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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 김도훈이 말하는 "넷플릭스가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한 이후의 미디어"

에스콰이어 저널 : 영화 평론가 김도훈은 넷플릭스가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하면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뀔 거라고 예측한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1.23

전쟁은 끝났다. 영화의 미래를 건 전쟁은 끝났다. 워너 브라더스 인수를 둘러싼 파라마운트와 넷플릭스의 전쟁 이야기다. 영화 역사에 관심 없는 분들은 영화사 하나 사고파는 게 뭐 그리 중대한 문제냐며 다리를 꼰 채 이 페이지를 넘기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넘기셔도 큰 상관은 없다. 세계사가 격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서 영화의 미래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말이다. 다만, 이 전쟁이 여러분과 다음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완전히 변화시킬 전초전이라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일단 영화의 역사, 그걸 열어젖힌 할리우드 역사를 돌아보자. 할리우드를 건설한 다섯 개의 스튜디오가 있다. 유니버설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 컬럼비아 픽처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그리고 20세기 폭스다. 유니버설과 파라마운트는 1912년, 워너 브라더스는 1923년 창립됐다. 컬럼비아 픽처스는 1924년, 20세기 폭스는 1935년 문을 열었다. 독자 여러분이 각 스튜디오의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 시작 전 나오는 로고 정도만 구분하면 된다. 워너 브라더스는 WD라는 로고가 나온다. 유니버설은 이름답게 지구가 등장한다. 파라마운트는 눈 덮인 산이, 컬럼비아는 횃불을 든 여성이, 20세기 폭스는 포효하는 사자가 등장한다. 아마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영상이 재생되고 있을 것이다.

사실 20세기 후반 들어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지형도는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컬럼비아 픽처스는 이미 1989년 일본 소니에 합병돼 소니 픽처스가 됐다. 20세기 폭스는 2020년 디즈니에 합병됐다. 이미 두 개의 전설적인 스튜디오가 사라졌다. 남은 건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워너 브라더스다. 유니버설은 여전히 장사를 잘하고 있다. 디즈니 다음으로 많은 10억 달러 돌파 영화들을 배출한 곳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전성기 걸작들을 만들며 블록버스터 시장을 개척한 영화사다. <쥬라기 공원> <분노의 질주> 시리즈 등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를 아직 거느리고 있다. 파라마운트도 아직은 여력이 있다.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과 <탑건> 시리즈가 파라마운트의 주력 상품이다. 문제는 워너 브라더스다. 크리스토퍼 놀런과 <해리 포터>라는 주력 상품을 갖고도 지난 10여 년간 끝없이 수익이 추락했다. 마블을 삼킨 디즈니에 대항한다며 DC에 지나치게 투자를 한 탓일 수도 있다. 2022년부터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워너 브라더스가 금방 백기를 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20세기 초 영화의 역사를 열어젖힌 유서 깊은 스튜디오 중 하나다. 제작도 잘하고 배급도 잘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돈을 벌어주던 크리스토퍼 놀런이 <오펜하이머>부터 유니버설로 옮겨가긴 했지만, 그래도 꽤 돈이 되는 프랜차이즈들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넷플릭스가 102년 전통의 워너 브라더스를 720억 달러(약 100조원)에 인수한다는 뉴스가 터지자 할리우드는 패닉 상태가 됐다. 물론 20세기 폭스가 소니에 인수됐을 때도 할리우드는 패닉에 빠졌다. 디즈니가 20세기 폭스를 인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두 사례는 결국 극장용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는 회사들이 인수자라는 점에서 그저 자본의 변화, 자본의 이동일 뿐이었다. 영화산업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일은 아니었다. 넷플릭스의 워너 브라더스 인수는 다르다. 극장산업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OTT 회사가 영화 역사의 가장 상징적인 아이콘 중 하나를 통째로 삼키는 것이다. 자본의 변화가 아니다. 산업의 변화다.

