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TECH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꿈, BMW 아트카를 만나다

아트 바젤 홍콩 2026에서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BMW 아트카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을 함께 했다. 1986년 라우셴버그가 꾸던 꿈과 만났다.

프로필 by 박세회 2026.04.27
아트 바젤 홍콩 2026에 전시된 BMW의 여섯 번째 아트카, 1986년 작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BMW 635 CSi의 모습.

아트 바젤 홍콩 2026에 전시된 BMW의 여섯 번째 아트카, 1986년 작 로버트 라우셴버그의 BMW 635 CSi의 모습.

"라우셴버그가 이 차를 두고 '내 꿈의 완성'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지요. 아트카라는 오브제 자체가 라우셴버그가 관심을 가졌던 모든 분야, 예술, 디자인, 엔지니어링, 테크놀로지를 아우르고 있지요. 특히 그가 가졌던 '어떤 사물도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물체화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지난 3월 25일, 오후 5시가 가까워질 무렵, 홍콩 컨벤션센터 1층 BMW 부스에서 BMW 그룹의 문화예술 분야를 책임지는 글로벌 총괄 토마스 기르스트 박사가 말했다. 우리 주변에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플루트 잔에 샴페인을 채웠고, 영어와 광둥어와 만다린이 뒤섞인 웅성거림이 우리를 둘러쌌다. 소란의 중심은 어떤 사람도, 어떤 그림도 아니었다. 흰색 차체 위로 흑백의 이미지들이 넘실거리는 자동차, 1986년 로버트 라우셴버그가 BMW 635CSi를 캔버스 삼아 완성한 아트카였다.

이 차가 아시아에서 공개 전시된 것은 처음이다. BMW 아트카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라우셴버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홍콩 아트 바젤 2026에 모습을 드러낸 이 작품은 단순히 '장식된 차'가 아니다. BMW 그룹 문화예술 총괄 토마스 기르스트 교수는 이날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라우셴버그는 항상 이동 가능한 박물관을 꿈꿨고,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죠. 이 차를 만들기 33년 전인 1953년, 그는 뉴욕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있던 유일한 친구인 존 케이지의 자동차 바퀴에 물감을 묻혀 7m짜리 타이어 트랙을 찍어냈죠. 그 작품은 어떤 면에서 동양의 서예처럼 보이기도 해요. 저기 있는 작품이에요. 지금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과 로버트 라우셴버그 재단에서 고맙게도 복제본을 전시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줬어요." 기르스트가 가리키는 부스의 한쪽 벽에는 라우셴버그의 <Automobile Tire Print>(1953)의 레플리카가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동양의 서예 작품 같지요.” 라우셴버그와 존 케이지가 모두 불교와 주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에 깊이 영향받은 예술가들이었다는 점에서 홍콩에서 이 아트카가 공개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소장한 작품을 실크스크린으로 전사 중인 라우셴버그의 모습.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 소장한 작품을 실크스크린으로 전사 중인 라우셴버그의 모습.

경계를 지운 사람

1950년대 초, 라우셴버그는 재스퍼 존스와 함께 예술의 본질에 대해 치열한 대화를 이어갔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큐비즘의 절정기에 피카소와 브라크가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날카롭게 벼리는 경쟁적 우정이었다. 그들 모두 일상의 사물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예술과 평범함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라우셴버그가 찾아낸 답이 바로 ‘컴바인(Combine)’이었다. 평면 콜라주의 3차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업은 거리에서 주운 쓰레기, 낡은 양철통, 교통표지판 조각, 납작하게 눌린 판지 상자 같은 것들을 회화와 조각의 중간 어딘가로 끌어들였다. 가장 유명한 컴바인 작품인 ‘모노그램’(Monogram, 1959)은 낡은 자동차 타이어를 목에 두른 박제 염소다. 뒤샹의 레디메이드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훨씬 더 풍부하고 혼란스러운 감각으로 확장했다는 평을 받았다.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제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는 멈추지 않았다. 1966년에는 벨 연구소의 과학자들과 협력해 '예술과 기술의 실험(EAT)'을 공동 창립했고, 나사(NASA) 달 착륙팀과 만나 아폴로 11호 발사 해에 연작 판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기술에 대한 그의 태도는 두려움이 아닌 포용이었다. 그는 미국의 현대미술 판화의 부흥을 이끌었던 판화 공방 ‘제미나이 G.E.L.’에서 새로운 인쇄 기술을 실험했고, 사진을 캔버스나 금속판에 전사하는 여러 방법을 개발했다. 라우셴버그의 아트카는 이런 실험들의 연장선에 있다.


