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상스부터 트릴로베, 유니매틱까지. 출신이 남다른 시계 브랜드 4
전통적인 시계 산업 출신이 아닌, 산업 디자이너와 금융 전문가가 설립한 4개의 독특한 브랜드를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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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상스 타입 11: 고속열차와 의료기기를 설계하던 산업 디자이너가 다이얼 전체가 공전하는 구조에 직관적인 UI DNA를 이식한 하이엔드 타임피스
- 트릴로베 트랑트-두: 핸즈 대신 3개의 디스크가 회전하는, 금융 전문가 출신 창립자의 파격이 담긴 스포츠 워치.
- 이케포드 헤미포드 데이 데이트 블루: 포드 콘셉트카와 콴타스 퍼스트 클래스, 그리고 애플워치까지 설계한 거장이 1990년대에 내놓은 아이콘의 귀환
- 유니매틱 모델로 우노 U1-PD3-OR: 밀라노 국립 공과대학 출신 듀오가 완성한 극강의 미니멀리즘 다이버 워치
시계 산업의 견고한 전통은 대개 스위스 쥐라 산맥 깊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수백 년간 대를 이어 기술을 연마해 온 장인들의 손끝에서 정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완성되곤 하죠. 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에 뿌리를 둔 인물들이 가장 흥미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0.1mm의 오차를 다루는 기계 공학의 세계에, 고속열차를 설계하던 산업 디자이너의 시선이나 숫자와 씨름하던 금융 전문가의 치밀함이 개입할 때 발생하는 매력적인 스파크가 있거든요. 시계 산업 출신이 아닌 이들이 설립한 4개의 브랜드를 소개할게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기계식 시계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한 이들의 타임피스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워치메이커들의 작품과는 또 다른 결의 감각을 선사합니다.
레상스 - 타입 11
볼록한 티타늄 다이얼 위에서 세 개의 디스크가 각자의 궤도를 따라 공전하며 시간을 표시하는 레상스 타입 11 / 이미지 출처: 레상스.
18개의 세라믹 볼로 남은 동력을 직관적으로 표시하는 레상스 타입 11 / 이미지 출처: 레상스.
돌출된 크라운 대신 케이스백 자체를 힌지 레버로 젖혀 와인딩 한다 / 이미지 출처: 레상스.
고속열차와 항공기 캐빈, 의료기기를 디자인하던 브누아 맹티앙이 설립한 레상스는 기계식 시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남다릅니다. 핸즈를 과감히 걷어내고, 볼록한 티타늄 다이얼 위에서 세 개의 디스크가 각자의 궤도를 따라 행성처럼 공전하며 시간을 표시하는 ROCS(Ressence Orbital Convex System) 모듈을 고안했죠. 유성 기어를 활용해 이 디스크들이 다이얼 면과 항상 평행을 유지하기 때문에, 복잡한 구조임에도 모든 정보가 하나의 곡면에 밀착되어 디지털 스크린처럼 매끄럽게 읽힙니다. 어떤 각도에서든 빛의 굴절 없이 완벽한 가독성을 보장하는 것이 레상스만의 정체성이죠. 올해 새롭게 출시한 '타입 11'은 2010년 설립 이후 16주년을 맞은 레상스가 브랜드 최초로 선보이는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WERK RW-01을 탑재했는데, 기존 모델들이 ETA 2892를 개조해 ROCS를 구동하던 것과 달리 처음부터 ROCS 구동만을 위해 설계되어 무브먼트와 다이얼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삼각형 구조 안에 두 개의 배럴을 품어 파워 리저브를 기존 36시간에서 60시간으로 늘렸습니다. 크라운 없이 케이스백의 힌지 레버를 젖혀 태엽을 감고 시간을 맞추는 점 역시 레상스 특유의 방식이죠.
트릴로베 - 트랑트-두
케이스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틸 인티그레이티드 브레이슬릿이 세련된 실루엣을 완성하는 트릴로베 트랑트-두 / 이미지 출처: 트릴로베.
고정된 기준점 앞에서 시·분·초를 담당하는 세 개의 디스크가 회전하며 시간을 알리는 트릴로베 트랑트-두 / 이미지 출처: 트릴로베.
얇은 두께와 정교한 구동을 위해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트릴로베의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X-니힐로 / 이미지 출처: 트릴로베.
