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4대째 성업 중인 가르다 호수의 와인 패밀리

오래된 재래식 와이너리에 대한 환상은 잠시 접어두자. 4대째 와인을 만들고 있는 이 가족은 새로운 방식과 첨단 설비로 소중한 가치와 일정한 품질을 지켜내며 매혹의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루가나 최고의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 ‘카데이 프라티’에 다녀왔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4.07.15
지난 4월의 어느 오후, 나는 이탈리아의 가르다 호수에 접해 있는 호텔 ‘아킬라 도로’의 테라스에서 와이너리 ‘카데이 프라티’의 해외 영업 매니저 스테파노 피오란자토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현지 민물고기 요리에 카데이 프라티의 화이트 와인 ‘이 프라티’(I Frati)를 곁들여 마시던 중 나는 문득 뭔가가 이상하다는 걸 감지했다. 소설 <1Q84>에서 두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가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하늘을 봤더니 달이 두 개 떠 있었던 것처럼, 하루키의 스타일을 빌리자면 ‘뭔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깨달았다. 당시 테라스에서 보이는 호수 건너편에는 마치 병풍처럼 산등성이들이 펼쳐져 있었고, 무척 선명하게 보였다. 스테파노에게 물어보니, 그건 한 20km쯤 떨어져 있는 산들의 능선이었다. “가르다 호수는 이탈리아에서 제일 커요. 로마보다도 크죠.” 사실 가르다 호수의 크기는 로마와 비교할 게 아니었다. 면적으로는 서울시의 3배가 넘었고, 길게 뻗은 호수의 남쪽부터 북쪽 끝까지의 거리가 자그마치 50km가 넘었으니까. 내가 감지한 ‘뭔가 이상하다’는 감각은 정당했다. 20km나 떨어진 산등성이가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는 미세먼지와 싸우는 서울 시민에겐 이상한 세계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햇살이 눈부시게 쨍쨍한데, 또 불어오는 바람은 서늘해 이런 세상에 처음 와보는 듯한 미시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맑고 햇살이 쨍쨍하지만, 아침이면 또 안개가 자욱하게 끼지요. 거대한 가르다 호수의 물들 덕에 이 지역은 기온이 그리 높게 올라가지 않아요. 포도를 키우기엔 최적의 조건이지요.” 스테파노가 말했다.
가르다 호수는 카데이 프라티를 소유한 ‘달 체로 패밀리’가 호수 남서쪽에 위치한 와인 산지 루가나 지역에 자리를 잡은 가장 큰 이유다. ‘달 체로’(Dal Cero) 가문의 펠리체 달 체로(Felice Dal Cero)는 루가나 지역 출신이 아니었다. 루가나에서 동쪽에 있는 베로나 인근에서 루가나로 이주해 왔다. “펠리체 달 체로가 이 지역에 와이너리를 세우기 위해 옮겨 온 게 1939년이니까 자그마치 85년이 흐른 셈이죠.” 스테파노가 가계도를 그리며 말했다. “펠리체의 아들이 피에트로 달 체로고 피에트로 달 체로와 산타 로사 사이에서 안나 마리아, 이지노, 지안 프랑코가 태어났지요. 안나 마리아의 셋째인 실비아가 바로 제 아내랍니다.” 그렇다. 자신을 그저 ‘수출 총책임자’라고 겸손하게 소개했을 뿐인 스테파노는 사실 루가나 지역 최대 와이너리를 경영하는 가족 경영 족벌 3세의 사위였던 것이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와이너리 역사를 설명하는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조금 달라진 건 내 안에 있는 세속적인 특성 때문이지 그의 태도가 변해서는 아니었다. “카데이 프라티(Ca’dei Frati)를 직역하면 ‘형제들의 집’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기서 형제들은 다분히 종교적인 표현입니다. 그건 저희가 이 지역에 와이너리를 세우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사들이 와인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해당 지역을 언급한 사료에 따르면 자그마치 1782년에 이 지역을 일컬어 “시르미오네(루가나가 속한 지역) 루가나에 ‘수도사들이 있는 곳’(place of Friars)이라 불리는 와이너리가 있다”는 언급이 등장하는데 이곳이 이후 ‘수도사들의 집’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와이너리 이름뿐 아니라 와인 이름들 역시 수도사들의 전통을 잇는다. “지금 마시는 ‘이 프라티’(I frati)에서 ‘I’는 정관사 ‘the’와 같은 것이고 프라티는 형제의 복수형이죠.” 