛 할리우드로부터 새로운 길을 찾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좋고 나쁘고는 더는 문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익숙한 주먹이 필요한 것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JEWE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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