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룰리안 블루는 없다
우리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영화적 이미지들은 왜 점점 사라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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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흐리멍텅해지기 시작했다. 우주도 흐리멍텅해졌다. 밋밋해졌다. 아니 잠깐, 우주는 그냥 밋밋한 까만색 아니냐고? 맞다. 까만색이다. 다만 까만색도 여러 종류의 까만색이 있다. 나는 얼마 전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봤다. 멋진 영화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1977), <E.T.>(1982), 제임스 캐머런의 <어비스>(1989),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2017) 이후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최고의 외계인 접촉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나는 꽤 감동을 받으며 극장을 나왔다. 요즘은 영화로 감동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장점은 돌덩어리처럼 생긴 외계인과 인간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본 영화 중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가장 영화적이다. 제작진이 CG에만 기대지 않은 덕이다. 요즘 SF 영화는,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그린 스크린을 이용해서 만든다. 지난 20여 년간 촬영장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구글로 검색해 보시라. 대부분 영화 촬영장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녹색으로 칠한 빈 공간뿐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배우밖에 없다. 21세기 배우들은 상상력이 뛰어나야 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린 스크린을 최대한 피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대부분의 것은 정말로 존재한다. 우주선 내부도 모두 물리적으로 직접 만든 세트다. 돌덩어리 외계인 ‘로키’도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고전적인 애니매트로닉스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CG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CG 캐릭터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질감이다. 특수효과가 이토록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CG 캐릭터와 실제 캐릭터를 여전히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할리우드는 모든 것을 CG로 만들던 시대에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중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여러모로 과거의 걸작들을 떠올리게 만하는, 상당히 고전적으로 만들어진 고전적인 SF 영화였다.
그럼에도 나는 불평을 좀 늘어놓을 참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며 나는 속으로 외쳤다. 조금만 더 강렬하게. 조금만, 더 극적으로, 조금만 더 영화적으로. 조금만 더 지나치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니 도대체 문제가 뭐냐고? 모든 장면이 지나칠 정도로 단정하고 현실적이었다. 마치 카메라를 들고 우주정거장으로 가서 찍은 영화 같았다. 그건 장점 아니냐고? 모든 SF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구현하고 싶어 하는 게 결국은 리얼리즘 아니냐고?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여기서 다른 신작을 하나 인용해보자. 곧 개봉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다.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불평이 쏟아졌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 얼굴이 2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은 아니다. 요즘 성형 시술은 지나치게 좋아진 나머지 할리우드의 누구도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가 전편으로부터 1년 후를 배경으로 했더라도 위화감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아니다. 색감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속편의 예고편을 비교한 영상들을 찾아보시라. 문제는 분명해진다. 오리지널이 영화 같았다면 속편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아졌다. 강렬한 색감은 사라졌다. 명암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밋밋하다. 전편의 그 유명한 ‘세룰리안 블루’ 장면은 지금 보면 지나치게 극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속편은 마치 습자지를 카메라 앞에 붙이고 촬영한 듯 흐리멍텅해졌다. 전편의 세룰리안 블루와 속편의 세룰리안 블루는 같은 색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지난 20년간 영화는 계속해서 흐리멍텅해졌다. 밋밋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미디어의 변화다. 더는 누구도 필름으로 영화를 찍지 않는다. 디지털로 찍는다. 이젠 선택의 여지도 없다. 영화는, 아니 영상은 필름에서 디지털로 완벽하게 넘어갔다. 2006년에는 모두가 필름으로 영화를 찍었다. 그게 기본이었다. 디지털은 아직 시험 단계였다. 2004년 마이클 만이 자신의 첫 디지털 영화이자 할리우드의 첫 디지털 대작 중 하나인 <콜래트럴>을 내놓았을 때 찬반이 격돌했다. <히트>(1995) 같은 그의 전작이 보여준 시각적 강렬함이 사라진 탓이다. 아니다. 사라졌다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로 바뀐 탓이다.
