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돔 페리뇽이 드디어 공개한 '레벨라시옹 2024' 비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돔 페리뇽의 연례행사 ‘레벨라시옹 2024’에서 <에스콰이어>는 기대했던 2023년의 아상블라주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아상블라주의 부재가 돔 페리뇽에 게시한 새로운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2023년 샹파뉴의 포도밭부터 2024년 7월의 바르셀로나로 이어지는 돔 페리뇽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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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파브리카’에서 열린 레벨라시옹 디너에서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사마유가 연주 중이다.
그날도 돔 페리뇽의 셰프 드 카브 뱅상 샤프롱은 평년 8월의 여느 날처럼 피노 누아와 샤르도네가 자라는 밭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이맘때쯤이면 그는 거의 매일 오빌레, 슈이, 부지, 클로시, 베르제네 등에 있는 포도밭들을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포도를 맛봤다. 포도를 맛보고, 그 포도로 만든 스틸 와인 맛을 상상하고, 여러 밭에서 난 스틸 와인들을 섞어 그해의 빈티지 샴페인으로 진화할 ‘아상블라주’(샴페인의 원료가 되는 블렌디드 화이트 와인)를 만드는 것은 온통 셰프 드 카브의 일이다. 그는 양조 바다의 선장. 밭의 포도를 맛보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한다. 그런데 그는 그날 갈피를 잃었다.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의 텍스처들 사이에서 방향을 잃었다. 포도들은 한여름 해수욕장에서 뛰노는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터질 듯 부푼 채 거대한 송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묽었다. 포도알을 채우고 있는 맛의 물질들의 농도가 충분하지 못했다. 적어도 ‘돔 페리뇽’의 빈티지 샴페인을 만들기엔 모자랐다.
2023년의 여름은 내내 덥고 습했다. 6월 중순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뒤로는 계속 그랬다. 며칠 혹은 몇 주 동안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다가 미친 듯이 비가 쏟아졌고, 그렇게 비를 머금은 땅은 다시 더위가 시작되면 뜨거운 숨처럼 수증기를 내뿜었다. 포도나무들은 아마 신이 났을 것이다. 충분한 물과 열기 그리고 충분한 직사광선이 주기적으로 공급됐다. 닥치는 대로 광합성을 해대며 영양분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이파리와 줄기는 쑥쑥 자랐고, 포도송이는 전에 없이 거대하게 부풀어 갔다. 여름의 포도밭에는 여느 해와 다른 활력이 가득 차 있었다.
활력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지나친 영양분의 섭취는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포도는 꽃이 진 자리에 처음 열매가 열릴 때면, 초록이다. 그러나 열매와 씨앗이 영글기 시작하면 적포도는 자줏빛을, 청포도는 금빛을 띠며 빛나기 시작한다. 마치 사람의 2차 성징과도 같은 이 시기를 ‘베레종’이라 한다. 베레종 전까지는 충분한 물 공급이 필요하지만, 베레종 후에는 비가 오지 않고 땅이 바싹 마를수록 더 좋다. 포도나무는 충분한 온도와 일조량이 보장된 상태로 수분이 모자란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 처하면, 덜 시고, 더 달고, 온갖 미네랄의 향미가 풍부하고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포도 열매를 맺는다. 야생동물과 인간이 열매를 따먹고 그 씨앗을 널리 퍼뜨릴 수 있도록 하는 진화의 동력이다. 7월의 비는 그 반대의 의미였다. 베레종 이후, 수분 공급이 제한적이어야 할 시기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비는 2023년 과실들의 맛과 향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다. 7월의 비와 8월의 폭염으로 그해의 포도들은 망가져 있었다.
