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티룸 문화는 왜 갑자기 인기를 끌고 있는 걸까? [1]
이 인기는 과연 '차 문화의 르네상스'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2026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의 특별관 전경. 제주와 대만의 팀들을 초청해 ‘섬’을 테마로 조성했다.
통의동 보안여관에 대해 당신이 십중팔구 몰랐을 사실 하나를 알려주고 싶다. 아트 스페이스, 책방, 숙박업소, 카페를 겸하는 이 복합적 공간의 맨 위층에는 ‘몽재’라는 이름의 근사한 티룸이 숨어 있다. 당신이 십중팔구 그 존재를 모르는 이유는 공개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차를 사랑하고 공부해 온 최성우 대표는 그 작은 티룸에서 개인적으로 소규모 다회를 열고, 손님에게 작은 환대를 마련해 왔다. 몇 년 전 최성우 대표에게 촬영용 소품으로 뭘 좀 빌리러 갔다가 처음 그곳에서 차를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백호은침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귀한 차였는데, 솔직히 이제 그 향이나 맛이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융숭한 대접, 좋은 취향과 깊은 휴식이라는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만이 여전히 생생하다. 어찌나 감명받았던지 한동안 ‘소규모 차 모임들을 소개하는 기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의욕도 품었더랬다. 금세 포기했지만. 대체로 다회는 은둔하는 경향이 있어 차 문화에 식견이 없는 자가 그 존재를 알기도 어려웠고, 소개 받는다고 해도 대부분 매체에 노출되는 것을 반기지 않았다. 차와 다회라는 것의 성질이 기본적으로 그렇겠거니 했다. 외부의 시선으로 향하던 에너지를 거두고 최대한 지금 이 순간, 내부의 본질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 그러나 마치 내 자신이 차 애호가라도 되는 양 성심껏 만들어낸 변호에 최성우 대표는 웃으며 대꾸했다. “좋게 말하면 그렇죠. 나쁘게 말하면 자꾸 문턱을 높이고 신비화해서 뭔가 대단한 게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부분이 있는 거고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에는 사실 그런 경계를 좀 허물고 싶다는 의도도 많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은 보안여관이 올해로 4회째 개최하고 있는 일종의 ‘차 박람회’ 격 행사다. 차 생산자, 차 문화 활동가, 차 도구 공예 작가, 차 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차 문화의 지형을 살펴보고 다방향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를 도모하는데, 생산자의 차 문화와 소비자의 문화가 불균형하게 발달하는 양상을 우려하는 마음이 담긴 것이다. 그로 인해 잘못된 정보가 정설처럼 퍼져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도. 최성우 대표가 특히 방점을 찍은 것은 ‘최신 차 문화’라는 부분이었다. 젊은 층이 차에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을 일찍부터 포착한 그는 동시대적인 차 문화를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올해 행사에는 50여 팀이 참가했는데, 그 면면이 내실을 갖추면서도 젊은 층과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문화를 품은 곳들이었다. 제주와 대만에서 초청한 팀도 9곳이나 되었고, 그에 맞춰 ‘섬’을 테마로 조성한 신관 지하의 특별관 풍경만 해도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여느 차 박람회와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보안여관 건물을 빙 에워싼 인파였다. VIP 프리뷰는 공식 오픈 1시간 전에 시작되었는데, 그때부터 이미 줄이 빼곡했으며 무엇보다 대부분이 앳되어 보였다. 최성우 대표도 그 광경이 놀랍다고 했다. 4년 전 처음으로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들 이 행사가 인기를 끌 거라고는 생각 못 했던 것 같다고. 본인이야 잘될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고 말이다. “요즘 농반진반으로 그런 얘길 해요. 한반도에 차가 들어온 이래로 이렇게 일반 대중에까지 차가 인기를 얻은 건 처음인 것 같다고, 르네상스 아닌가 한다고요. 한반도에 차가 들어온 게 1500년 전이거든요.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귀족들이나 마시는 것이었고, 조선시대에는 그렇게 많이 마시지는 않았으니까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은 차 생산자, 차 문화 활동가, 차 도구 공예 작가, 차 애호가가 한 자리에 모여 최신 차 문화의 지형을 살피는 행사다. 사진은 올해 참가한 완도 청해진다원의 부스.
강남구 청담동에서 6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티하우스하다.
