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28살 현대 티뷰론 복원기

어머니가 해주던 반찬의 맛, 학창 시절 자주 듣던 유행가의 멜로디는 시간을 되돌리는 힘이 있다. 자동차도 그렇다. 28년 전 수많은 자동차 애호가의 마음을 훔쳤던 티뷰론이 돌아왔다.

프로필 by 박호준 2024.11.28
“돌고래입니다. 수면 위로 뛰어올라 빠르게 입수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티뷰론 디자인 개발을 담당했던 최출헌 디자이너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리어 스포일러 생김새가 돌고래 지느러미와 닮았다. 차체 전반에 곡선을 많이 담은 것도 돌고래의 매끈한 근육질 몸매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다. 이어서 그는 “후드를 낮게 만들어 스포티한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후드를 낮게 설계한 디자인 덕에 상대적으로 앞바퀴 위 펜더의 볼륨이 도드라져 보인다.
티뷰론은 현대자동차가 1996년 출시한 첫 번째 독자 개발 스포츠카다. 들어가는 부품은 물론 디자인까지 전부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해결했다. 포니를 만들 때 해외 유명 자동차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손을 빌렸던 것과 비교하면 눈부신 발전이다. 참고로 티뷰론 디자인의 뿌리 격인 HCD-1 콘셉트 카는 19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출품되어 ‘올해의 콘셉트 카’로 선정됐으며 같은 해 5월에는 미국 유명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의 표지를 장식했다.
사실 티뷰론의 복원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였다. 티뷰론 리스토어 프로젝트를 기획한 류민 콘텐츠 기획자는 이렇게 답했다. “아빠가 젊었을 때 타던 차야. 이런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자동차 문화도 충분히 무르익었잖아요.” 이어서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국산 올드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들이 안타까웠어요. 수입 올드카는 근사한데, 국산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지극히 경제적 가치 판단 기준에 매몰된 사고예요. 하지만 올드카 복원은 개인의 노스탤지어에서 비롯됩니다. 국산과 수입을 구분할 이유가 없죠. 복원 과정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28년 전 자동차를 복원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파워트레인뿐만 아니라 전기 배선과 시트까지 전부 드러내어 차체 단계부터 손을 봤다. 준비 단계를 제외하고 순수 복원에 들어간 시간만 약 6개월인 까닭이다. 부품 수급도 문제였다. 티뷰론은 아반떼 2세대(J2) 모델을 베이스로 했지만 외부 패널이 완전히 다르고 내부 부품도 공유되는 것이 별로 없다. “현대자동차 부품을 오랫동안 취급해온 대리점에 일일이 문의를 했어요. 워낙 오래된 부품이라 전산으로 재고 파악이 쉽지 않았죠.” 류씨의 말이다. 복원에 든 비용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지간한 국산 중형 세단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귀띔했다.
슈퍼카가 즐비한 요즘, 어지간한 자동차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 쉽지 않다. 그 어려운 일을 티뷰론이 해냈다. 스튜디오 촬영을 위해 이동하던 중 옆 차선의 나이 지긋한 운전자가 창문 밖으로 ‘엄지척’을 시전했다. 2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149마력의 최고 출력과 19.5의 최대 토크를 발휘한다. 당시에 4단 자동변속기와 5단 수동변속기 모델이 있었는데, 복원한 차는 수동변속기 모델이다. 클러치 감각을 익히기 위해 왼쪽 발을 조심스럽게 떼며 가속페달을 슬슬 밟았더니 차가 꽤 앙칼진 엔진음을 내며 고동친다. 기어를 바꿔 물 때 정교하게 만들어진 금속 덩어리가 ‘철컥’하며 맞물리는 감성이 매력적이다.
아날로그 계기반,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하는 카오디오 시스템, 열쇠를 꽂아 돌리는 시동 버튼과 트렁크 등 티뷰론에는 예스러운 장치가 가득하다. 그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라디오를 켜면 차체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은빛 안테나다. 주행 중 왼쪽 사이드미러로 꼿꼿이 서 있는 안테나가 슬쩍 보일 때면 20여 년 전으로 돌아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처음 뵌 분에게 다짜고짜 차(티뷰론)를 좀 태워달라고 했어요. 40~50대 정도 돼 보이는 점잖은 어르신이었는데, 흔쾌히 타라고 하시더라고요.” 카레이서이자 자동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강병휘의 이야기다. 1996년, 그는 길가에 세워진 티뷰론을 발견하고 그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결국 차를 타보는 기회를 얻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자동차에 대한 꿈이 더욱 커졌다고 털어놓았다.
“티뷰론과 N 브랜드가 기술적으로나 성능적으로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N 브랜드가 자동차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결과물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티뷰론에서 시작된 고성능 차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N 브랜드의 정신적인 밑거름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N 브랜드 박준우 상무의 말이다. 위 사례처럼 자동차라는 물건은 이동수단을 넘어 누군가에겐 꿈과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존재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지나간 차를 되돌릴 순 있다. 티뷰론에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던 이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GRAPHER 백건우
  • COORPERATION HMG 저널
  • ART DESIGNER 김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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