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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랄은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은 스스로가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랄랄랜드에서 랄랄을 만났다. 왜 이런 건물을 만들었는지, 왜 자꾸 음원을 내고 음악방송에 나가는지, 왜 20대로 돌아가면 출산부터 하고 싶은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필 by 오성윤 2025.09.22

십대의 치기를 벗고, 이십대의 애살에서 겨우 벗어나면, 삼십대에 인생의 첫 절정기가 찾아온다. 한국 최초의 남성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스콰이어>는 존 레논이 ‘Imagine’을 발표하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펴내고, 데이미언 셔젤이 <라 라 랜드>를 찍은 바로 그 삼십대에, 올해 처음 당도했다. 2025년 10월에 맞은 서른번 째 생일을 자축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룬 절정기의 삼십대, ‘프라임 서티즈’(Prime 30s) 열 명을 만났다.

실크 톱, 스커트 모두 갸즈드랑.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실크 톱, 스커트 모두 갸즈드랑. 슈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랄랄랜드엔 처음 와봐요. 1층은 스튜디오고, 2층은 편집실 겸 미팅룸이라고 했고, 여기(3층)는 뭐예요?

제 아지트 같은 공간이에요. 저한테 의미 있는 물건들로 하나하나 채워져 있죠. 사실 처음 의도한 건 지인들 불러서 다 같이 밤늦도록 술 마시고 놀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요. 사옥 만드는 중에 아이가 생겨서 한 번도 그런 용도로 써보지는 못했죠. 저 의자 색칠을 제가 직접 했는데, 페인트를 바르는 도중에 알게 됐어요. 임신했다는 걸.

사옥인 랄랄랜드의 규모와 화려함은 방송이나 온라인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죠. 방송에 노출된 이런 소파들이나 작품들 가격이 얼마인지 정리해둔 블로그도 있더라고요.

다 비싼 것들은 아니에요. 비싼 것도 제가 사옥을 위해서 막 사들인 게 아니라 오랜 시간 하나하나 다 모은 거고요. 개인적인 의미를 담아서. 중고로 들인 것도 많고, 저렴한 것도 많죠. 제가 사실 그렇게 비싼 걸 좋아한다거나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 실제로 집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냥 이 랄랄랜드, ‘찰리와 초콜렛 공장처럼 예술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 에너지로 독창적인 뭔가를 만든다’는 게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제 오랜 꿈이었던 거예요. 지금도 저한테는 이 공간이 참 꿈같아요.

방송에서 과장된 부분이 있을 뿐이지 그렇게 ‘플렉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 거군요.

한 번씩 플렉스 하는 건 또 좋아하긴 하는데.(웃음) 이 공간이 그런 의미는 아니라는 거죠. 랄랄랜드 이전에는 제가 정말 열악한 환경에서 방송을 했거든요. 사람이 두 명 이상 못 들어오고, 돗자리에 반사시켜서 조명처럼 쓰기도 했고. 게스트를 쓰려면 안산까지 불러서 그런 환경에서 촬영을 시켜야 하는데 미안하잖아요. 스태프들 대동해서 왔는데 아예 들어올 곳이 없다고 바깥에서 기다리시라고 해야 하니까.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뭐든 다 제약이 있으니까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공간을 꾸린 거죠. 카메라, 조명, 메이크업룸을 꾸리고, 안무 연습실도 만들고, 특히 크로마키 공간. 크로마키 공간이 콘텐츠를 크게 확장시켜줬어요. 작년에만 사옥에 들어간 투자금의 3배는 뽑았다고 봐요.

그랬군요. 굿즈 문제만 없었다면….

(정색하며) 그 단어는 금기어입니다. (랄랄은 작년 말 백화점과의 팝업 행사에서 굿즈 생산량을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6년치 수익을 잃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죄송합니다. 아직 내상이 남아 있었군요.

그건(굿즈) 그냥… 말 그대로 너무 많이 만들었죠. 저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2주 동안 하는 이벤트이니까 그 백화점 하루 방문자 수 곱하기 14를 했고요.

욕심이었을까요, 단순히 계산을 잘못한 걸까요?

둘 다죠. 최소 수량만 만들면 왠지 금방 다 나갈 것 같고, 공장에서는 한 번에 만들어야 한다고 하고. 그런데 아무튼 중요한 건 욕심이 일부 섞여 있을지라도 세상에 그런 식으로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거죠. 하루 방문자 수 곱하기 14라니 그런 무식한 계산이 어디 있어요.(웃음) ADHD의 특징이 산수에 약하대요. 그것도 하나의 사업인데 제가 주변에 조언을 많이 구하지도 않았고.