뱅상 샤프롱은 자신이 놓친 징후들, 2023년의 포도들이 남긴 흔적들을 되짚어보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올해는 모든 것이 예년과 달랐다. 중요한 밭 중 하나인 오빌레(Hautvillers) 마을의 코타브라(Côte à Bras)에 있는 돔 페리뇽 소유의 구획에는 3월 한 달 사이에 비가 150mm나 퍼부었다. 비가 필요한 시기이기는 하지만 150mm는 적어도 석 달, 길게는 다섯 달 동안 내릴 비의 양이었다. 1년에 1500mm의 비가 쏟아지는 한국과 샹파뉴는 그 기후가 다르다. 샹파뉴 지방의 평균 강우가 평년 550~700mm라는 걸 생각하면 오빌레 마을의 봄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에페르네 동쪽에 있는 슈이(Chouilly)의 콕토드사랑(Coteau de Saran) 포도밭은 7월에 온통 초록 잡초로 뒤덮였다. 4월에 우렁차게 내린 비와 쨍쨍하게 내리쬔 햇살 덕에 너무도 건강하게 자란 잡초들은 여름의 땡볕을 이겨낸 채 포도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
나쁜 징후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훌륭한 피노 누아 산지인 아이와 마레이유의 가파른 경사지에서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봄철부터 북쪽에서 불어오기 시작한 바람이 토양과 이파리를 건조하게 말려준 덕에 포도들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7월 중순까지만 해도 포도밭의 책임자들은 올해 피노 누아의 경작이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포도나무 수분철에는 공기 중에 날리는 꽃가루의 밀도로 그해에 수확할 포도의 양을 예측해볼 수 있다. 그해 6월 꽃가루 센서로 검사해본 결과 예상 수확량은 헥타르당 1만7000kg에 달했다. 샹파뉴 지역 전체로 따지면 평년의 수확량은 1만2000에서 1만4000kg 정도를 오간다. 뱅상 샤프롱은 이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봄에 우리는 최악의 해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으나, 최악이라고 할 만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름엔 충분한 양의 일조량과 수분 혜택을 입었다. 그런데 혹시 너무 과한 건 아니었을까?”
그의 예상은 맞았다. 지난해 9월 초,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에는 이미 여러 징후들이 증상으로 발현되었다. 한 피노 누아 밭의 포도는 예년보다 3주 빨리 수확을 시작해 2005년의 조기 수확 기록을 깨뜨렸다. 그 밭에서 난 포도송이의 무게는 어마어마하게 무거웠지만 산도는 약했고, 질소 농도는 부족했다. 모든 지표가 포도가 너무 묽다고 말하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이어진 폭염으로 직사광선에 노출된 포도들엔 수시간 만에 갈색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라코트 드 블랑, 메닐, 아비즈, 크라망의 포도밭에서 난 샤르도네는 보기 힘들 정도로 안쓰러워 보였다. 뱅상은 수확이 끝난 뒤, 각 구획의 포도들을 나눠 양조한 수십 가지의 스틸 와인 샘플을 맛보고 또 맛봤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지었다. 2023년의 포도들로는 충분한 퀄리티의 돔 페리뇽 빈티지를 만들 수 없다고.

팔라우 마르토렐에서 열린 <Trace : Pré-Assemblages 2023>의 전시 전경.
From the Absence
그러나 2023년의 빈티지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돔 페리뇽의 이야기는 더욱 재밌어진다. 길게 설명한 빈티지 2023의 부재가 곧 돔 페리뇽이 바르셀로나에서 개최한 전시 <Trace : Pré-Assemblages 2023>(<흔적 : 프리-아상블라주 2023>)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돔 페리뇽은 한 해에 한 번 돔 페리뇽과 함께하는 돔 페리뇽 소사이어티 소속의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셰프, 소믈리에 그리고 와인 저널리스트들을 전 세계에서 불러 모으고 그해에 발표되는 모든 샴페인과 지난해의 포도로 블렌딩한 아상블라주를 테이스팅하는 행사 ‘레벨라시옹’(Révélations)을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열리는 베뉴도 대단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8세기 중반 간무 천황이 교토의 건립을 명했다고 전해지는 교토의 사원 쇼군즈카 세이류덴에서 열렸다. 2024년의 레벨라시옹은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현대 카탈루냐 건축의 심장인 리카르도 보필의 숨결이 깃든 ‘라 파브리카’에서 열렸다. 바르셀로나 외곽의 오래된 시멘트 공장을 리노베이션한 이 공간은 1973년부터 보필의 스튜디오와 거주지로 사용된 바 있다. 예년이었다면 우리는 라 파브리카의 안뜰에서 돔 페리뇽 빈티지 2015, 돔 페리뇽 빈티지 2006, 플레니튜드 2 그리고 아상블라주 2023을 맛봤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아상블라주 2023이 없지 않은가? 그 대신 돔 페리뇽은 행사 전날 우리를 19세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축물 팔라우 마르토렐(Palau Martorell)로 인도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2023년 빈티지의 ‘프리 아상블라주’를 만날 수 있었다.