난리가 났다. 도널드 트럼프마저 반대를 선언했다. 그는 “넷플릭스는 지금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데,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하면 너무 많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지나치게 큰 정치 점유율을 가진 양반이 할 소린지는 모르겠다만, 여튼 대통령까지 주의를 줄 정도로 큰 사건이라는 의미다. 미국 감독조합도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미국 작가조합과 제작자조합과 배우조합도 반대를 선언했다. 제임스 카메론은 “재앙”이라고 표현했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절대 넷플릭스와 일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왜들 이리 호들갑스럽게 반대를 선언하냐고? 간단하다. 넷플릭스의 워너 브라더스 인수는 ‘극장의 종말’로 가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아무리 거대한 블록버스터를 만들더라도 극장 개봉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몇몇 작은 영화들은 넷플릭스 공개 전 각 지역별로 극장에서 개봉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아주 희귀한 예외일 뿐이다. 잘 생각해 보시라. 워너 브라더스는 여전히 엄청난 IP를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맥스 기술에 가장 관심이 많은 제작사 중 하나다. 크리스토퍼 놀런이 아낌없는 지원을 받으며 아이맥스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다 워너 브라더스 덕분이었다. 넷플릭스가 워너 브라더스를 인수하는 순간, 더는 유서 깊은 IP를 극장에서 볼 수 없게 된다. 아이맥스? 잊어라. TV 혹은 모바일 화면을 기본으로 두고 영화를 제작하는 넷플릭스가 감독의 손에 무시무시하게 비싼 아이맥스 카메라를 쥐어줄 리는 없다. 넷플릭스 CEO 테드 서랜도스는 “워너 브라더스 제작 영화는 계속 극장에서 상영할 것”이라고 변명했는데, 직후 “극장 개봉 기간은 17일”이라고 덧붙였다. 조삼모사다. 넷플릭스는 극장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대체 워너 브라더스가 회사를 팔려는 이유가 뭘까? 이유는 하나다. 옛날 방식으로는 더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극장 수익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스트리밍 전쟁에서는 패배했다. 디즈니+와 넷플릭스에 대항한다며 만든 HBO 맥스는 기대 이하였다. 마블과 싸운다며 괜히 인수한 DC는 도무지 미래가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보유하고 있던 대형 IP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은 이미 올드해졌다. 어디에 팔지 않으면 10여 년 안에 파산할 가능성도 있다. 회사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투자할 자본을 더 얻고, 글로벌 플랫폼을 보유하고, 기술적인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회사를 파는 것이다. 합병해서 고유의 정체성이라도 지켜내는 것이다. 다행히 손 벌려 기다리는 곳은 있었다. 돈이 넘쳐나고 넘쳐나는 넷플릭스다. 자본도 충분하고 세계 최대의 글로벌 플랫폼도 보유하고 기술적 인프라도 최고인 넷플릭스도 워너 브라더스가 필요하다. 이미 지난 100년의 역사가 인증한 무한한 IP를 삼키는 순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치솟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워너 브라더스는 넷플릭스와 경쟁하며 인수 전쟁에 뛰어든 파라마운트의 제안을 계속해서 거절하고 있을까? 100년 경쟁자라 자존심이 상해서? 그럴 리가. 워너 브라더스는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불충분한 설명만 내놓고 있다만 이유는 너무 분명하다. 어차피 흡수돼야 할 운명이라면 똑같은 미래의 불안을 안고 있는 전통적인 스튜디오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플랫폼 회사에 흡수되는 게 낫다고 선택한 것이다. 이건 돈의 문제라기보다는 철학의 문제에 가깝다. 워너 브라더스는 자신들이 20세기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파라마운트에 인수된다면 결국 20세기에서 20세기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러느니 새로운 역사에 동참하는 게 낫다. 그래야만 미래의 역사에 계속 남을 수 있다. 한때 극장을 지배하던 스튜디오 시스템의 최종 보스는 망해서 과거의 유물로 사라질 생각이 없다. 알고리즘과 구독 모델로 성장한 무서운 신입 사원이 새로 차린 스타트업에 동참한다면, 잠깐 자존심이 꺾일지라도 미래의 자긍심은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워너 브라더스는 죽었다 깨어나도 파라마운트를 선택하지 않는다. 이건 내가 장담한다. 내 회사는 아니고 일개 필자일 뿐이지만, <에스콰이어>의 사운을 걸고 장담한다.

우리도 이제는 대비해야 한다. 미리 대비하면 대비할수록 좋다. 독자도 대비해야 한다. 나도 대비해야 한다. 영화인들도 대비해야 한다. 제작사도 대비해야 한다. 극장산업도 대비해야 한다.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에이,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과거만 붙잡고 있다가는 다 같이 망할 것이다. 넷플릭스와 워너 브라더스 합병이 이루어지는 순간, ‘개봉’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완전히 변한다. 극장은 선택적인 이벤트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극장은 더는 영화의 기본 플랫폼이 아닐 것이다. 극장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할 것이다. 스크린은 더 커지고, 4DX 같은 어트랙션은 더 많아지고, 좌석은 비싸질 것이다. 극장은 이제 테마파크에 가까운 무언가로 남을 운명이다. 이걸 읽는 영화인들은 ‘쉽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겠지만, 한국 극장 관계자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굴복한 지 오래다. 나는 영화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건 굴복이 아니다. 변화다.

당연히 영화의 본질도 바뀔 것이다. 워너 브라더스 같은 전통적 영화사들은 감독과 프로듀서 중심의 시스템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건 끝났다. 넷플릭스는 감독이 누구건 프로듀서가 누구건 딱히 매달리는 법이 없다. 그들이 믿는 건 데이터와 알고리즘이다. 누가 만든 영화가, 누가 출연한 영화가, 어떤 나라에서 만든 영화가 더 많은 클릭 수를 보장할 것인가. 관객, 아니 시청자가 어떤 영화를 한 번 클릭한 뒤 빠져나가지 않고 오래 머물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영화를 여러 버전으로 만들 수도 있다. 잘 생각해 보시라.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음 영화 결말을 두 개로 만들어 두 버전으로 공개할 수도 있다. 그중 어떤 버전을 더 많이 보는지가 향후 놀란 영화의 제작을 좌지우지할 것이다. 영화의 A/B 테스트 시대가 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절대 넷플릭스와 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10년 뒤 유니버설과 파라마운트마저 넷플릭스에 합병된다면 그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혹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독립영화 감독이 될 것이다. ‘고펀드미’로 제작비를 벌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이 모든 변화 앞에서 울고 있을 생각은 없다. 영화 역사는 항상 이 모양 이 꼴이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흑백에서 컬러로, 필름에서 디지털로, 극장에서 스트리밍으로 이동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영화는 죽지 않았다. 매번 형태만 바꿔 살아남아 여기까지 왔다. 넷플릭스가 워너 브라더스를 법적으로 완전히 잡아먹는 날, 사람들은 영화의 신전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또 “영화는 죽었다”고 선언할 것이다. 뭐, 우리가 알던 영화는 확실히 죽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잿더미 속에서 다른 날개를 퍼덕이며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은 조의를 표할 시간은 아니다. 영화는 영안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수술실에 들어갔다. 심장박동은 여전하다. 얼굴은 좀 달라질 것이다. 모든 얼굴은 나이 들면 조금씩 달라지게 마련이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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