차체 위의 미술관

1986년, BMW는 635CSi를 플로리다 서쪽 해안의 섬 캡티바에 있는 라우셴버그의 작업실로 배달했다. 흰색 차체에 흰색 가죽 시트. 작가는 처음에는 막막했다고 고백했다. 그가 “그 차는 마치 하얀 옷을 걸친 신부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고 말한 것은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완성된 결과물은 놀라웠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거장 아뇰로 브론치노의 <젊은 남자의 초상>(Portrait of a Young Man, 약 1530년)을 전사 포일로 만들고 실크스크린 기법을 활용해 차체에 전사했다. 그전까지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예술가들이 BMW의 의뢰를 받았을 때 차체를 캔버스 삼아 붓으로 그림을 그렸던 반면, 그는 사진 전사 기술을 최초로 사용한 것이다. 르네상스 회화 속 귀족 청년을 달리는 차의 운전석 쪽에 전사해 마치 그가 운전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이 이미지는 기묘한 충돌을 만들어낸다. 또한 조수석에는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회색조의 오달리스크>(Odalisque in Grisaille, 약 1824~1834년)를 같은 방식으로 전사해 마치 르네상스 청년이 운전하는 자동차에 하렘의 여인이 타 있는 듯 이미지를 전달한다. 특히 앵그르 특유의 관능적인 선이 자동차의 유선형 차체와 묘하게 공명하는데, 라우셴버그는 앵그르의 풍성한 이미지가 고급 자동차 차체가 주는 시각적 쾌감과 닮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두 작품이 전사된 자동차는 문자 그대로 '명작이 전시된 미술관'이 되어 도시를 이동한다. BMW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차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술사, 사진, 일상 문화가 융합된 '굴러다니는 조각(rolling sculpture)'."

전시된 반대편에 있는 ‘회색조의 오달리스크’의 모습.

전시된 반대편에 있는 ‘회색조의 오달리스크’의 모습.

아트카 50년의 역사

BMW 아트카 시리즈의 시작은 하나의 즉흥적인 제안에서 비롯됐다. 1975년, 프랑스의 젊은 레이싱 드라이버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에르베 풀랭이 BMW 모터스포츠 이사 요헨 네르파슈에게 물었다. “알렉산더 칼더가 차를 칠해준다면, 그 차로 르망에 나갈 수 있을까요?” 대답은 ‘예스’였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예스’가 반세기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후 ‘르망 24시’ 레이스를 무대로 프랭크 스텔라(1976), 로이 리히텐슈타인(1977), 앤디 워홀(1979)이 붓을 댄 아트카들이 르망의 트랙을 달렸다. 시리즈가 발전하고 BMW가 점차 글로벌 브랜드가 되면서 아트카는 레이스카를 넘어 일반 양산차로도 확장됐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던 해, 90세의 원주민 예술가 에스더 말랑구가 BMW 아트카를 제작했고, 호주에서는 원주민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1999년에는 제니 홀저가 르망 레이싱카로 만든 아트카 대열에 복귀했고, 이후 제프 쿤스, 존 발데사리, 줄리 메레투, 차오페이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 시리즈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냐는 질문에 기르스트 교수는 솔직하게 답했다. “순수한 이타심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브랜드의 가시성과 이미지를 위한 거죠. 하지만 동시에 기업 시민으로서 사회에 무언가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어요. 예술계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BMW는 한 가지 원칙을 고수한다. 예술가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는 것. 기르스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 자유는 우리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미래의 모빌리티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거든요.” 아트 바젤 홍콩 2026의 디렉터인 앙젤 시양-르(Angelle Siyang-Le)는 아트 바젤의 오랜 후원자인 BMW에 대해 “BMW의 역할이 특별한 이유는 오랜 파트너십의 역사만이 아니라, 미술계와 함께 진화해온 능력에 있다”라며 “경험이 풍부한 파트너는 가시성뿐 아니라 지속성과 신뢰 그리고 더 넓은 문화적 맥락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장기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26년, 전기차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BMW 아트카 역시 디지털 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파노라믹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이번에 출시된 i3와 iX3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역대 BMW 아트카 이미지를 차 안에서 감상할 수 있다. BMW의 18번째 아트카를 만든 중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차오페이가 처음 도입한 AR 및 VR 체험도 여전히 진화 중이다. “이동 가능한 박물관이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라는 라우셴버그의 말은 여러 의미에서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Credit

  • PHOTO courtesy of BMW
  • ART DESIGNER 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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