돔 페리뇽이 지금까지 발표한 빈티지 중 가장 적게 숙성한 것은 8년이며, 길게는 10년 혹은 11년을 숙성하기도 한다. 2024년에 발표된 돔 페리뇽은 참고로 2015년 포도로 만든 빈티지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것처럼 2030년이 지나도 ‘돔 페리뇽 빈티지 2023’은 출시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건너뛴 빈티지’는 많았다. 2008, 2009, 2010은 빈티지가 있지만 2011은 없다. 2012, 2013은 있지만 2014 빈티지는 아직 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2023년 빈티지의 부재를 미리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돔 페리뇽은 돔 페리뇽다워지기로 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돔 페리뇽 빈티지의 부재를 선언한 해의 흔적들을 모아 ‘프리-아상블라주’를 만들고 이를 전시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상블라주는 샴페인의 셰프 드 카브가 그해 포도밭별로 양조한 와인들을 블렌딩해 완성한 2차 발효 직전의 베이스 와인을 말한다. 그러니 ‘프리’ 아상블라주라는 단어 뜻대로였다면 아직 블렌딩되지 않은 스틸 와인들을 기대했을 수 있다. 그러나 돔 페리뇽이 전시한 ‘프리-아상블라주’는 음료 형태가 아니었다. 돔 페리뇽은 2023년의 기후와 양조 과정, 그해의 대기와 분위기를 예술 형태, 즉 사진과 회화 형식으로 기록하고 이를 모아 전시를 열었다.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정상이다. 2023년의 포도는 돔 페리뇽의 빈티지를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그래서 돔 페리뇽이 사진과 그림 그리고 글 형태로 그해의 포도밭, 잡초뿐 아니라 그해의 효모가 남긴 자국, 그해 농원에서 작업한 인부들의 모습을 모으고 묶어 전시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2023년이 남긴 흔적들은 실제로 소중했다. 그것들은 프랑스에서 가장 북쪽, 대체로 서늘하지만 여름에는 건조하고 경사지에선 일조량이 충분해 적정한 당도와 산미로 섬세한 밸런스를 이뤄낼 수 있었던 세계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 산지 샹파뉴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의 흔적이면서 해당 최상급 스페셜 퀴베인 돔 페리뇽이 그에 대응한 역사의 흔적이기도 했다. “우리는 테이스팅의 메소드를 바꾸기 시작했다. 후각을 뒤로한 채 미각에 집중했으며, 신맛, 쓴맛, 버터리한 맛, 리치한 맛 등을 아우르는 참조 값들을 모두 지워버리고 촉감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이드 포스트를 세웠다.” 뱅상 샤프롱이 전시 서문에 쓴 말이다.
전시된 사진에는 변덕이 잦은 날씨와 자연광의 움직임이 시간, 일, 주, 개월, 계절 단위로 포착되어 있었다. 돔 페리뇽 빈티지의 창조처럼 이들 작품도 자연의 진화 속 여러 사건에서 느껴진 감정을 표현했다. 포도송이의 진화 과정, 서로 다르게 영글어가는 베레종의 단면들, 바트 속 머스트 상태로 익어가는 와인들, 발효를 끝내고 남은 효모의 흔적들을 기록했다. 곡선으로 굽이치는 길과 언덕, 경사지, 빛과 그림자, 짙은 안개가 걸린 언덕과 그 안개가 걷힌 따가운 햇살의 광경들이 우리가 맛볼 수 없는 2023년의 아상블라주를 아주 옅게 감각할 수 있게 돕는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을 단독으로 장식한 아티스트 주세페 페노네(Giuseppe Penone)의 ‘Il verde del bosco con ramo’(가지를 뻗은 숲의 신록, 1983)가 인상에 깊게 남았다. ‘빈자의 예술’을 뜻하는 아르테 포베라 그룹에 속했던 페노네의 작품은 나무틀이 없는 비정형 캔버스의 한쪽이 실제 나뭇가지에 말려 있는 형태로 벽에 걸려 있어 나무를 표현한 평면 위의 형상들이 실제로 가지를 뻗은 듯 보였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로슈슈아르 현대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of Rochechouart)에서 대여한 이 작품은 마치 평면의 언어들이 현실의 세계와 접촉해 되살아나는 장면을 묘사한 듯 보였고, 이는 뱅상이 2023년의 흔적을 통해 새롭게 정립한 와인 양조의 철학인 ‘촉감’에 큰 영감을 줬다. “돔 페리뇽의 핵심적인 흔적, 즉 내면의 진실은 바로 입안에 닿는 방식이다. 이러한 촉감이 없다면 와인 생산이 이루어진 시공간을 거울처럼 닮은, 테이스팅의 시공간 속에서 풍미를 펼쳐낼 수가 없다.” 전시 서문에 뱅상 샤프롱이 쓴 말이다.

팔라우 마르토렐에서 열린 <Trace : Pré-Assemblages 2023>의 대표 이미지는 베레종 단계의 피노 누아였다.