2018년 프랑스 파리, 발전소나 탈염 플랜트 등 대규모 인프라 금융(Project Finance) 분야에서 일하던 고티에 마소노는 시계 산업의 가장 굳건한 룰 하나를 깼습니다. 고정된 다이얼 위를 핸즈가 도는 것이 아니라, 기준점은 가만히 둔 채 시·분·초를 담당하는 3개의 독립된 디스크가 자체적으로 회전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죠. 장-프랑수아 모종이 이끄는 무브먼트 스페셜리스트 크로노드와 협업해 완성한 데뷔작 레 마티노(Les Matinaux)부터,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GPHG) 쁘띠 에귀유 부문 수상까지 그의 과감한 시도는 단숨에 하이엔드 업계의 이목을 사로잡았어요. 새로운 라인업인 '트랑트-두(32)'는 트릴로베 특유의 우아한 시간 표시 방식에 스포티한 감각을 덧입힌 모델입니다. 케이스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틸 인티그레이티드 브레이슬릿은 무척 세련된 실루엣을 뽐냅니다. 특히 기존 모델들과 달리 이 시계에는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인하우스 셀프와인딩 칼리버 X-니힐로(X-Nihilo)를 탑재해 얇은 두께와 정교한 구동을 동시에 챙겼습니다. 39.5mm의 다이얼 위에서 끊임없이 교차하는 기하학적인 디스크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숫자를 다루던 금융인의 치밀한 계산이 얼마나 아름답게 구현될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이케포드 - 헤미포드 데이 데이트 블루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의 대표 격인 ETA 7750을 기반으로 날짜와 요일까지 표시하는 이케포드 헤미포드 데이 데이트 블루 / 이미지 출처: 이케포드.
돌출된 러그 없이 스트랩이 케이스 안쪽으로 직접 연결되는, 조약돌을 닮은 모노코크 티타늄 케이스의 이케포드 헤미포드 / 이미지 출처: 이케포드.
포드 자동차의 콘셉트카, 콴타스 항공의 퍼스트 클래스, 그리고 훗날 애플워치의 디자인까지 참여한 산업 디자인계의 거장 마크 뉴슨. 그를 빼놓고 1990년대의 아이코닉한 시계를 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1994년 그가 설립한 이케포드는 당시로서는 무척 낯설었던 유선형 케이스와 손목을 단단히 감싸는 일체형 러버 스트랩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거든요. 특히 1997년에 처음 출시되었던 헤미포드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재출시된 '헤미포드 데이 데이트 블루'는 그 시절의 독창적인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대적인 마감을 더해 돌아왔습니다. 44mm의 티타늄 케이스는 특유의 조약돌 같은 둥근 곡선을 유지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가벼운 착용감을 선사하죠. 돌출된 러그를 아예 없애버리고 스트랩이 케이스 안쪽으로 직접 연결되는 구조 덕분에 손목에 안착하는 밀착력도 우수합니다. 스위스 워치메이킹의 믿음직한 엔진인 ETA 7750을 베이스로 한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해 날짜와 요일, 그리고 정밀한 크로노그래프 기능까지 든든하게 지원합니다.
유니매틱 모델로 우노 - U1-PD3-OR
절제된 디자인 속에서 또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인터내셔널 오렌지 다이얼의 유니매틱 모델로 우노 U1-PD3-OR / 이미지 출처: 유니매틱.
듀얼 룸 수퍼루미노바를 꽉 채운 인덱스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가독성을 보장하는 유니매틱 모델로 우노 U1-PD3-OR / 이미지 출처: 유니매틱.
다이버 워치 특유의 묵직함과 복잡함을 이토록 간결하게 다듬어낼 수 있을까요. 밀라노 국립 공과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지오바니 모로와 시모네 눈치아토가 설립한 이탈리아 브랜드 유니매틱은,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내고 본질만 남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입니다. '모델로 우노 U1-PD3-OR'은 이들의 디자인 철학이 가장 뚜렷하게 반영된 다이버 워치라 할 만합니다. 인터내셔널 오렌지 다이얼이 절제된 디자인 속에서 또렷한 존재감을 만들고, 다이얼과 베젤에 서로 다른 발광색을 적용한 듀얼 룸(Dual-lume) 수퍼루미노바가 잠수 환경은 물론 도심 속 데일리 워치로도 부족함 없는 시인성을 보장합니다. 단방향 회전 베젤에는 내구성이 뛰어난 세라믹 인서트를 적용했고 300m 방수 성능을 꼼꼼하게 챙겼으며, 내부에는 검증된 세이코 NH35A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탑재해 합리적인 가격과 실용성까지 영리하게 잡았습니다. 전 세계 단 300피스만 생산되는 한정판이라 희소성도 남다릅니다. 화려한 기교 대신 도구로서의 본질에 충실한 태도, 그것이 유니매틱이 단단한 마니아층을 만들어 온 방식입니다.
Credit
- EDITOR 손형명
- PHOTO 각 이미지 캡션
MONTHLY CEL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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