마이클 만은 2004년 소니가 출시한 ‘바이퍼 HD 카메라’를 메이저 영화 최초로 도입했다. 자연 조명이나 최소한의 조명으로도 LA 밤거리 장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시험이었다. 실험이었다. 나는 그게 영 재미가 없었다. 너무 사실적이었다. 너무 선명했다. 너무나도 드라이했다. 사람들은 이것이 새로운 리얼리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만이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퍼블릭 에너미>를 내놓았을 때, 의견은 극적으로 갈렸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도무지 1930년대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상이 아니라 현재 같았다. 시대극이라기보다는 타임머신을 타고 1930년대로 가서 찍은 리얼리티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글을 읽는 20~30대 독자 여러분은 그 시기 내가 느낀 시각적 충격을 크게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러분은 태어나자마자 디지털 시네마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 필름으로 만든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은 이미 다 디지털이다. 모든 감독은 디지털 카메라로 영화를 만든다. 예외는 있다. 아직도 굳이 창고에서 필름을 꺼내는 감독들이 있다. 크리스토퍼 놀런, 쿠엔틴 타란티노, 웨스 앤더슨이 대표적이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리얼리티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좀 오버한다는 것이다. 또다시 말하자면, 옛날 영화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옛날 영화는 과장의 미학이었다. 자연광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색감은 찬란했다. 명암은 강렬했다. 거기서 약간만 절제해도 ‘리얼리즘’이라 불렸다. 옛날 리얼리즘 영화도 지금 와서 보면 놀랄 정도로 극적이다.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자 후보정이 중요해졌다. 그 시기 감독들의 요구는 하나였다. 디지털로 찍은 장면을 ‘필름 룩’처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더는 누구도 필름 룩에 집착하지 않는다. 필름 영화에 대한 집단적 기억은 거의 사라졌다. 우리 모두 디지털로 찍은 절제된 화면에 익숙해졌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도 거의 사라졌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와 드라마는 달랐다. 화면을 캡처한 사진만 봐도 둘을 구분하는 게 가능했다. 이제는 아니다.
자, 아마도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보다 자연스러워진 화면이 더 편안하고 현실적인 거 아닌가요?’ 맞다. 요즘 영화는 덜 부담스럽다. 그런데 잠깐. 영화는 원래 부담스러운 매체였다. 우리는 현실을 보러 극장에 가지 않았다. 현실과 다른 느낌을 얻으러 극장에 갔다. 빛은 과했다. 색은 진했다. 명암은 극단적이었다. 그게 바로 영화였다. 영화는 과장의 예술이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택적 과장의 예술이었다.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몇 가지를 과감하게 덜어내고 원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 쿠엔틴 타란티노와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을 떠올려보시라. 모든 게 오버다. ‘영화적’이라는 말의 뜻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도 ‘이건 영화적이군’이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물론 ‘영화적이다’라는 말은 극장에서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이제 우리는 영화를 극장에서만 보지 않는다. 컴퓨터와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 본다. 후자로 보는 사람들 숫자가 더 많아졌다. 이제 영화는 철저하게 통제된 극장이라는 환경에서만 보는 매체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 보더라도 잘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밝아야 한다. 안정적이어야 한다. 적당해야 한다. 빛이 가득한 대낮 버스 안에서도 편안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이 피곤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 영화는 제작 단계부터 ‘어떤 상황에서 보더라도 잘 보이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밋밋함이 목표다. 흐리멍텅함이 목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나온 뒤 나는 옛 SF 영화를 찾아봤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E.T.>를 보면서 나는 마치 예술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모든 것이 강렬했다. 심지어 딱히 힘주지 않은 일상 장면들조차도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스필버그는 빛과 어둠을 지휘하고 있었다. 흑백 영화가 아닌데도 흑백이 분명했다. 젊은 여러분이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스필버그가 빛과 어둠을 사용하는 방식이 너무 오버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모든 장면에서 사람을 지나치게 긴장하게 만든다고 여길 것이다. 이제 우리가 영화로부터 원하는 건 빛과 어둠이 아니다. 그레이(회색)의 50가지 그림자다.
영화라는 건 세상을 반영한다. 세상은 지난 20년간 끊임없이 밋밋해졌다. 자동차를 떠올려 보시라. 지난 20년간 자동차는 색을 잃어왔다. 검은색, 흰색, 회색, 은색 자동차밖에 없다. 한때는 빨간색, 파란색, 녹색, 심지어 노란색 자동차들이 도로를 달렸다. 한국인의 옷도 달라졌다. 우리는 이제 흰색과 검은색만 입는다. 영화는 세상을 담는 매체다. 우리를 담는 매체다. 밋밋하고 흐리멍텅하게 세련된 세상은 밋밋하고 흐리멍텅하게 세련된 영화가 됐다. 마침내 웨스 앤더슨이 더는 메가폰을 들지 않는 날, 역사책은 그날을 영화가 색을 완전히 잃어버린 날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오버하지 말라고? 그러게나 말이다. 영화도 오버하지 않는 시대에 글이 오버가 너무 심했다.
김도훈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씨네21> <GEEK>과 <허프포스트>에서 일했고, 에세이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를 썼다.
Credit
- EDITOR 박세회
- WRITER 김도훈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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