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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실패를 빠르고 정확하게 성취하는 법

완벽한 실패를 빠르고 정확하게 성취하는 법

프로필 by 박세회 2024.07.19
완벽한 의사결정이 가능할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봤을 때 후회 없는 결정을 늘 내릴 수 있을까? IT 비즈니스라는 정글을 헤쳐나가는 모든 갈림길에서 목표를 향한 올바른 길을 항상 선택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불가능하고, 말도 안 되는 욕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데이터들을 모으고 모아서 최대한 후회 없는 민첩한 의사결정을 위한 방법을 따른다. 그 방법을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캐주얼 게임을 만드는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캐주얼 게임은 주로 짧은 시간에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조작이 무척 간단한 게임들이다. 당신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들어갔을 때 종종 자동으로 재생되는 게임들이 캐주얼 게임인 경우가 많다. 거북이가 다가오는 버섯괴물들을 물리치기 위해 총을 쏘거나 대왕문어가 살포하는 문어 새끼들의 침공을 막기 위해 대포를 쏘는, 기본적으로는 40년 전 남코에서 만든 갤러그만큼이나 단순한 게임들 말이다. 이 게임들의 기본적인 조작 구성은 이미 몇 가지로 정해져 있다. 적이 뭔가 위협적인 것을 플레이어를 향해 살포하고 플레이어는 그것을 향해 발사체를 쏴 격추한다. 그 적은 대왕문어가 될 수도 있고 버섯대마왕이 될 수도 있고 고질라가 될 수도 있으며, 대왕문어는 먹물을, 버섯대마왕은 포자를, 고질라는 불덩어리를 발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사용자의 유입을 끌어들이는 큰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그래픽으로 보여지는 아트 콘셉트다. 대왕문어와 고질라 그리고 버섯대마왕의 그래픽적인 매력과 대중성이 게임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게임업계에선 종종 ‘페이크 테스트’를 돌린다. 아직 개발도 하기 전에 일단 그래픽 시안만 뽑은 후 같은 시간, 같은 사용자층 같은 도달 범위에 광고를 뿌려보는 것이다. 대왕문어와 버섯대마왕과 고질라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개발하기도 전에 그림만 그려서 인기 투표를 진행해보고 거기서 1등을 한 악당을 소재로 게임 개발에 반영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게임 영상들을 보고 ‘다운로드해볼까?’ 하고 클릭했다가 광고와 다른 게임 혹은 전혀 상관없는 페이지로 연결된 적이 있다면, 당신은 페이크 테스트에 당첨됐을 확률이 크다. 페이크 테스트에 당신도 모르는 한 표를 행사한 것이다. 페이크 테스트를 수행하는 기업은 해당 광고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누르고 다운로드하려는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며, 이는 향후 캐주얼 게임의 개발 방향과 수많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늘 완벽한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이런 테스트를 통해 고객들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지표가 잘 나오는 콘텐츠를 찾아가는 이정표로 삼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문어가 더 좋을지, 고질라가 더 좋을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회의 테이블에서 답이 없는 취향의 문제를 두고 탁상공론을 벌이기보다는 ‘페이크 테스트’를 통해 데이터 기반의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 나는 이 방식의 근본적인 바탕이 종종 우리가 얘기하는 ‘애자일(Agile)’이라는 철학 혹은 ‘린(Lean)’한 사고방식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다들 애자일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2010년 정도부터 국내 기업에서도 확산되어 이제는 IT 기업에선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애자일은 사전적으로는 ‘민첩한’이라는 뜻이다. 1990년대 중반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 애자일 프로세스가 등장했지만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유연하게 작업하는 원칙들과 가치를 포괄하며 업종을 가리지 않고 ‘애자일’이라는 단어를 볼 수 있게 됐다. <에스콰이어>의 박세회 디렉터는 이런 이야기들을 듣더니 “에디터들의 사고방식은 좋게 말하면 유기적인데, 프로젝트 매니저들의 사고방식은 알고리즘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로 그 알고리즘과 비슷한 사고방식, 데이터에 기반하는 비(非)정성적 방식을 따르는 신속한 의사결정 과정을 우리는 ‘린(Lean)’하다거나 ‘애자일(Agile)’하다고 대충 표현할 때가 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친구와 함께 같은 게임에 접속했는데, 서로 다른 UI(User Interface) 화면이 표시된 적이 있을 것이다. 그건 당신이 A/B 테스트에 당첨되었기 때문이다. A/B 테스트란 주로 웹페이지, 앱, 광고, 이메일 등의 온라인 콘텐츠에서 많은 수의 사용자를 무작위로 나눠서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화면을 보여주고 어느 버전이 체류 시간, 전환율 등의 목적 지표에 맞는 더 나은 성과를 내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다. 