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듯 외국 아닌 한국 여행지 추천 [1]
10억 년 된 절벽과 한국의 갈라파고스 그리고 중국 장가계를 닮은 곳까지, 한국인도 몰랐던 이국적인 국내 여행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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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박호준(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대청도에 두 달 동안 머문 적이 있다. 심지어 머문 곳이 서풍받이 근처라서 매일같이 절벽을 올려봤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서풍받이를 감상하기보단 지키는 쪽이었다. 그곳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당시엔 서풍받이를 감상할 여유가 내게 없었다는 점이다. 소대 막내에겐 10억 년 된 규암 절벽보다 빨래 당번이 더 급선무였다. 하지만 ‘외국 같은 한국’을 소개하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대청도를 꼽았다. 높이 100m에 가까운 서풍받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1분 1초가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던 경계근무 시간이 조금은 빠르게 지나갔다. 평소 산에서 자주 보던 화강암이나 변성암과 달리 규암은 옅은 미색이라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채로운 색깔을 낸다. 덕분에 복학 후 전공 수업 시간에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각기 다른 시간마다 그린 이유를 들었을 때 서풍받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정식으로 트레킹 코스를 돌며 서풍받이를 감상하려면 2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광난두정자각에 내려 서풍받이전망대까지 30분 정도만 걸어도 충분하다. 대청도에는 서풍받이 같은 해안 절벽뿐만 아니라 길이가 1.6km, 폭 800m에 달하는 해안사구도 있다. 전역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그 해안사구에 헬리콥터를 타고 내린 경험은 여전히 단골 안줏거리다. 이왕 대청도를 찾을 예정이라면 백령도까지 함께 방문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차로 30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대청도와 달리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여덟번째로 큰 섬으로 세계에서 두곳밖에 없는 천연비행장인 사곶해변을 비롯해 볼거리가 다양하다.
굴업도
」고현(여행 칼럼니스트)
갈라파고스 같은 고립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인 시절, 여행 매거진에 소속된 나는 지면을 채울 취재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국경이 폐쇄된 해외는 당연히 언감생심. 이국적 무드를 최대한 느낄 수 있으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가능한 국내 여행지를 물색한 끝에 굴업도를 최종 낙점했다. 그렇게 백패킹 경험이 출중한 전문가 부부와 함께 그 섬으로 향했다. 인천항에서 덕적도를 경유해 장장 4시간 가까이 배를 타고 굴업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서해안의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풍경에 적잖이 당황했다. 10여 가구가 모인 마을을 지나 철책 너머 얼마간 산길을 오르고 나서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과 완전히 차단된 것처럼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과 그 너머의 망망대해. 개머리 능선이라 불리는 이곳은 마치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에 당도한 기분이 들게 할 만큼 야생의 기운으로 가득했다. 배낭을 어깨에 걸친 몇몇의 백패커들과 사슴 무리가 그 황홀한 장면에 일조한 것은 물론이다. 굴업도가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된 이유는 육지와의 먼 거리도 있지만, 개발 추진 백지화가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기존 사슴농장이 방치되면서 사슴의 야생 방목이 시작된 것도 굴업도를 이국적으로 느끼게 하는 요소다. 근래에는 인천항에서 직항편 배가 생겨 가는 길도 한결 수월해졌다. 섬에서 빠져나가기 전, 마을 이장님 댁에 들르면 싱싱한 해산물로 푸짐하게 차려 내는 궁극의 백반을 맛볼 수 있다.
주왕산
」윤찬영(여행 포토 크리에이터)
경북 청송에 위치한 주왕산 국립공원은 산 좀 다녀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독특한 곳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다. 붉은 기암절벽과 깊게 파인 계곡,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어우러지며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곳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장소는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었다. 거대한 스케일의 협곡과 층층이 쌓인 암벽의 질감, 그리고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풍경은 한국이라는 사실이 잠시 잊힐 만큼 낯설고도 인상적이다. 주왕산의 매력은 단순히 크기에서 오는 압도감에만 있지 않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다. 특히 해가 낮게 깔리는 아침과 해 질 무렵에는 붉은 바위가 더욱 짙은 색으로 물들며, 사진으로 담았을 때 깊이감이 훨씬 살아난다. 맑은 날도 좋지만, 비가 온 직후에는 바위의 색감이 더욱 또렷해지고 공기가 맑아져 색대비가 극대화되는 순간을 만날 수 있다. 도보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에 반드시 등산화일 필요까진 없지만 걷기 편한 신발은 필수다. 또한 주말이나 성수기에는 방문객이 많아 한적한 분위기를 담기 어려우니 가능하다면 조금 이른 시간 움직이는 편이 좋다. 촬영을 한 날은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옅게 깔려 있었는데 해가 떠오르며 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오히려 더 극적인 장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사진만 보고도 눈을 동그랗게 뜨겠지만, 단언컨대 직접 방문한다면 그보다 훨씬 큰 감동을 얻을 것이다.
만경강
」이현준(포토그래퍼)
만경강 하류, 청하대교에서 만경대교 사이 구간은 흔히 봐온 한국의 풍경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군산 쪽 제방에서 바라보면 주변을 둘러싼 낮은 산과 평탄한 지대 위로 길게 뻗은 수평선을 볼 수 있는데, 그 단순한 구조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굳이 설명하자면 완전히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보다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묘한 이질감이 만들어내는 낯섦에 가깝다. 불현듯 떠오른 건 네덜란드다. 천천히 흐르는 물길, 바람에 따라 결이 바뀌는 풀들이 만경강에 오버랩됐다고 말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까? 못 믿겠다면 추천하는 장소에 직접 가보길 권한다. 청하대교에서 만경대교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들어가는 편이 제일 쉬운 방법이다. 같은 구간이라도 김제 쪽은 갈대가 거의 없어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에, 군산 방향에서 바라보는 걸 추천한다. 시간은 해 지기 한 시간 전쯤 도착해 일대를 천천히 거닐며 일몰까지 보는 게 좋다. 서해 특유의 부드러운 빛이 내려앉으면서 갈대와 물 위 색이 조금씩 변해가는 순간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촬영할 때 사람도 없고 퍽 고요했다. 다만 갈대 사이로 뱀이 생각보다 자주 보여 몇 번 놀랐던 기억이 난다. 뒤집어 말하면 잘 정리된 관광지가 아니라 여전히 자연이 남아 있는 ‘진짜’에 가깝다는 뜻이다.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강을 따라 인공 구조물이 거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사실 포토그래퍼 입장에서 흔한 전봇대나 공장 건물이 개입하지 않은 자연을 마주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가슴 설레는 일이다.
Credit
- EDITOR 박호준
- PHOTO 옹진군청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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