요즘 랄랄 채널이 정점을 찍고 있으니까 또 금방 회복하겠죠. 제가 생각하는 랄랄 채널의 신기한 점 중 하나는 비슷한 포지션의 채널이 없다는 거예요.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따라 하기 싫은가 봐요.(웃음)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것 아닐까요? 저도 이명화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특유의 표정 때문에 얼마나 급속 노화를 얻고 있는데요. 무엇보다 남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기가 힘들잖아요. 망가지는 뭔가를 했는데 그 밑에 온갖 이야기가 다 달리면 그 평가를 신경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들을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거든요. 악플도 애정이라고 느끼죠. ‘쟤 왜 저래’ 하는 게 사실은 배꼽 냄새처럼 자꾸 맡으러 들어오고 그러다 팬 되고 그러는 과정으로 보여요. 진짜 슬픈 건 댓글이 없는 거죠. 그건 진짜 관심이 없는 거니까. 저는 웬만한 악플은 다 ‘사실은 재미있어 하는 거 알아’ 하고 넘기는 것 같아요.

도무지 그렇게 넘길 수가 없는 센 악플도 있잖아요.

그런 댓글을 보면 그냥 ‘멍청이!’ 하죠. ‘멍청이! 내가 더 행복할걸?’ 저는 그냥 모든 걸 유쾌하게, 간단하게 바라보고 싶어요. 정말 심각하게 느껴지는 문제들도 단순하게 보면 별거 아니거든요. 돈을 버는 것도, 이런 가구들도, 죽고 나면 한낱 부질없는 거잖아요. 그걸 위해서 하는 거라면 이렇게 미친 듯이 일하고 그 과정에서 받는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살아 있는 동안 내가 내 재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만큼 돈을 벌고, 그만큼 살아 있는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자.’ 저는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게 훨씬 행복한 것 같아요.

그 유쾌한 시선에서 랄랄의 매력이 나오는 걸 수도 있겠네요. 랄랄 채널은 ‘대중에 먹힐 만한 콘셉트’ ‘조회수 뽑힐 만한 게스트’ ‘요즘 웃음 트렌드’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거든요. 그냥 본인 스스로 웃긴 걸 계속하지.

저는 제가 재미없는 건 잘 못해요. 방금 얘기했던 부분과도 연결되는 건데, 사람이 ‘이거 이렇게 하면 잘되겠지’ 하고 욕심을 내잖아요? 기대를 하면 실망을 해요. 잘되면 잘되는 대로 ‘이 인기가 언제 떨어질까’ 불안해하고. 그런데 의미 부여 없이 모든 걸 그냥 유쾌하게 넘기면 심각해질 것도 없거든요. 나는 즐거웠지만 별 반응이 없다, 그래도 촬영할 때 재미있었으면 된 거잖아요. 나도 즐거웠는데 사람들도 좋아해주면 고마운 거고. 수많은 프리랜서와 예술가가 ‘계속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고민을 하겠죠. 그런데 저는 그 고민이 자괴감과 강박이 되는 순간 독창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창작물을 만드는 사람은 자신이 즐거워야 해요. 자기 컨디션을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그게 제가 매일 밤 소주를 마시는 이유입니다.

요즘 랄랄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방송에서도 자주 보이고. 그건 어떤 의미일까요?

제 ‘부캐’들을 알리기 위한 거죠. 저는 딱히 방송 욕심은 없거든요. 그런데 이런 부분은 있어요. 제가 부캐 분장을 하고 방송국에 가면 사람들이 막 웅성웅성해요. 저인지 잘 모르는 분들은 ‘저거 뭐야’ ‘누구야’ 하기도 하고. 그런 반응이 너무 재미있어요. 저라는 사람은 하나인데 신인이었다가 슈퍼스타였다가 하면서 뮤직뱅크 스튜디오 같은 데 돌아다니잖아요. 그런 제 자신이 너무 좋아요.

최근에는 부캐와 실제 본인 사이의 경계가 깨지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그래요. 부캐를 놓고 본인 아닌 척하는 그런 게 저는 좀 별로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로 해야지, 너무 많이들 그러니까요.(웃음) 저한테도 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사실 그건 아티스트인 제가 다양한 연기를 구사하는 거잖아요. 저는 ‘랄랄 재미있다’가 좋은 거예요. 그 세계관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실망하시는 분도 있겠죠.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들어보기도 했고. 뭐 그런데 어떡해요. 실제로 나는 58년생 이명화가 아니고 92년생 랄랄인데.

30대의 랄랄은 20대 때의 랄랄과는 어떻게 달라진 것 같나요?

저는 나이대를 떠나서 아이를 낳고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난번에 인터뷰했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정말 이기적이고 나만을 위해 살았던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생긴 이후로는 인류애도 생겼고,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는데 조금은 남을 위해서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족을 위해서, 혹은 사회를 위해서.

그럼 만약 지금 다시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돌아가실 건가요?

네. 그리고 바로 임신할 거예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요. 저는 그만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었거든요.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고집도 세고, 제가 돋보이기만을 원했던 그 시절이 너무 후회스러워요. 그때는 왜 이런 걸 몰랐을까 싶고요. 좀 더 내려놓고 남을 위해 살면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많이 생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 그때로 돌아간다면 꼭 이 시선을 갖고 싶어요.

Credit

  • PHOTOGRAPHER 임한수
  • STYLIST 이진혁
  • HAIR 김환
  • MAKEUP 김범석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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