Révélations
레벨라시옹의 주인공 중 하나가 아상블라주이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특히 올해의 행사는 온통 활기로 넘쳤다. 라 파브리카로 수십 대의 검은 밴과 세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페란 아드리아의 동생이자 스페인을 대표하는 셰프 알베르트 아드리아(Albert Adria)와 불가리 도쿄의 셰프이기도 한 니코 로미토(Niko Romito)의 음식이 서브되기 시작했다. 블랙 트러플과 그릴드 치킨 라비올리의 식감은 마치 부드러운 푸딩과 같았으며 상추구이와 아몬드무침은 한식의 김치를 연상케 할 만큼 바삭거렸다. 그러나 ‘촉감’에 대한 탐구를 위해 마련된 돔 페리뇽과의 페어링에서 단연 가장 중요한 것은 샴페인이었다. 돔 페리뇽 빈티지 2015는 9년 전의 포도로 빚은 마법이다. 생각해보라. 중저급 품질의 레드 와인이 견딜 수 있는 세월은 고작 4~5년이다. 좀 더 강건한 레드 와인의 경우라 해도 10년 정도?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몸짱 와인이 아닌 이상 그 이상의 숙성은 노화일 뿐이다. 게다가 10년이 넘는 세월을 견딜 수 있는 화이트 와인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화이트 와인은 5년만 지나도 과실의 향과 산미를 잃고 3차 숙성의 풍미, 가죽이나 흙, 나무의 향미만을 지닌 묘한 액체로 변모한다. 그러나 돔 페리뇽 빈티지 2015는 다른 돔 페리뇽 빈티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병에서 숙성했음에도 엄청난 생기와 신선미를 뿜어냈다. 물론 ‘신선하다’는 이 평가는 비슷한 나이대의 빈티지 와인들에 비해 그렇다는 뜻이다. 감귤의 껍질이 지닌 시트러스의 씁쓸함, 청사과, 캐머마일, 백후추, 딜, 민트, 아주 옅은 스모키니스, 깊은 숲의 덤불, 젖은 낙엽 등 여러 단계의 씁쓸함을 보여주는 다양한 페롤릭 향미들이 엄청난 복합미를 완성해낸다.
이 와인과 돔 페리뇽 빈티지 2006 플레니튜드 2를 함께 맛보는 과정은 와인 양조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와인의 ‘생명력’를 이해하는 소중한 과정이다. 돔 페리뇽 2006 플레니튜드 2(비단 이 빈티지가 아니라도)를 맛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18년을 병에서 숙성한 와인이 이런 놀라운 생명력을 고스란히 지닐 수 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2006년 9월의 날씨에 따라 4주에 걸쳐, 그때까지의 기록상 가장 긴 기간 동안 수확한 이 와인은 풍미의 강도에서부터 압도적이다. 잔을 스월링도 하기 전에 코끝을 잔 안에 대기도 전에, 테이블에 놓인 잔에 와인이 따라진 그 순간부터 버터와 브리오슈 코코넛과 커피의 향미들이 고소하게 올라온다. 오렌지, 라임, 금귤, 잘 익은 살구, 빨간 사과, 레드 페퍼, 갓 볶은 커피와 헤이즐넛, 꿀, 살구 콩포트, 토피 등의 풍미가 당신의 후각과 미각을 매우 부드럽게 그러나 참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인 형체로 압도한다. 저녁이 진행되는 동안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사마유(Bertrand Chamayou)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를 포함한 실험음악 세 곡을 재해석해 연주했다. 정적이 주를 이루는 그의 연주를 감상하며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전날 미리 맛본 돔 페리뇽 2006 플레니튜드 2의 생명력이었다. 어떻게 그런 생명력이 가능한가. 다음 날 다행히 뱅상 샤프롱과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샴페인의 2차 발효는 사실 4주면 끝나요. 모든 당분을 섭취해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들어내고 나면 효모는 죽죠. 그러나 이 효모는 병 안에서 분해되어 재흡수되면서 와인에게 생명력을 전달해요. 생명력을 결정하는 또 다른 하나는 산소입니다. 노화는 순전히 산소와 접촉하는 산화 과정 때문에 일어나죠. 우리는 와인이 산소와 접촉하는 모든 과정을 관리합니다. 중요한 것은 산소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산소는 와인의 숙성에도 필수적이거든요. 따라서 노화와 숙성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아주 정밀한 관리가 필요하죠.” 그가 말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모두 노화다. 그러나 늙어가며 진화하는 것은 숙성이라 부른다. 같은 의미가 인간에겐 성숙일 것이다. 돔 페리뇽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미학이자 철학이다.

돔 페리뇽 레벨라시옹의 시그너처인 ‘솔로 테이스팅’. 자못 엄숙한 배경에서 음악과 함께 이번에 발표된 샴페인을 테이스팅했다.
Credit
- PHOTO 모엣헤네시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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