국내 차 문화가 지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건 이 기사를 만드는 동안 얘기를 나눈 모든 사람이 동의했던 명제다. 서울은 물론 지역 곳곳에 차를 중심으로 한 다채로운 공간이 생겨나고 있고, 감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많은 브랜드가 행사를 기획할 때 티룸과의 협업을 고려한다. 의문이 드는 건 다른 대목이다. 고려시대 차 문화는 크게 이어지지 않았고, 조선시대에는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으며, 식민시대와 전쟁을 거치며 그나마 명맥도 잃었다면 지금 국내에서 ‘르네상스’를 맞아 융성하고 있다는 그것은 어느 나라의 차 문화일까? 한국의 것일까? 아니면 중국, 혹은 일본의 것일까? “나라마다 차 문화가 조금씩 달라요. 중국 같은 경우에는 차가 그야말로 일상생활 자체죠.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식사 대용, 간식 문화로 발달했던 것 같고, 일본에서는 정신 수양 측면을 많이 강조하는 부분이 있어요.” 처음으로 이 질문에 깊은 답변을 들려준 이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에서 만난 연우제다의 서정민 대표였다. 하동에서 2대째 차를 생산하고 있는 그는 놀랍게도 ‘한국 고유의 차 문화’라는 게 상대적으로 흐릿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부정적 어조는 아니었다. “그래서 한국의 차 문화는 그 모든 차 문화가 조합된 형태인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개성이 아주 강하잖아요. 자기 식대로 조합해서 한국만의 새로운 차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거죠. 우리 때는 격식을 맨 위에 두고 차를 배웠다면 요즘 친구들은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고 다 각자의 차 생활이 있고 문화가 있고 그렇더라고요.”
티하우스하다는 티룸이고, 다양한 전시와 클래스를 진행하며, 티센트라는 차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지난 6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티하우스하다는 이런 차 문화의 새로운 흐름을 잘 관찰할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티룸이면서, 다양한 전시와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하고, 티센트라는 티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고 있기도 한 차 문화 기반의 플랫폼. 취재를 위해 티하우스하다를 찾은 건 평일 오후 3시쯤이었는데, 한적하겠거니 했던 예상과는 달리 모든 좌석이 꽉 차 있었다. 대부분이 이삼십대로 보였고, 그러면서도 실내 분위기는 고요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있었다. 로지(露地, 차실로 들어서기 전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마음을 정돈하는 길)에서 영감을 얻은 좁고 고요한 입구부터 수반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여백’을 추구하는 공간 철학 측면에서는 일본 다도의 영향이 많이 느껴진다. 다만 그 구성을 채우는 것은 삼베와 한지 등 한국적인 소재며, 우리의 자연과 토양, 계절감이 담긴 한국의 녹차, 백차, 말차를 가장 중요하게 다룬다. 김민아 대표는 ‘차와 도자기의 나라 중국의 영향 역시 자연스럽게 함께 어우러졌다’고 덧붙였다. “사실 동양 문화는 고전을 깊이 공부해 보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도자기가 좋은 예죠. 중국 도자에는 회화적이고 장대한 아름다움이 있고, 조선백자에는 비워냄과 고요한 정신성이 있으며, 일본 도자에는 계절과 공간 속의 조화를 추구하는 감각이 있잖아요. 하지만 서로 다르면서도 또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 있어요. 차 문화 역시 마찬가지예요. 미감과 형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사물을 대하는 마음, 여백과 절제를 중시하는 사유 같은 측면에서 서로 이어져 있죠. 티하우스하다는 그런 차이를 한자리에서 조화롭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김민아 대표 역시 차 문화를 둘러싼 변화를 감지한다고 했다. 오픈 당시와 비교하면 손님들이 차에 갖는 관심과 이해도가 훨씬 깊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설명해야 했던 것이 요즘은 손님 쪽에서 먼저 더 깊은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하기도 하고, 분명 그다지 식견이 없던 손님이 갑자기 차 문화에 놀라운 깊이가 생겨 돌아오기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단순히 좋은 차의 종류나 맛과 향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삶의 여백, 자연과의 조화, 일상과 예술의 연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인터뷰 중에 던진 질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지금 느끼는 차 문화의 변화가 진화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그저 ‘힙’해진 측면이 크다고 생각하시나요?” 두 측면이 서로 조응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향이 클수록 왜곡될 가능성도 커질 테다. 차는 저렴하지 않은 취미니까. 비싼데 내실이 없는 것들이 자꾸 생겨나면, 젊은이들도 몇 번 시도해 보다가 금방 떠날 테니까. 김민아 대표는 질문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본인도 차가 너무 빠르게 이미지나 콘셉트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고도 했다. 차가 가진 ‘정신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도 차를 주면 두 손으로 받아요. 차에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어루만지고, 감사할 줄 알게 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아무리 ‘힙’하게 간다고 해도 결국은 깊고 건강한 마음이 자라날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또 다른 측면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게 올바르게만 가는 게 정답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약간 엇나가기도 하고, 그 엇나간 가운데에서 새로운 게 탄생하는 것이 문화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최대한 덜어내고 비워내 ‘차 한 잔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를 의도한 티하우스하다의 실내.
Credit
- PHOTOGRAPHER 박기훈
- ART DESIGNER 최지훈
MONTHLY CELEB
#장원영, #플레어유, #김남길, #손종원, #남주혁, #에스쿱스