페이크 테스트에서 버섯대마왕이 당첨되었다. 그런데 버섯대마왕으로 슈팅 게임을 만들 때 가로로 할지 세로로 할지 고민된다면 짧게 두 개의 게임을 다 만들어 A/B 테스트를 돌려보면 되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애자일을 표방하며 이런 식의 접근을 하는 이유는, 당연하겠지만 효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시작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현재를 사는 사람으로서 페이크 테스트와 A/B 테스트 등을 통해 모은 데이터들은 시도 비용을 낮춘다. 또한 이 선택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성공한다는 믿음을 깔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창조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비용보다 이미 검증된 기호를 바탕으로 안전한 선택을 확장하는 편이 비용과 편익 면에서 더 효율적이다.
게임이나 온라인 콘텐츠의 영역으로 한정하지 않아도 민첩하고 효율적으로 사업을 이끌어가는 사고방식은 다양하게 공존한다. 많은 사업가가 마치 게임업계에서 페이크 테스트를 돌리듯 MVP(Minimum Viable Product)라고 지칭하는 최소 기능 제품을 빠르게 구현한 뒤 고객의 반응을 확인하는 작업을 거친다. 완벽한 서비스를 만들기 전에 좀 부족하지만 고객이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출시하고 고객의 피드백을 수용하며 개선해나가는 방식이다. 배달의민족이 좋은 예시다. 배달의민족은 처음에는 음식점들의 전단지를 모아서 전화번호부가 표시되는 기능만 있는 앱으로 시작했다. 이후 배달 주문 앱으로 거듭나던 초창기, 아직 지금과 같이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에 이들은 사실상 앱으로 주문이 들어오면 이 주문을 ‘수작업’으로 해당 업장에 전화로 주문해 가게에 전달하는 방식을 썼다. 또 다른 사례가 명함 앱 리멤버다. 이 앱 역시 초창기에는 텍스트 인식 기능을 완벽하게 구현하지 않은 채 출시되었다. 초창기에는 사용자가 리멤버로 명함을 찍어 전송하면 속기사들이 이를 전부 수기로 입력해 등록했으나 서비스가 발전하면서 점차 자동 입력 비중을 늘렸다. 이런 방식은 불완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들의 피드백을 모아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배달의민족이 처음부터 주문, 결제 모든 영역에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 적용하려 했거나, 리멤버가 처음부터 자동 입력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모든 시간을 쏟아 출시를 미뤘다면 그사이 이미 다른 기업이 그 아이디어를 선점했을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실패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 본인의 아이템을 검증해가며 사업을 준비하는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 최근에는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콘셉트의 관광 가이드 서비스를 실험해봤다고 한다. 홈페이지, 계약서, 온라인 결제 시스템도 만들고 가이드도 섭외하고 광고 준비도 하고 관광 콘텐츠도 짜서 완벽하게 해보려면 몇 주는 걸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친구는 민첩했다. 가설로 잡은 콘셉트 몇 가지에 대해 간단한 메시지를 만들더니 온라인으로 작은 규모의 광고를 집행해 어떤 유형의 고객들이 반응하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그리고 가장 반응이 좋았던 콘셉트의 광고에서 유입된 고객을 대상으로 본인이 직접 가이드로 활동하며 서비스를 제공하고 피드백을 수집해 자신만의 관광 콘텐츠를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친구는 목표 달성에 부합하는 검증 기준 몇 가지 지표를 산출한 후 이 사업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 모든 일을 거치는 데 5일도 걸리지 않았고, 지금은 신속하게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어쩌면 이 차가워 보이는 방식에서 새로운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고, 틀려도 괜찮다. 오히려 고객에게 공개하기 전부터 완벽하기란 너무 어렵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많은 게임사가 게임이 완성되기도 전에 콘셉트 영상을 공개하며 고객들의 기대감을 고취하고 반응을 살펴 더 완벽한 게임을 만든다. 애플은 자신들이 계획한 모든 기능을 한 기기에 통합하지 못한 채 아이폰을 공개했다. 그 역사적인 프레젠테이션에서 스티브 잡스가 한 가지 기능만 구현되는 여러 아이폰 기기를 숨겨두고 마술사처럼 바꿔가며 아이폰을 시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종종 나는 이런 사고방식을 인생으로 확장해보곤 한다. 모든 사람은 본인 인생의 프로젝트 매니저이므로, 당신이 뭔가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면 망설일 시간에 작은 실험을 해보면 어떨까? 최악의 경우라도, 최소한 당신은 후회 없고 빠른 실패를 경험할 테니 말이다.

조재연은 사이버 보안, IT 서비스, 글로벌 게임 회사 등에서 개발자, 프로젝트 매니저, 주요 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주로 IT 영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글로벌로 진출시킨 경험이 있으며, 현재는 IT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조재연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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