루가나 지역은 토착 품종인 ‘투르비아나’로 빚은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고, 카데이 프라티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이 투르비아나 품종을 가장 잘 다루는 곳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얼마 전에 다녀왔던 볼로냐의 한 레스토랑에서 투르비아나 품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소믈리에가 카데이 프라티를 들고 나와 무척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이 프라티’는 투르비아나 100%의 단일 품종 화이트 와인으로 카데이 프라티의 얼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와인을 잔에 따르는 순간 당신은 깜짝 놀랄 것이다. 살구, 자두, 잘 익은 사과, 복숭아, 레몬의 복합적인 향이 비강을 가득 채운다. 이런 복합적인 향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입안에 넣었을 때는 적절한 산도와 보디감이 크리스피하고 신선한 피니시가 일품이다. 이 와인의 가장 놀라운 점은 감칠맛이다. 스틸 탱크에서 리콘택트를 한 상태로 6개월의 숙성을 한 이 와인에는 높은 산미와 복합적인 과실향에 전혀 지지 않을 정도의 감칠맛이 감돈다. 강도, 밸런스, 복합도, 여운 등 모든 영역이 비슷한 가격대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뛰어나다. “비슷한 퍼포먼스의 와인을 찾으려면 4배의 돈을 내야 할 것”이라는 비비노의 한 평가에 완벽하게 동의할 수 있다. 스테파노는 이번엔 ‘이 프라티’가 아닌 ‘브롤레티노’라는 또 다른 화이트 와인의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브롤레티노’를 ‘이 프라티’와 비교해 마셔보면 양조 과정에서의 판단이 얼마나 크게 와인의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 수 있지요.” 이 프라티가 투르비아나가 가진 신선함에 집중한 와인이라면 브롤레티노는 풍성함에 초점을 맞춘 와인이다. 같은 투르비아나 품종이지만 브롤레티노는 스틸 탱크에서 숙성(신선함을 강조하는 숙성)하다가 바리크(향미 물질의 풍부함을 위한 숙성)에서 마무리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정 비율은 젖산 발효를 막고 나머지는 또 젖산 발효를 진행시켰다. 화이트 와인 양조의 여러 선택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드러나는 젖산 발효는 강한 신맛을 내는 ‘사과산’이 유산균에 의해 좀 더 부드러운 젖산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 유산균은 매우 흔한 균이라 그냥 두면 사과산은 다 젖산으로 바뀐다. ‘이 프라티’는 모든 와인에 젖산 발효가 일어나지 않도록 통제한 반면 ‘브롤레티노’는 젖산 발효가 일어난 와인과 일어나지 않은 와인을 섞었다. 즉 산미를 강조한 원액, 부드러움을 강조한 원액이 섞여 스틸 탱크와 바리크를 차례로 거치며 복합미의 절정에 이른다. 그러니까 지난 4월의 어느 오후, 가르다 호수에 접한 테라스에서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선명하게 보이는 먼 호수 건너편의 산등성이뿐이 아니다.
카데이 프라티를 방문하기 전 ‘가족 경영 와이너리’라는 말을 듣고 작은 양조장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우리가 함께 마신 와인들이 만들어지는 카데이 프라티의 심장인 양조장에 가서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맞아요. 시골 와이너리를 상상하며 여기 왔다가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지요.” 스테파노가 말했다. 그곳엔 내가 지금까지 가본 어떤 와이너리들보다 완벽하게 자동화된 시설이다. 그곳은 수천 통의 바리크와 스파클링 보틀들이 조용히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기업이었다. “뭔가 유기농적이고 시골적인 시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저희는 이제 그런 작은 기업의 수준을 넘어섰어요. 위생과 효율이 엄청나게 중요한 루가나 지역 최대 생산자가 되었지요. 지금 양조하는 방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설을 투자했는지 몰라요.” 나는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어제 내가 마신 와인들을 떠올렸다. “어제 마신 와인들은 화이트지만 숙성의 포텐셜을 갖춘 것들이죠. 매년 그 맛의 편차도 그리 크지 않고요.” 그렇다 이런 복합적인 향미의 와인을 일정한 퀄리티 이상으로 양조해내려면 자연과 테루아에 결과를 맡기는 양조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단계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금세 친해진 스테파노의 눈을 보며, 이 4대째 이어진 와인 가문이 더 거대한 제국을 이루기를 기도했다. →
카데이 프라티의 와인들.

카데이 프라티의 와인들.

Credit

  • PHOTO Ca’dei Frati
  • ART DESIGNER 김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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